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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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과 국내거래는 정확하게 같은 것이다

해외 칼럼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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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7-1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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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eusz Machaj

Mateusz Machaj
* 미국 미제스 연구소 연구원 (2005-2009, 경제학 박사)
* 폴란드 미제스 경제교육연구소 설립자

주제 : #국제경제

원문 : Is There a Distinct Theory of International Trade? (게재일 : 2004년 1월 19일)
번역 : 한창헌 (SFL Korea 회원)


경제학은 인간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평론하는 사회과학이다. 우리의 사회적 세계는 모두 인간행동의 결과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수단을 활용하여 주관적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개인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경제학을 '인간 행동의 일반이론(a general theory of human action)'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는 경제학이 인간행동에서 비롯되는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 차원의 모든 현상을 다루고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국제무역이론(International trade theory)'은 독립된 주제가 아니다. 이는 '일반거래이론(general trade theory)'1을 서로 다른 국가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거래에 구체적으로 응용한 것에 불과하다. '생산요소(factors of production, 자본재)'의 '이동성(mobility)'에는 국내와 외국에서 특별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경제학 법칙, 즉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요와 공급의 메커니즘은 부정될 수 없으며, 오렌지 시장, 사과 시장, 소비재 시장, 자본재 시장 등 경제현상의 모든 단계에서 언제나 동일하게 작동한다.

오렌지 시장과 사과 시장에 서로 다른 수요와 공급 이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심각한 실수이며, 우리가 시장의 어떤 영역을 다루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현실적으로, 우리는 실용적인 목적에 있어서 유용한 몇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더 많은 사람이 사과보다 오렌지를 선호한다거나, 오렌지가 더 희소하다거나, 또는 '더 이동적(more mobile)'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론은 변하지 않는다.

공화당의 경제학자 폴 크레이그 로버츠(Paul Craig Roberts)는 국제무역이론이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사이의 거래를 다루며, 각 지역 내에서 생산요소는 '내부 이동성(internal mobility)'과 '외부 고정성(external immobility)'을 가진다고 말하는데, 이는 타당한 설명이다. 그러나, 그는 종종 두개의 '정치적 주체(political entities, 국가)'를 도입함으로써 국제무역이론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편집자주: 국가들 사이에 생산요소의 이동성에는 제한이 있으며, 이 점이 국제무역을 설명하는 최선의 기준이라는 주장] 이렇듯 국제무역이론이라는 용어가 불명확하게 이해되기 때문에, 많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로버츠는 무역을 하는 두 국가가 고정적인 생산요소를 가지고 있어야만 자유무역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고집한다. 이 주장에 따를 경우, 만약 미국 내에서 '무제한적 자유거래(unrestricted free trade, = 사유재산권의 자유로운 교환)'가 허용된다면,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자유무역(free trade)'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무역이 정말로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 자유무역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이 원하는 누구와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는 둘 이상의 개인 사이의 자유무역 또는 '제한무역(restricted trade)'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라스바드(Rothbard)가 <인간, 경제, 국가(Man, Economy, and State)>에서 말하길: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에서는 "국제무역" 문제와 같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들이란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단위로서가 아니라 아마도 문화적 표현으로서 지속될 수 있을 정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들 사이에 무역장벽이나 여타 장벽들, 혹은 통화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국제무역"은 지역 간 교역의 일반적 연구의 단순한 부록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한 국가 내부 혹은 외부의 교역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번역본 p.575)

라스바드에 따르면, "국제무역"은 "일반거래이론"의 구체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생산요소의 고정성 여부는 가치있는 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려는 사유재산 소유자들의 선호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그런 요소들을 '이동하게(mobilizing)' 만드는 메커니즘은 계약의 자유와 자신만의 가치적도를 가진 소유주의 주권에 달려있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라스바드는 "국제무역이론"이 '간섭주의 이론(theory of interventionism)'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바라본다. 그의 반국가주의 선언인 <권력과 시장(Power and Market)>에서 설명하기를:

