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행동학 (Praxeology)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은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엄격한 고수, 즉 개별 행위자의 관점에서 인간 행동을 분석할 것을 주장한다. ‘인간행동학’이라 불리는 이 방법에 따르면, 유효한 경제학 이론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인간 행동의 원리에 기초한 논리적 도출 뿐이다. 인간행동학을 통해 우리는 모든 인간 행동에 유효한 근본적 경제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의 해석에 인간행동학을 응용하는 것 역시 오스트리아학파의 전통적 과제이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이하 ‘오스트리안’)는 자연과학의 경험적-통계적 방법론을 경제학에 적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수동적이고 비적응적인(passive non-adaptive) 성격을 가진 수적 접근이 실험적 조건에서 인과적 요인(causal factors)을 구별해낼 수 있는 자연과학에서는 적절하지만, 인간 행동이 가지는 엄청난 복잡함은 경험이나 통계로 연구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이러한 교리를 인간행동학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알프레드 에스피나스(Alfred Espinas)의 용어에서 따온 말이다.―물론 다른 선지자들이 사용한 기록도 남아있다.―

미제스는 또한 경제학에서의 경험적으로 유도된 확률 모델링(empirically derived probability modelling)에 반대했는데, 그것은 20세기 후반에 들어 금융을 비롯한 여타 경제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 경향과 달리, 오스트리아학파의 인간행동학적 방법론은, 부정불가능하고 자명한 공리(undeniable, self-evident axioms), 또는 인간 존재에 관해 반박할 수 없는 사실(irrefutable facts about human existence)에 근거한 연역적 논증에 절대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오스트리아학파에 따르면, 연역적인 경제학 사고실험이 올바르게 수행된다면, 근본적인 가정으로부터 결코 반박할 수 없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으며, 이는 경험적 관찰(empirical observation) 혹은 통계적 추론(statistical inference)에 의해서는 결코 파악 수 없는 영역이다.

오스트리안이 연역과정에서 사용하는 최우선의(primary) 공리는, 인간이 “선택한 목표를 향해 의식적으로 행동한다(humans take conscious action toward chosen goals)”는 행동 공리(action axiom)이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같은 오스트리안 이론가는, 인간행동학이 절대적으로 가치중립이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인간행동학은 “우리가 이 정책을 실행해야 하는가?(should this policy be implemented?)”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그저 “이 정책을 실행한다면, 그 의도에 부합하는 결과를 낼 수 있는가?(if this policy is implemented, will it have the effects you intend?)”에 대해서만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안은 종종 정부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권고 하는데,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책 처방은 많은 경우에 있어 자유주의자(libertarian) 혹은 아나코-캐피탈리스트(anarcho-capitalist)의 해결책과 겹친다. 이 같은 제안은 시카고학파의 최소국가주의(minarchism) 사상과도 유사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아가 화폐개혁 등 다른 학파에서 무시하는 주제 역시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오스트리안은 기업가정신을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평가하고, 사유재산이 자원의 효율적 사용에 있어 필수 조건이라고 보며, 언제나 시장 과정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역효과를 낳는다고 간주한다.

신고전파 경제학(neoclassical economics)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학파 역시 생산 이론에 대한 고전파의 원가 개념,예컨대 노동가치론을 거부한다. 양자 모두 개인의 주관적 선호에 기초하여 가치를 설명하고자 한다. 심리적 측면에 대한 경제학의 고려는, 카를 멩거(Carl Menger)의 한계 혁명 덕분에 오스트리아학파가 탄생하면서 시작되었다. 수요와 공급 역시, 개인만이 결정을 내린다는 점을 주장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와, 증가하는 변화에 따라 비용과 편익의 계산이 변화한다는 한계주의(marginalism)의 논증에 따라, 개인들의 결정이 종합되면서 형성된다고 설명된다.

