[2009] 한스-헤르만 호페 - 자유주의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What Must Be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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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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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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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헤르만 호페는 살아있는 오스트리아학파 학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호페는 멩거, 뵘-바베르크, 미제스, 그리고 라스바드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오스트로-리버테리어니즘(Austro-libertarianism)의 가장 뛰어난 대표자로서, 칸트(Immanuel Kant)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인간행동학 이론체계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나코-캐피탈리스트는 현대국가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가? 1997년 캘리포니아 뉴포트 비치에서 미제스 연구소가 개최한 컨퍼런스에서 행해진 이 연설에서, 호페는 현대 민주국가의 본질을 해부하고, 이데올로기와 시민정부에 있어 아래로부터의(bottom-up) 자유주의 혁명을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호페는 “방어, 그리고 법과 질서 제공의 독점자”로서의 국가의 본질을 살펴보며 이 연설을 시작한다. 국가가 조장한 모든 독점과 마찬가지로, 법과 질서의 독점 역시 더 높은 가격과 더 낮은 품질의 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진다. 왜 이런 상황이 용인되는가? 옛 군주제 국가 또는 귀족제 국가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민주국가는 도덕적이고,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대부분의 민주국가 시민들에게 있어, 법과 질서는 곧 국가를 의미한다. 이는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중앙집권화 및 권력의 단일화와 연결된다.

자유주의자(libertarian)는 어떻게 이런 경향에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인가? 호페는 새로운 자유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계획을 제공하고자 한다.

서평: 자유주의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스트로-리버테리어니즘의 뛰어난 입문서 (김경훈)



자유주의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회, 국가 그리고 자유: 오스트로-리버테리언 사회혁명 전략

1. 서론 <펼치기>

이 연설의 조금 더 적절한 제목은 "사회, 국가 그리고 자유: 오스트로-리버테리언 사회혁명 전략(Society, State, and Liberty: The Austro-Libertarian Strategy of Social Revolution)"이 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방금까지 들으셨던 온건한 연설에 덧붙여, 논의를 조금 더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보다 더 구체적인 전략적 조언으로 끝맺고 싶습니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문제인지 진단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치료가 질병보다 더 나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진단은 인류 역사의 체계적인 구조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 사회와 협력 <펼치기>

우선 사회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하며 시작하겠습니다. 왜 사회가 존재할까요? 왜 사람들은 협력할까요? 왜 인류 사이에 영구적인 전쟁 대신 평화적인 협력이 존재할까요?

오스트리안들(Austrians), 특히 미제스주의자들(Misesians)은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타인에 대한 동정이나 사랑 같은 감정을 가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오직 스스로의 이익(self-interest), 즉 개인이 무엇인가를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선호하는 성향이 이러한 협력 현상을 설명하기에 전적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분업 생산이 자급자족적 고립(self-sufficient isolation)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합니다. 우리가 분업을 그만둔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 모두 지독한 기근에 시달리게 되고, 대부분의 인류가 즉시 사라지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이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앞서 말한 설명이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의미하지 않는지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이 명제는 어떠한 방해와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 사이에 항상 평화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변에는 강도와 살인자가 도사릴 것이고, 모든 사회는 어떻게든 이러한 유형의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하지만, 평화적 협력의 출현에 대한 홉스의(Hobbesian) 설명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이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만약 어떤 독립된 제3자, 즉 국가가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만들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영원히 서로 다투게 될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 이 설명이 대단히 기이한 구조를 가졌음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홉스에게 있어 사람들은 사악한 늑대 무리라고 가정되지만, 만약 제3의 늑대(국가)가 그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면, 순한 양떼로 돌변합니다. 홉스는 제3자인 국가가 둘 이상의 당사자 사이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말하지만, 그의 가정에 따른다면 제3자 역시 마찬가지로 늑대에 불과하고, 그렇다면 지배자 늑대와 현재로서는 평화롭게 서로 협력하고 있는 늑대무리 사이에 영구적인 전쟁이 일어난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합니다. 둘 이상의 개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협력에 국가 또는 독립적인 제3자가 개입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국제 관계는 이러한 통찰을 알아차리는데 도움을 줍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세계 정부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여전히 서로 다른 국가의 사람들은 평화적으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우 거대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매순간 다시 협력이 이루어집니다.

요약하자면, 인간 사이의 평화적인 협력은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자연스럽고 스스로의 이익에 의해 유발되는 이러한 협력은 자본의 형성, 교환수단인 화폐, 그리고 분업을 촉진할 것이고, 궁극적으로 이것들은 전 세계로 확장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화폐 역시 상품화폐(commodity money)로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물질적 생활수준은 향상되고, 보다 높은 물질적 생활수준에 기초하여, 비물질적 재화, 즉 문명, 과학, 예술, 문학 등 보다 정교한 상부구조가 발달하고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보호와 국가 <펼치기>

하지만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촉진된 정상적 발전을 방해하고, 왜곡하거나 심지어 조롱하기까지 하는 일들이 분명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의 주체는 국가입니다. 우선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강제적으로 자금을 징수하여 설립된, 보호 그리고 입법과 집행(법과 질서의 제공)의 영토적 독점자라고 국가를 정의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국가는 어떻게 조직될까요? 우선 우리는 “법과 질서 또는 재산의 보호”가, “국가 법률과 국가 질서 또는 국가 보호”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완전히 별개인 이 두 사안을 혼란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우리를 혼란시킨다고 생각합니다.)

“법과 질서 또는 재산의 보호”는, “국가 법률과 국가 질서 또는 국가 보호”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분업을 기반으로 한 재산과 사회적 협력이 자연스럽듯이, 범죄와 같은 사회적 재해나 자연 재해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완전히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보호가 우선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예방, 보험(개인적인 준비 또는 보험회사와 같은 협동), 경계, 자기 방어, 그리고 처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사람들의 의지에 기반한 자발적인 보호체제의 효율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인류가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든 마을에서의 법과 질서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지대(Wild West)는 현재 상황에 비해 전혀 "야만적(wild)"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를 기꺼이 보호하려 함으로써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을 채택하였습니다.

