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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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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해결해야 할 '외부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외 칼럼
경제학
작성일
2020-04-28 17:25
조회
1548

Stephen P. Halbrook
* 인디펜던트 인스티튜트(Independent Institute) 선임연구원
* 전미 총기 협회(NRA) 변호사

주제 : #주류경제학비판

원문 : The "Externalities" Argument (게재일 : 2003년 10월 27일)
번역 : 한창헌 (SFL Korea 회원)

'외부성(externalities)'이란 아이디어는 매우 직관적이다.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긍정적인 외부성은 한 사람의 행동이 교환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때 발생한다.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의 옆을 지나칠 때 얻는 혜택을 생각해 보자.

반면에 부정적인 외부성은 제3자에게 비용을 부과한다. 당신이 사용하는 공기나 물을 오염시키는 공장이 대표적인 예다. 많은 경제학자는 외부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부정적으로 보이는 듯한" 문제를 해결할 세금 혹은 보조금 등의 공공정책을 권고한다.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정부 기능은 외부성에 근거하여 정당화되어왔다. 하지만 외부성이 정말로 경제학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

외부성에 대한 오스트리아학파의 전통적인 견해 중 하나는 재산권의 집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재산권 해결책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재산에 가한 물리적 손해에 대해서 배상하도록 촉구한다. 물론, 개인의 재산권이 외부성에 의해 침해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미제스는 사유재산제도가 어떻게 시민사회에서 외부성을 해결했는지 설명한다. 그는 또한 "침해가 발생시킨 손해의 책임에 관한 법률의 개혁과 완전한 개인의 소유를 방해하는 제도적 장벽을 폐지함으로써" 잠재적인 외부성이 제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책임 소송을 통해 외부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판결된 보상 금액이 외부성에 의한 피해 금액과 동일하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하지만, 피해입은 재산에 대해 지불할 정확한 시장 가격을 알고 있다고 해도, 정신적 손해에 대한 가치는 어떻게 할까? 안타깝게도 여기서 미제스는 약간의 오류를 범했는데, 미제스의 오류는 코스(Ronald Coase)의 주장과 유사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코스는 책임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자원배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즉, 거래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예컨대,  감상적인 가치는 높지만 시장가치는 낮은 자연물이 공해로 오염된 경우, 재산 소유자는 공장주에게 공해를 중단하도록 협상할 수단이 없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코스의 정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책임 결정이 파괴된 재산의 시장가치만을 책정한다면, 감상적인 가치가 있는 사물에 대해서는 외부성이 "해결"됐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보다 현대적인 오스트리아학파의 접근법은 외부성을 의미있는 척도로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스바드는 효용에 대한 개별적인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후생경제학에 결함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행복은 전압과 같은 양적 척도로 측정할 수 없다. 얻거나 잃은 효용을 정부의 간섭을 통해 합리적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외부성을 바로잡기 위해 제안된 세금이나 보조금 또한 일종의 정부 강압에 의해 달성되어야 하는 이상, 모든 사람이 그 정책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정책의 결과가 사회적 효용에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론상으로조차, 간섭에 의해 순이익을 제공되는지, 그 순이익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결코 계산할 수 없다. 사람은 오직 자발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순이익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행동은 이용 가능한 모든 옵션 중에서 자신이 선택한 행동을 가장 선호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 결과는 외부성에 대한 선언이 순전히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효용에 대한 상기한 분석은 외부성을 정부정책 결정의 합리적인 근거로 삼으려는 생각이 터무니 없음을 보여주는데 충분하다. 그러나 외부성개념은 순수하게 방법론적인 근거에서도 폐기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기본적으로 외부성은 비용이나 편익을 얻는 사람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정의된다. 재산상의 손해의 경우, 소유자의 자원은 동의 없이 사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외부성들은, 비용이 편익을 얻는 사람을 아무 상관없는 구경꾼이라고 가정한다. [역주 : 손익을 보는 개인들이 마치 남의 일인 것 마냥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경제학자들은 효용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한 별도의 범주를 만들었으며, 외부성 성황에서 개인이 행동하지 않는다고 설정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행동한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선호를 드러내며 한계 효용을 최대화시키는 것이다. 외부성은 다른 사람의 효용에 대한 행동의 영향을 의미한다. 외부성이 경제학 연구에서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행동을 통해 밝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외부성은 경제학에 대한 어떤 추가적인 지식도 낳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재산을 손상시키는 부정적인 외부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예시를 통해 이 주장을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산 소유자가 새로운 상태를 선호하며 또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 행동하지 않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효과는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만약 선택권이 주어졌을 경우, 자신의 재산을 다른 사람이 그렇게 사용하도록 승인했을 수도 있다. 자기집 유리창에 황금 덩어리를 던져대는 걸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럼에도, 코스가 말한 바 처럼 외부성은 매수와 흥정을 통해 행위자들이 자원을 배분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겠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경제학자 입장에서 이 문제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심리학의 관점에서라면 흥미로울 것이다.) 경제학은 '인간은 행동한다'라는 근본적인 공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이 다른 행동보다 특정한 행동을 선택하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어떤 행동 관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경제적 진리는 그것이 선호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선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편집자주: 코스의 정리는 경제학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경제학자는 선호의 이유를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행동이 외부성에 의해 발생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것에 의한 것인지는 경제학과 무관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만약 이웃집 마당의 장식을 사겠다고 제안하는 사람을 관찰한다면, 경제학은 그가 대가로 제공할 돈보다 그 장식을 더 좋아한다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장식의 일부를 없애고 싶거나,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자기 집 마당에 갖다 놓고 싶어할 지도 모른다. 경제학자는 어떤 이유로 행동의 동기가 부여되었는지 판별할 수 없으므로, 두 가지 경우 모두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

외부성에 대한 또 다른 옹호논리는, 사유재산에 비해 공유재산이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편집자주: 그리하여 공유재산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해결해야 한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할 때, 사람들은 공유재를 통제할 수 있다면 가능한 많이 사용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외부성에 호소하지 않고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개인은 공유재를 사용함에 있어서 자본의 잠재적인 가치하락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자신의 사유재라면 그 비용을 부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경우 공유재를 사용하는 비용이 보다 낮기 때문에, 사유재에 비해 공유재를 더 많이 사용할 동기가 충분하다. 경제학자로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것뿐이다.

외부성 개념은 기껏해야 우주상에서 행성의 정렬이 사람들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만큼만 경제학에서 의미있을 뿐이다. 외부성과 행성의 정렬 모두 사람들이 특정한 행동을 선택하는 선호의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경제학자에겐 사람들이 치즈버거를 사는 이유가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인지, 배가 고파서인지, 노화를 방지하려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손에 든 99센트보다 치즈버거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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