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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6월호] 노동조합과 한국 노동시장 그리고 사상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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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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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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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노동과_임금

2025년 미제스 와이어 목차 <펼치기>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이하 존칭 생략)은 조선일보 4월 26일 자와 5월 26일 자 칼럼에서 지금의 한국 노동시장이 그렇게 이중 구조화된 이유에 대해 지적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지적은 완전히 틀렸을 뿐만 아니라 그런 분석에 근거한 대책도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인다. 한 발 더 나간다면, 조선일보는 무슨 이유로 그에게 칼럼 게재를 요청했을까?

최저임금제, 외국인 노동자들, 주 52시간제 등도 한국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지만 일정한 것으로 간주하여 노동조합과 지금의 한국 노동시장을 분석한다. 한석호는 작금의 대기업 임금이 7만·8만달러에 달하게 된 이유로 대기업이 고임금 정책을 구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그는 대기업이 ‘일률적으로’ 고임금 정책을 구사한다는 지적을 한다. 즉 그는 대기업이 적절히 협력하여 노동자에게 고임금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5월 26일 자 칼럼의 제목을 “대기업‘만’의 고임금 행보 멈춰야 한다”고 달고 있다. 과연 그의 주장은 타당한가?

대기업도, 가능하다면, 생산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임금을 되도록 ‘적게’ 주기를 원한다. 비용을 절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가 말하듯이 대기업들이 고임금 정책을 경영전략으로 추구해왔다는 지적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그런데 왜 대기업은 ‘울며겨자먹기’로 저렇게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있는가? 대기업 소유자들 또는 경영자들이 눈을 조금만 바깥으로 돌리면 3만 달러를 받고도 열심히 일할 노동자가 수두룩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 정확하게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어보아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본 투입이 다른 것, 즉 대기업은 자본을 많이, 중소기업은 자본을 상대적으로 적게 투입하는 것이 두 기업 간 임금의 차이를 불러온다. 예를 들어, 완성차 메이커는 자동화, 기계화 등의 이유로 중소기업보다 많은 자본을 투입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다르고 그런 생산성 차이는 임금의 차이를 불러오게 된다. 이것이 두 기업 간 임금 격차를 초래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 점은 아래의 분석에서는 일정하다고 가정한다. 두 기업 간 임금 차이를 설명하는 다른 많은 요인이 있지만 그것들도 아래에서는 당분간 일정하다고 가정한다.

핵심은 한국 헌법이 노동조합(이하 ‘노조’로 약칭)을 결성할 권리와 노조3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이전에도 헌법은 노조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었지만 박정희·전두환은 그런 권리를 보호하기는커녕 탄압했다. 1987년 이후에야 노조의 권리는 온전히 보장되었다. 하지만 헌법이 노조의 권리를 보호한다고 모든 기업이나 사업장에서 노조 권리가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영세기업 등은 노조를 조직하고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순간 기업 자체가 존립하기 어렵다, 그 점을 노동자들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중소기업, 영세 사업장 등에서는 애초에 노조를 ‘결성하지 않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노조는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는가? 노조원은 자유시장에서 결정되는 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요구하여 받는다. 이 때의 임금을 ‘제한주의적 임금’(restrictionist wage) 또는 ‘제한주의적 가격’이라고 부른다. 강조해야 할 것은 제한주의적 임금은 자유시장임금보다 언제나 높다는 점이다. 그리고 얼마나 높은가는 노동자와 경영자의 그 때 그 때의 협상력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까지 한국의 많은 노조들이 쉽게 파업을 결정하는 이유이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문제가 되는 임금은 1987년 이후 매년 노조원과 경영자의 협상에 의해 갱신된 임금이다. 그 결과 현대차 노조 생산직 노동자의 2025년 임금이 6천 만원이 된 것이다. 그래서 ‘킹산직’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이 때, 주지하듯이, 1·2차 하청업체의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은 대략 3천만 원 전후이다. 노조원이 받는 그렇게 높은 임금 때문에 기업은, 자유시장임금일 때보다 비교하여, 고용을 줄이게 된다. 이 때 해고된 노동자들은 1·2차 하청업체로 가거나, 자영업자가 되거나, 전업하여 다른 직종의 노동자가 되거나, 긴 시간에 걸쳐 심지어 실업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임금 격차가 대기업에서는 ‘구직난’을, 중소업체나 영세업체에서는 ‘구인난’에 빠진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가 그 자리를 메운다.