또한, 보안과 보호 서비스 생산에서도 분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삶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자기방어 수단과 더불어 분업의 이점을 활용하고 싶어 할 것이고, 전문화된 보호업자, 즉 법과 질서의 제공자, 정의의 제공자, 보호의 제공자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은 자신을 보호해줄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즉 효과적인 보호를 보장할 수단을 가지고 있고, 공명정대한 판사로서 명성이 높은 사람 또는 기관의 특정한 업무를 원할 것입니다. 가장 최소한의 복잡성을 가진 사회에서조차, 보호해야 할 재산이 있고, 평판이 좋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판사, 중재자, 보호자의 역할을 맡게 되는 특정 개인들이 빠르게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오늘날의 모든 마을, 작은 공동체, 그리고 물론 서부 개척지대까지도, 이러한 진실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보호는 국가 없이도 가능합니다. 이것은 분명 당연한 사실이지만, 국가주의적 교란과 혼란의 시대에는 앞으로 이야기할 매우 기초적이면서도 위험한 통찰을 강조하는 것이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자연적인 과정에서부터 분리시키는, 말하자면 인류의 원죄와도 같은 결정적인 단계는 보호, 방어, 보안, 질서의 제공을 독점화하면서 나타나게 됩니다: 초기의 수많은 보호자 중 한 명이 다른 모든 보호자을 배제하고 보호업무를 독차지하며 문제가 발생합니다. 보호의 독점은 하나의 기관 또는 사람이 주어진 영토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정의와 보호에 있어 오직 자신에게만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때 존재합니다. 즉, 독점적 보호자 외에는 어느 누구도 스스를 방어할 수 없고, 독점적 보호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보호를 위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러한 독점에 도달하게 되면, 보호자에 대한 기부금은 더 이상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이 아닌, 부분적으로 강제적인 것이 됩니다.

그리고 표준적인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예측에 따라, 재산 보호 사업에 대한 자유로운 진입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면, 보호 가격은 상승할 것이고, 보호의 질은 떨어질 것입니다. 독점자는 점점 더 우리 재산의 보호자로부터 멀어질 것이고, 점점 더 보호료 갈취자(protection racket)로 변질될 것이며, 결국에는 재산 소유자에 대한 조직적인 착취자가 될 것입니다. 보호자는 보호하기로 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재산을 파괴하는 침략자가 될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추상적인 용어(독점)를 통해 쉽게 설명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이 과정은 매우 힘겹고 기나긴 작업입니다. 어떻게 해야 다른 모든 보호자와의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사람들, 특히 경쟁에서 배제된 다른 잠재적 중재자들과 판사들은 왜 한명의 개인이 서비스를 독점하는 것을 내버려 두었을까요? 국가의 기원에 대한 구체적 해명은 매우 복잡하지만, 국가 기원의 일반적이고 논리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매우 쉽게 파악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모든 국가, 즉 모든 독점적 보호기관은 오직 마을과 같은 극히 작은 영토에서부터 기원합니다. 세계 단일국가, 또는 전 세계 인구를 포괄하는 보호독점이 처음부터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상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둘째 사안은 아무나 지역적 보호 독점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역적 보호 독점자들은 처음에는 자연적인 사회 엘리트의 일원으로 시작합니다. 즉, 그들도 처음에는 커다란 성취를 이루고 인정받은 사회 구성원이었습니다. 또한 독점자의 위치에 도달하기 전에 보호자로서 자발적으로 선택되었을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자발적인 권위를 인정받은 엘리트들만이 독점화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단계로 내딛거나, 피해가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즉, 모든 초기 지방정부나 국가는 개인의 지배권(lordship)이나 제후통치(princely rule)의 형태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법, 질서, 정의의 유지에 대해 특정 개인이나 기관이 독점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사람들은 이러한 업무를 아무에게나 위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사람들은 분명 지식이 풍부하다고 소문난 누군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 즉 귀족이나 특권층만이 독점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와 과거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모든 국가는 기본적으로 처음에는 제후국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흘러 민주국가로 변하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국가가 지역적으로, 그리고 보통 제후국가로서 시작된다는 점은 여전히 사실이지만, 현대적인 국가 체제가 도래하기에는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4. 제한된 정부의 불가능성 <펼치기>

일단 보호 독점이 자리잡았다면, 그때부터는 독점의 논리가 작동하게 됩니다. 모든 독점자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합니다. 보호 가격은 상승할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법의 품질의 변화입니다. 즉, 법의 내용이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독점자에게 이익이 되도록 바뀔 것입니다. 정의는 변질될 것이고, 보호자는 점점 착취자 내지는 수탈자가 됩니다. 구체적으로, 보호의 영토적 독점의 결과,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착취의 확대 경향이고, 둘째는 착취의 심화 경향입니다.

원래 지역적 기관인 국가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보다 더 많은 수입을 추구하는 고유한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영토의 확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국가가 보호하는, 또는 착취하는 대상이 많을수록 수입이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국가들, 즉 영토적 독점자들 사이의 경쟁은 서로를 제거하는 경쟁이 됩니다. 자신이 독점자가 되거나, 상대가 독점자가 되어 사람들을 뜯어먹는 것입니다.

게다가 수많은 국가들이 있다면, 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다른 나라로 이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관점에서 볼 때, 인구의 감소는 무척 성가신 문제입니다. 따라서, 국가들은 거의 자동적으로(automatically) 서로 갈등을 빚게 되고, 국가주의의 관점에서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영토 확장입니다: 전쟁이나 정략결혼, 때로는 전면적인 매입 등 여러 수단을 통해 영토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경향은, 한 국가에 의한 전 세계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경향은 착취의 심화입니다. 국가독점에 의한 착취, 즉 뜯어먹을 사람들의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착취의 강도 역시 더욱 심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쟁 국가의 수가 적을수록, 즉 국가의 영토가 커질수록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이주할 기회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계 단일 국가가 존재한다면, 어디를 가든 동일한 세금과 규제 구조가 적용될 것입니다. 이는 이민에 의한 인구 유출의 위협이 사라지는 것이므로, 독점적 착취는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입니다. 즉, 보호가격이 상승하고 품질은 떨어집니다.

