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저성장 - 7편] 저성장의 원인: 가격규제

제3장 저성장
작성자
작성일
2020-04-23 14:10
조회
734

전용덕
*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 경제학 박사(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한국경제

편집 : 전계운 대표
  • 이 글은 원저자인 전용덕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였으며, <한국경제의 진단과 처방>의 제3주제에 해당한다.
진단과 처방 시리즈 목차 <펼치기>

가격규제: 최저가격의 경우

현재 최저가격으로 규제되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쌀과 최저임금이다. 이 시리즈의 1에서 최저임금제가 자본소비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여기에서는 쌀을 예로 들어 최저가격이 어떻게 자본소비를 일으키는가를 분석한다.

정부가 과거에는 추곡수매가를 결정하여 농가로부터 벼를 매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농가 생산량의 약 25% 정도를 정부가 매입했다. 현재는 추곡수매가와 쌀 소득직불금제를 병행하여 실시하고 있다. 쌀 소득직불금제는 농가가 쌀 농사를 짓지 않는 대신에 정부가 일정한 소득을 지불하는 제도를 말한다. 두 가지는 이름만 다를 뿐이지 사실상 정부가 고정한 가격에 벼를 매입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제도이다. 정부가 농민으로부터 매입하거나 소득직불하는 금액을 전체적으로 보면 약 80만 톤의 벼를 정부가 결정한 가격에 매입하는 것과 같다. 그 가격은 쌀의 자유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서 최저가격이다. 최저가격은 시장 상황, 정부의 예산, 여야의 협상력 등에 따라 매년 결정된다.

80만 톤의 벼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농지, 종자, 비료, 농약, 각종 농기계, 운송수단, 저장시설, 석유류 제품, 전기, 상하수도, 농업 인력 등이 생산량에 비례하여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생산하기 위하여 자본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정량의 비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비료를 생산하는 공장이라는 자본재, 전기를 생산하는 자본재, 상하수도 시설의 건설에 필요한 자본재 등이 필요하다. 농약 등의 생산에도 필요한 자본재가 투입되어야 한다. 80만 톤의 벼를 생산하여 현재는 일부는 저장하고, 일부는 북한이나 저개발국가에 원조로 주고, 일부는 낮은 가격으로 쌀 가공 생산자들에게 판매하며, 일부는 가축의 사료로 처분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80만 톤의 벼를 생산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각종 자본재는 거의 대부분이 사실상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즉, 벼의 가격을 최저가격으로 고정한 현재의 제도는 연간 약 80만 톤의 벼의 생산에 투입되었던 자본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년 이렇게 소비되고 있는 자본은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난 몇 십년 동안 계속 이렇게 자본을 소비해왔기 때문에 쌀의 최저가격제도가 한국 경제의 성장에 작지 않은 영향을 주어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최저가격으로 농업 부문에서 자원의 낭비가 발생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농업에서 자원이 낭비되면 농업이 아니 다른 부문에서 자원이 부족하게 된다. 그 결과 그 다른 부문에 속한 경제주체는 자원을 사용하는 대가를 더 높게 지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다른 부문에서도 자원 사용에 있어서 비효율이 발생하고 그것은 자본을 소비하게 만든다. 이것은 농업 부문에서 가격규제가 없을 때와 비교하여 그렇다는 것이다.

가격규제: 최고가격의 경우

공공요금은 과거나 지금이나 대부분 최고가격으로 규제되어 있다. 공공요금이 자유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보다 언제나 낮게 고정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전기 요금, 수도 요금, 쓰레기 수거 요금, 각급 학교의 등록금과 운영비용, 교통비용(시내버스, 시외버스, 고속버스, 철도, 택시, 여객용 선박, 항공) 등이다. 현실에서는 최고가격으로 규제된 재화가 앞에서 나열한 것보다 더 많지만 생략한다.

각급 학교의 등록금은 최고가격으로 규제되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등은 이미 등록금과 학교 운영비용이 마이너스 수준에 이르고 있다. 등록금 뿐만 아니라 점심식대, 교재대 등도 국가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도 등록금과 학교 운영비용이 곧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대학도 반 값 등록금, 대학에 대한 엄청난 보조금, 국공립 대학의 매우 낮은 등록금 등으로 대학 전체 운영비용의 일부만 학부모와 학생이 부담한다.

대학 등록금이 오랜 기간 최고가격으로 규제되면서 사교육, 입시위주의 교육 등으로 교육에서의 자원 낭비가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되어왔다. 여기에서 자원 낭비란 곧 자본소비를 말한다.

그러나 교육 부문에서 자원이 낭비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교육에서 자원이 낭비되면 경제 내의 교육을 제외한 다른 부문에서 자원을 사용하는 대가를 더 높게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교육 부문에서 자원이 낭비되면 그 만큼 다른 부분에서 자원이 부족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눈으로 또는 통계로 확인할 수 없다. 자원 부족 현상과 그에 대한 대가의 상승은 ‘안보이지만 존재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2에서 2007년 현재 GDP 대비 한국, 일본, 미국의 교육비 지출을 보여준다. 시리즈 2의 <표 2-8>의 ‘칼럼E’에서 한국은 GDP의 7.5%, 미국 6.4%, 일본, 4.3% 등을 교육비로 지출한다. 한국의 교육비 지출은 일본의 교육비 지출보다 1.7배나 많다. 두 나라의 경우에 그런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민간교육비 지출 때문이다. GDP 대비하여, 한국이 일본의 3배 이상을 민간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자료는 2007년 것이지만 아래의 <표 3-6>에서 보면 학생 수가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예산으로 지출하는 교육비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현재에도 한국의 교육비 지출이 다른 나라의 교육비 지출보다 더 많을 것을 추정할 수 있게 한다.

한국 학부모가 지출하는 모든 민간교육비는 개인 차원에서는 ‘최적행위’로서 낭비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비용은 시스템 차원에서는 상당 부분이 낭비라고 할 수 있다. 공식 교육기관에 대한 극심한 규제가 혁파되고 공교육이 정상화되면 학부모가 지출하는 민간교육비는 미국 또는 일본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민간교육비가 시스템 차원에서 얼마나 낭비되고 있는가를 정확히 추정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볼 때 그것은 매우 큰 규모일 것이다. 여기에 교육이 아닌 다른 부문에서의 자원 낭비도 교육 부문의 최고가격이라는 규제의 폐해이다. 이 폐해의 크기는 더 측정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모든 최고가격이 자본소비를 초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최고가격이 자본소비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그 규모도 적지 않다. 최고가격이 자유시장가격보다 낮을수록, 최고가격제의 지속 기간이 길수록 특히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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