그러나, 벨기에 철학자 프랭크 판 듄(Frank Van Dun)은 신고전파와 오스트리아학파 방법론 사이의 근본적 차이점을 요약한다:

‘법’과 ‘경제학’과 같은 분야의 중심을 장악한 ‘실증주의 ‘도그마는, 모든 질서가 인위적임을 주장한다. 자연적 질서란 없으며, 만일 있다면, 과학적 조사의 적합한 대상이라 볼 수 없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위적 인간으로 변장한 경우에만 연구 대상으로 인정받게 된다. 경제학에서 실증주의는 일반적으로 효용 함수’를 비롯한 이론적 구성의 체현(personification)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현대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을 특징짓는 욕구-만족 기술(a technology of want-satisfaction)의 특성과는 잘 들어맞지만, 분명히, 현실적 인간 세계의 질서와 무질서의 조건을 설명하려는 아나코-캐피탈리스트의 연구 프로그램에는 전혀 쓸모가 없다.


과학 (Science)

오스트리안은 과학을 “이용가능한 지식 전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우주현상을 정신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endeavor to attain a mental grasp of the phenomena of the universe by a systematic arrangement of the whole body of available knowledge)”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한 학문이 과학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반드시 ―경험주의적인― 과학적 방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음을 의미한다.

자연과학은 자연적 사건이나 물리적 현상의 연결과 순서에 있어 불변하는 규칙성(inexorable regularity)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자연물, 유기물, 무기물, 그리고 물질의 현상을 직접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지식의 한 분야이다. 물리적 실체의 측정은 엄밀함(precise)을 결여하고 있을 수 있지만, 지식의 측정과 정량화를 위한 실험적 조건에서의 실험과 관찰에 필요한 요소는 충분히 파악 가능하다. 자연과학은 때때로 ‘물리과학’ 혹은 ‘경험과학’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며, 생물학, 지질학, 의학, 물리학, 화학 등을 포함하지만, ‘인간과학’, 수학, 철학, 혹은 형이상학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인간행동학의 범주 (Categories)

머레이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가 요약한 인간행동학, 혹은 인간행동의 일반적-형식적 이론(the general, formal theory)의 범주는 다음과 같다:

  1. 고립된 개인에 대한 이론 (크루소 경제학)
  2. 자발적 대인간 교류에 대한 이론 (카탈락시, 혹은 시장의 경제학)
    1. 물물교환
    2. 중간값 교환
      1. 통제받지 않은 시장에서의 교환
      2. 시장에 대한 폭력적 간섭의 효과
      3. 시장의 폭력적 폐지에 대한 효과 (사회주의)
  3. 전쟁 혹은 적대적 행동에 대한 이론
  4. 폰 노이만(Von Neumann)과 모르겐슈테른(Morgenstern)의 게임 이론
  5. 알려지지 않음.

라스바드에 따르면, “명백하게도, 경제학인 A와 B는 인간행동학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정교화된 부분이다. 다른 것들은 대부분 미개척 지역이다.(Clearly, A and B are the only fully elaborated part of praxeology. The others are largely unexplored areas.)” 그러나, 라스바드 자신이 시사했던 대로, 인간행동학을 윤리학에 까지 확장한 호페의 논증윤리는 라스바드의 범주 중 E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방법론적 개인주의 (Methodological individualism)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집단이나 집합체가 아니라 개인의 행동에 근거하여 사회 및 경제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집단과 집합체는 그 자체로 행동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 그들을 구성하는 개별 행위자의 행동에 의해서만 기능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용어 자체는 요제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만들었지만, 개념은 학파의 창시자인 카를 멩거에 의해 일찍이 개발되었다. 이 개념에 대한 멩거의 공식화는 1889년 출판물에서 이미 나타났다: “경제적으로 행동하는 인간과 그의 경제적 숙고에서 궁극적 기원을 찾아낼 수 없는 경제현상이란 없다.(There is no economic phenomenon that does not ultimately find its origin and measure in the economically acting human and his economic deliberations.)” 19세기 후반에 멩거가 발전시킨 이 생각은, 당대의 지배적인 독일 역사학파의 개념과는 정반대 였는데, 당시 역사학파는 ‘인민’, ‘경제’, 그리고 ‘민족’ 등의 집합적 개념이 ‘구성원’에 의한 영향을 능가한, 즉 인간 행동의 차원을 초월하여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물론 방법론적 개인주의가 국가, 경제, 또는 ‘계급’와 같은 전체적 집합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러한 실체의 작용이 전적으로 개별 구성원의 행동 의외에 다른 것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할 뿐이다.