간섭 상황에 대한 분석은, 간섭의 영향을 간섭이 없는 자유시장에서의 결과와 비교하는 것이다. '국가(nations)'는 정치적 혹은 문화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그것은 오로지 관세나 지리적인 무역에 대한 무역 장벽의 형태 또는 '통화간섭(monetary intervention)'의 형태로써, 즉 정부간섭의 결과로만 나타난다. (p.36) 2

'중상주의자(mercantilists)', '케인스주의자(Keynesians)', 그리고 '통화 괴짜들(monetary cranks)'3이 "국제무역이론"을 강조하고 "일반교환이론"과 구별했기 때문에 국제무역이론은 중요해졌다. 만약 정치적 경계, 가치가 요동치는 종이화폐, 그리고 관세가 없다면, 국제무역을 설명하는 별도의 이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계속해서 다양한 형태의 국가 간섭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무역이론이 존재한다.

로버츠는 이러한 견해에 반대한다. 그의 생각에는, 두 지역 사이에 서로 다른 고정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국제이론이 존재한다. 그가 말하길: "만약 생산요소의 이동성에 있어 국가(country)'들 사이에 차이가 없다면, 국제무역이론이라는 주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정적인 생산요소와 함께 다뤄진다면 국제무역이론은 중요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로버츠의 생각은 국제무역을 허술하게 다루었던 고전파 경제학을 따르는 것이다. 국제무역에 대한 고전파 경제학의 순진함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고트프리트 하벌러(Gottfried Haberler)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그럼에도 고전파 경제학은 국내거래와 국제무역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하나의 국가 안에서 노동과 자본이 생산의 한 갈래 혹은 한 지역에서부터 다른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만, 이러한 이동성이 서로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는 현저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국제무역의 경우, '완전 조정(complete adjustment. 즉, 어디에서나 동일한 임금률과 동일한 이자율의 설정)'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파 경제학에서는 국제무역의 기준으로 고정성이 설정되었는데 이는 매우 허술한 조치였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한 방법론적 토대의 정당화를 시도하지도 않은 채 그 위에 주장을 쌓아 올렸고, 시시각각 제기되는 다양한 비판을 마주하게 되었다. (Haberler (1936), Theory of International Trade, London: William Hodge, p. 4.)

하벌러에 따르면 국내와 국외의 이동성 차이는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때로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완벽하게 이동적이지 못하는 요소를 관찰할 수도 있으며, 반면에 생산요소들이 초국가적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이동할 수도 있다. 계속해서 하벌러는 로버츠와 고전파의 주장을 검토한다:

만약 여러 국가들 사이의 노동과 자본의 이동성이 추후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증가한다면, 고전파 경제학은 별도의 국제무역이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국제무역이론이 설명하려는 현상이 사라질 것이고, 따라서 국내거래와 국제무역 사이의 구분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4

이 지점에서 잠시 생각해볼 사안이 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며 "국제무역이론"이 소멸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런 상황에서 국제무역은 달라질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한 국가 내에서의 자유거래가 이로운 것이라면, 자유무역도 여전히 유익할 것이다. 만약 로버츠와 고전파의 주장에 따른다면, 스위스와 유럽연합 사이의 무제한적 자유무역이 존재한다면 이것이 국제무역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점도 무척 흥미롭다. 왜냐하면 생산요소들이 매우 "이동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약 대부분의 독일인이 동부에서 서부로 이주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통일된 독일의 서부지역과 동부지역 사이의 거래는 "국제무역"으로 불릴 수 있다.

