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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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하이에크와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의 실패 - '제한된 정부'와 '최소국가'라는 환상

해외 칼럼
자유주의
작성자
작성일
2020-02-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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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6

Hans-Hermann Hoppe

주제 : #자유주의전략

원문 : The Property And Freedom Society — Reflections After Five Years
번역 : 김경훈 연구원

[2편] 정부와 야합하는 '어용 자유주의'
[3편] 자유주의 전략은 반국가주의에 있다
[4편] 보수주의는 경제학이 없다
[5편] 보수주의는 일관성이 없다
[6편/完] 자유주의 전략에 필요한 것


내가 2000년대 초반에 '재산과 자유 협회(The Property and Freedom Society)'의 설립을 모호하게나마 처음 구상했을 당시, 나는 두 개의 리버테리언 협회로부터 직접적인 교훈을 얻은 바 있다.

첫번째 교훈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1947년에 설립한 '몽펠르랭 소사이어티(Mont Pelerin Society)'에 관한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1990년대에, 나는 프랑스 칸,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그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총회에 세 차례 연사로서 초청받았다. 그때 마다, 나는 민주주의와 평등주의를 공격하고, 민주주의가 군주제보다도 열등함을 논증하고, 고전적 자유주의의 '최소국가(minimal state)' 개념이 자기모순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가가 없는 아나키스트 자연적 질서를 전파하였다. 나의 이러한 모습은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사람들에게 다소 가증스럽고, 불경하고, 지나치게 대립적이고, 선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의 기능이 무엇이든지 간에, 아마 제2차 세계대전의 즉각적인 여파에 의해 설립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몽펠르랭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그들이 특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총명하고 흥미로운 많은 사람을 거기서 만났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총회는 '자유시장'과 '제한된 정부'를 믿는 싱크탱크 및 재단, 그들이 후원하는 수 많은 학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부자 및 후원가를 위한 호화로운 유람 여행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미국인이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워싱턴 D.C. 와 강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특징해보자면, 레이건, 아버지 부시, 그리고 아들 부시에 이르기 까지 모든 공화당 행정부의 '복지-전쟁 국가 정치학(the welfare-warfare state politics)'의 주요 정책 입안자 겸 브레인이었던, '해리티지 재단(the Heritage Foundation)'의 오랜 대표 에드 퓰너(Ed Feulner)가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의 회장직과 회계 책임자를 역임했다. (후자가 더 중요한 역할이었다.)

몽펠르랭 소사이어티는 처음부터 회의적인 시각과 마주했다. 하이에크의 스승이자 친구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하이에크가 초대한 사람들의 면목을 보고 몽펠르랭 계획에 심각한 의구심을 표명했다. 도대체 어떻게, '국가주의자-간섭주의자로 확증된 사람들(certified state-interventionists)'과 함께 자유롭고 번영하는 사회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미제스는 초기에 가졌던 의심에도 불구하고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다행스럽게도,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의 첫 총회에서, 미제스는 연사와 패널들을 '사회주의자 무리(a bunch of socialists)'라고 비난한 후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본질적으로, 미제스의 경험은 내가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에서 받은 첫 인상과 같다. 이 인상은 추후에 옳았음이 확인되었다. 모든 우파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몽펠르렝에서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 사실, 가끔 이상한 사람들이 [역주: 우파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 진정한 리버테리언들.] 초청받아 연설을 하기도 하지만, 총회의 지배적이고 허용가능한 담론의 범위는 공인된 국가주의자-간섭주의자 수준, 즉 정부가 후원하는, 혹은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재단과 싱크탱크의 대표, 중앙은행의 위조지폐범, 종이화폐 애호가, 그리고 정부 안팎의 다양한 '교육관료(educrats)' 및 '연구관료(researchocrats)' 등에 국한된다. 예컨대, 미국의 제국주의나 부시의 전쟁범죄 따위는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의 성스러운 홀에서 논의된 적 없고, 중앙은행이 저지른 금융범죄나 민감한 인종적 문제에 대한 논의 역시 전무하다.

물론 이 모든 책임을 하이에크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는 1992년에 사망하기 훨씬 전 부터 이미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에 대한 통제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몽펠르랭 소사이어티가 이 모양이 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미제스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1960년대에 하이에크가 '자유헌정론(the Constitution of Liberty)'을 출판하며 마침내 명백해진 사실이지만, 하이에크 자신부터가 간섭주의자로 증명된 사람이다. 이 책의 유명한 3부에서, 하이에크는 스칸디나비아와 독일 유형의 중도적 사회민주주의자라면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간섭주의로 가득찬 '자유 사회'를 위한 계획을 제시하였다. 1979년, 하이에크가 80세 생일을 맞이했을 때, 당시 서독 총리였던 사회민주당 소속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는 하이에크에게 "우리는 이제 모두 하이에크주의자다(we are all Hayekians now)" 라고 선언하는 축전을 보낸 바 있다. 이는 빈 말이 아니었고, 사실이었다. 슈미트는 정말로 진심이었다.

이런 점에서 내가 깨달은 점은,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의 고전적 자유주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개탄스러운 발전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현 상황은, 사실 하이에크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미제스 역시 저지른 근본적인 이론적 결점, 즉 최소국가를 옹호하면서 발생하는 필연적 결과였다.

이 결함은 단지 몽펠르랭 소사이어티만 괴롭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최소국가'라는 개념은 1960년대 이후 미국이 지배하는 서구세계의 소산으로서 발생한 '제한된 정부' 싱크탱크 산업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몽펠르랭 소사이어티는 그러한 기관들의 '국제적' 관계를 주선하는 기능을 담당했을 뿐이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브리드먼, 제임스 뷰캐넌, 그리고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의 다른 고관들이 추진하고자 노력했던 '제한된 정부' 혹은 '헌법에 입각한 정부'라는 목표는, 오늘날 모든 '자유시장' 싱크탱크가 목표로 선언한 것이지만, 불가능한 목표이다. 제한된 정부의 실현은 기하학에서 '원적문제(Squaring the circle)' 만큼이나 불가능한 목표이다. 특정 영토에 대한 법과 질서의 독점권을 확립하고 나서, 이 독점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입법이라는 이 놀라운 특권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화폐 생산에 대한 영토적 독점을 확립한 독점자가, 더 많은 화폐를 인쇄하는 힘을 사용하지 않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애당초 우리는 그런 독점자를 설립해서도 안된다.

일단 입법에 대한 영토적 독점권을 국가에 부여한 상황에서, 국가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은 자기모순적 목표이며 불가능하다. 경쟁 (즉, 어떤 종류의 독점적 특권도 우선적으로 허용하지 않음) 의 대상이 되지 않는 정부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정부 수립의 결과로 인간의 본성이 변한다고 가정하는 처사이다. (이러한 가정은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의 시작과 함께 일어난다고 믿는 인간의 기적적인 변화와 매우 흡사하다.)

총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제한된 정부는 환상의 목표이며, 그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은 기적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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