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노동시장 - 9편] 한국 노동시장 문제의 원인 - 연공서열제

제1장 노동시장
작성자
작성일
2020-03-05 18:42
조회
693

전용덕
*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 경제학 박사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한국경제

편집 : 전계운 대표
  • 이 글은 원저자인 전용덕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였으며, <한국경제의 진단과 처방>의 제1주제에 해당한다.
진단과 처방 시리즈 목차 <펼치기>
[제1장 노동시장 - 1편] 한국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 문제 제기
[제1장 노동시장 - 2편]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 -  높은 청년 실업률과 낮은 취업률
[제1장 노동시장 - 3편]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 - 점증하고 있는 불완전 고용과 장시간 노동
[제1장 노동시장 - 4편]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 - 임금의 다중 구조
[제1장 노동시장 - 5편]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 - 비정규직의 정규직으로의 강제전환
[제1장 노동시장 - 6편] 한국 노동시장 문제의 원인 - 노동조합
[제1장 노동시장 - 7편] 한국 노동시장 문제의 원인 - 경기변동
[제1장 노동시장 - 8편] 한국 노동시장 문제의 원인 - 최저임금
[제1장 노동시장 - 9편] 한국 노동시장 문제의 원인 - 연공서열제
[제1장 노동시장 - 10편] 한국 노동시장 문제의 원인 - 실업보험
[제1장 노동시장 - 11편] 노동시장 문제의 해법 - 원인요약
[제1장 노동시장 - 12편/完] 노동시장의 문제의 해법 - 다른 해결책들

제2장 교육시장 -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8편, 9편, 10편/完, 부록 1편, 부록 2편)
제3장 저성장 -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8편, 9편, 10편, 11편, 12편/完)

제4장 저출산 -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完)
제5장 부동산 -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8편, 9편, 10편, 11편, 12편/完)
제6장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 (1편, 2편, 3편, 4편/完)
제7장 소득불평등 - (1편, 2편, 3편, 4편, 5편/完)
제8장 기타문제 - (1-1편, 1-2편, 1-3편, 2-1편, 2-2편, 3-1편, 3-2편, 4-1편, 4-2편, 완결편)

* 연공서열제는 현실에서는 일명'호봉제'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편의상 연공서열제라는 용어로 통일한다.

연공서열제란 어떤 조직 또는 기관에 근무한 햇수가 길어질수록 임금이 많아지는 제도를 말한다. 연공서열제의 본질은 생산성과 관계없이 근무연한에 따라 임금이 상승한다는 점이다. 물론 연공서열제를 채택하더라도 성과급제, 직무급제를 추가하여 운영할 수 있고 직무에 따라 연공서열제의 초기 임금을 다르게 책정할 수는 있다. 한국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임금은 직무급, 성과급, 연공서열 등이 혼합된 것이다.

혼합의 정도는 모두 다르다. 그러나 연공서열제를 임금제도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는 직무급, 성과급 등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실정이다. 다른 한편, 일부 대기업에서는 연공서열제를 완전히 배제하고 직무급제를 기초로 한 성과급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연공서열제를 임금 책정의 기준으로 채택하지 않은 기업이나 기관은 제외한다.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 예를 들어 기업, 공공기관, 각종 학교와 버스 회사와 같이 반관반민1의 조직 등에서 연공서열제가 임금을 책정하는 방식으로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기업 중에서도 대기업들은 상당수가 1997년 경제위기 시에 연공서열제를 폐지하고 성과연봉제를 채택했다. 여기에서 성과연봉제란 근무 연수가 아니라 성과와 능력을 중심으로 급여를 받는 제도를 말한다. 338개의 공공기관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 임금제로서 연공서열제를 포기하고 성과연봉제를 채택하는 개혁을 단행했다.2

그러나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를 강행하지 않고 그 도입 여부를 노사 자율에 맡기기로 하면서 거의 모든 공공기관이 호봉제로 회귀했다. 그리고 절대 다수의 중소기업, 사립대학을 포함한 각종 교육기관, 민간이 운영하는 기관 등에서도 연공서열제가 임금을 책정하는 방식의 중심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조직마다 자신에 맞는 임금제도로 얼마간 변형된 형태의 연공서열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말이다.

연공서열제가 경제적 유인 체계를 없앤 것과 유사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져간다”는 사회주의 슬로건과 연공서열제는 큰 차이가 없다. 연공서열제가 조직 내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억제하는 제도로서 생산성 하락을 초래한다. 연공서열제에 대한 원론적인 비판을 제외하고, 여기에서는 연공서열제가 누구의 이익을 침해하는가를 사립대학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자율과 자기 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의 사립대학에 비하면 한국의 사립대학은 국공립대학에 가깝다. 교육부가 사립대학에 대해 너무 많은 규제와 간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대학등록금을 최고가격으로 규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 정원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교육부는 사립대학에 대하여 다른 많은 규제도 하고 있다. 장학금에 대한 규제, 정부의 대학에 대한 각종 보조금, 각종 자산의 사용에 대한 금지 또는 통제, 시설에 대한 규제, 학교 재단의 구성과 권한에 대한 규제 등이 그것이다. 교육부는 사립대학의 교육 서비스 생산에 대하여 사실상 많은 규제와 간섭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공립대학의 경우에는 사립대학보다 규제와 간섭이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각종 규제가 국공립대학을 포함한 사립대학의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독립적인 주제이다.