선험적 명제 (A priori proposition)

전통적으로, 선험적 명제는 ‘경험과 무관하게 알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되어 왔다. 이는 ‘경험에서 얻은 것’인 후험적 명제(a posteriori propositions)와 대조된다. 현대 철학은 이 개념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경험에 대한 앞섬이나 독립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주체가 경험한 것의 성격으로부터 오는 정당성과 별개로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험적 명제와 후험적 명제를 구별한다. 이 대안적 정의가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경험은 선험적 진리를 깨닫는 알게 되는 전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허나 그렇게 체득한 진리는 여전히 정당화를 수반하고 있다. 그러나, ―선험적 진리는― 경험과는 별개로 사상가의 추론에만 의존해서도 정당화될 수 있다.

—P. Boghossian & C. Peacocke, New Essays on the A Priori

후험(a posteriori)은, 말 그대로 경험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말한다. 이는 관찰된 사실에서 시작하여 일반적 결론에 도달하고자 하는 귀납적 추론의 근거이며, 물론 선험(a priori)에 반대된다. 논리학에서, 귀납은 일반성(generality)의 개별적이거나 특정한 예시가 근거로서 충분하며, 이를 통해 일반적 또는 보편적 진리를 추론할 수 있다는 가정을 의미한다. 예컨대,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이 영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 것은 귀납적 추론이다.

완벽한 귀납은 근거가 모든 사례의 지식에 기초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한 귀납은 알려진 ‘전체성’ 혹은 일반성에 대한 진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

불완전한 귀납은 오직 일부 개별 사례에 대한 근거만 있을 때, 즉 표본에 국한된 지식에 기초하는 경우이다. 이는 불완전함에도 자연과학의 인식론적 기반으로서 작용하기엔 충분하지만, 과학적 확실성을 제공해줄 수 없고, 기껏해야 ‘개연성’에 그친다는 점에서 ‘인간행동의 과학’에는 부적절하다.

‘경험주의’는 인간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 경험이라는 이론이다. 이는 사건의 흐름에서 규칙성을 가정하고, 실험과 관찰이 주요 인식도구임을 선언한다. 자연과학은 경험적이다. 자연적 사건 속 인과성과 규칙성의 존재에 의해, 동일한 자연적 또는 물리적 조건에서는 항상 동일한 결과나 영향이 도출되며, 따라서 실험 혹은 경험으로부터 신뢰할만한 귀납적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선술했듯, 사회과학 혹은 인간과학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주류 경제학 방법론에 대한 비판 (Criticism of mainstream practices)

오스트리안은 자연과학(hard sciences)을 모방하려는 주류 경제학의 순진한 경험주의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방법론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계량 경제학을 통해 자연과학을 흉내 내고자 한 주류 경제학의 ‘순진한’ 시도는 그저 의심스러운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주류 경제학자 대부분은 경제학에서 예측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을 무시하고, 인간의 행동과 ‘선호’에 대한 단순화된 가정으로부터 유도된 경제의 ‘수학적 모델링’에 계속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용덕 교수는 주류 경제학 방법론에 대한 오스트리아학파의 비판을 뛰어나게 요약하고 있다.

