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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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하이에크와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의 실패 - 보수주의는 일관성이 없다

해외 칼럼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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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2-1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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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Hermann Hoppe

주제 : #자유주의전략

원문 : The Property And Freedom Society — Reflections After Five Years
번역 : 김경훈 연구원

[1편] '제한된 정부'와 '최소국가'라는 환상
[2편] 정부와 야합하는 '어용 자유주의'
[3편] 자유주의 전략은 반국가주의에 있다
[4편] 보수주의는 경제학이 없다
[6편/完] 자유주의 전략에 필요한 것


물론 상술한 판단과 그에 따른 교훈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당시에 있었던 상황을 알고 있는 경우에만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존 랜돌프 클럽에는 한 유명인이 있었다. TV 출연자, 시사평론가, 칼럼니스트, 베스트셀러 작가, 수정주의 역사학자인 팻 뷰캐넌(Patrick Buchanan)이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재치라는 개인적 매력을 보유한 동시에, 닉슨 대통령의 연설문 작가로 시작하여 로널드 레이건의 소통 담당자에 이르기 까지, 공화당 정치에 매우 깊고 지속적으로 관여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팻 뷰캐넌이 존 랜돌프 클럽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 협회의 여러 주요 회원과 개인적인 유대관계를 가졌으며, 외부에서 볼 때 협회의 양대 날개 중 하나인 보수주의 그룹이 이끄는 반문화운동의 두드러진 일부로 여겨졌다. 1992년, 뷰캐넌은 공화당의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현역 대통령인 조지 부시에게 도전했다. (1996년에 그는 다시 밥 돌 상원의원에 맞서 공화당 대선에 참가했으며, 2000년에는 '개혁당(the Reform Party)'의 대선후보로 출마했다.) 뷰캐넌의 도전은 초기에 매우 인상적이었다.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부시에게 거의 이길 뻔 했으며, 이는 존 랜돌프 클럽에서 상당히 열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뷰캐넌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존 랜돌프 클럽의 두 날개, 즉 리버테리언과 보수주의자들은 과연 무엇이 '올바른' 전략인지에 대해 논하며 공개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뷰캐넌은 표퓰리즘적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캠페인을 추구했다. 그는 양당의 정치 엘리트들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졌다고 느끼는 이른바 '보통의 미국인(Middle Americans)'에게 호소하고자 했다. 공산주의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 이후, 뷰캐넌은 모든 해외 주둔 미군을 본국으로 귀환시키고, NATO를 해산하고, UN을 탈퇴하는 (이 점에 대해 그의 네오콘 적들은 뷰캐넌을 '고립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비간섭주의 외교정책을 추구했다. 특히 그는 경제적 유대관계를 제외하곤 이스라엘과의 모든 관계의 중단을 원했으며, 유대계 미국인들의 조직적인 로비가 미치는 '비-미국적(un-American)' 영향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는데, 이는 현대 미국에서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뷰캐넌은 미국에서의 삶의 모든 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 차별금지법, 쿼터제를 없애고 싶었다. 그 법들은 본질적으로 백인에게 적대적이며, 특히 백인 남성에게 적대적이다. 더욱이 그는 제3세계 하층민의 대량 이민을 허용하여 강제통합을 초래한 비차별 이민정책, 완곡어법으로 표현하자면 '다문화주의'의 종결을 약속했다. 또한, 그는 교육부를 비롯한 미국 연방정부의 여러 기관을 폐쇄함으로써 워싱턴 D.C.가 야기하는 '문화적 부패'를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선거운동 과정에서, 뷰캐넌은 널리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이러한 '우파적' 문화 위기를 강조하는 대신에, 점점 경제적 문제와 위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경제학 지식은 경제를 논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경제학 지식의 결핍은 뷰캐넌의 가장 나쁜 면모였으나, 그는 그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뷰캐넌은 경제적 민족주의, 그리고 사회적 민족주의의 일환인 '좌파적' 경제계획을 주창하였다. 그는 '필수적인'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불공정한' 해외 경쟁으로부터 미국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관세의 필요를 주장했으며, 최저임금, 실업보험, 사회복지, 의료보험 등 미국에 이미 존재하는 여러 복지 계획을 보호하고 확대함으로써 보통의 미국인들을 보살피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내가 예전에 존 랜돌프 클럽의 연설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문화적 우파와 경제적 좌파를 혼합하려는 뷰캐넌의 계획에는 이론적 일관성이 없으며, 그러한 전략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목표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복지국가의 제도를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의 문화적 정신을 복권시킬 수 없으며, 가족과 공동체를 강화할 수도 없다. 국가 제도가 문화적 부패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보호주의 관세는 미국인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더 가난하게만 만들 뿐이다. 경제적 민족주의 계획은 (우리와 우리의 목적에 있어) 쓸모없는 프롤레타리아를 끌어들이면서, 지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필수적인 계층인 부르주아를 소외시킨다. 그러나 보수주의 그룹은 그들의 영웅인 뷰캐넌에 대한 이 비판에 맞서 그를 방어하려고만 했다.

뷰캐넌에 대한 나의 개인적 우정과 충성심이라는 감정에도 불구하고,그의 전략이 투표에서 수적으로 실패했음이 명확해지자, 나는 이성적 판단이 더 널리 퍼지길 기대했다. 선거에서의 패배 이후. 존 랜돌프 클럽의 보수주의자들이 나의 비판이 '본질적인' 비평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즉, 내가 보수주의 반문화 혁명이라는 존 랜돌프 클럽과 뷰캐넌의 목표를 비난하거나 그것과 거리를 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경제학적인 근본요소에 기초하여 그것을 더 공고히하려 했음을 그들이 알아주길 바랬다. 나는 단지 뷰캐넌이 선택한 전략이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부적절하며 비효율적임을 말하고 싶었을 뿐 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시도도 없었고, 뷰캐넌과 그의 계획 사이의 지적인 거리가 있음을 인정하려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




태그 :#자유주의일반 #아나코캐피탈리즘 #호페 썸네일 출처 : https://news.joins.com/article/3233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