5. 군주제 vs. 민주주의 <펼치기>

보호독점이 존재하게 되는 즉시, 독점자는 특정 범위의 영토에 대해서 가능한 최대한으로 보호 대상자를 확대하고,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착취를 강화하여 수입과 부를 증가시키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착취의 심화에 따른 각종 부작용과는 별개로, 이러한 상황은 국가의 지배자가 어떤 경향을 가지도록 유도할까요? 제후 또는 왕처럼 한 명의 개인이 독점을 차지하는 경우, 특히나 세습 독점일 경우, 독점자는 독점권과 자본가치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재산 가치를 보존하는 것을 주요 관심사로 설정합니다. 그는 내일 더 많은 것을 수탈하기 위해 오늘은 거의 수탈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단 한 명의 지배자만이 존재한다면, 국가권력 확장에 대한 대중의 저항은 매우 거셀 것입니다. 왜냐하면 국가기관에 대한 자유로운 진입이 불가능하고, 독점의 혜택은 단 한 사람과 그의 가족, 즉 세습귀족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대중의 분노와 경계가 고조되고, 착취를 심화시키려는 시도는 즉각적으로 심각한 한계에 이르게 됩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는 통치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에게 통치받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왕을 무척 혐오했습니다.

예측컨데, 제후국에서 민주국가를 향한 수세기에 걸친 개혁과 함께, 착취의 심화라는 국가의 욕망도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다수결주의 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 즉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만개한 국가의 형태에서도 독점과 착취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수결주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국가를 통솔한다는 의미에서 자주적이고(self-rule) 자기방어적인(self-defense) 체제가 아닙니다. 국가와 국민은 하나이거나 서로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선출된 의회와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은 제후와 왕을 대체했을 뿐, 보호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독점적인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토적 보호 독점권은 이제 왕과 제후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투표권을 가진 모든 사람이 함께 소유하는 공유재산이 된 것입니다. 단지 그 뿐입니다. 사유재산으로서 독점권을 소유하는 왕 대신에, 임시직이고 교체 가능한 관리인이 보호기관을 맡는 것입니다. 관리인은 보호기관을 소유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자원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즉, 그는 사용권(usufruct)을 소유하지만 자본가치를 소유하지는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더 많은 착취를 바라는 국가의 본질적 경향을 없앨 수 없습니다. 반대로, 더 비합리적이고 더 비계산적이며, 더 근시안적이고 더 낭비적으로 착취하게 만들 뿐입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듯이, 민주정부로의 진입은 개방적이기 때문에, 국가의 재산 침해에 대한 저항력이 줄어듭니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민주주의체제 하에서는 자유 경쟁을 통해 점점 더 최악의 인간들이 국가 최고위층으로 올라설 것입니다. 경쟁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유재산에 대항하여 가장 빈틈없는 침략자가 되기 위한 싸움은 환영받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제후와 왕은 통치자로서는 딜레탕트 였지만, 보통은 훌륭한 가장으로서 행동할 수 있도록 자연적 엘리트로서의 교육과 가치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민주주의 정치인들은 전문적인 선동가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최하위층 국민들에게도 끊임없이 호소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형적인 평등주의적(egalitarian) 본능이며, 모든 표는 다른 표들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적으로 선출된 정치인들은 결코 공무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재산이 보호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그 어느 왕보다도 훨씬 더 위협적입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경향, 즉 국가에 내재된 국내 인구에 대한 착취의 심화 경향과 외부를 향한 확대 경향이 결합된다면, 결과적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는 단일 민주국가와, 단일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단일 종이화폐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6. 현재의 상황 <펼치기>

오늘날에 대하여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20세기 말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단일 세계국가에 근접한 국면에 처해 있습니다.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며 최정상에 있는 세계경찰입니다. 동시에 민주주의는 거의 보편화되었고, 세계를 주도하는 권력인 미국은 최정상에 있는 민주주의 수호자이기도 합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를 비롯한 일부 신보수주의자들 (neoconservatives)은 이러한 국면이 곧 역사의 종말과 다름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단일화된 세계 민주주의에 거의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로-리버테리언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는 다소 다르게 보입니다.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폭도 통치(mob rule)라고도 부를 수 있는,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민주주의 하에서는 사유재산의 보호가 거의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보호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졌고, 정의의 품질은 끊임없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불변하는 정의의 법칙, 자연법과 같은 관념은 대중의 의식에서 완전히 잊혀질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이제 법이라는 것은 국가가 만든 법, 즉 실정법(positive law)에 불과하다고 여겨집니다. 국가가 말하는 것이 법과 정의가 되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사유재산이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사유재산 소유주들은 거의 완전히 수탈당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신체와 재산에 대한 침해 그리고 침략자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점점 더 자국민들을 무장해제시키고, 가장 기본적인 자기방어권(right to self-defense)을 박탈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유재산 소유자들은 더 이상 그들이 결정한대로 자신의 재산에 다른 사람들을 수용하거나 배제할 자유가 없습니다. 자신이 원한다면 받아들이고, 싫다면 거절할 권리는 사유재산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러한 권리는 방어 메커니즘을 수반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재산에서 사람들을 쫓아낼 수 있는 반침해적(anti-invasion) 방법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재산, 특히 상업적 재산에서부터 사람들을 내쫓을 권리는 완전히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가 사라졌으니, 오늘날 아무도 마음대로 고용하거나 해고할 수 없고, 사고 팔 수 없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수용하거나 배제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이 모든 것은, 침해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보호한다던 국가는 사실상 우리를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소득의 절반 이상을 빼앗고, 정의의 원칙보다는 민심에 따라 분배합니다. 국가는 수천 개의 임의적이고 침해적인 규제를 만들어 우리의 재산을 지배합니다. 우리가 무슨 이유로 좋아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더 이상 자유롭게 원하는 사람을 고용하고 해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곳에서 사고 팔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가격을 부과할 수 없고, 관계를 맺고 끊을 수 없으며, 원하는 사람과 결합하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국가는 우리를 보호하는 대신, 우리와 우리의 재산을 폭도들과 폭도들의 본능에 내맡겼습니다. 보호하는 대신에 가난하게 만들고, 가족, 지역공동체, 민간재단, 클럽, 협회들을 파괴했습니다. 국가는 모든 것을 점점 더 자신의 손아귀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과로, 국가는 공공의 정의감과 개인의 책임감을 왜곡하고, 점점 더 많은 도덕적, 경제적 괴물과 기형물들을 길러내고 있습니다.