    1. 주류 경제학을 비롯한 오늘날의 사회과학은 통계를 수집하고, 통계로부터 수식을 연역해내고, 그 수식을 검증함으로써 경제현상 및 사회현상의 일반적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에서는, 물리학자나 화학자가 자연 현상들 사이에 연간과 상수를 찾듯이 사회현상들 사이에 연관과 상수를 찾을 수 없다.
      1. 사회현상은 수 많은 인간행동의 복합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이고, 이는 인간의 주관적 지각과 믿음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규칙성의 관찰이 불가능하다. 돌멩이가 자신의 미래를 선택한다면 물리학적 탐구가 불가능하듯이, 사회적 통계치들 사이에는 어떠한 보편적 법칙이나 상수가 없다. 사회현상에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오직 개인들의 주관적인 의견과 태도만이 존재할 뿐이다.
    3.  자연과학은 실험을 통해 사실을 축적할 수 있지만 사회과학과 인간과학은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다. 실험자들은 실험을 통해 다른 요인들을 통제하고 자신이 원하는 한 가지 요소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관찰하거나 사실을 모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에서는 그런 실험이 가능하지 않다. 다시 말하면 사회과학에서는 자연과학에서처럼 다른 요인들을 통제하고 한 가지 요소만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알 수 없다.
      1. 자연과학에서 경험이란 ‘실험에 의한 경험’을 말한다. 이때 실험자는 실험을 통제하여 사실을 관찰하고 축적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에서는 자연과학과 같은 방법으로 실험자가 실험을 통제할 길이 없다. 사회과학에서 경험이란 ‘역사적 경험’으로서, 지나간 경험을 말한다.
      2. ‘측정’이라는 관점에서도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다르다. 물리학자는 원자의 무게, 밀도 등을 측정할 수 있다. 통계 전문가 또는 통계를 전문으로 하는 경제학자는 특정한 장소와 특정한 시간에 있어서 공급과 가격의 관계를 수치로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의 측정은 물리학자가 원자의 무게, 밀도 등을 측정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경제학자가 측정한 특정한 장소와 특정한 시간에서 공급과 가격의 관계는 다른 장소 또는 다른 시간에서는 공급과 가격의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4. 경제학에서의 지식은 질적 지식이지 양적 지식이 아니다. 경제에 관련된 양적지식은 사후에 관련된 것으로서, 그것을 이용해 유효한 법칙을 도출해낼 수는 없다. 화폐의 질적 이론 또는 질적 지식은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화폐량의 증가가 화폐 단위의 구매력의 감소를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화폐량이 두 배 증가한다고 화폐의 구매력이 50퍼센트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총량 역시 개인적인 다양성을 단일한 통계 수치로 환원함으로써 숨길 뿐이다.
    5. 사회과학에 있어서 과학주의는, 연구 대상의 본질을 고찰하지 않고 그것을 가장 잘 연구할 수 있는 방법-과학적 방법론-을 알고 있다고 비합리적으로 추정한 편견에 불과하다.
    6. 따라서 경제현상을 비롯한 사회현상에 대한 과학적 예측과 통제는 불가능하다.
    7. 이러한 이유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엄격히 분리되는 방법론적 이원주의가 요구되며, 사회과학자의 과제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법칙을 추론함으로써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개인의 행위가 광범위한 사회적 과정을 어떻게 산출하는가를 이해하고, 밝혀내는 것이다.

전용덕, 『경제학과 역사학』, 제2부 ‘경제학의 방법론과 인식론’, pp.119~127

주류 경제학의 관행을 거부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오스트리아학파는 주류 경제학이 한심한 예측 성공률을 기록해왔으며, 실질적으로 경제학이 가장 필요한 위험 분석(risk analysis)과 이론적 경제 모델(theoretical economic modelling)’ 형성에 있어 완전히 쓸모없다고 지적해왔다. 대표적인 예시는 바로 2007년에 일어난 세계 금융위기에 있다.


