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학파의 후생경제학
Rothbardian Welfare Economics

Ohad Osterreicher1
번역: 김경훈 연구원 (미제스 코리아)

모든 경제학과 학부생은 경제학이 실증과학이라고 배운다. 입문 교과서는 경제학자가 경제학자로서 결코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항상 분량을 할애한다. 경제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로서, 경제학자는 그의 능력상 세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설명할 수 있을 뿐이지, 그것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

예컨대, 기초 경제학에 따르면, 우유 가격이 자유시장에서 책정되었을 수준보다 낮아지게 간섭하는 것은 부족을 초래한다. 마찬가지로, 임금을 시장청산 가격보다 높게 책정하는 것은 비자발적인 실업을 초래한다. 이 명제들은 그러한 결과의 바람직함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가치중립(wertfrei)이다.

그러나 그 후 다른 의문이 생긴다. 경제학은 특정한 변화가 사회복지에 미칠 영향을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는가? 즉, 경제학을 통해 우리는 언제 사회적 효용(social utility)이 극대화되는지, 그리고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그 지점에 도달 가능한지 파악할 수 있는가? 만약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다’ 라면, 경제학자는 경제학의 가치중립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윤리적 발언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prima facie).

그러한 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의 분야는 후생경제학(welfare economics)으로 알려져있다. 경제학의 여러 부분 중에서도 후생경제학은 신비로운 하위분야(arcane subfield)인데, 역사적으로 볼 때, 그것은 매우 험난한 보강 및 우여곡절을 거쳤으며, 몰락과 부활을 수시로 반복해왔다. 이 글에서는 라스바드가 기여한 시점 까지의 후생경제학의 변화과정을 간략히 요약하고, 그 함의를 논의하며, 그것에 대한 비판을 재검토할 것이다.

‘고전파 복지 이론’의 실패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 등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복지에 대한 원시적이고, 주관주의 이전의(pre-subjective) 개념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물리적인 생산량을 최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공정책의 채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증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그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 간단하다고 보았다. 즉, 분업의 범위를 최대한으로 넓히고, 가능한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다.2

분업과 자본 축적의 영향에 대한 고전파 경제학의 분석을 대부분 옳았지만, 그들은 물리적인 산출 결과만으로도 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잘못 파악했다. 주관주의자인 신고전파 경제학에게 있어, 고전파 사고방식의 잘못은 매우 명백하다. 복지는 사회 내 소비재의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양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복지는 사람들이 가진 선호의 함수(a function of people’s preferences)이며, 선호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 더 많은 소비재는 더 높은 수준의 복지를 의미할 수 있지만, 그 재화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만약 그 재화들을 생산하는 비용, 예컨대 포기된 여가 따위가 이러한 재화가 만족시켜주는 것 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면, 더 많은 재화는 복지가 더 적은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더구나 고전파 경제학의 추론에 입각할 경우,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도록 강제하거나, 시간선호도가 높은 가난한 개인으로부터 시간선호도가 낮은 부유한 개인으로 부를 이전하는 방법으로 자본의 총량을 증가시킴으로써, 사회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주류 후생경제학의 발전 과정

한계혁명이 도래하고 복지의 주관주의적, 개인주의적 개념이 강조되면서, 고전파의 후생경제학은 기각되었다. 대신에 피구(Arthur Cecil Pigou), 에지워스(Francis Edgeworth), 그리고 마셜(Alfred Marshall) 등이 이끄는 신고전파 경제학은, 새로운 가치 이론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the Law of Diminishing Marginal Utility)을 응용하여 구 후생경제학(Old Welfare economics)을 개발해냈다. 구 후생경제학의 주된 논리는, 누구에게나 돈의 효용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에, 수익에 대한 부자의 한계효용은 가난한 사람에 비해 작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에 지나친 지장을 주지 않는 한에서 부유층의 수익을 빈곤층으로 이전하는 것은 총효용(total utility)을 높이기 때문에, 경제학적으로 정당하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이 익숙하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치인과 경제학자들은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추론에 호소한다. 최근에, 미국의 하원의원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가 더 높은 최고 한계소득세율을 도입하고자 시도하는 것을 지지하기 위해, 경제학자 크루그먼(Paul Krugman)이 같은 논리를 사용했다.

