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스 와이어

Dan Sanchez - 자유주의 작가 겸 경제교육재단(FEE) 편집자 주제 : #인간행동학 원문 : Are markets (and other social phenomena) really “spontaneous”? (게재일 : 2011년 3월 5일) 번역 : 김경훈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과학철학) '자생적'(Spontaneous)이라는 용어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영어에서 이 단어는 '충동적'(impulsive)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그는 즉흥적으로 춤을 주기 시작했다(he spontaneously started dancing)" 처럼) 이는 분명 (시장이나 다른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 적합하지 않은 서술이다. 생물학에서 '자생적'은 (유기체의 통제 바깥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난다는 뜻인) '비자발적'(involuntary)과 동의어로 여겨지는데 이 역시 인간 행동에는 적용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자생적'이라는 표현을 시장과 관련하여 사용해야 한다면, ('자연발화'(spontaneous combustion)라는 단어에서 이 용어가 쓰이는 것과 비슷하게) 시장 활동의 경향이 시장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외부요인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그나마 그럴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생적'이라는 용어는 "보이지 않는 손" 또는 "자연적 질서"와 같은 문제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이 용어들은 사회현상이 인간의 의도적 행동과 무관한, 신비주의적이거나 기계론적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는 특히 목적지향적이고, 계획적이고, 자발적인 인간행동에 기초하여 일관된 사회과학적 설명을 제공하려는 오스트리아학파 전통에 적합하지 않다. 나는 자생적 질서 대신에 '협력적'(cooperative), '다중심적'(polycentric), '분산적'(distributed) 질서라는 표현이 훨씬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나는 '메커니즘' 대신에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는 조 살레르노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가 말하기를: 첫째,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모호하고, 불투명하고, 신비로운 은유는 가격 책정의 과정에 대한 현대 오스트리아학파 개념의 풍부함을 포착하기에는 부적절하다....
해외 칼럼 철학 Dan Sanchez 2025.01.15 추천 2 조회 95
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한국사 편집자주: 본 글은 2022년 4월에 출간된 <자유의 순간들>에서 전용덕 학장의 에세이를 발췌한 글이다.  [expand title="2025년 미제스 와이어 목차 <펼치기>" swaptitle="2025년 미제스 와이어 목차 <닫기>"][/expand] 1876년(고종 13년) 2월 조선왕조는 강화도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조선은 일본을 견제하려는 청나라의 주선으로 1882년 5월 미국과도 통상 조약(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조선은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과 잇달아 통상 조약을 체결했다.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일련의 통상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조선정부는 500년 동안 닫아왔던 나라 문을 세계를 향해 활짝 열었다. 개항은 조선과 그 이후 사회에 많은 경제·사회적 변혁을 초래했다. 개항이 조선에 초래한 변혁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인(私人)간’의 교역의 ‘자유로운’ 허용이다. 개항 이전까지 조선에서의 국제무역은 ‘공(公)무역’이 중심이었고 그런 무역마저 엄격히 ‘제한’되었다. 수출입을 합산한 무역 규모는 1877년에 190천 원에서 1944년 1,905,473천 원으로 증가했다. 물론 두 연도의 무역액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개항으로 무역 규모가 70여 년 만에 천문학적으로 증가한 것은 분명하다. 3공화국 이후에도 무역은 폭발적으로 증가해왔다는 점은 우리 모두 익히 아는 사실이다. 개항으로 촉발된 자유무역은 ‘자유의 확대’를 가져왔다. 개항으로...
국내 칼럼 역사 전용덕 2025.01.01 추천 4 조회 258
주제 : #정치현안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자유헌정질서를 유린하는 반국가세력을 척결한다는 것이 계엄 선포의 명분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지금까지 자유의 가치를 잘 지켜왔을까? 윤석열은 대통령 후보자 시절 인터뷰에서 미제스의 저서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보가 미제스의 가르침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임은 “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는 미제스의 대표적인 인용구만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번 계엄령 사태가 일어나기 이전에도 윤석열 정권의 행보는 미제스의 자유주의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왔다. 강제로 징집된 병사가 사고로 사망하였을 때에는 국가권력의 수장으로서 사과는커녕 권력을 사용하여 해당 병사가 속한 부대의 장성을 옹위하는 데 힘썼다. 또한, 해외 직구를 금지함으로써 자유로운 소비를 규제하고자 시도하였고, 감세를 주장하면서도 대통령실 이전, 정부 부처 신설 등의 구실로 정부의 지출을 축소하지 않는 등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에 입각한 경제정책이라고 볼 수 없는 정책들을 펼쳐왔다. 그러한 비자유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은 또다시 ‘자유수호’를 언급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자유는 언제나 반국가적이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또 다른 거장인 머레이 로스바드는 그의 저서 ‘국가의 해부(Anatomy of the State)’에서 국가는 태생적으로 사회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기관으로, 완전한 자유시장질서와 국가주의는 양립하기 어려움을 역설하였다. [note] 김경훈, 한창헌, 국가의 해부, 바른북스, 2022, p.22[/note]윤석열이 자유질서 수호를 외치는 동시에 자신에 반하는 자들을 반국가세력으로 상정한 것은 그야말로 형용모순이다. 비상계엄 발발 직후 그리 길지 않은 6시간 만에 국회의 해제 요구안을 대통령이 수용하며 해제되었고, 해제 이후...