공리-연역적 방법 (Axiomatic deductive method)

공리적 연역(axiomatic deductive)은 ―그 자체로 자명한 진리인― 몇 가지 공리에 기초한 연역적 추론으로 논증을 전개하는 방법이다. 논증의 타당성은 논리의 법칙을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하는지에 달려 있다. 공리 그 자체가 진실일 경우, 논증 역시 유효한 진실임이 보장된다. 공리-연역적 방법은 수학에서 널리 쓰여지며, 한스-헤르만 호페 같은 경제학자가 대표하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등 선험과학에서도 핵심적 방법론으로 여겨진다.


공리 (Axiom)

공리 혹은 공준(Postulate)은 추론의 근거 혹은 시작점이다. 고전적인 인식에 따르면, 공리는 논쟁할 필요도 없이 그 자체로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자명한 근거이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인간행동학은 행동 공리에 기반을 두었다. 데이비드 고든(David Gordon)에 따르면, “미제스가 시작점으로 설정한 행동 공리가 정말로 세상에 대한 자명한 진리라는 점에서, 인간행동학적 과학의 근거는 충분하다. 그러나, 만약 실증주의자들이 오스트리아학파에 대해 틀린 주장을 한 경우에도, 그들의 입장 역시 이해할 수 있다. 유용하면서 동시에 자명한 공리는 사실 거의 없고, 보통의 과학적 지식을 얻기 위해선 경험적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이 오해할 만도 하다.”


행동 공리 (Action axiom)

행동 공리는 행동이 행해지는 기준을 구체화한 공리이다. 행동 공리의 형식은: “만약 조건이 유지된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따라와야 한다.(IF a condition holds, THEN the following should be done.)”

행동 공리의 이러한 의사결정 분석(decision analysis)은 최대 기대 효용(maximum expected utility)에 기초한다. 일반적으로, ―최대 기대 효용을 포함한― 행동 공리의 구체적인 작동 원리는 대단히 견고하며, 그 적용범위 역시 엄청나게 넓다. 행동 공리는 인간행동학의 기초이다. 요약하자면, 이는 모든 인간이 호모 아젠스(homo agens), 즉 원하는 목적의 달성을 위해 시간적 제약 하에서, 수단을 합목적(purposefully)적으로 활용한다는 기본적인 명제이다.


행동 (Action)

인간행동학의 과학에서 가장 발달된 세부 영역인 경제학은, 이 근본적 진리의 함축적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인간 행동>(Human Action, 1949. 번역판: 민경국·박종운 역, 2011)에서, 미제스는 행동 공리의 맥락에서 행동을 정의했다:

인간 행동은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purposeful behavior)이다. 또는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행동은 현재 작동하고 있으면서 다른 매개물로 변형된 의지다. 행동은 목표와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다. 행동은 자극(stimuli)에 대해, 그리고 환경조건에 대해 자아가 의미 있게 반응하는 것이다. 또한 행동은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세상의 조건에 인간이 의식적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행동의 목적은 언제나 불안(uneasiness)한 감정의 완화이다. 모든 인간은 그 실존의 덕목과 인간 존재로서의 본성에 따라 이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

목적은 인간이 목표로 하는 모든 것이다. 수단은 행동하는 인간이 목적의 달성을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이다.

행동하기 위해서, 인간은 성취되지 않은’ 목적 이상을 가져야만 한다. 그는 또한 어떤 행동을 한다면 목적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야 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햇빛을 쬐려는 욕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다고 여겨진다면, 그는 욕망의 충족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행동은 목적(purpposes)을 달성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목표(ends)를 향한 개인의 행위(behavior)이다. 또 열망하는 목적에 대한 심상(image)은 물론이고, 도달하기 위한 계획과 기술적인 고려가 수반하는 경우에만 실제로 이루어진다.

개별 행위자는 목적의 달성을 위해 변화시키고 싶은 환경에 직면한다. 인간이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할때, 언제나 주변 환경에서 발견되는 요소(elements)만을 도구로서 활용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환경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a) 개별 행위자로서는 도저히 통제나 변화시킬 수 없는 환경. (b) 개별 행위자가 목적의 도달을 위해 변화시킬 수 있는―혹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환경. 전자는 행동의 일반적 조건이며, 후자는 사용되는 수단이다.