이 주장은 언뜻 보기에는 설득력이 있어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주장에 수반하는 가정들을 정확하게 기술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구 후생경제학 이론가들은 만족(satisfaction)에 대한 모든 사람의 수용력(capacity)이 동일하다고 가정했다. 그들조차 이것이 형이상학적 전제임을 인정했지만, 이 전제가 합리적인 시작점이자 거의 모든 경우에서 무해하다고 생각했다. 둘째, 이 점이 첫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사안인데, 그들은 기수적 효용(cardinal utility)을 가정하였다. 한계혁명의 선구자인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와 발라(Léon Walras)를 계승한 구 후생경제학 이론가들은, 효용을 수량화 할 수 있는 생리학적 크기(a quantifiable physiological magnitude)로 이해했다. 이는 개인의 선택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다.3 그들은 이러한 수량으로서의 효용이 곧 수학적 작업 및 집계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가정하에서는 대인간 효용 비교(Interpersonal Utility Comparisons)가 가능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형편이 더 나빠진 경우에도, ‘총효용’은 증가했다고 결론짓는 것도 타당해진다.4

구 후생경제학 이론가들의 노력은, 로빈스(Lionel Robbins)가 대인간 효용 비교의 무용함을 입증하면서 갑작스럽게 종결되었다. 로빈스는 이러한 경제학자들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적절하지 못한 영역까지 확장하는 실수를 저질렀음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사용하는 데 있어 절약하고자 하는 개인 행위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위자가 자신의 가치 척도(value scale)와 추가 단위의 한계효용에 따라 재화의 순위를 매기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또 행위자의 가치 척도에 있는 대립하는 재화의 순위(the opposing ranking of the goods)5를 참조하며 교환을 설명할 수 있다.6 그러나 개인들이 가진 이러한 가치순위를 서로 비교하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일이다. 사람들이 가진 효용을 측정할 객관적 단위가 없다는 점에서, 만족의 수량적 차이를 논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로빈스는 구 후생경제학 이론가들이 제기한 주장은 일종의 윤리적 판단에 불과하며, 경제과학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대인간 효용 비교를 할 수 없게 된 경제학자들은 소위 말하는 만장일치(Unanimity) 혹은 파레토 법칙(Pareto Rule)을 채택할 수 밖에 없었다. 1906년에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Vilfredo Pareto)가 처음 개발한 파레토 법칙은, 한 개인이 더 가난하게 되지 않고 모두가 더 잘살게 되는 경우에만 사회적 총효용이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변화가 그 누구도 손해를 입지 않으면서 어떤 사람이 이득을 취하는 상황을 파레토 우위(Pareto-Superior)라고 말한다. 파레토 우위가 더 이상 가능해질 수 없는, 즉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 한에서 어떤 한 사람이 이득을 취하는 변화가 불가능한 상황은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ity)이다.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경지, 즉 파레토 우위에 못 미치는 반대의 경우는 파레토 열위(Pareto Inferior)이다.7

사회적 후생에 대한 모든 진술이 가치중립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파레토 법칙이라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여겨지곤 했다. 만약 두 개인이 거래하거나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행동하는 상황이라면, 경제학자는 이 경우 사회복지가 증가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국가간섭과 마찬가지로, 만약 개인 혹은 집단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 이득을 취한다면, 경제학자는 이 경우 사회복지에 있어 의미있는 진전이 있다고 추론할 수 없다.

