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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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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수학적 변화를 왜 거부해야 하는가

해외 칼럼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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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6-15 19:09
조회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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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ay Engel
* 바스티온 매거진 (前 오스트로-리버테리언 매거진) 대표

주제 : #인간행동학

원문 : The Mathematization of Austrian Economics? (게재일 : 2019년 7월 10일)
번역 : 김경훈 연구원

최근에 나는 2015년 3월 14일에 출간된 조셉 살레르노(Joseph T. Salerno) 미제스 연구소 학술 부대표의 은퇴 기념 논문모음집 <The Next Generation of Austrian Economics: Essays in Honor of Joseph T. Salerno> 을 읽었는데, 그곳에는 정말 기괴한 논문이 하나 수록되어 있었다. 논문의 제목은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수학화: 수학적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향하여(Mises and Hayek Mathematized: Toward Mathematical Austrian Economics)" 였는데, 나는 그 제목을 보자마자 부정적인 인식을 받았다. 이 글에서 나는 완전히 개발된 반박 논리를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논문의 저자 마렉 후딕(Marek Hudik)의 진술과 주장에 대한 약간의 짧은 논평만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 논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이 보다 수학화된다면, […]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나머지 경제학 분파 사이의 의사소통 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주류와의 격차를 매우기 위하여 '미제스 이후(post-Misesian)'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핵심 방법론을 보류하자는 제안을 듣게 된다면, 과연 주류와 오스트리아학파 사이의 격차가 그렇게까지 줄어들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픔을 수 밖에 없다. 말하자면, 오스트리아학파의 핵심을 훼손할 만큼 주류와의 간극을 해소하는 것이 가치있는가?

도발적인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서술적 표현이 매우 애매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후딕은 오스트리아학파의 차별화되는 특징(가장 적절한 예시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인과적 실재주의(casual-realist)' 대 주류의 '평형 전통(equilibrium tradition)'에 관련된 사안일 것이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오스트리아학파에 친화적인 경제학자들의 목록을 나열하며 그들이 수학을 사용해 경제적 개념들을 제시해왔다는 점만을 밝힌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그는 (로버트 머피(Robert P. Murphy)를 제외하고는) 뵘바베르크(Bohm-Bawerk)-미제스(Mises)-라스바드(Rothbard)-살레르노(Salerno)가 보여준 (이들은 방법론적으로 경제과학에서 수학의 사용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인과적 실재주의 전통의 일원으로 간주될 만한 어떤 학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에 '발라주의(Walrasian)' 평형 전통에 보다 잘 부합하는 사람들만 언급하였다.

그는 수학이 오스트리아학파에서 제시될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이나 문맥상의 목적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실제로 어떤 예시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사실, 조셉 살레르노는 라스바드의 <인간, 경제, 국가(Man, Economy, and State)>의 서문을 쓰면서, 수학적인 발라주의 접근법이 멩거 고유의 인과적 실재주의 전통을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명확하게 지적했다:

경제학 이론화에 대한 멩거의 인과적 실재주의 접근법은 오스트리아에서, 보다 이후에는 유럽 대륙 및 영미권 국가 모두에서 두드러진 추종자들을 빠르게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학파(Austrian School)'라고 불리게 된 것의 위신과 지지자 수는 급성장했고, 인과적 실재주의 접근법에 기초한 연구는 제1차 세계대전 까지만 해도 경제과학의 최첨단으로 여겨졌다. 여러가지 이유로 이 학파는 놀라울 정도로 급속한 쇠퇴를 겪었는데,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는 물론, 전후 오스트리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20년대까지 인과적 실재주의 접근법은 영국, 미국, 심지어 유럽 대륙의 일부 지역에서도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의 '부분 평형(partial equilibrium)' 접근법에 가려지게 되었다. 이후 1930년대 초 레옹 발라(Léon Walras)의 '수학적 일반 평형(mathematical general equilibrium)' 접근법이 영어권 세계로 수입되면서 오스트리아학파의 위상은 더 추락했다.

이제 후딕의 논문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논의 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몇 개의 절을 쓰고나서야, 후딕은 (정확하게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논문은 오스트리아학파의 수학화에 비용과 편익이 모두 있음을 인정한다. 동시에, 어느정도의 수학화 수준과 범위가 비용보다 편익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함을 인정한다.

만약 수학적 결합의 이점이 비용보다 어떻게 더 커질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더 많은 수학이 그가 두려워하는 주류와 오스트리아학파 사이의 '격차'를 좁힐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후딕은 오스트리아학파의 수학화가 가지는 세 가지 이점을 제시한다. 나는 그들 각각을 논평하고자 한다.

1. 수학은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자와 다른 연구자들이 학문 전반에 걸쳐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이다. 따라서 생각을 전달하는데 정말 필요하다.

