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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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자유는 없다

해외 칼럼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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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9-2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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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odest Proposal from Dr. Walter Block | Mises Institute

Walter Block
뉴올리언스 로욜라 대학의 경제학 교수이자 미제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월터 블락은 아나코-캐피탈리즘이 하나의 이론으로 성립하는데 머레이 라스바드 다음으로 가장 많은 업적을 세운 대표적인 이론가이다. 1972년에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블락은 500개 이상의 논문, 24권의 책, 그리고 수천 편의 에세이를 저술했다.

"만약 그것이 움직인다면 민영화하라; 움직이지 않는다면, 민영화하라. 모든 것은 민영화되어야 한다.(If it moves, privatize it; if it doesn’t move, privatize it. Since everything either moves or doesn’t move, privatize everything.)"

주제 : #자유주의일반

원문 : Is "Academic Freedom" a Special Kind of Freedom? (게재일 : 1976년 3월)
편집 : 김경훈 연구원

학문의 자유에 대한 논쟁만큼 가식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학자들은 그 어떤 주제보다도 특히 학문의 자유를 더 많이 표방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자유가 서구 문명화의 근간이나 다름없다고 여긴다. '전미자유인권협회(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는 실제 학문적 자유의 침해나 그런 것으로 가정되는 상황에 대해 하루라도 성토하지 않는 날이 없다. 그러나 이 정도는 전문 학자와 교사 노조의 분노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이름 그 자체만 보면, 학문의 자유는 전혀 악의가 없어 보인다. 분명 학자들도 표현의 자유, 여행의 자유, 구직이나 퇴직의 자유 등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일반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학문의 자유(Academic Freedom)'라는 문구가 이러한 일반적인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 자유는 "고용주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학자가 원하는 형태로 어떤 주제를 가르칠 자유"라는 특별한 뜻을 지닌다. 이 "학문의 자유" 때문에 고용주는 가르치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해당 주제를 가르치기만 한다면 교사를 해고할 수 없다.

이는 아주 특별하고 호사스러운 생각이다. 만약 환경 미화와 배관 설치를 비롯한 모든 직업에 이러한 원칙을 적용할 때, 벌어질 일을 상상해보자. '배관공의 자유'는 파이프와 배관설비를 배관공이 원하는 방식으로 설치할 권리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만약 고객이 배관공과는 다른 방법으로 배관 설치를 원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배관공의 자유'라는 원칙이 없다면, 배관공은 이 일 자체를 맡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배관공의 자유 원칙 하에서는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 고객이 어떤 방식을 원하든, 자신의 방식으로 처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할 권리를 가졌지만, 고객은 그를 해고할 수 없다.

'택시 기사의 자유'는 요금을 내는 승객의 목적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기사가 원하는 곳으로 갈 권리를 보장해준다. '웨이터의 자유' 덕분에 손님들은 웨이터가 골라주는 메뉴를 먹어야 한다. 현실에서 배관공, 웨이터, 택시 기사 이러한 '직업적인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 그런데 학자들에게만 이러한 특권이 보장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학자라는 직업은 "자율적 연구, 구속받지 않는 표현의 자유 그리고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추진할 권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직업들과 차이가 있다. 물론 학자 자신들이 이러한 차이점을 만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는 불쾌한 엘리트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게다가 지적 활동과는 전혀 관계없는 한 가지 핵심이 빠져 있다. 즉, 소비자와 고용주의 욕구나 희망과는 상관없이 순전히 형식주의적 필요조건을 바탕으로, 특정 직업에 피고용인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직업적인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다른 직업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는 자유를 '지적인' 작업에는 주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적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모든 지적인 직업에 이러한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것일까? 의사를 위한 '의학적 자유', 변호사를 위한 '법률적 자유', '예술가를 위한 '예술적 자유'가 필요한 것일까? 의학적 자유는 의사에게 환자의 동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수술을 집도할 권리를 부여할 것이다. 이 자유 때문에 환자들은 이러한 의사를 해고하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원하는 사람도 없고, 사람들이 감상하지도 않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놓고, 예술적 자유 덕분에 예술가는 이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권리를 부여 받을 수 있을까?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요!이다. 화학자, 변호사, 또는 정치인들도 이러한 권한을 누릴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학문의 자유'와 관련하여 해결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계약할' 개인의 권리에 관한 것이다. 학문적 자유는 계약의 신성함을 부정하고 있다. 이 불합리한 자유는 고용주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학자는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게 한다. 제한, 보호주의, 계급제도 육성으로 대표되는 중세 시대의 상인 단체인 길드 시스템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까지는, 학교와 대학이 개인의 소유라고 가정을 했고, 그래서 학문의 자유가 이러한 재산 소유자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의 모든 교육 기관들은 정부의 통제를 받는 즉, 정부가 국민에게서 빼앗은 재산이다. 그래서 교육제도를 통제하는 지도층이나 권력층이 교육제도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인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주장이 맞는다면, 학문적 자유를 옹호하는 막강한 세력이 있는 것이다.

학문의 자유는 경우에 따라서 사기나 절도로 간주될 수 있다.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계약의 권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태그 : #정치비판 #정치적자유 #사회현안 #교육 #미디어와_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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