20세기 중반의 새 후생경제학(New Welfare Economics)은 이러한 제약을 회피하여, 경제학이 국가간섭을 위한 사례를 제공해줄 수 있도록 개조하고자 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두 가지의 방법이 취해졌다. 첫째 방법은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에서 주로 행해졌는데, 파레토 법칙을 일반 균형 체계(general equilibrium framework)에 통합함으로써 그것을 사소한 것으로 격하시키는 전략이었다. 이는 사회적 후생 함수(social welfare function)의 개발과 시장실패(market failure) 개념으로 이어졌다. 둘째 방법은 영국의 런던 정경대학에서 도출된 것인데, 보상원리(Compensation Principle)를 통해서 파레토 법칙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칼도어-힉스 보상 기준(Kaldor-Hicks Compensation Criterion)이다.8

사회적 후생 함수는 미국의 경제학자 벅슨(Abram Bergson)에 의해 처음으로 개척되었고,9 후에 새뮤얼슨(Paul Samuelson)이 개발하였다.10 이 접근방식은 파레토 최적을 채택하는 동시에 파레토 법칙을 경시한다. 즉 정적인 최종상태의 시장 결과에만 초점을 맞춘다. 몇 가지 효율성 조건을 설정하면서, 사회적 후생 함수는 사회복지를 극대화하는 최적의 파레토 균형(Optimal Pareto equilibrium)을 도출해낸다. 만약 이 최대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간섭은 정당화된다.11

사회적 후생 함수는 처음부터 신고전파 경제학자 동료들에게서 조차 혹평을 받았는데, 그것의 분석에서 기수적 효용과 대인간 효용 비교의 잔재를 제거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관짝으로 보낸 마지막 결정타는 애로우(Kenneth Arrow)의 유명한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였다.12 애로우는 여러가지 기본 조건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사회적 후생 함수를 수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즉 개별 선호를 통합하여 일관된 사회적 선호 척도를 도출하는 방법은 없고, 사회적 후생 함수는 버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실패 접근법은 훨씬 더 생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시장실패는 소위 후생경제학의 1차 및 2차 기본 정리에 의존한다. 1차 기본 정리는, 완전 경쟁을 가정할 경우13 시장은 필연적으로 파레토 최적 균형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즉, 제한적인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에만 시장은 파레토 최적에 도달할 수 있다.14 2차 기본 정리는, 개인들 사이의 소득의 초기 이전이 이루어진 후 시장이 궤도에 진입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시장은 여전히 파레토 최적에 도달한다고 말한다.15 즉, 시장의 초기과정에 수정을 가한다면 가능한 파레토 최적 중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매우 매력적으로 여겨지는데, 이를 통해 경제학자들은 최적의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는 현실 세계의 시장 사례를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16 20세기 후반에 시장실패에 관한 수백 개의 논문들이 발표된 바 있는데, 각각은 새로운 형태의 시장실패를 찾고자 하며 그것들을 개선하기 위해서 국가의 간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 살아남은 시장실패 사례로는, 공공재, 비대칭 정보, 자연 독점, 그리고 외부성 등이 있다.

하버드 대학의 접근법이 개발되던 동 시기에, 런던 정경대학의 경제학자 힉스(John Hicks)와 칼도어(Nicholas Kaldor)는 ‘보상기준’을 개발했다. 이 기준은, 승자들이 패자들에게 가설적으로 보상해준 후에도 더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경우, 사회복지가 증가했다고 말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보상이 실제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17 이렇게 경제학자들은 가치판단을 수반하지 않고 특정 정책을 권고하기 위해 이 보상기준을 활용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여전히 경제학자는 파레토 법칙 내에 남아있을 수 있다.18

보상기준이 파레토 법칙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대표적인 예시는 19세기의 곡물법 폐지이다.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자가 경제학자로서 이런 종류의 조치를 지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관세의 폐지가 장기적 관점에서는 분명히 모두를 더 잘 살게 만듬에도 불구하고, 자주들의 단기적 이익을 해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칼도어와 힉스는 보상 원리를 통해 승자의 이득이 패자들에게 가설적으로 분배되는 상황을 요구함으로써, 정책권고와 관련된 함정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언제나 사회복지를 파괴한다

