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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2020년 9월호] 최고가격의 의료수가와 공적의료보험

국내 칼럼
사회·문화
작성자
작성일
2020-09-01 10:43
조회
1923

전용덕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경제학 박사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건강
  • 이 글은 2020년 8월 31일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에 발표된 글입니다.
미제스 와이어 2020년 정기칼럼 목차 <펼치기>

지금 정부와 의료계 간에는 많은 현안이 누적되어 있다. 의과대학 정원을 향후 10년간 4000명(연간 400명) 늘리겠다는 것이나 공공의대 설립은 그 중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정부 정책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의사들의 처우가 예전과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수를 더 늘리겠다는 정책은 그런 처우를 미래에 더 나쁘게 만들 것으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의과대학 정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최고가격 제도를 분석하고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공적의료보험을 다룰 것이다.

복지부는 서울의 종로, 강남, 중구에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11명이고 경북의 군위, 영양, 봉화의 의사 수는 0.7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첫 번째 주장’). 정부는 또한 환자 1명당 1차 의료기관에서의 진료 시간이 한국은 4.2분인데 OECD 11국 평균은 17.5분이라고 지적한다(‘두 번째 주장’)(2011년 연구 결과).

그러나 의료계는 ‘국가별 의사 밀도’(10km²당 의사가 얼마나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는 이스라엘(12.4명), 벨기에(10.7명), 한국(10.4명) 등의 순서로 ‘의사의 접근성 측면에서 한국은 의사의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첫 번째 주장’). 대한의사협회(의협)은 ‘한국인의 1년 병원 방문 횟수는 16.9회로 OECD평균 6.8회보다 크게 많다’고 주장한다(‘두 번째 주장’).

정부는 의사가 부족하다는 입장이고 의협은 OECD 평균 대비 의사는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한 마디로, 의협은 의사가 부족하다는 정부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정부와 의료계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의료체계인 공적의료보험과 그 핵심인 최고가격(특히 의료수가) 제도를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서 최고가격이란 정부에 의해 고정되고 자유시장가격보다 언제나 낮은 가격을 말한다. 그러나 최고가격은 일정시점에는 고정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상되어왔다. 그러나 지난 3년간에는 의료수가는 변동이 없었다. 즉 다른 때와 비교하여 지난 3년간 최고가격은 자유시장가격보다 더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가격이 자유시장가격보다 얼마나 낮은가는 진료과목에 따라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응급의료는 최고가격이 너무 낮아 대형병원도 응급의료를 유지하는 일에 작지 않은 손실이 난다고 아우성이다.

자유시장가격일 때와 비교하여, 최고가격은 의료서비스 공급을 적게 하고 수요는 증대하게 만든다. 경제학에서 이런 상태를 ‘초과수요’라고 말한다. 의료수가가 낮게 고정되어있기 때문에 의사는 최대한 많이 진료하지 않을 수 없다. 일종의 ‘박리다매’인 것이다. 당연히 1인당 진료시간은 최대한 짧아지지 않을 수 없다. 1차 의료기관에서 진료시간이 4-5분밖에 안 되는 것은 의료수가 규제 때문이다. 즉 진료시간이 매우 짧은 것은 의료수가를 최고가격으로 규제한 결과이지 의사의 수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사 개인 차원에서의 분석이다.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이것은 복지부의 두 번째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산업 전체에서도, 자유시장가격일 때보다 최고가격에서 의료 서비스의 공급, 즉 의사의 수가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이 복지부의 첫 번째 주장이 옳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수가가 최고가격인 상황에서는 의사들은 병원 경영이 쉽거나 적절한 소득을 확보하기가 쉬운 장소에서 병원을 개업하기를 원한다. 특히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농촌 지역은 기피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지역별 의사 수의 격차가 큰 것은 가격 규제의 당연한 귀결이다. 여기에 자녀 교육 환경 등도 의원 개업 장소의 선정에 영향을 미친다. 지역별 인구 당 의사의 수가 격차가 큰 것은 가격규제와 다른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 결과이지 의료산업 전체에서의 의사의 수와 큰 관련이 없다. 만약 농촌지역 의료수가를 정부가 규제하지 않는다면 지역 간 의료 격차는 상당히 해소될 것이다. 물론 의료 격차를 완전하게 해소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농촌 지역의 인구 감소, 교육 환경 등도 병원 개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고가격 제도가 지금처럼 유지되고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10년이 지나 농촌에서 의무를 마친 의사들은 개업 장소를 도시로 옮길 것이라는 의협의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는다. 즉 복지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지역 간 의료 인력 격차 해소를 위하여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이지만 부작용은 그것보다 더 클 것이라는 점이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의학 등은 의사가 턱없이 모자라고 성형외과, 피부과, 정형외과 등에서는 의사가 차고 넘친다. 의사들의 진료과목 선택은 어떤 진료과목의 노력 대비 보상(최고가격은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과 미래 전망, 자유시장가격을 적용할 수 있는 의료수요의 크기, 적성 등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실리콘 유방 확대술과 같은 성형 수술은 자유시장가격일 뿐만 아니라 수요가 적지 않기 때문에 의사가 몰리는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와 분만실이 없어서 농촌을 포함한 중소도시에서 아기를 분만하는 일은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고도 정부는 사람들이 아기를 더 낳기를 바라고 있다.