7. 전략: 국가주의 질병을 멈춰라 <펼치기>

오늘날에 대하여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20세기 말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단일 세계국가에 근접한 국면에 처해 있습니다.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며 최정상에 있는 세계경찰입니다. 동시에 민주주의는 거의 보편화되었고, 세계를 주도하는 권력인 미국은 최정상에 있는 민주주의 수호자이기도 합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를 비롯한 일부 신보수주의자들 (neoconservatives)은 이러한 국면이 곧 역사의 종말과 다름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단일화된 세계 민주주의에 거의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로-리버테리언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는 다소 다르게 보입니다.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폭도 통치(mob rule)라고도 부를 수 있는,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민주주의 하에서는 사유재산의 보호가 거의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보호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졌고, 정의의 품질은 끊임없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불변하는 정의의 법칙, 자연법과 같은 관념은 대중의 의식에서 완전히 잊혀질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이제 법이라는 것은 국가가 만든 법, 즉 실정법(positive law)에 불과하다고 여겨집니다. 국가가 말하는 것이 법과 정의가 되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사유재산이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사유재산 소유주들은 거의 완전히 수탈당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신체와 재산에 대한 침해 그리고 침략자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점점 더 자국민들을 무장해제시키고, 가장 기본적인 자기방어권(right to self-defense)을 박탈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유재산 소유자들은 더 이상 그들이 결정한대로 자신의 재산에 다른 사람들을 수용하거나 배제할 자유가 없습니다. 자신이 원한다면 받아들이고, 싫다면 거절할 권리는 사유재산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러한 권리는 방어 메커니즘을 수반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재산에서 사람들을 쫓아낼 수 있는 반침해적(anti-invasion) 방법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재산, 특히 상업적 재산에서부터 사람들을 내쫓을 권리는 완전히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가 사라졌으니, 오늘날 아무도 마음대로 고용하거나 해고할 수 없고, 사고 팔 수 없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수용하거나 배제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이 모든 것은, 침해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보호한다던 국가는 사실상 우리를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소득의 절반 이상을 빼앗고, 정의의 원칙보다는 민심에 따라 분배합니다. 국가는 수천 개의 임의적이고 침해적인 규제를 만들어 우리의 재산을 지배합니다. 우리가 무슨 이유로 좋아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더 이상 자유롭게 원하는 사람을 고용하고 해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곳에서 사고 팔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가격을 부과할 수 없고, 관계를 맺고 끊을 수 없으며, 원하는 사람과 결합하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국가는 우리를 보호하는 대신, 우리와 우리의 재산을 폭도들과 폭도들의 본능에 내맡겼습니다. 보호하는 대신에 가난하게 만들고, 가족, 지역공동체, 민간재단, 클럽, 협회들을 파괴했습니다. 국가는 모든 것을 점점 더 자신의 손아귀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과로, 국가는 공공의 정의감과 개인의 책임감을 왜곡하고, 점점 더 많은 도덕적, 경제적 괴물과 기형물들을 길러내고 있습니다.

8. 위로부터의 개혁: 왕을 전향시켜라 <펼치기>

1914년까지, 국가가 야기하는 문제는 비교적 작았고, 그에 따라 해결책 또한 비교적 쉬운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오늘날의 문제는 더 어렵고 해결책 또한 훨씬 더 복잡합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의 정치적 중앙집권화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약했을 뿐만 아니라, 남부 독립전쟁 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며, 독일과 이탈리아도 아직 통일국가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특히 이 당시는 대중민주주의의 시대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유럽은 여전히 왕과 제후들이 국가를 통치했습니다. 선거와 의회는 작은 역할만 했을뿐더러, 극소수의 주요 재산 소유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정부는 소수의 귀족계층 엘리트들에 의해 운영되었고, 투표도 엄격한 재산 요건에 의해 제한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보호해야 할 것이 있는 사람들만이 보호기관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150년 전, 심지어 100년 전만 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말 간단했습니다. 오직 왕으로 하여금 “이제부터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자신의 보호자를 선택할 수 있고, 원하는 어떤 정부에라도 충성을 맹세할 수 있다”라고 선언하게 만드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즉, 왕은 누군가가 그에게 요청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보호자를 자처할 수 없으며, 그러한 서비스를 요청받았을 경우에만 포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1900년에 그러한 선언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제 이러한 가설적 상황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와 시나리오를 제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이 선언에 따라 모든 사람은 제한되지 않은 자기방어권을 되찾을 것이고, 자기방어보다 더 많거나 나은 보호를 원한다면 그 보호를 어디서 누구에게 제공받을 것인지의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분업의 이점을 활용할 것이고, 자기방어와 더불어 전문 보호업자에게 의존할 것입니다.

둘째, 보호자를 찾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사람은 보호 업무를 보장할 수 있는 수단, 즉 특정 지역에서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거나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지역을 보호해야할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신뢰할 수 있고, 신중하고, 명예롭고, 정의롭다는 확고한 명성을 지닌 사람들과 기관을 선호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선출된 의회를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대신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음 세 가지 경우: 이제 더 이상 독점자가 아닌 왕, 지역 및 지방 귀족, 그리고 국가적 또는 더 나아가 국제적인 보험사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입니다.