상기한 내용이 라스바드가 자신의 중대한 논문, “효용과 후생경제학의 재건을 향하여”(Toward a Reconstruction of Utility and Welfare Economics)를 막 발표했을 당시의 후생경제학계가 직면한 상황이었다. 그 당시의 후생경제학은, 어떤 생존가능한 미래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몇 가지 죽어가는 이론으로 파편화된 암울한 위기 속에 있었다. 후생경제학을 부흥시키기 위한 라스바드의 해법은 간단하면서도 심오했다. 그는 입증된 선호(demonstrated preference)의 제약 안에서 파레토 규칙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후생경제학에 접근했다. 입증된 선호라는 개념은 간단하다. 경제학자는 사람들이 실제로 행한 행동을 통해서만 그들의 선호도를 파악할 수 있다. 모든 행동은 선택을 내포한다. 한 개인이 B가 아니라 A를 선택할 때, 그는 A를 보다 선호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경제학자는 이것을 가지고 개인이 A를 얼마나(how much) 선호하는지 추론할 수 없다. 개인적 선호는 순전히 주관적이고 서수적이기에 행동을 통해 수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입증된 선호 하에서, 개인이 실제 행동으로 입증한 선호와 충돌하는 가상의 가치척도의 구성은 허용될 수 없다.

라스바드가 보여주었듯이, 후생경제학을 입증된 선호에 구속하는 것의 의미는 매우 광대하다. 첫째, 파레토 최적의 조건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잘못되었다. 완전 경쟁은 결코 현실세계에서 실현될 수 없으며, 그것을 가정한 이상적 조건 하에서 사회복지의 변화를 분석하는 것은 당연히 무의미하다. 반면에, 선호는 오직 행위자들이 가격 수용자도 아니고 전능하지도 않은 현실세계의 시장에서만 입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계비용 이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생산자에 대한 불만19, 비대칭 정보20, 자연 독점 따위의 비현실적 가정은 후생경제학과 무관하다.

대신에, 입증된 선호로부터 출발하는 후생경제학은, 자유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거래 당사자 쌍방이 교환에서 이익을 기대함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즉, 모든 자발적인 교환은 사전적(ex-ante) 맥락에서 효용을 증가시킨다. 라스바드에 따르면, 자유시장은 사회복지를 극대화한다. 모든 시점에서 교환은 한 파레토 우위에서 다른 파레토 우위로의 이전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복지에 대한 모든 명제가 입증된 선호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보상기준의 불합리성을 보여준다. 만약 승자가 패자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경제학자는 결코 사회복지가 개선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사람들이 정말로 예전보다 지금의 상황을 더 선호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령 보상이 지급되었으며, 또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것은 보상기준이 유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래되고 친숙한 파레토 규칙이 타당함을 보여줄 뿐이다.

라스바드의 논문은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왔으며, 몇몇 경제학자가 그것을 비판하고자 했다. 첫째로, 라스바드의 접근방식이 곡물법 폐지와 같은 상황, 즉 현상유지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곡물법 사례에서 지주들은 의회의 결정을 반대했으며, 관세의 유지를 선호하였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 지주의 후생이 축소되었다는 이러한 반대 주장은 잘못되었다.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볼 때, 지주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게임을 하고 있는지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그리고, 경제학자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사안은, 곡물법이 폐지된 이후에도, 지주들은 자발적인 계약을 계속하면서 그들이 자유시장에서 이익을 얻음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관세로 인해 나머지 국민들의 복지가 감소된 과거와 달리, 새로운 국면에서는 모든 당사자가 상호이익을 얻고 있다.

