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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착취이론에 대한 뵘-바베르크의 비판

해외 칼럼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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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7-0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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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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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P. Murphy
*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뉴욕대학교 경제학 박사)
* 前 텍사스 공대(Texas Tech) 자유시장 연구소 조교수

주제 : #마르크스주의비판

원문 : Böhm-Bawerk’s Critique of the Exploitation Theory of Interest (게재일 : 2004년 11월 26일)
번역 : 박종식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과정)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Eugen von Böhm-Bawerk)는 경제사상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어마어마한 명저 <이자 이론의 역사와 비판(History and Critique of Interest Theories, 1884)>으로 잘 알려져 있다. 5년 뒤에 출판된 제2판에서 뵘-바베르크는 이자 현상에 대한 자신의 설명을 본격적으로 제시했는데, 그에 앞서 초판에서는 우선 이자에 대한 이전의 모든 설명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논박하였다. [편집자주 : 1884년에 출판된 <이자 이론의 역사와 비판>은 독일어로 총 세권으로 쓰여진 <자본과 이자(Capital and Interest)>의 제1권이다. (영역본은 하나의 통합본으로 출판됨)]

경제사상사 수업을 진행할 때, 나는 학생들에게 뵘-바베르크를 읽을 것을 요구한다. 학생들 중에 누군가 뵘-바베르크가 비판한 잘못된 견해를 견지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뵘-바베르크의 논증이 엄청난 교육적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뵘-바베르크의 비판을 읽음으로써 많은 경제학적 지식을 배울 수 있다.

예전에 나는 "왜 자본가들이 이자수익을 얻는가?(Why Do Capitalists Earn Interest Income?)"라는 논설문에서 뵘-바베르크의 '소박한 생산성 이론(naïve productivity theory)'을 설명하였고, "이자의 금욕 이론(The Abstinence Theory of Interest)"이라는 논설문에서 뵘-바베르크의 이자 이론을 설명한 바 있다. 이번 글에서, 나는 '착취이론(exploitation theory)'에 대한 뵘-바베르크의 비판을 요약하여 다루고자 한다.

이자의 착취이론

착취이론은 '이자에 대한 사회주의 이론(the socialist theory of interest)'과 같은 것인데, 뵘-바베르크는 보다 정밀한 명명을 위해 후자가 아니라 전자를 선택하였다. 우선 그는 많은 선대 경제학자가 이자의 착취이론에 대한 여러 학설을 주창했음을 설명하는데, 그 후 노동가치설의 선구자인 사회주의 경제학자 요한 카를 로트베르투스(Johann Karl Rodbertus)의 구체적인 해설에 초점을 맞춘다. 로트베르투스의 학설이 가장 논리정연한 착취이론이었기 때문이다.

이자에 대한 로트베르투스의 설명 자체는 노동가치설에 기초한다. 노동가치설에 따르면, 상품의 가치는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총량 [편집자주: 노동의 시간] 에 의해 그 크기가 결정된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이 어떤 노동도 스스로 하지 않음에도 생산품들을 소비한다는 사실은, 총괄적으로 볼 때 노동자들이 지급받는 임금이 생산한 것보다 적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소득의 이전이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작동원리가 바로 사유재산권 제도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불공평한 임금에 복종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자본가를 따르지 않는다면 굶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트베르투스에 따르면:

소득이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면 어떤 소득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노동 비용을 웃도는 '이익(proceeds)'의 초과는 필수불가결한 두 전제조건들에 의존한다. 첫째, 잉여 이익이 있기 위해서는, 노동이 노동의 존속을 위해 요구되는 것보다 최소한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차익이 있을 수 없으며, 정기적인 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몸소 어떤 노동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차익을 노동자들에게서 통째로 혹은 어느 정도 박탈하고, 몸소 일하지 않는 다른 자들에게 그것을 빼돌리는 [제도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잉여 이익도 존재한다. 노동자들은, 사물의 본성상, 처음부터 자신들의 생산물에 대하여 소유 중이기 때문이다.… 이 차익이 통째로 혹은 어느 정도 노동자들로부터 쥐어짜지고 다른 이들에게로 빼돌려지는 것은, 법률적 요소들의 결과다. 꼭 법이 시작부터 권력과 연합 중에 있어왔듯이, 마찬가지로 이 '유용(diversion)'은 이런 사태 속에서 강제의 지속적인 실행에 의해서만 발생한다. (뵘-바베르크, p.252-53 에서 인용됨)