제가 방금 언급한 이러한 요구사항들은 분명 왕 스스로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왕을 보호자로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사람이 왕의 통치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이전에는 독점적인 보호를 받았던 많은 사람이, 세습귀족(hereditary nobility)이 아니라 자연적 귀족(natural nobility) 또는 거물들(magnates)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작은 영토 규모에서는, 지역의 귀족들도 보호자로서 왕이 전국적 규모로 제공하는 것과 대등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국적 독점자인 국가로부터 지역적 보호자로의 이러한 이행은, 보안산업의 조직과 구조에 상당한 탈중앙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탈중앙화는 오직 보호에 대한 개인적인(혹은 주관적인) 관심사만을 반영할 것입니다. 즉, 앞서 언급한 중앙집중화 경향이 초래한 보호산업의 과도한 중앙집중화가 조정됩니다.

마지막으로, 거의 모든 사람, 특히 도시 사람들은 화재보험사와 같은 상업보험사에 보호를 요청할 것입니다. 보험과 사유재산 보호는 분명히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입니다. 보험회사가 더 나은 보호를 제공한다면 그들이 고객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보상금은 낮아집니다. 그리고 보험사들이 보호시장에 진입함으로써, 이전에 독점적 보호자인 국가가 행했던 명시되지 않은 약속이 아니라 명확한 계약서를 근거로 하여 실행과 처리가 즉각적인 보호 계약이 표준 제품로써 제공될 것입니다.

또한 보험의 성격상, 다양한 보험사 간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절차 규칙, 증거 기준, 분쟁 해결 및 중재 등에 대한 보편적 기준의 개발이 촉진될 것입니다. 또한, 재산보호에 대한 서로 다른 집단적 위험율에 근거하여, 다양한 계층으로 수렴되는 개인들의 동질화(homogenization)와 탈동질화(dehomogenization)가 동시에 촉진되고, 그에 따라 서로 다른 보험료가 책정될 것입니다. 독점적 조건 하에서 존재했던, 서로 다른 집단들 사이의 모든 구조적이고 예측가능한 소득과 부의 재분배는 즉시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는 물론 평화의 기초가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호와 방어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한다는 점입니다. 독점적 조건 하에서는 오직 하나의 보호자만이 있습니다. 군주국가 또는 민주국가 사이에 차이는 없습니다. 정부는 언제나 관할 영토를 방어하고 보호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특징이 강제적인 보호독점의 결과이기에,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정부는 독점의 폐지와 함께 매우 부자연스럽고 심지어 인공적인 것으로 여겨져 즉시 사라질 것입니다. 인접한 영토를 보호하는 소수의 지역적 보호자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왕과 보험사와 같은 다른 보호자들이 함께 존재할 것입니다. 왕과 보험사는 광범위하게 펼쳐진 다양한 조각들의 패치워크 로 이루어진 영토를 보호할 것입니다. 또한 모든 정부의 "경계"는 끊임없이 변화할 것입니다. 특히 도시 안에서는 이웃이 서로 다른 보호기관을 갖는 것이 서로 다른 화재보험을 갖는 것만큼이나 흔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보호 및 방어의 패치워크 구조는 보호를 개선합니다. 인접한 영역에 대한 독점적인 방어는 주어진 영토 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보안에 대해 다소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다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실제로도 사실이 아닌 가정입니다. 실제로, 보안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는 매우 이질적입니다. 사람들은 단지 한 지역에만 재산을 소유할 수도 있지만, 지리적으로 널리 분산된 여러 지역에 재산을 소유할 수도 있고, 대체로 자급자족하고 경제적 교환에서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의존할 수도 있는 반면, 시장에 깊이 통합되고 넓은 영토에 걸쳐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도 있습니다.

보안산업의 패치워크 구조는 가지각색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보안 수요의 현실을 반영합니다. 또한, 이러한 구조는 그에 상응하는 보호무기의 개발을 자극할 것입니다. 대규모 폭격을 위한 무기를 생산하고 개발하기 보다는, 부수적인 피해 없이 소규모 영토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가 개발될 것입니다.

패치워크 구조에 입각한 경쟁적 체제는 국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지역간 소득 및 부의 재분배를 제거하기 때문에, 지역 간의 평화 유지를 최선으로 보장합니다. 즉, 패치워크 구조는 지역 간 충돌의 가능성과 범위를 줄어들게 합니다. 그리고 소위 모든 외세 침략자는, 비록 아주 작은 땅을 침공하더라도, 거의 즉각적으로 해당 지역에 상주하는 다수의 독립된 보호기관들에 의한 저항과 군사적, 경제적 보복에 부딪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외세의 침략 위험도 줄어들게 됩니다.

지난 150년 동안, 이러한 해결책에 도달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워졌으며,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이미 최소한 간접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명백합니다. 개혁의 문제를 훨씬 더 심각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변화들 중 몇 가지를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위로부터(top-down)의 개혁은 더 이상 수행될 수 없습니다. 과거 군주제 시대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실제로 위로부터의 개혁을 자주 상상하곤 했으며, 왕을 전향시켜 권력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고,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믿을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국가의 보호독점은 왕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공유재산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정부의 통치는 더 이상 특정 개인에게 얽매이지 않고, 민주정부의 일원으로서 이름 없는 익명의 개인이 담당하는 기능에 달려있습니다. 따라서 한 명 내지는 소수의 사람들을 전향시키는 전략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나 소수의 상원의원 등 고위 정부관료 몇 사람을 전향시킨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민주정부의 법칙 안에는 정부의 보호독점을 포기할 수 있는 개인적 권력을 지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왕은 그러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통령은 아닙니다.