라스바드에 반대하는 경제학자 캐플런(Bryan Caplan)은 논쟁거리가 된 자신의 논문에서, 상기한 주장이 라스바드에 대한 반대가 될 수 없다며 거부했다. 라스바드는 제3자의 감정은 자발적 교류가 사회복지를 증진시킨다는 결론을 무효화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21 (캐플런이 라스바드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발적 교환을 비난하는 팜플렛을 발행하는 경우에도, 우리는 그것이 농담 혹은 고의적인 거짓말이 아니라고 여길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이 점에 대하여 캐플런이 쓰기를:

라스바드는 입증된 선호의 원리를 더 철저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두 당사자가 계약을 체결할 때 실제로 계약 조건에 대한 선호를 입증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들은 단지 그들 앞에 놓인 종이에 서명하는 것에 대한 선호만을 입증할지도 모른다. 종이에 서명한 것이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도 없으며, 동시에 서명을 통해서 그저 자신의 악필을 교정하려 했을 뿐이라고 주장할 결정적인 증거 역시 없다.

그러나, 블락(Walter Block)이 지적하듯,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은 필체 개선의 연습 혹은 게임일 수도 있지만, 특정 재화의 소유권을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이전하는 구속력 있는 활동이다. 계약이 체결되면 그 조건에 따라 행동할 의무가 당사자에게 있다. 그렇다면, 법적인 협약을 체결한 사람이 그저 게임에만 참여하고 있을 뿐이라 말할 수 없다.

경제학자 카다토(Roy Cardato)는 또 다른 반론을 제기했다. 라스바드가 효용을 사전적 맥락에서만 집중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잘못된 예상을 할 수 있고, 따라서 사후(ex-post) 효용을 잃을 수 있다. 그가 말하길, “라스바드의 후생경제학은 ... 선호가 목적 지향적 활동이라는 일반적 집합의 일부이며,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카다토의 관찰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라스바드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첫째, 경제학자로서 우리는 입증된 선호에서 사후적 효용에 대한 어떤 것도 추론할 수 없다. 경제학에는 그러한 지식을 추론할 어떤 학문적 능력도 없다. 그러므로 그러한 지적은 라스바드 뿐만 아니라 모든 후생경제학과도 무관하다. 둘째,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이 가르쳐주듯, 간섭받지 않는 시장(the unhampered market)은 실수의 피해를 완화하고, 따라서 모든 사후적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최고의 제도이다. 시장은 성공하지 못한 기업가들과,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상품들을 제거하기 위한 작동원리를 내재한다. 소비자가 단 한번의 구매로 만족하지 못할 수 있음은 명백하지만, 그런 제품의 판매자가 오랫동안 영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어렵다.

마지막 셋째, 카다토는 라스바드의 목적을 오해했다. 라스바드는 후생경제학을 통해 자유시장을 위한 완전한 윤리적 또는 철학적 기초를 구성하려 하지 않았다. 라스바드의 그러한 노력은 그의 재산권의 자연법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만, 그는 입증된 선호를 통해 파멸 위기에 놓인 후생경제학을 구원하면서, 윤리적 주장의 새로운 근거를 우리에게 제공해주었다.22

이제 라스바드가 후생경제학을 완전히 재건하기 위해 남은 난관은 단 하나 뿐이다. 바로 후생경제학의 제1차 기본 정리23이다. 만약 라스바드의 분석이 제1정리에 들어맞는다면, 도달 할 수 없는 상태인 완전 경쟁은 더 이상 가정되지 않고, 현실세계의 시장에 정말로 적용될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현실의 다른 경제체제와 비교해볼 때, 자유시장은 가능한 최고의 복지를 제공해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라스바드는 제2차 기본 정리24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고 남겨두었다. 그렇다면, 라스바드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경제학자들은 만약 그들이 어떤 평등 상태를 더 선호할 경우, 여전히 상류층의 소득을 하류층에게 분배한 뒤에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25

이 문제를 해결은 라스바드의 후계자인 한스-헤르만 호페가 이루어냈다. 호페는 제2정리에 기초한 후생경제학자들이 논리적 모순에 얽혀 있음을 지적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개인들이 행하는 자발적인 교류가 사회복지를 증진시킨다는 결론을 받아들였다. 이는 자기소유권 원칙을 암묵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자기소유권의 논리적 결과, 즉 전용(homesteading)과 획득(acquisition)이라는 로크주의 원칙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약 후생경제학이 자기소유권이라는 부정불가능한 사실에서 출발한다면, 후생경제학은 재산의 사용과 획득 모두에 파레토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 호페에 따르면:

