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칼럼 및 번역자료 투고 요령 안내

[3편/完] 머레이 라스바드의 자유의 철학 - 자유주의 윤리가 필요한 이유

해외 칼럼
철학
작성자
작성일
2020-02-26 13:31
조회
809

David Gordon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주제 : #정치철학과_윤리학

원문 : Murray Rothbard's Philosophy of Freedom
번역 : 김경훈 연구원


[1편] 자기소유권과 노예주인으로서의 국가
[2편] 사유재산의 정당성

정치철학 대 윤리학

라스바드의 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잘못 명명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라스바드는 정치철학과 윤리학을 뚜렷이 구분하며, 그의 저서는 정치철학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 예컨대, 라스바드가 '비침해성의 공리(non-aggresstion axiom)', 즉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자발적인 교류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원칙으로부터 추론할 때, 그의 결론은 그 전제와 마찬가지로 정치철학의 일부분이다. 라스바드는 모든 자발적인 교류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윤리적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정치적 도덕성에 대한 라스바드의 견해가 옳다면, [역주: 국가의 힘을 빌려] 부도덕한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곧 부도덕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역설은 도덕을 훼손하지 않으며, 오히려, 도덕의 방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역사의 어느 시점을 흘깃 보기만 해도, 도덕을 가장 심하게 어기는 주체가, 바로 니체가 말하듯 국가라는 점(that coldest of all cold monsters, the State.)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라스바드는 도덕의 집행에 있어 정치의 역할을 엄격하게 배제하는데, 이런 입장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매우 환영받을 만 하다. [역주: 즉 국가 자체가 부도덕하기 때문에 도덕을 수호할 수 없다.]

윤리는 필수적인가?

'자유의 윤리'의 상당 부분은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A. Hayek),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등 다른 고전적 자유주의자에 대한 비판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에 관련된 논의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상술한 바와 같이, 라스바드는 자유와 사유재산에 근거한 자유사회를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런 치밀한 노력이 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수적인가? 라스바드의 위대한 스승인 미제스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미제스가 말하길, 우리는 윤리의 본질에 대해 어떤 논쟁적인 가정에도 의지하지 않고 자유시장을 옹호할 수 있다. 최저임금법과 같은 간섭주의 조치가 그것의 지지자들이 추구하는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어떤 가치 판단과 상관없이 증명가능한 사안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조치에 반대하는 가치중립적 방어책을 보유한 것이며, 자유시장의 정당성이 입증된다. 이것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 있는가?

라스바드의 생각은 미제스와 달랐다. 라스바드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간섭주의 조치는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긴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예컨대,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임금을 올리지만, 노조 밖의 다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희생시킬 수 있다. 왜 이런 결과를 노조원들의 입장에서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미제스의 주장과 반대로, 간섭주의 조치들이 항상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 대한 가치중립적 방어는 그 자체로 세워질 수 없다.

미제스의 논문 '인간행동의 과학에서 인식론적 상대주의(Epistemological Relativism in the Sciences of Human Action)' 에 대한 출판되지 않은 1960년대 논평에서, 라스바드는 미제스와 자신의 차이점을 처음으로 밝혔다. 라스바드는 미제스의 대한 그의 본질적인 비판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하지만 미제스는 무엇이 국가주의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컨대, 가격을 통제하는 사람은 그저 권력을 원하며, 가격통제가 물자의 부족을 야기하는 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 혹은 어떤 허무주의자가 모든 사람을 혐오하며, 가격통제를 통해 물자를 부족하게 만들고 싶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하려는 사람이 엄청나게 높은 시간선호를 가지고 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그런 경우 20년 안에 경제가 파탄이 날지 안날지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러면 미제스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러나 라스바드가 미제스의 견해, 즉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윤리적 가정에 의존하지 않고 자유시장을 옹호하려는 입장과 완전히 거리를 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라스바드는 그것을 확장했다. '권력과 시장'에서, 라스바드는 시장에 대한 어떤 종류의 간섭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를 상정하기 때문에 거부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안된 윤리적 이상을 실현할 수 없는 주장은 합리적으로 거부될 수 있다. 이 점을 받아들이는 것에 특정한 윤리적 관점을 고수할 필요가 없으며, 단지 이성적 요구일 뿐이다. 그리고 라스바드가 '인간, 경제, 국가'에서 썼듯이, "만약 윤리적 목표가 자기모순적이며, 개념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면, 그 목표는 분명 불합리적인 것이며 모두에게서 버림받아야 한다."

불가능한 목표 중 하나는 소득의 평등이다. '권력과 시장'에서 말하듯, "소득은 결코 평등할 수 없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소득이란 실질적인 것이지, 화폐적 맥락에서 고려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소득에 있어 진정한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 ... 모든 개인이 반드시 다른 공간에 위치해 있다는 점 때문에, 모든 개인의 실질적 소득은 재화마다 다를 것이고 또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서로 다른 유형의 재화를 결부지어 비교할 방법은 없으며, 어느 정도의 소득을 '소득 수준'으로 측정할 방법도 없기 때문에, 소위 '균등한' 소득 수준에 도달하려는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다."

평등한 기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이전의 개념처럼 무의미하다. 어떻게 맨해튼을 거니거나 갠지스강을 헤엄치는 데 있어 뉴요커의 기회와 인도인의 기회가 '평등화'될 수 있을까? 결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위치적 다양성이, 기회를 평등화할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한다."

라스바드의 윤리체계는, 내가 이 글에서 간단히 언급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다. 그것은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에 관심있는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받을 만 하다.




태그 : #자유주의일반 #철학과_방법론 #라스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