대통령은 직위에서 물러날 수만 있을 뿐, 그 자리는 곧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는 정부의 보호독점을 폐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명목상 국민이 정부를 소유하는 것이지, 대통령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통치 하에서 정의와 보호의 정부독점의 폐지를 위해서는, 국민 대다수와 선출된 대표들이 정부의 보호독점 폐지를 선언하고, 그에따라 모든 강제적인 세금이 폐지되거나, 또는 훨씬 더 제한적이지만 말 그대로 아무도 정부독점에 찬성하지 않아 지지율이 0% 라는 것이 밝혀져야 합니다. 오직 이러한 경우에만 민주적 보호독점이 효과적으로 폐지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나리오가 근본적으로 함의하는 바는, 우리가 사실상 경제적, 도덕적 왜곡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폭도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고 있으며, 폭도들의 과반수 또는 전체가 투표권 행사를 포기하거나 기권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폭도들이 다른 사람의 재산을 약탈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비록 이것들이 모두 달성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문제는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대평등주의, 대중민주주의 시대에 대한 또 다른 근본적인 사회학적 진리가, 자연적 엘리트들이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음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왕은 그의 독점권을 포기할 수 있었고, 보안에 대한 대중의 수요는 거의 자동적으로 처리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연적 엘리트로서도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가진) 왕뿐만 아니라, 지역 귀족 및 훌륭한 기업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뛰어난 자질을 가졌고, 자연적이고 자발적으로 인정받아 확립된 엘리트이자 다층적인 계급구조의 상위에 위치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호받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을 때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9. 자연적 엘리트의 소멸 <펼치기>

대중민주주의가 도래하고 1세기 정도가 지난 오늘날, 사람들이 보호를 위해 즉시 의지할 수 있는 자연적 엘리트와 사회적 계층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연적 엘리트와 계층적 사회질서의 조직, 즉 국가로부터 독립된 권위와 존경을 끌받는 사람과 기관들은 민주주의자에겐 견딜 수 없고 용납할 수 없으며, 또한 민주적 평등주의 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 적대감은, 민주주의가 왕이나 제후에 대해 가지는 위협 정도를 훨씬 윗도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규칙에 따라 모든 독립된 권위자들과 기관들은 구조적으로 제거되거나 경제적 조치를 통해 미미한 수준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오늘날, 정부 이외의 어떤 사람이나 기관도 진정한 전국적 또는 지역적 권위를 갖지 못합니다. 이제 독립된 권위를 가진 사람은 없고, 단순한 유명인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스포츠, 영화, 팝송 등의 스타, 그리고 정치인들 같은 저명한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유행을 선도하고 문화를 형성할 수는 있지만, 자연적인 개인의 사회적 권위와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그들은 슈퍼스타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매일 TV에 출연하고 공개 토론의 주체가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명성은, 거의 전적으로 그들이 독점적 권력을 가진 국가기관의 일부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만약 독점이 폐지된다면, 이러한 정치계 "스타"들은 비주류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생활에선 대부분 아무짝에도 쓸모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민주주의만이 그들을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오직 스스로의 능력과 성취에만 맡겨진다면, 그들은 거의 예외없이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만약 민주정부, 즉 의회가 “지금부터 모든 사람이 자신의 판사와 보호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라고 선언하고, 정부 또한 보호를 위해 선택할 수는 있지만 필수가 아닌 하나의 옵션으로 남게 된다면, 누가 제정신으로 그들을 선택하겠습니까? 오늘날의 연방정부와 의회 구성원들을 누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판사이자 보호자로 선택하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왕과 제후는 진정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강제력이 개입되어 있었습니다만, 그들은 수많은 자발적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인들은 심지어 그들의 폭도 선거구에서조차 멸시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호를 위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셈입니다. 지역 및 지방 정치인들도 기본적으로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독점이 폐지된다면, 정치인들은 분명 사람들의 자발적 선택을 받을만한 매력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위대한 기업가로 불리는 인물들, 특히 보험회사들도 거의 전적으로 평등주의적 민주국가의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보호와 정의라는 특별하고 중요한 업무를 맡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신뢰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백 년 전에 왕이 할 수 있었던 일이 오늘날 행해진다면, 거대한 사회적 혼란과 함께 나쁜 의미에서의 "무정부 상태"를 야기하는 즉각적 위험이 발생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매우 취약하고 무방비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이 떠오를 것입니다: “국가를 폐지하는 것이 혼란을 가져올 뿐이라면, 빠져나갈 방법은 없는가?” 미리 답변을 요약해 드리자면, 있습니다. 하지만 위로부터의 개혁보다는 아래로부터의 혁명(bottom-up revolution)을 우리의 전략으로 삼아야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전선에서 하나의 전투만을 치루는 대신, 오늘날의 고전적 자유주의-리버테리언 혁명(liberal-libertarian revolution)은 수많은 전선에서 수많은 전투를 동시에 치러야 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재래식 전쟁보다는 게릴라전이 필요합니다.

10. 지식인의 역할 <펼치기>

우리의 목적인 혁명의 방법을 설명하기 앞서, 둘째 사회학적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지식인의 역할, 교육의 역할, 그리고 이념(ideology)의 역할이 변화했습니다. 보호기관이 영토적 독점자, 즉 국가가 되는 순간, 진정한 보호자에서 보호료 갈취자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호료 갈취 피해자들의 저항을 감안했을 때, 국가는 합법성과 지적 정당성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국가가 보호자에서 보호료 갈취자로 변할수록, 즉 세금과 규제가 추가적으로 증가할수록, 이러한 합법성의 필요가 더 커집니다.

올바른 국가주의 사상을 보장하기 위해, 보호 독점자는 보호료 갈취자라는 특권적 지위를 활용하여 신속히 교육독점을 확립할 것입니다. 명백히 반-민주적인 군주제가 지배적이었던 19세기에서초자도, 적어도 초등교육과 대학교육 수준의 교육은 이미 대부분 독점적으로 조직되어 강제적인 자금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로 왕실의 교사와 교수들, 즉 왕과 제후의 지적 경호원으로서 고용된 사람들에 의해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군주제 통치와 왕과 귀족의 특권이 이념적으로 무너지고 평등주의 사상이 지배하게 된 이후로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지식인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습니다.