바로 이 행동[역주: 행위자가 이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은 자원을 자기 소유로 만든 것]으로 인해 무엇이 증명되었는가? 바로 소유되지 않은 자원에 개인이 행한 ’최초의 전용(original appropriation)’은 당사자의 효용을 (최소한 사전적으로는) 증가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 자원들을 전용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않았다. 분명하게도, 만약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러한 자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먼저 전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점은 그 자원들이 그들에게 어떠한 가치도 없었음을 입증한다. 따라서 그들이 타인의 전용 행위 때문에 어떤 효용을 읺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파레토-최적 기초에서 더 고찰해본다면, 전용된 자원을 활용하는 추가적인 모든 생산 활동 역시 입증된 선호를 근거로 하여 파레토 최적에 마찬가지로 도달한다고 말할 수 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기한 근거로부터 행해지는 모든 자발적인 교환 역시, 쌍방이 모두 이익을 기대하는 경우에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파레토 최적에서 파레토 최적으로의 변화라고 보아야 한다.26

결론

라스바드는 후생경제학을 파레토 규칙과 입증된 선호 안에 구속함으로써 완전히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아마도 동료 경제학자들이 원하는 바는 아니였겠지만 말이다. 라스바드는 자유시장, 즉 개인들 사이의 자발적인 상호작용의 네트워크가 항상 가능한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를 생산한다는 점을 입증하였다. 반면, 정부의 간섭은 적어도 복지면에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후생경제학은 아마 라스바드의 여러 공헌 중 가장 알려지지 않은 업적에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그의 역작이며, 경제학자로서 라스바드가 가진 위대한 독창성과 재능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1. 오하드는 이스라엘 태생으로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가장 큰 리버테리언 커뮤티니 중 하나인 Rationally Sought’s Privatseminar의 운영자이다. Osterreicher는 그의 성씨가 아니라 닉네임이다.↩︎

  2. Hla Myint, Theories of Welfare Economics (London, U.K.: Longmans, Green and Co. 1948), p. 12.↩︎

  3. "But to the preceding generation of economists, interindividual comparisons of utility were made almost without question; to a man like Edgeworth, steeped as he was in the Utilitarian tradition, individual utility — nay social utility — was as real as his morning jam. And with Marshall the apostrophe in consumers’ surplus was always after the s." Paul Samuelson, Foundations of Economic Analysi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47), p. 225.↩︎

  4. 역주: 초기의 효용이론에서는 효용을 심리적인 만족 내지는 욕구를 측정하는 양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기수적으로 측정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기수적 효용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과 한 개의 효용이 10이고 배의 효용이 5이라면, 사과의 효용은 배의 그것에 비해 꼭 2배의 만족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효용이 기수적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A의 효용이 10 에서 5 로 감소한 상황에서 B와 C의 효용은 7 에서 14 로 늘어난다면, 결국 사회의 총효용이 개선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5. 역주: 재화의 가치척도는 서수적이다. 즉 어떤 재화는 다른 재화에 비해 더 높은 가치 순위에 있다.↩︎

  6. 역주: 행위자 A의 가치척도에서, 재화 B는 비교적 낮은 순위에, 재화 C는 비교적 높은 순위에 위치해있다. 반면 행위자 D의 가치척도에서는 재화 B가 C보다 높은 순위에 있다. 이때 행위자 A가 재화 B를, 행위자 D가 재화 C를 가지고 있다면, 두 행위자 사이의 교환이 성립된다.↩︎

  7. Vilfredo Pareto, Manual of Political Economy (New York: Augustus M. Kelley, [1906] 1971).↩︎

  8. Jeffrey Herbener, "The Pareto Rule and Welfare Economics," Review of Austrian Economics 10 (1997): 86.↩︎

  9. Abram Bergson, "A Reformulation of Certain Aspects of Welfare Economics,"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70, no. 2 (February 1938): 310–34.↩︎

