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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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세계 최초의 리버테리언, 노자와 장자: 어떤 정부가 과연 훌륭한 정부인가

국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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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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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

전용덕
*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 경제학 박사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정치철학과_윤리학
편집 : 전계운 대표
  • 편집자주: 이 글은 2007년에 출간된 전용덕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의 저서 <권리,정부,시장>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리버테리언, 노자와 장자: 목차 <펼치기>

(1) 시작하는 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으며 세계 지성계를 리버테리어니즘 방향으로 물꼬를 돌리게 한 사상가, 철학자 겸 경제학자인 하이에크는 이성으로 사회를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 즉, 사회 공학(social engineering)의 위험을 지적하고, 리버테리어니즘만이 사회와 세계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간접적으로)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을 평생에 걸쳐 논증하였다.1아담 스미스, 하이에크와 같은 서양의 어떠한 리버테리언보다도 더 자유롭고, 더 작은 정부를 주장했고, 자생적 질서를 주장했던 사람들이 다름 아닌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이하 노장이라 칭함)라고 하겠다. 그 점에서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들은 최초이자 최고(最古)의 리버테리언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철학(political philosophy)이 한국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는커녕 제대로 소개된 적도 없다고 하겠다. 특히 장자의 경우는 우화로 여겨져 정치철학적 메시지가 매몰되었다. 오랫동안 중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던 한국에서 노장의 정치철학이 무시되고 사회의 기본 소프트웨어로서 검토된 적이 없었다는 것은 큰 불행이라고 하겠다. 이 글은 노장의 정치철학이 리버테리어니즘이라는 점을 밝히고 그들의 가르침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를 도출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조선 왕조 오백년 동안 공자와 맹자(이하 공맹이라 칭함)의 철학을 통치의 기본 이념으로 한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회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 되는 소프트웨어였던 공맹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濟家治國平天下)라는 가르침을 둘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전반부의 ‘수신제가’는 개인의 삶에 적용되는 것으로 매우 유용한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도 여전히 유용함을 부인할 수 없다. 후반부의 ‘치국평천하’는 나라를 다스려 세상을 안정시킨다는 뜻으로 이 부분이 간섭주의적 정부를 뜻하는 것으로 이 글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대상이다. 그러므로 공맹의 가르침이 조선시대에 미친 영향을 묻는다는 것은 ‘치국평천하’라는 공맹의 간섭주의적 정치철학이 당시 사회에 미친 영향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 되겠다. 공맹의 간섭주의적 정치철학을 기본 이념으로 한 조선 왕조는 내정의 실패와 잦은 외침으로 백성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처참하게 살육 당했다. 반대로 왕을 포함한 소수 지배 계층은 공리공론에 의거한 당쟁만을 일삼고, 호의호식하고, 계급적 특혜를 이용하여 백성을 착취했다. 이것이 모두 공맹의 간섭주의적 정치철학이 사람들의 삶에 끼친 해악이다.

그러면 현재는 어떠한가. 동학 혁명 이후로 한반도는 일제의 침략과 강점, 해방, 6.25 전쟁, 4.19 학생 의거, 5.16 군사 쿠데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29 항쟁에 이르기까지 숨가쁘게 변화를 거듭했다. 동학 혁명으로 반상이 타파되면서 유교적 질서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격변의 와중에서도 지배적인 이념으로서의 공맹의 철학은 비록 중요성이 작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한반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유교적 자본주의’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이니 아직도 한국 사회는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조선 왕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면 지나친 주장일까.2 좀 더 자세히 보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가치관으로서 공맹의 가르침은 불행히도 과거에 비하면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왜곡되어 사용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정보와 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점차 통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가 과거보다 해외에 더 많이 의존함으로써 공맹의 정치철학과 같은 폐쇄적이고 간섭적인 질서와 이념을 고수하는 일은 과거보다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맹의 간섭주의적 정치철학은 아직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 글은 노장의 정치철학이 어떻게 한국 사회의 기본틀이 될 수 있는가를 점검해본 산물의 일부이다.

(2) 어떤 정부가 과연 훌륭한 정부인가

1) 훌륭한 정부의 순서

노자는 정부 자체를 공격하지는 않는다. 다만 도덕경 ‘제17장 태상’(太上)에서 훌륭한 정부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3“가장 훌륭한 임금은 백성들이 그가 있음을 알뿐이고, 그 다음가는 임금은 백성들이 그를 친근히 하고 칭송하며, 그 다음가는 임금은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 다음가는 임금은 백성들이 그를 업신여긴다. 그러므로 신의가 부족하면 백성들이 믿지 않게 되는 것이다.” 노자는 정부 또는 정치가를 네 등급으로 나누고 있다. 가장 훌륭한 정부 또는 위정자는 무위와 자연의 도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마치 하늘과 땅이 인위적으로 작용하는 일이 없이 만물을 생겨나고 자라나게 하듯이 정치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무위와 자연의 도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현대의 정치철학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정부의 크기를 최대한 작게 하는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를 말한다고 하겠다. 또는 이러한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를 지향하는 정치철학을 리버테리어니즘이라고 일컫는다. 백성들이 임금이 있음을 알 뿐으로 임금이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는 상태가 최선의 정치이니 임금만을 제외한다면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무정부주의’(anarchism)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만약 노자가 왕조 시대에 살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노자가 주장한 ‘왕은 존재하되 통치하지 않는 정치’란 무정부주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다.