지식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국가에 기생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실제로 교육자와 지식인의 수를 증가시키고, 정부 공교육제도의 확대는 지적 낭비와 오염의 거대한 홍수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가격은 보호와 정의의 가격과 마찬가지로 독점적인 행정하에 급격하게 상승했습니다. 동시에 교육의 질은 정의의 질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하락해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보호받지 못하는 만큼, 교육받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체제와 교육 및 연구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현직 교사와 지식인들은 실업자가 되거나, 수입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흑인영어(Ebonics)의 문법, 모기의 성생활, 또는 빈곤과 범죄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며 연간 10만 달러를 받는 대신에, 감자 재배의 과학이나 가스 펌프의 작동 기술을 연구하며 2만 달러밖에 받지 못할 것입니다.

교육제도의 독점 또한 보호와 정의의 독점만큼이나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정부 교육과 연구개발은 대중의 저항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국가의 중요한 도구입니다. 오늘날 정부의 입장에서 보자면,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판사, 경찰, 군인보다도 지식인들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위로부터의 개혁이 민주주의체제를 전환시킬 수 없듯이, 공교육과 공립대학이라는 기득권 제도 안에서부터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체제는 개혁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군주제를 교체하던 것을 모방하여, 자유주의자들이 공교육 제도에 침투하여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세금 및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교육제도는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는 공교육이라는 조건 하에서 직업을 갖는 것이 분명 불가능합니다. 저는 결코 대학의 총장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저의 견해가 이러한 경력을 쌓는 것을 거부할 것입니다. 이것은 교육과 지식인들이 자유주의 혁명을 가져오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반대로, 앞서 설명했듯이,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우리가 경제적 및 도덕적 왜곡, 민주주의, 그리고 정의와 보호의 민주적 독점을 폭로하고 비합법화하는 것에 성공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 교육은 정말 중요합니다.

분명 이 모든 것은 이념 대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학계가 우리의 노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습니다. 교육자와 지식인들은 정부의 실업수당 아래서 국가주의자가 되는 경향을 보일 것입니다. 지성의 탄약을 장전하고, 이념적 방향성을 설정하여 협력하는 것은, 오직 주류 학계 외부에서만 가능합니다. 독립적인 외부의 대항문화(counterculture), 즉 보호와 교육의 정부독점에 대한 근본적인 반대세력만이 지적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마치 미제스 연구소처럼 말입니다.

11. 아래로부터의 혁명 <펼치기>

마지막으로 아래로부터의 혁명 전략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민주주의의 방어적 이용, 즉 자유주의자(libertarian)가 반-민주적이고 친-사유재산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 민주주의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간략하게 되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두 가지 예비적인 통찰에 도달했습니다.

첫째, 위로부터의 전략이 불가능함에 따라, 대통령 선출과 같은 전국적인 선거에 에너지, 시간, 돈을 거의 또는 일절 쓰지 말아야 합니다. 중앙정부를 위한 선거 또한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특히, 예를 들어, 하원의원 선거보다는 상원의원 선거에 더 적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둘째, 보호료 갈취자로서의 현 체제를 보호하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는 통찰에 따라, 교육 및 학계를 내부에서 개혁하기 위해 에너지, 시간, 그리고 돈을 거의 또는 일절 소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유기업이나 사유재산을 지지하는 사람이, 기득권 대학 체제에 후원한다는 것은, 자신이 반대하기를 원했던 바로 그 생각의 정당화를 도울 뿐입니다. 공교육과 공립 연구기관들은 체계적으로 재정지원이 중단되어 폐지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또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과제에 필요한 필수적 과정으로서, 지적 작업에 대한 모든 지원은, 정확히 이러한 업무를 수행하기로 결정한 기관 또는 센터 에 주어져야 합니다.

상기한 두 가지 권고의 근거는 매우 간단합니다: 전체 인구도, 모든 교육자와 지식인도 이념적으로 완전히 동질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반-민주적 공약이 전국적인 규모로 과반수를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충분히 작은 지역구(district), 또는 민주정부의 전체 구조 속의 일부 지방 및 지역적 측면에서는 그러한 과반수를 얻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다수결 합의가 수천 곳에서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는 것이 비현실적일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위치는 전국에 분산되어 있지만 고르게 분산되어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식인 계층이 대체로 정의와 보호의 천적으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에는 반-지식인적(anti-intellectual) 지식인들이 고립되어 분포하고 있습니다. 미제스 연구소가 증명했듯이, 이러한 고립된 인물들을 하나의 지적인 중심지로 결집시켜, 서로 단결하고 힘을 기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심지어 국제적으로 지지자들을 모을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끝없이 되뇌이고 행동함에 있어 명심해야 하는 궁극적 목표, 즉 사유재산과 재산 보호권, 자기 방어권, 배제와 수용, 계약의 자유 등이 아래로부터 재건된다면 다른 것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를 위한 대응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친-사유재산 대표와 반-다수결주의자들이 승리한 아주 작은 지역구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높은 수준의 정부, 특히 중앙정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시작 단계로서의 첫째 사안에 대해, 지금부터 이야기할 내용은 지역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자유주의 혁명의 최초의 발판으로서 명심해야 하는 핵심 강령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방세, 특히 재산세와 규제에 대한 투표권을 재산과 부동산 소유자에게 제한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재산 소유자에게만 투표가 허용되어야 하며, 그들의 표는 동등하지 않고, 소유한 지분(equity)의 가치와 납부한 세금 액수에 따라 다르게 정해져야 합니다. 류 락웰(Lew Rockwell)은 이미 캘리포니아의 어느 곳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음을 우리에게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또한 교사, 판사, 경찰 등 모든 공무원과 복지 수혜자는 지방세 및 지방규제 문제에 대한 투표에서 제외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세금으로 연명하고 있으며, 이러한 목적에 투입되는 세금이 얼마나 많은지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이러한 공약으로 모든 곳에서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워싱턴 D.C.에선 이 공약으로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데,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이 지역들은 충분히 작아야 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지방세 및 세율은 물론 지방세 수입도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산가치와 지역수입은 대체로 증가하는 반면, 공무원 수와 급여는 감소할 것입니다. 이제 가장 결정적인 단계로서, 다음과 같은 조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기서는 오직 규모상 작은 지역구와 마을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는 점을 명심해주시길 바랍니다.