이 명제의 결론은 사실 잘못 추론된 것이다. 만약 미제스와 라스바드가 옳다면, 그래서 그들이 경제학의 수학화가 학문적 퇴보라고 말한 것이 맞다면, 수학은 '생각을 전달하는데 정말 필요한 것'이 전혀 아니다. 이 주장은 다른 모든 사람이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오류이다. 이러한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는 것이며, 제시될 수 있는 대안, 즉 "수학이 학문적으로 사용되는 공용어라 할지라도, 수학적 경제학자들은 그들의 생각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오히려 기존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대안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 첫째 이점을 추론하기 위해, 후딕은 다음과 같이 쓴다:

'구두적 언어(verbal language)'의 사용은 다른 경제학자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오스트리아학파 학자와 다른 경제학자가 '한계효용(marginal utility)'이나 '시간선호(time preference)'에 대하여 논하는 경우, 그들은 실제로 같은 것을 의미하며 대화할 수 있는가?

수학만 가지고 이 문제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의미/정의(meaning/definition)'를 생각함에 있어, 우리는 잠재적인 의사소통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구두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가? 수학적 공식화는 '자명한 정의(self-obvious definitions)'를 포함하지 않는다. "인간행동학: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방법론(Praxeology: The Methodology of Austrian Economics)"에서 라스바드가 말하길:

각각의 '언어논리에 입각한 단계적 연역(verbal step-by-step deduction)'은 진실되고 의미있다. '언어적 명제(verbal propositions)'의 휼륭한 특성은 각각이 의미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수학적 상징들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후딕은 역사적인 예시를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1937년 논문 "케인스 경과 "고전파"(Mr. Keynes and the "Classics")"을 비롯한 힉스(John Hicks)의 몇 가지 저작은 수학을 사용하여 거시경제학 문제에 대한 케인스와 고전파의 견해 차이를 식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윌리엄 허트(W.H. Hutt), 헨리 해즐릿(Henry Hazlitt), 그리고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수학에 의존하지 않고도 케인스와 고전파 사이의 차이점을 인지할 수 있었다.

2. 수학은 개념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에서 구두적 언어보다 덜 모호하다.

왜 수학이 우리에게 명확한 정의를 강요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최소한 왜 수학이 명확한 정의를 강요하는 점에서 특별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미제스와 라스바드는 사물을 매우 정확하게 정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컨대, 미제스의 <화폐와 신용의 이론(The Theory of Money and Credit)>은 '통화적 수단(monetary instruments)'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정의에 크게 의존하는 노력과 함께 논의를 전개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 후딕의 진술에 대한 반대가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수학은 애매모호한 경향이 있다. 독립적인 수학적 공식에는 의미가 없고, 그것을 해석하고 번역하기 위해서는 구두적 언어를 반드시 채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스바드는 이 점을 <인간, 경제, 국가>에서 지적한 바 있다:

믿는 바와는 반대로, 구두로 표현한 논리의 사용은 기호논리학보다 못하지 않다. 이에 반하여 기호논리학은 구두로 표현한 논리에 의존하는 단순한 보조적 수단이다. 왜냐하면 공식적 논리학은 사고의 필수적이고 기초적인 법칙들을 다루는데, 그 법칙들은 구두로 표현되어야만 하고, 기호논리학은 이러한 구두로 표현된 공식적 논리를 기초로 사용 하는 오직 상징적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행동학과 경제학은 구두로 표현한 논리―상징적 논리의 근본적 기초이고 사고과정의 각 단계에서 의미가 있는―의 사용을 조금이라도 변명할 필요가 없다. (한국어 번역본 구판, p. 114)

3. 경제사상의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수학은 구두적 언어보다 대체로 더 효율적이다.

이 점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후딕은 다음과 같이 관찰한다:

경제학자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수학적 정리들이 많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정리들이 새로운 맥락에서 발생할 때마다 재발견할 필요가 없다.

과거의 경제학 정리들을 가정하고 논의를 진행하는데 있어, 더 편리해지기 위하여 수학의 장점을 취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부실하다. 예컨대, 우리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Law of Marginal Utility)'과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의 '제휴의 법칙(Law of Association)'1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이 법칙들이 새로운 맥락에서 발생할 때마다 그것들을 매번 재발견할 필요 없이 설명 혹은 논쟁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두적 언어 또한 수학만큼이나 능률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의미가 없이는 효율성은 쓸모가 없다.2