한 가지 더 지적해야 할 것은 한국 재벌기업들 또는 대략 재계 10위 이내의 노조가 있는 대기업들이 임금을 자유시장임금보다 높게 지급하면 노조가 없는 비슷한 수준의 재벌기업들 또는 대기업들도 임금을 높게 지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노조의 유무와 관계없이 기업들은 노동시장에서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 위하여 경쟁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유로 외부 관찰자의 눈에는 대기업들이 고임금 정책을 경영 전략으로 채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한석호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조합의 폐해는 그것만이 아니다. 노조원의 높은 임금은 노조가 있는 대기업의 투자자들, 노조와 관련이 없는 일반 국민들의 복지를 후퇴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복잡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다만 노조의 폐해는 한국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 영향이 얼마나 큰가는 경우에 따라 모두 다를 뿐만 아니라 개인이 받는 영향도 천차만별이다.

노조가 다른 경제주체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되고 고착화 된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상, 즉 원·하청 불신, 그냥 쉼 청년, 저출산, 중소기업 인력난, 외국인 노동자의 이주 등의 문제를 구조화·고착화시켜왔다. 그리고 그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계층 간 갈등을 야기시켜왔다. 작금의 정치에서의 사상전쟁은 노동시장에서 연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요인도 적지 않지만 노동시장의 왜곡이 두 번째로 중요하다.

한 마디로 자유시장임금보다 높은 노조의 임금은 한국 노동시장에 구조화된 이중구조라는 문제의 전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중요한 원인임은 분명하다. 노조는 소리없이 한국 경제와 사회를 무너뜨려온 ‘원흉’들 중의 하나이자 노조원은 자신이 일한 것보다 더 많은 몫을 받는 ‘도둑’이다.

한석호의 두 번의 칼럼에서 우리가 유도할 수 있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가 평생에 걸쳐 노동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경제이론을 유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이론이 ‘선험적’이라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이하 ‘오학경’)이 옳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선험적이라는 의미는 경제이론이 경제주체의 행동보다 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선행한다는 것이다.

둘째, 필자가 앞에서 제시한 노조의 제한주의적 임금과 그 역기능에 대한 설명은 오늘날 주류경제학에서는 발견할 수 없고 오학경에서만 유일하게 존재한다. 노조 관련자 모두가 오학경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오학경을 공부하고 그를 기초로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도둑이 되고 경제를 붕괴시키는 무리가 되는 일을 막을 방법은 없는 듯하다.

셋째, 한국 경제를 망가뜨리는 첫 번째 괴물이 정치라면 노조는 두 번째 괴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연봉 1억 원을 받는 노동자도 한국 사회의 밑바닥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들을 위장하여 철저히 타인의 몫을 탈취하자는 논리로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위장과 탈취는 노조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해왔다. 다시 한번, 공부와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넷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또는 다중구조 문제는 작금의 한국 사회의 사상전쟁을 야기한 몇 가지 중요한 원인들 중의 하나이다. 다른 문제와 함께,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다면 그런 사상전쟁의 끝이 파국으로 치달을 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기에서 파국이란 국가와 개인의 동시 몰락을 의미한다.

다섯째, 비노조원과 한국 경제를 망가뜨리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석호는 그렇게 대우받는 삶을 살아왔고 조선일보 칼럼에도 자신의 글이 게재되었다. 노조 문제와 관련해서는 세상의 이치가 완전히 거꾸로 되는 일을 막을 수 없음을 그의 삶의 궤적이 잘 보여준다. 다른 예로는 전태일이 있다.

여섯째, 언론 매체로서 신문이나 방송이 모든 영역에서 빈틈없는 분석과 적절한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세상은 매우 다양해졌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임금 격차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또는 다중구조 문제는 한국 사회의 핵심 쟁점으로서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언론 매체 자신이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면 세상의 전문가를 잘 찾아서 그의 주장을 듣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한석호가 그런 기준에 잘 맞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일은 조선일보의 몫임에 틀림없다.

끝으로, 노조를 보호하는 헌법과 법률을 혁파하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더 절망적인 것은 노조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의 원인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한석호의 삶과 주장이 그 점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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