장자도 노자와 비슷한 형태의 정부를 피력하고 하고 있다. 장자는 ‘제12장 천지(天地) 제1 군주천덕설’(君主天德設)에서 “그러므로, ‘옛날 천하의 인민을 잘 기른 명군은, 무욕했기 때문에 인민이 모두 만족했으며, 무욕했기 때문에 만물이 모두 성장을 완수하고, 참으로 고요했기 때문에 허다한 인민들이 편안하게 다스려졌다.’라고 전해지고 있다.” 장자는 임금이 자리를 지키되 통치하지 않음으로써 무위 자연의 도를 실천하여 평화롭고 자유롭고 번영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장자는 ‘제11장 재유(在宥) 제1 재유론’(在宥論)에서도 작은 정부가 좋은 정부임을 거듭 보여주고 있다.

2) 이상적인 국가

그렇다면 노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노자는 도덕경 ‘제80장 소국과민’(小國寡民)에서 그것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라는 작고 백성들은 적어서,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며, 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을 중히 여기고, 멀리 이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비록 수레가 있어도 타고 갈 곳이 없고, 비록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진칠 곳이 없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끈을 매듭지어 사용하게 하고, 그들의 음식을 달게 여기게 하고, 그들의 옷을 아름답게 여기게 하고, 그들의 거처를 편안히 여기게 하고, 그들의 풍속을 즐겁게 여기게 해야 한다.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들이 늙어서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 장에서 노자는 이상적인 국가로 먼저 매우 작은 국가를 주장하고 있다. 노자는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소리가 들릴 정도로 작은 나라를 이상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무릇 국가가 커지면서 폭력적이 된다. 역사상 큰 국가가 폭력적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가.

노자는 일찍이 이 점을 깨달았던 것 같다. 세상에 작은 마을 단위의 국가만 존재한다면 그들간에 폭력이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작은 마을 단위의 국가가 큰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작은 마을은 많은 재원을 마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국방 예산을 마련할 수 없다면 큰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러나 노자는 수레, 갑옷, 무기 등을 준비토록 하여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단순히 나라가 작아진다고 나라간 폭력이 반드시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니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최선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고도 백성들로 하여금 평화를 사랑하는 의식을 가져야 함을 경고한다. 이상적인 국가에서는 각자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이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자기의 고향에서 편안히 늙어 죽게 될 것이고 남의 나라를 방황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노자가 살던 시대와 현대는 너무 다르다. 그 점에서 백성이 늙어서 죽을 때까지 다른 나라를 서로 왕래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노자의 주장에서 취해야 할 점은 나라가 작고 백성이 적은 국가가 이상적이라는 점, 전쟁을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정신,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 등을 각자가 가져야 함이다.4




태그 :#큰정부 #자유주의일반 #세계사 #인물평가 #철학과_방법론

썸네일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mdhmc&logNo=221176215354

  1. (원문 149번)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튼 프리드만 박사에 의하면, 1950-70년대에 간섭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자유주의자(liberal)로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정책의 철학적 바탕을 자유주의(liberalism)로 부름으로써 혼란이 생겨났다. 이에 고전적 자유주의로 일컬어지는 아담 스미스 시대의 자유주의, 즉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을 리버테리언(libertarian), 그 철학적 기초를 리버테리어니즘으로 부르게 되었다. 여기에서도 그러한 전통에 따라 리버테리언, 리버테리어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2. (원문 150번)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유교는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체계이다. 물론 ‘수신제가’라는 개인을 위한 도덕과 처세훈이 자본주의와 결합하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것일 것이다. 그 점에서 항간에 일부 학자나 연구자가 사용하고 있는 유교적 자본주의라는 말은 어느 쪽을 말하고 있는지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일부 연구자는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유교와 자본주의를 함께 논의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그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3. (원문 151번) 아래에서 인용한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는 박일봉 역저에서 온 것임을 밝혀둔다.
  4. (원문 152번) EU나 지역간 정치적 통합은 노자의 주장에 비추어보면 전쟁의 가능성을 높이거나 폭력집단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