요컨대, 모든 행동에는 개별 행위자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사용이 반드시 포함된다. 일반적 조건은 인간 행동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오직 수단만이 행동에서 사용된다.


행동의 합목적성 (Purposefulness of action)

인간행동학은 인간의 행동, 즉 의도적인 행위에 대한 과학적 연구이다. 인간은 행동할 때마다 자신이 주관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목적의 달성을 위해 수단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인간 행동은 목적론적(teleological)이거나 의도적(intentional)이다. 사람은 어떤 이유(reason)로 행동한다. 물론 모든 인간의 ‘행위’가 인간행동학적 의미에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루 가스에 노출되었을 때의 기침처럼, 순수하게 반사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신체 운동은 결코 행동이 아니다. 인간행동학은 “인간이 존재하고 행동한다(human beings exist and act)”는 부정불가능한 공리로부터 출발하여, 이 사실이 가지는 함축적 의미를 논리적으로 추론한다. 이렇게 추론된 명제들은 선험적으로 사실이다. 물리학자가 자연의 법칙을 시험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것을 시험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진리이다. 그래서 인간행동학적 명제가 정확하게 도출된 이상, 그것은 반드시 원래의 공리 만큼이나 필연적으로 진리이다.

오해의 방지를 위해 첨언하자면. 우리가 공을 던질 때, 오스트리아학파는 그것이 어떤 신비로운 정신이나 부동의 원동자(prime mover)에 의한 목적론적 방법으로 인도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학파는 공이 도달할 위치와 속도를 계산하기 위해, 역학과 인과관계의 법칙을 사용하여 위치, 속도, 힘을 조사할 뿐이다.

다른 측면을 살펴보자. 녹색으로 변한 신호등과, 길을 건너는 사람들 사이에 직접적―자연과학적인 의미에서 수동적이고 필연적인― 인과관계는 없다. 길을 건너는 목적을 가진 개인은, 불이 초록색으로 바뀌었을 때 건너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길을 건넌다. 출근 시간에 지각한 무모한 사람은 신호등의 표시를 상관하지 않고 서둘러 길을 건너려 할지도 모른다.


행동과 시간 (Action and Time)

모든 인간의 삶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이 행동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의 목표, 혹은 목적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달성된다. 모든 목적을 즉시 달성할 수 있다면, 행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떤 주어진 행동에 관해서든, 우리는 세 가지의 기간(periods), 즉 ‘행동 하기 전의 기간’, ‘행동 중인 기간’, 그리고 ‘행동이 완료된 기간’을 구별할 수 있다. 모든 행동의 목표는,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있었을 상황(counterfactual)보다 미래에 더 만족스러운 조건을 얻는 것이다.

인간의 시간은 항상 희소하다. 우리는 불멸자가 아니고, 지구상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있다. 우리 삶의 모든 날은 오직 24시간 만을 목적 달성에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모든 행동은 시간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시간은 인간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해야만 하는, 즉 모든 인간 행동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수단이다.

시간이 가지는 근본적 함축은 미래의 불확실성이다. 만일 인간이 미래의 일을 완전히 안다면, 우리는 결코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어떤 행동도 상황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 사건에 대한 이런 불확실성은, 인간 행동을 이루는 요소인 선택의 예측불가능성과, 자연현상에 대한 불충분한 지식이라는 두 가지 원천에서 비롯된다. 자연현상에 대해 충분하게 알지 못하는 인간은 미래의 모든 국면(developments)을 예측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선택이 미래에 가져올 내용(contents)을 파악할 수 없다. 가치평가, 혹은 ‘가장 적절한 목적 도달의 수단에 대한 생각’이 변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선택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물론 이 명제가 우리로 하여금 사람들이 미래 국면의 예측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약할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모든 행위자가 어떤 수단을 사용할 때면, 그 수단이 그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데 최선이라고 추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모든 인간 행동은 향후 사건이 어떻게 경과될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추측에 근거하고 있다. 불확실성의 편재성/어디에나 있음(The omnipresence of uncertainty)이 인간 행동에 언제나 오류가능성을 심어 놓는다. 행위자는 자신의 행동이 완료된 뒤에야, 애당초 선택했던 수단이 목적 도달에 적절했는지,아니면 부적절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교환으로서의 행동 (Action as Exchange)

