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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하기 위한 대통령의 거짓말

해외 칼럼
역사
작성자
작성일
2020-03-25 16:19
조회
846

Robert Higgs
*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 경제사학자

주제 : #미국사

원문 : To Make War, Presidents Lie (게재일: 2002년 10월 1일)
번역 및 편집 : 전계운 대표



미국 대통령들은 해외 참전 명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명확한 패턴을 볼 수 있는데 19세기 말 이래로, 시기상으로 그보다 일찍이 아닐지라도, 대통령들은 전쟁을 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동기와 의도를 오도해왔다. 전쟁에서 미국인들의 지속적인 생명, 재산, 자유의 엄청난 손실의 대부분은 대통령들이 전쟁으로 이끌기 전에 한 거짓말을 대중들이 믿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윌리엄 매킨리(1843년 1월 29일 ~ 1901년 9월 14일)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도록 강경파 정치 고문들과 주전론 성향의 저널리스트들로부터 자극받아오던 윌리엄 맥킨리 대통령은 런던 주재 미국 존 헤이 대사가 미국의 강탈을 “빛나는 작은 전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던 스페인의 식민지 필리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신에게 조언을 구했다. 명백히 맥킨리의 기도는 응답받았다고 하는데 맥킨리가 후에 “신의 목소리를” 들었고 “스페인인들이 필리핀 사람들을 기독교화하고, 교육하고, 계몽시켰기 때문에 우리의 할 일은 남아 있지 않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왼쪽 방향부터 앨프리드 T. 마한(Alfred T. Mahan),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헨리 캐봇 로지(Henry Cabot Lodge) 이들 모두 제국주의자들이다.

사실, 맥킨리의 목적은 필리핀의 초대 총독 윌리엄 H. 태프트가 ‘우리의 작은 갈색 형제들’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을 계몽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앨프리드 T. 마한(Alfred T. Mahan),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헨리 캐봇 로지(Henry Cabot Lodge)와 같은 영향력 있는 팽창주의자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과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한마디로 미국의 잔혹하고 불필요로 했던 필리핀-미국 전쟁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는 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카톨릭 필리피노들은 미국식으로 ‘기독교화’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스페인 제국주의자들에게 저항을 했던 것처럼 미국 제국주의자들에게도 저항을 했다. 1902년 7월 4일 필리핀-미국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전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일부 섬에서 전쟁은 지속 되었고 그 결과 4000명 이상의 미군이 사망하고 20000명 이상의 필리핀군과 22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약 60년 후에 미군이 베트남 농민들을 이주 수용소에 격리했던 것처럼 무시무시한 강제 수용소에서 죽었다.

▲우드로 윌슨(1856년 12월 28일 ~ 1924년 2월 3일)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분명히 영국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빨리 미국의 중립을 선언했고 미국인들에게 행동과 생각 모두 중립을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전쟁이 지속 되면서 윌슨은 점점 연합군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그러나 윌슨은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유럽에서의 전쟁에 관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1916년에 그는 “윌슨이 우리를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줬다”는 슬로건으로 재선에 도전했다.

재선 성공 직후 윌슨은 의회에 전쟁 선포를 요청했는데, 6명의 상원의원과 50명의 하원의원이 전쟁 선포에 반대하는 투표를 부칠 충분한 분별력과 지혜가 있었지만 결국 전쟁선포는 승인 되었다. 윌슨은 이 전쟁이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전쟁”이라고 약속을 했지만, 1918년 종전 이후에도 전례에 없는 대량학살이 일어나—900만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20만명이 넘는 부상자가 생겼고 많은 이들이 전쟁으로 인해 흉측스러운 몰골을 갖거나 평생 불구가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자원 파괴와 교역의 중단으로 인해 천만 명의 민간인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었을 것이다. 미국과 세계는 무엇을 얻었을까? 전쟁으로 다시 화염에 휩싸이기 전 겨우 20년 간의 유예기간만 얻었을 뿐이다.[역주: 제2차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불완전한 평화만을 얻었다는 의미]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인들은 배신감을 느꼈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만들어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불과 20년 후,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시 한번 미국을 유럽의 화약고에 빠트리려는 교묘한 술책을 시작했다. 대서양에서 독일군의 해군 도발에 실패한[역주: 미국 정부는 민간 상선으로 위장시킨 정부의 전략 물자 상선을 노골적으로 연합군측에 보냈고, 이를 안 독일군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맞대응했다.] 루스벨트는 결국 적대적인 경제정책들로 일본인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조치를 취했고 명백히 받아들일 수 없는 최후통첩을 발표했으며[역주: 1941년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진주만에 주둔하고 있었던 미군에게 가장 치명적이고 절박한 군사 공격을 하도록 유도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1882년 1월 30일 ~ 1945년 4월 12일)

루스벨트는 1940년 10월 30일 보스턴에서 재선 운동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맹세를 했다. “나는 전에도 언급 한바가 있으며 계속해서 이야기할 겁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결코 그 어떠한 해외 전쟁에도 보내지 않겠습니다.” 루스벨트는 그가 선언을 하고 있을 때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가 전에도 밥 먹듯이 거짓말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그의 남은 생 동안에도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스탠포드 역사학자 데이비드 M. 케네디는 어조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프랭클린의 “미국 대중들에게 한 고의적인 비밀스러운 거짓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하지만 슬프게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를 믿었고 4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그에 대한 최악의 대가를 치루었다.

프랭클린의 수많은 정치적 추종자들 중에서 린든 B. 존슨이라는 젊은 하원의원이 있었는데 불행히도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최고 결정자로서 전쟁과 평화에 관한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어야만 했는데 LBJ는 그가 존경하는 루스벨트처럼 대중들에게 거짓말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1964년 10월 린든 B. 존슨은 애크론 대학의 군중들에게 “우리는 아시아 친구들이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일에 간섭하기 위해 우리의 청년들을 9천 혹 1만 마일 떨어진 곳에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역주: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국의 공산화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린든 B. 존슨(1908년 8월 27일 ~ 1973년 1월 22일)

그러나 1965년, 취임 이듬해에 존슨은 베트남 앞바다에서 미 해군 공격에 대한 허위적인 보고를 근거로 한 통킹만 결의안을 악용했고, 결국 “아시아 친구”과 싸우기 위해 동남아시아에 50만명 이상의 미국 청년들을 보내는 대규모 미군 증강을 시작했다. 약 5만 8천명의 미군이 LBJ의 허영과 정치적 야망 때문에 목숨을 잃었고, 이 혼전에서 수백만명의 베트남인, 캄보다인, 그리고 라오스인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의 거짓말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온다.

▲조지W.부시( 1946년 7월 6일 ~)

현재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우리가 이라크인이나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한 자들로부터 임박한 공격의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되어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시는 자신이 주장한 위협의 유형에 대해 믿을 만한 증거나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제시하지 않은 채 우리가 그를 믿도록 요구하고 적나라한 침략이라고 불릴지도 모를 것을 지지하도록 한다. 데이비드 흄은 우리가 본 모든 백조가 백조였다고 해서 흑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지적했던 것처럼 부시 역시도 진실을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를 비추어보았을 때 우리는 그를 믿기 위해 전혀 가능성이 없는 도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주: 부시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 이라크 전쟁으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부시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으며 로버트 힉스의 통찰력이 들어 맞았다.]




태그 : #범죄 #전쟁과_외교정책 

썸네일 출처 : https://www.independent.org/news/article.asp?id=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