폭도들의 투표권을 박탈한다면 지방정부의 자금난이 발생할 것이고,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단으로서 모든 지방정부 자산을 사유화해야 합니다. 모든 공공건물, 학교, 소방서, 경찰서, 법원, 도로 등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지방정부의 재산을 정리한 다음, 평생 납부한 세금, 즉 재산세의 총액에 따라 차등을 두어 지분 또는 주식을 해당 지역의 사유재산 소유자에게 분배해야 합니다. 전부 그들 몫입니다. 그들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 주식은 자유롭게 사고 팔리는 등 거래될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지방정부는 근본적으로 폐지될 것입니다. 만약 더 큰 규모의 정부가 지속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마을 또는 도시는 이제 자유롭고 해방된 땅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따라 교육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며, 더 중요한 것으로 재산의 보호와 정의는 어떤 국면을 마주하게 될까요?

우리는 100년 전에 왕이 퇴위했다면 발생했을 일이 작은 지역적 차원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측해보자면: 지방정부가 존재했을 당시 학교, 경찰서, 법원 등에 투입되었던 모든 물적 자원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인력 또한 여전히 존재할 것입니다. 유일한 차이점은 이제 그것들은 개인의 소유이고, 공무원의 경우 일시적으로 실직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교육 그리고 보호와 정의에 대한 지역적 수요가 지속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가정 하에, 학교, 경찰서, 법원은 여전히 같은 목적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전직 교사, 경찰, 판사가 자영업자로서 창업하거나 재취업하여 업무를 재개할 것입니다. 단, 그들이 사유화된 재산을 소유한 지역의 "거물(bigshots)"들이나 엘리트들에 의해 운영되고 고용될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발생합니다. 과거에 지방정부가 소유했던 것들이 이제 영리 기업으로 전환되거나, (아마 보다 가능성있을 것인데) 자선단체와 영리단체의 중간 수준으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지역의 "거물"들은 종종 기부를 통해 공공재를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역의 정의와 평화 보존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질 사람들이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학교와 경찰에 대해서는 작동하리라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판사와 정의의 문제는 어떨까요? 여기서 우리는 모든 악의 뿌리가 정의의 강제 독점, 즉, 단 한 사람만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는 점에 있음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설적 상황에서, 판사들은 강제가 아니라 자유롭게 자금을 지원받으며, 판사의 지위에 대한 자유로운 진입 역시 보장될 것입니다. 판사들은 투표로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원하는 사람들의 수요에 의해 효과적으로 선택됩니다. 또한 우리가 고려 중인 작은 지역적 차원에서는, 한 명 내지는 극소수의 판사만을 필요로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판사들은 민간 법원협회 또는 증권회사에 고용되었는지, 아니면 자영업자인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명성이 높고 존경받는 소수의 지역 사람들, 즉 자연적 지역 엘리트의 구성원들만이 지역의 평화를 위한 판사로 선택받을 기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자연적 엘리트만이, 그들의 결정에 권위를 갖고, 집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내놓는다면, 그들은 더 존경받는 다른 권위자에 의해 즉시 대체될 것입니다. 물론 지역적 차원에서 이러한 노선을 따라 진행한다면, 상층부, 특히 연방정부 수준의 정부권력과 직접적인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연방정부라면 그런 시도를 그냥 부숴버릴 수 있지도 않겠습니까?

연방정부는 분명 그렇게 하길 원하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정부기관의 구성원들은 민주주의체제에서조차 전체 인구의 아주 작은 비율만을 대표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심지어 중앙정부의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그 비율이 훨씬 더 적어집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광범위한 지역적 지원과 협력을 받지 못할 경우, 중앙정부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입법 의지와 악법을 강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수많은 자유 도시와 마을을 가정한다면 이 점은 더욱 명백해집니다. 지리적으로 널리 분산된 수천 개의 지역들이 장악된 상태에서, 연방정부가 직접적인 통치를 가하는 것은 인력 문제를 포함하여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중앙정부에 복종하는 지역당국을 매개로 한 강제의 집행이 없다면, 중앙정부의 의지는 그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합니다. 물론 중앙정부에 대한 지역적 지원과 협력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해방된 공동체의 수는 적을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다소 위험한 상황에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 투쟁이 시작단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중앙정부와의 직접적인 대립을 피하고, 공개적으로 그 권위를 비난하거나 모욕하지 않는 신중한 행동이 필요합니다. 직접적인 대립 대신에, 소극적인 저항과 비협조 정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간단히 말해, 중앙에서 제정된 법률의 집행을 중단하고,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중앙정부)의 규칙이니, 당신이 그것을 스스로 집행하라. 나는 당신을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당신을 돕지도 않을 것이다. 나의 유일한 의무는 나의 지역 주민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침이 일관성있게 행해진다면, 그것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든, 중앙정부에 대한 어떠한 협력이나 지원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힘은 심각하게 감소하거나 심지어 증발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여론에 비추어 본다면, 온전히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는 이유로 연방정부가 지역 주민들의 영토를 점령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입니다. 아주 작은 괴짜 무리였던 웨이코(Waco) 는 예외적이었지만, 정상적이고, 성취를 이루었으며, 정직한 시민으로 구성된 집단을 대대적으로 점령하거나 소탕하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입니다.

암묵적으로 사실상의 분리독립을 이룬 지역의 수가 임계점에 도달하고, 한 작은 지역에서의 성공이 다른 지역의 분리독립을 조장하고 촉진한다면, 필연적으로 전국적인 지방자치화 운동(municipalization movement)이 더욱 급진화될 것입니다. 즉, 명시적으로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지역 정책들과 함께, 연방당국에 대한 공공연하고 경멸적인 비복종적 태도가 잇따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앙정부가 보호 독점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 도래한다면, 권력 상실을 눈앞에 둔 중앙당국은 지방당국과 순전히 계약적 관계 차원으로 전락하게 되거나,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방어할 힘을 온전히 되찾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