로트베르투스에 대한 뵘-바베르크의 비판

뵘-바베르크가 로트베르투스에 맞서 제기하는 첫째 반론은, 로트베르투스가 노동가치설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화의 가치가 생산에 사용된 노동의 총량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주장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뵘-바베르크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여러 논거를 내놓았는데, 이미 '노동(혹은 보다 일반적으로, 비용)가치설(the labor (or more generally, cost) theory of value)'에 대한 비판은 다른 논설문에서 설명된 바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이 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뵘-바베르크가 로트베르투스가 이자를 설명하기 위해 의존하는 노동가치설을 분쇄한 이후에 쓰길:

로트베르투스가 그의 첫째 오류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취할 수 없게 하기 위하여, 나는 이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 노동가치설이라는 오류로부터 기인한 모든 결과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식으로 나의 모든 가정의 틀을 잡을 것이다. 나는 모든 재화가 … 교환가치를 가지는 자연의 물질적 자원들의 개입없이, 노동력과 '무상의 자연력(free forces of nature)'의 협력에 의해서만 생산된다고 [가정] 할 것이다. (p. 263. 이탤릭체는 원문대로)

즉, 심지어 특정한 재화에 사용되는 유일한 희소자원으로서 노동만을 고려하는 경우에도, 착취이론은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점을 뵘-바베르크는 보여주고자 한다.

노동은 자신의 '온전한 가치'를 지급받는다

모순적이게도, 뵘-바베르크는 사회주의의 격언을 받아들이며 논증을 이어간다: 그 역시 노동자들이 자신이 생산한 노동생산물의 전체를 지급받아야 한다는 점에 찬성한다. 하지만, 착취이론가들이 이 원리를 적용함에 있어 중대한 오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가치 전체를 받아야 한다는 명제는 완전히 정당하며, 한편으로 이 명제는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물의 온전한 '현재(present)' 가치를 '지금(now)' 받는다는 것을, 혹은 '미래(future)' 가치 전체를 그가 미래에 얻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리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로트베르투스 및 사회주의자들은 이것이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미래가치 전체를 지금 받아야 한다고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p.263–64. 이탤릭체는 원문대로)

'현재재(presennt goods)'가 '미래재(future goods)'보다 더 가치있다는 것을—사람들은 오늘의 1,000 달러나 피자를 오십 년 후의 1,000 달러나 피자보다 선호할 것이라는 점을—우리가 깨닫자 마자, 이에 대한 착취교리의 애매함은 그것을 완전한 거짓으로 전락시킨다. '잉여 이익' 에 대한 로트베르투스의 설명, 즉 자본가는 생산품을 소비자들에게 팔아 그것을 실제로 생산한 노동자들에게 그가 지불하는 총 임금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는 사실은 착취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자들은 최종 생산품이 소비자들에게 팔리기 전에 임금을 지급받았다. 시간적 차이가 자본가들이 벌어들이는 이자 수익을 설명하는 것이다.

예시

언제나 그렇듯이, 뵘-바베르크는 자신의 주장에 불만족스러운 독자들을 납득시키기 위하여, 그의 일반적 논증을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생산하는데 5년의 노동이 필요하며, 5,500 달러의 최종가격을 가지는 한 증기기관을 상상해보자. 이것을 생산하는 노동자는 얼마의 임금을 받아야 하는가? 명백한 답은 자기 생산물의 온전한 가치, 즉 5,500 달러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이 '온전한' 액수를 받기 위해서 온전히 5년간 노동한 뒤에야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반대로, 보다 현실적인 상황, 즉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연간 할부금/연봉(yearly installments)'을 지급받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특히 노동자들이 [편집자주: 5년의 노동이 필요한데] 오직 1년만 노동했음에도 임금을 지급받기를 기대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는 얼마나 많이 받아야 하는가? 뵘-바베르크가 답하기를. "노동자는 정당한 임금을 받게될 것이다. 만약 그가 해당 시점까지 노동하여 생산했던 것을 전부 받는다면 말이다. 만약 … 그가 지금까지 미가공된 원석의 한 무더기를 생산했다면 … 이 원료의 한 무더기가 갖는, 당연히 지금 갖는 온전한 교환가치를 … 그가 지불받는다면, 그는 정당하게 대우받는 것이다." (p.264)