하벌러는 또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노동과 자본의 고정성은 국제무역을 규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니다. 국가별 통화의 존재, 통화정책에 대한 각 국가의 독립적인 통제 등 다양한 대안적 기준이 제시될 수 있다. 국제무역에 대한 서로 다른 종류의 정의는 서로 다른 현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것들 모두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국제무역의 '올바른' 기준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하벌러의 기준은 무엇인가? 다음 구절에 따르면 그의 생각은 라스바드와 매우 유사한데, 둘 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경제학의 모든 분야는 인간의 '행동(actions)'과 '행위(hehaviour)'에 관련되어 있다. 경제학자가 관심을 가지는 현상은, 오로지 인간의 활동이 스스로를 위한 것(상품)이거나, 인간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환경)에 대한 것 뿐이다. (...) 국제무역이론은 일반경제이론의 상세한 응용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따라서 개인의 경제활동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한계효용 이론(theory of marginal utility)' 같은 것이 국제무역을 총체적으로 구성하는 경제활동에 응용될 수 있어야 한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 가격이론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론 "국제무역"과 '지역거래(local trade)'의 구분은 가시적인 것이며 또 중요하다. 그러나 국제무역을 설명하는 별도의 이론은 필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 개인의 수익 대비 지출에 대한 설명과 미국의 '국제무역 수지(balance of payments)'에 대한 설명은 같은 이론에 기초한다. 후자가 더 중요해보이는 이유는 단지 '부채(debt)'에 대한 국가주의적인 정책과 '집산주의적인(collectivistic)' 데이터 수집 때문이다. 국제무역이 국내거래보다 중요해보이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간섭이 없다면 존재할 수 있는 시장의 자원분배 양상을 정부가 방해하기 때문에, 국제무역은 계속하여 거론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본(capital)'과 '자본재(capital goods)'를 구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5 "자본"은 몇백년 전에 비해 지금 더 이동적이지 않다. 지금이 그러하듯 예전에도 자본은 언제나 이동적이었다. 자본의 이동이 '이윤(profit,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자(interest)')'의 평준화를 가져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윤의 평준화는 고전파 경제학 역시 인정하는 사실인데, '운송비(Costs of transportation)'는 이와 무관하다. 요점은 자본의 이동이 이윤의 평준화과 기업가적 손익의 소멸을 가져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자본의 완벽한 이동성(perfect mobility of capital)'은 정확히 이것을 의미하며, 운송비와는 무관하다.




태그 : #간섭주의 #보호주의와_자유무역 #자유시장 #다른경제학파 #주류경제학비판

  1. 편집자주: 주관적 가치 이론,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수요와 공급의 법칙 등 기본적인 경제학 공리에 기초하여 경제 행위자들 사이의 교환 및 거래를 설명하는 것. 다시 말해 일반적인 경제학을 의미함
  2. 더 많은 반사실적 분석에 관하여 다음의 훌륭한 논문을 참조하라: J.G. Hülsmann, Facts and Counterfactuals in Economic Law, Journal of Libertarian Studies Volume 17, no. 1 (Winter 2003), pp.57–102.
  3.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20세기 초반 미국의 일부 경제학자들을 지칭할 때 사용한 용어로, 추가적인 경제성장 없이 정부의 통화정책만으로도 모든 사람을 더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은 경제학자들을 의미함
  4. 이 점에 관하여, ibidem, p. 5 를 참조하라. 하벌러는 한 국가 안에서 자본이 고정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론가들을 비판한다; 그의 비판은 로버츠의 주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
  5. 편집자주: 미제스에 따르면 자본재는 소비를 위해 사용되는 재화이다. 반면에 자본은 경제계산에서의 기본개념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자본을 종종 동질적인 것으로 취급하지만, 오스트리아학파에 따르면 자본은 언제나 서로 다른 구체적인 자본재로만 존재한다. 상이한 자본재들을 총괄하여 단순하게 "자본"으로 분류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이다. 같은 망치라고 해도 철로 만든 망치는 비용, 기능, 사용의 신축성 그리고 재배치의 용이성 면에서 모루 및 나무망치와 아주 다르다. 요컨대, 자본은 일종의 추상적인 분류이며, 그 속에 여러 자본재들이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