국내 칼럼 정치·외교 미제스연구소 학생멤버 2024.12.25 추천 9 조회 407
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한국정치 인간의 행동 중에서 경제행위만을 다루는 학문이 경제학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이 처한 위기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행동학(praxeology)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를 전후한 한국인들의 행동을 인간행동학적 관점에서 조명해 본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체제는, 주지하듯이, 민주정(democracy)이다. 토크빌이 말했듯이, 민주정의 최대의 약점은 다수가 소수를 겁박하고 탄압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여소야대이다. 물론 그것은 국민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고 간접적으로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게 하도록 자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정을 토크빌이 말하는 함정에 빠뜨리지 않으려면 국민이 민주정의 그런 약점을 알고 다수의 횡포를 걱정하고 야당을 비판했어야 했다. 그러나 야당 지지자들과 정치가들의 일부는 야당의 횡포를 부추기기까지 해왔다. 그럼에도 필자가 다수의 겁박에 소수가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을 찬성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필자는 민주정이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다수가 그만큼 더 조심해야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그 위에, 이 번에 민주정을 위기에 빠뜨린 정치인(들)이 누군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민주정에서 다수라고 말할 때 ‘수적’ 다수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농민의 수는 비농민의 수보다 형편없이 적지만 쌀가격은 오랜 기간 농민을 위하여 일정 가격 이상으로 유지되어 왔다. 즉 다수란 ‘정치력’에...
국내 칼럼 정치·외교 전용덕 2024.12.17 추천 6 조회 483
Llewellyn H. Rockwell Jr. 가장 영향력있는 자유주의자 중 한 명인 류 락웰은 미제스 연구소의 창립자 겸 회장이며, 류락웰닷컴의 운영자이다. 일찍이 자유주의적 신념을 가졌던 락웰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유주의 출판사인 '알링턴 하우스(Arlington House)'에서 근무했는데, 그곳에서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저술을 편집하는 업무를 맡으면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접하게 되었다. 1975년에는 머레이 라스바드를 만나 완전한 아나코-캐피탈리스트가 되었으며, 1978년부터는 자유의 수호자 론 폴의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다. 1982년에는 마침내 미제스 연구소를 창립하면서 오스트로-리버테리어니즘 운동을 주도하는 활동가로 자리잡았다. 주제 : #간섭주의 원문 : The Old Right Opposed Tariffs (게재일: 2024년 10월 5일) 번역 : 전계운 대표 구(舊)우파(Old-Right)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식인과 활동가들의 집단으로, 이들 중 다수는 리버테리언이었다. 이들은 뉴딜정책의 “산업통제(industrial regimentation)”에 맞서 싸웠었고 미국에서 국가주의(statism)와 기업조합주의(corporatism)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지적했다. 오늘날 일부 주장과 달리, 구 우파는 대기업, 조합주의를 포함한 자본주의를 열렬히 옹호했고 이윤 추구의 동기를 찬양했으며 국제 무역에 대해 철저히 자유방임주의적인 입장을 취했었다. 이들은 관세를 혐오했으며 보호무역주의를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한 형태로 여겼다.  초도로프(Frank Chodorov)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우파에서 중요한 지식인이었는데 초창기 프리맨(Freeman)잡지에서 편집장으로 있었고 휴먼 이벤트와 인터컬리지 스터디 연구소(Human Events and the Intercollegiate Studies Institute)를 설립했다. 다작의 작가였던 초도로프는 두 세대에 걸쳐 학생들과 활동가들을 자유의 문학으로 인도했고 중앙 정부와 타협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그는 “고립주의자”라는 꼬리표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고 미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을 실수라고 주장했다. 세계대전의...
해외 칼럼 역사 Llewellyn H. Rockwell Jr. 2024.12.13 추천 1 조회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