행동은 덜 만족스러운 상황을 더 만족스러운 상황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다. 보다 만족스럽기 위해 덜 만족스러운 것은 포기된다. 행동의 혜택은  심리적인 수익(revenue) 혹은 이득(profit)이다. 포기된 차선택은 가격(price)이며, 그 가치는 비용(cost)라고 부른다.

교환이 차선택의 포기라는 점에서, 그것은 다른 사람과 무관하게 자폐적(autistic)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물론 대인간(interpersonal) 교환일 수도 있다. 대인간 교환은 무역(trade)라고도 한다.


개인으로서의 행위자 (Actors as individuals)

인간 행동은 오직 개별적인 행위자(actors)에 의해서만 수행된다. 오직 개인만이 목적을 가지고, 그것의 달성을 위해 행동할 수 있다. 사회 또는 집단은 개별 구성원의 행동 밖에서 설명될 수 있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정부의 행동은 단지 은유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특정 개인 집단이 인간 관계에 있어 자신과 동료를 ‘정부’라고 인식하고, 그에 입각하여 행동할 뿐이다. 물론 이것이 집단적 기관 자체의, 다양한 개인의 행동과 구별되는 실재성(reality)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와 같은 기관의 존재는, 구성원으로 간주되는 개인(bureaucrats)과, 간주되지 않는 개인(citizens)의 행동을 매개로 하여 의미있게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예시를 들자면, 개인은 다른 개인을 대표하거나, 그의 가족을 대신하여 대리인으로 활동하기를 계약할 수 있다.


무엇이 행동이 아닌가 (What is not action)

인간 ‘행동’은, 인간의 관점에서 목적성이 없다고 파악되는 ‘움직임’과 달리, 목적지향적인 행위이다. 무기물의 관찰된 모든 움직임과, 순전히 반사적인 유형의 인간 ‘행위’는 단순히 특정 자극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일 뿐이다.

인간 행동의 목표(purpose)는 행위자의 목적(end)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욕구(desire)는 그 행동을 개시하려는 동기(motive)이다. 모든 인간은 그 실존의 덕목과 인간으로서의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는 ―성취를 원하고, 시도한다는 의미에서― 목적이 없고, 합목적성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인간을 상상할 수 없다. 행동하지 않는 인간, 합목적적으로 행위하지 않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 분류되기 어려울 것이다.

출처

https://wiki.mises.org/wiki/Austrian_School

https://wiki.mises.org/wiki/Praxeology

https://wiki.mises.org/wiki/Science

https://wiki.mises.org/wiki/Natural_sciences

https://wiki.mises.org/wiki/Methodological_individualism

https://wiki.mises.org/wiki/A_priori_proposition

https://wiki.mises.org/wiki/A_posteriori

https://wiki.mises.org/wiki/Induction

https://wiki.mises.org/wiki/Empiricism

https://wiki.mises.org/wiki/Empirical

https://wiki.mises.org/wiki/Axiom

https://wiki.mises.org/wiki/Axiomatic_deductive_method

https://wiki.mises.org/wiki/Action

https://wiki.mises.org/wiki/Action_axiom

https://mises.org/wire/other-fields-praxeology-war-games-voting-and-ethics

번역 및 편집 : 김경훈 연구원

이미지 출처 : http://commbooks.com/%EA%B3%BC%ED%95%99%EC%9D%B4%EB%A1%A0%EA%B3%BC-%EC%97%AD%EC%82%AC%ED%95%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