  10. Paul Samuelson, Foundations of Economic Analysi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47), pp. 219-229.↩︎

  11. Paul Samuelson, Foundations of Economic Analysi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47), pp. 219-229.↩︎

  12. 이러한 절차는, 예산이 제한된 상황에서 개인의 효용 함수에 적합한 최적의 소비재 묶음을 찾는 것과 유사하다. 다만, 개인의 무차별 곡선 혹은 에산 제약 대신에, 사회적 무차별 곡선이 소위 효용가능경계(Utility Possibility Frontier, 주어진 생산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두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가장 높은 효용 수준의 조합)와 접하는 지점에서 극대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13. Kenneth Arrow, Social Choice and Individual Values, 2nd ed. (New York: John Wiley and Sons. [1951] 1963).↩︎

  14. Mark Blaug, “The Fundamental Theorems of Welfare Economics, Historically Considered,” History of Political Economy 39, no. 2 (2007): 185–207.↩︎

  15. 완전 경쟁 모델은 세 가지 가정으로 구성된다. 즉, 모든 행위자는 가격 수용자(price taker)로서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거래 비용이 없으며, 동질적인 상품(homogenous product)들만이 있다는 것이다.↩︎

  16. 역주: 1차 기본 정리에 의하면, 시장과정은 제한적인 조건에서만 최적 상태에 도달하므로 정부의 간섭은 종종 바람직할 수 있다. 또 2차 기본 정리에 의하면, 정부의 간섭을 통해 초기 조건을 적절히 재분배하기만 한다면, 그 후에는 시장에 맡겨두기만 해도 여러가지 결과 중에서 원하는 것을 취사선택을 할 수 있으므로, 정부는 초기 조건의 개선을 위해 시장에 간섭할 수 있다.↩︎

  17. 역주: 손실의 액수에 비해 수혜자의 이득이 훨씬 크다면 손실을 보상해 주지 않더라도 바람직하다. 손실을 보상해주는 것은 가치판단이기 때문에 경제학자는 이를 주장할 수 없다. 보상 원리는 단지 가설적 상황에서 승자가 패자의 손실액을 보전해주는 경우에도 여전히 이득을 보았으면 바람직하다고 말할 뿐이다.↩︎

  18. John Hicks, "The Foundations of Welfare Economics," Economic Journal 49, no. 196 (December 1939): 696–712.↩︎

  19. 역주: 이것은 행위자가 가격수용자라는 가정이다.↩︎

  20. 역주: 이것은 시장에 의한 자원배분이 파레토 효율에 도달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가정되는 것이다. 즉 완전경쟁 모델을 정당화하기 위한 가정이다.↩︎

  21. 역주: 만약 A와 B가 거래해서 상호이익을 얻은 경우, 옆에 있던 C가 그들이 부자가 된 것에 엄청난 시기를 느낀다고 해도, C의 효용은 결코 줄어든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상기한 사례에서 지주들은 나머지 국민이 이득을 얻게된 상황을 시기하며 자신들이 입은 피해가 막대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22. David Gordon, "Toward a Deconstruction of Utility and Welfare Economics," Review of Austrian Economics 6, no. 2 (1993): 103–4.↩︎

  23. 역주: 특정 조건 하에서, 즉 완전 경쟁 하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조정될 경우, 시장은 파레토 최적의 결과를 낳는다.↩︎

  24. 역주: 부를 재분배한 이후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도록 놔둘 경우에도, 시장은 여전히 파레토 최적에 도달한다.↩︎

  25. Jeffrey Herbener, “Hoppe in One Lesson, Illustrated in Welfare Economics," Property, Freedom, Society (Auburn, Ala.: Mises Institute, 2016) pp. 301–08.↩︎

  26. Hans-Hermann Hoppe, “Review of Man, Economy, and Liberty: Essays in Honor of Murray N. Rothbard”, The Review of Austrian Economics, Volume 4, Number 13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