대학을 운영하는 인력은 교원과 직원으로 구분한다. 한국의 사립대학에서 두 집단의 기본 임금구조, 진급 방법, 은퇴 연령 등이 두 집단을 구분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원과 직원의 임금 체계는 기본적으로 연공서열제이다. 왜냐하면 교원과 직원의 생산성과 관계없이 근무연한에 비례하여 임금이 상승하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무할 동안 큰 문제가 없다면 진급(교원의 경우에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 등으로 진급하고, 교원의 경우에 신입, 팀장, 과장, 실장 등으로 진급한다)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진급제도도 사실상 연공서열제를 강화해주는 것이다.

대학의 인력을 교원과 직원이라는 두 집단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먼저 교원을 보기로 한다. 교원의 연공서열제는 교원의 임금이 생산성보다 높아지는 순간부터 사실상 최저가격이 된다. 3교원의 생산성이 시간과 비례하여 개선되지 않는 한 최저가격은 시간에 비례하여 자유시장임금보다 점점 더 높아진다. 최저가격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한다.

최저가격의 부작용은 여러 가지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업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실업이란 대학이 교수의 채용을 줄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대학 시간강사는 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실업으로 대기하는 기간도 결코 짧지 않다. 그 결과 대학 강의에서 전임교수의 비중은 낮아지고 시간강사의 비중은 매우 높다. 결국 연공서열제는 현직에 있는 대학교수의 임금을 올리지만 그 임금은 해고된 또는 아직 채용되지 않은 시간강사의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다.

한국 대학 전임교원의 강의 담당 비중은 2014년 현재 4년제 대학의 경우에 국립 약 54%, 공립 약 41%, 사립 약 55% 등이다.4 전임교원이 전체 개설 강좌의 약 1/2 이하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문대학의 경우, 2014년 전임교원의 강의 담당 비중이 국립 약 57%, 공립 약 39%, 사립 약 46% 등이다. 이 사실은 전문대학이 4년제 대학보다 국립에서는 약간 우위에 있지만, 공립과 사립은 오히려 열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대학 강의에서 시간강사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그 만큼 대학 강의의 질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공서열제의 채택은 학생들이 수강하는 강의의 질을 낮추는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다. 즉 교수의 연공서열제는 대학 교육의 생산성 하락을 대가로 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 교육의 낮은 생산성은 고교 졸업자의 상당수를 외국의 대학으로 진학하게 밀어붙이는 힘이다.

연공서열제가 대학교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가상적인 예를 들어 설명한다. 대학교원의 초기 조건이 거의 동일하여 동일한 호봉을 받는다고 가정한다. 다만 한 사람(A)은 학생 정원 30명 학과의 교수이고 다른 한 사람(B)은 학생 정원이 150명인 학과의 교수라고 가정한다. 두 교수의 대학 수입에의 기여도는 B가 A의 5배이다. 비용은 B가 A의 2배라고 가정한다. 그 경우에 B의 대학재정에의 순기여도는 A의 3배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연공서열제 때문에 B는 A와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 만약 A가 자신의 생산성만큼 임금을 받고 있다면 B는 2배의 임금을 대학에 약탈당한 것이다. 만약 A가 자신의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면 그만큼 B로부터 약탈한 것이고 B는 약탈당한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전자의 경우보다는 후자의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대학의 직원과 교원은 다른 트랙의 임금제도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공서열제에 의해 임금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대학 직원의 임금도 대학 교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공서열제 의한 임금이 직원의 생산성을 반영한 임금보다 높아지는 시점부터 그 임금은 최저가격이 된다. 그 결과로 대학은 직원을 최대한 적게 뽑도록 한다.

대학 직원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적기 때문에 대학 직원이 되고자하는 사람들이 만성적인 실업 상태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학 시간강사처럼 취업 대기자 또는 실업자를 관측할 수 없다. 눈으로 관측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직원 연공서열제는 대학 행정의 생산성 하락을 대가로 한 것이다. 연공서열제는 대학 직원과 대학 교원 간에도 소득재분배를 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생략한다.

대학을 포함한 교육기관은 자본주의로부터 멀어져서 사회주의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초·중·고의 무상교육, 무상급식, 국가장학금의 확대, 대학 이사회의 권리 제약, 교육기관들에게 제공하는 정부의 각종 보조금 등과 같은 사회주의 제도가 교육기관에 끊임없이 도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유치원도 국공립의 확대가 획책되고 있다. 여기에서 따로 분석하지 않지만 그런 제도는 분명 교육기관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그 결과 실업을 초래한다.




  1. (원문 20번 각주) 오늘날 학교, 버스회사 등은 민간이 운영하는 경우에도 정부 보조금을 장기간 받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국공립과 다를 바가 없다. 바로 그 이유로 ‘반관반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2. (원문 21번 각주) 전체 공공기관의 임금제도는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조선일보 2018년 10월 12일자 참조.
  3. (원문 22번 각주) 최저임금을 최저가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금도 가격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다만 시급·비정규직 최저임금과 연공서열제에서의 최저가격이 다른 점은 후자가 연봉·정규직 최저임금이라는 것이다.
  4. (원문 23번 각주) 이 부분은 전용덕(2015b), 86쪽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