그러면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이 미가공된 원석의 정확한 화폐가치는 어떻게 측정되는가? 피상적으로 분석한다면, 증기기관의 1/5를 노동자들이 현 시점까지 노동을 투입하여 생산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노동자는 증기기관이 가지는 교환가치의 1/5, 즉 1,100 달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뵘-바베르크가 말하길:

이러한 분석은 틀렸다. 1,100 달러는, 완성된 증기기관 가격의 1/5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지금까지 생산한 것은 이미 완성된 기계의 1/5가 아니다. 앞으로의 4년이 소모되지 않는다면 완성되지 못할 기계의 1/5이다. 그리고 이 둘은 완전히 상이한 것이다. 언어적 궤변과 말장난때문에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사물 자체가 실제로 서로 상이하다. 전자의 1/5는 후자의 1/5와 상이한 가치를 가지며, 이는 완성된 기계와 앞으로의 4년동안 이용할 수 없는 기계가 현재가치의 측면에서 서로 상이할 수 밖에 없음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p.264-65)

현재재들은 미래재보다 더 가치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4년동안 조립되어야 하는 기계의 1/5는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기계의 1/5보다 덜 값어치 있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따라서, 만약 노동자가 증기기관이 완성되고 팔릴 때까지 기다려 임금을 지불받기 보다는 차라리 선불로 임금을 받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는 자신의 첫 1년동안 일한 대가로 1,100 달러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자율을 5%로 상정한다면, 노동자는 자신의 첫 해의 노동의 대가로 대략 1,000 달러를 받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항상 자신들의 임금을 이자로 빌려줄 수 있다

뵘-바베르크는 또 다른 논거 역시 제시하며 회의적인 사람들을 납득시키고자 한다. 상기한 예시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한계생산물(marginal product)'에 대하여 할인된 가치인 1,000 달러를 지급 받는 것은 공평한 대우가 아니라고 의심해볼 수 있다. 그러나, 뵘-바베르크는 노동자가 5%의 연간 이자율을 받고 자신의 임금을 자유롭게 대출해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4년 후에, (복리를 무시한다면) 노동자는 1,200 달러를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적인 조건이 노동자들이 자신의 기여분이 가지는 온전한 가치를 덜 받도록 강제한다는 주장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만약 노동자가 실제로 자신의 노동생산물이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 변화할 때 까지 자진해서 기다린다면, 그 시점에 그는 사회주의적 분석이 요구하는 "온전한 가치"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노동자들이 그렇게 기다리지 않고, (소비될 수 있는 재화를 지금 당장 생산할 수 없고 미래에 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노동의 대가를 현재재의 형태로 선불로 지급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현재재에 대한 시장의 '할증금(premium)'을 기꺼이 지불해야만 한다.

결론

착취이론에 대한 뵘-바베르크의 논박은, 단순히 잘못된 교리에 대한 비판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관주의 가치 이론에 대한 명쾌한 해설이기도 하다. 경제학을 새로 공부하는 학생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전문적인 경제학자도 아마 뵘-바베르크의 분석으로부터 이득을 취할 수 있는데, 내가 이 논설문에서 다루지 않은 여러 미묘한 논점들 역시 그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뵘-바베르크의 이자 이론에 대해 여러가지 견해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자 이론의 역사와 비판>을 읽는 것은 확실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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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게시글 : 로저 개리슨(Roger W. Garrison) - 오스트리아학파 자본론의 창시자: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 (Eugen von Böhm-Bawe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