이런 이유로, 나는 후딕이 제시한 상기한 요점들이 문제의 본질에 대한 집중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미제스주의-라스바드주의 전통(Misesian-Rothbardian tradition)'이 경제과학에서의 수학의 사용에 왜 비판적이었는지에 대하여 후딕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사상을 개발함에 있어 '구두적/문어적 개발(verbal/literary development)' 대신에 '수학적 상징주의(mathematical-symbolism)'를 채택하는 것의 중대한 문제중 하나는, 수학적 공식의 생성 과정에서 잘못된 단계를 밟는 경우 공식의 근본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오류를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만약 우리가 언제나 이전에 개발된 수학적 공식을 빌려서 채택할 뿐이라면, 그 공식 자체가 본질적으로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그 공식의 생성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떠한 실수도 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 문제점이 함축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A) 우리는 자신의 전제를 수학적 공식에서 빌려오는 사람들과 사실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B) 우리는 인과적 실재주의의 '최초의 원리들(first principles)'과 완전히 상충하는 경제학 이해에 의거한 수학적 공식을 채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후딕은 수학의 바로 이러한 문제적 개념을 그리워 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수학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점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구두적 논리가 수학적 논리의 근간이며, 수학적 논리는 '언어적 논리에 기초하는 보조장치(auxiliary device)'에 불과하다는 라스바드의 진술을 적절하게 수용하는데 실패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한 루트비히 폰 미제스 자신의 논평을 고려해야 한다. 후딕의 생각은 그가 바라는 세가지 요점을 위해 경제학적 표현에 유용한 도구로서 수학을 선호하려는 욕구이다. <인간행동(Human Action)>에서, 미제스는 경제학의 수학화에는 후딕이 바라는 단순한 이익보다 훨씬 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경고하였다:

논리경제학자들과 수리경제학자들 간의 이런 반복이 경제학 연구에 적용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무엇인가에 관한 단순한 불일치뿐이라고 한다면, 이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더 나은 방법이라면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그 탁월함을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다른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방법들이 필요할지도 모르며, 일부 문제를 다루는 데는 한 방법이 다른 방법보다 유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반목은 이처럼 문제를 다루는 설명 방법에 관한 논란이 아니라 경제학의 기초에 관한 논쟁이다. 수학적 방법이 거부되어야 하는 것은 내용이 없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수학적 방법은 그릇된 가정에서 출발해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지는 전적으로 잘못된 방법이기 때문이다. 수학적 방법의 삼단논법은 불모의 것일 뿐만 아니라, 현실 문제의 연구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떠나게 하고, 여러 현상들 사이의 관계를 왜곡하고 있다. [...]

방정식을 세우는 것으로 귀결되는 고찰들은 필연적으로 비수학적 성격의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처럼 방정식을 세울 수 있게 되면, 우리 지식은 완성 지점에 도달한다. 방정식 수립이 우리의 지식을 직접적으로 확장하는것은 아니지만, 역학에서 방정식은 매우 중요한 실질적 서비스를 줄 수 있다. 여러 역학적 요소간에 불변의 관계가 존재하며, 이런 관계가 실험에 의해 확증될 수 있게 됨에 따라, 일정한 과학기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정식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의 현대 산업 문명은 주로 물리학의 미분방정식을 활용한 성과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들 간에는 어떤 상수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리경제학에 의해 형성된 방정식은 쓸모없는 정신적 유희일 뿐이며, 심지어 그 방정식들이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표현할지라도 이 점은 불변할 것이다. [...]

[...] 수리경제학자는 시장과정의 해명에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한다. 그는 단지 논리경제학자가 제한을 둔 개념으로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임시변통인 가상모형-더 이상의 어떤 행동도 없으며 시장과정이 정지된 상황에 대한 정의-을 묘사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이 수리경제학자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 수리경제학자가 수학적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언아로 표현해야만 하는 하는 것이 대수 기호로 번역된다. 피상적 유추를 너무 길게 늘어놓은 것, 그것이 전부다. [...]

[...] 논리경제학은 근본적으로 과정과 변화의 이론이다. 그것은 단지 변화 현상의 규명을 위해 변화가 없는 가상 모형에 의존한다. 그러나 수리경제학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수리경제학의 공식과 방정식은 균형과 행동정지 상태를 묘사하는 데 국한된다. 수리경제학이 수학적 방법의 영역 속에 남아있는 한, 그런 균형과 행동정지 상태의 형성과 다른 상태로의 변화에 대해 아무것도 주장하지 못한다. [...] 유일하게 중요한 경제 문제들인 과정 분석의 문제들은, 어떤 수학적 접근도 거부한다. [...]

경제학은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의 행동에 관한 것이다. 경제학의 목표는 균형과 같은 가상 모형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다. 이 가상 모형들은 단지 추론의 도구일 뿐이다. 경제학의 유일한 과제는 인간행동의 분석이고, 과정들의 분석이다. (번역본 16장 5절 <논리교환학 대 수리교환학>)




태그 : #오스트리아학파개요 #다른경제학파 #주류경제학비판 #철학과_방법론 #인식론

  1. 역주: 리카도는 모든 점에서 더 효율적인 개인이나 단체가 모든 점에서 덜 효율적인 개인이나 단체와 협동하는 경우에도 분업의 결과에 따라 더 나은 결과를 산출한다고 바라보았다. 잘 알려지는 비교우위의 원리는 제휴의 법칙 중 하나이다.
  2. 수학적 공식과 기호는 그 자체로는 어떤 의미도 갖지 않으며 구두적 논리를 통해 해석되는 경우에만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수학적 공식과 기호를 사용하여 구두적 논리보다 효율적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수학적 언어가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되는 듯한 경우에도, 구두적 논리에 근거한 해석이 은밀하게 깔려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