인구의 대부분이 6대 도시에 거주하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는 의사의 수가 많기 때문에 국가별 의사밀도가 높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농촌 지역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정반대이다. 이를 두고 의사의 접근성 측면에서 한국은 의사의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의협의 첫 번째 주장은 통계를 잘못 해석했다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진료비가 자유시장가격보다 매우 낮기 때문에 환자는 가벼운 증상에도 병원을 찾고,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병원을 전전한다. 이것은 의협의 두 번째 주장이 의료수가 규제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한 것이지 의사의 부족 여부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것도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여기에 KTX와 같은 교통의 발달도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환자가 몰리는 현상을 부채질한다. 그 결과 대형병원에서는 병상이 부족하여 완치 때까지 입원 치료가 불가능하다.

65세 이상의 노인 의료수가는 비노인 의료수가보다 더 낮다. 노인 의료수가는 노인 할인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 한의원에 가면 다수의 고령자가 물리치료용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런 경우야말로 어떤 최고가격보다 낮은 최고가격인 노인 의료수가 때문임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그 결과로, 노인 인구의 증대와 맞물려, 노인 의료비는 폭증해왔고 건강보험공단의 의료보험료 수입은 쉽게 적자가 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최고가격 제도에서 환자들은 저렴한 의료 비용을 부담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최고가격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최고가격 제도에서 환자들은 최고가격(즉 금전적 비용) 뿐만 아니라 ‘비금전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금전적 비용이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환자들은 진료를 위하여 상당한 시간을 대기해야 한다. 응급실과 그 인력이 충분하지 못하여 위급한 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대형 병원들은 최근에야 환자 가족이 환자를 돌보는 일을 그만두게 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의료수가 체계로는 병원들이 환자가 요구하는 의료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한 마디로, 환자들이 지불하는 명목 비용은 최고가격으로서 매우 저렴하지만 비금전적 비용을 포함한 실질 비용은 매우 고가(高價)일 뿐만 아니라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김대중 정권 시절 의약분업을 시작하면서 정부는 의료수가(약가 포함)를 본격적으로 최고가격으로 규제했다. 그 이후 최고가격 제도는 지속되어 왔다. 그 결과 최고가격은 자유시장가격보다 지속적으로 낮아져 왔다. 다만 의료수가가 여럿이 있기 때문에 최고가격과 자유지장가격의 격차는 모두 다르다. 한 마디로, 최고가격 제도의 폐해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적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행위도 적지 않지만 그 대상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최고가격 제도와 함께, 공적의료보험은 보험금의 지속적인 인상, 건강보험공단의 비효율, 적지 않은 의료사고와 피해 구제의 어려움, 의사들의 과잉 진료, 병원들의 사기 행위, 보험료를 소득에 비례하여 부담해야 하는 부조리 등의 문제로 의료산업을 문제투성이로 얼룩지게 해왔다. 즉 한국 공적의료보험도 환자에게 저렴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제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구가 감소하고 보험 대상을 지속적으로 높이면(예를 들어, 문재인 케어) 장기에는 현행 공적의료보험을 유지하는 일마저도 어렵게 될 것이다.

의사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의료산업 전체 차원에서 의사 수의 부족도 최고가격이라는 규제 때문이다. 앞에서 서술한 문제들의 대부분은 가격, 즉 의료수가를 고정하면서 생겨난 결과이다. 최고가격 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진료과목별, 지역별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은 의료계 전체에서 발생하는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직관에 의한 추정이다. 게다가. 최고가격의 폐해에 공적의료보험의 폐해가 중첩되어 왔다. 그 점에서 복지부의 주장이 의협의 주장보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두 주장 모두 결점이 없지 않지만 말이다.

최고가격 제도와 공적의료보험의 폐해가 상존하는 현실에서 의무 근무 연한이라는 수량 규제를 추가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의료 인력의 부족을 포함한, 의료계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확실한 방법은 민간의료보험(여기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민간의료보험이 공적의료보험보다 우수하다)과 자유시장가격 제도이다. 그러나 정부는 단기에는 공적의료보험도 최고가격 제도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좁게는 의료수가의 최고가격 제도이고 넓게는 그런 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공적의료보험이다. 게다가, 의료수가는 의료행위별 ‘상대가치점수’에 의해 일부 결정되고 그런 상대가치점수는 26개 의료 전공과목 학회장에 의해 결정된다. 즉 의료수가는 전공과목별 이익집단에 휘둘리게 되어 있는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고가격 제도와 공적의료보험을 유지하면서, 가능한 한 가지 대안은 자유시장가격 또는 실질 비용을 최고가격에 최대한 반영하는 방법으로 최고가격들 간의 관계, 즉 의료수가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5천개가 넘는 의료행위의 자유시장가격 또는 실질 비용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려움을 감당한다면 앞에서 지적한 각종 폐해를 상당히 없앨 수는 있을 것이다. 비록 그 폐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의사의 수도 예외는 아니다. 환자가 지불하는 금전적 비용뿐만 아니라 비금전적 비용을 고려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정부와 의료계가 민간의료보험과 자유시장가격 제도 도입을 심각하게 검토하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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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출처 : 의료&복지뉴스, "의대 입학정원 매년 400명씩 4천명 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