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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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정당이 사회주의정당 및 특수이익집단과 다른 점

해외 칼럼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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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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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n Mises: "Abolite la proprietà e il potere si farà totalitario" - IlGiornale.it

Ludwig von Mises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20세기에 가장 명성이 높았던 경제학자이자 사회철학자 중 한 명이다. 길고 생산적인 삶을 살면서, 그는 개별 행위자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위하여 목적 지향적으로 행동한다는 근본적인 공리(axiom)에 바탕을 둔 통합된 연역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을 발전시켰다. 비록 그의 경제분석 자체는 —경제학자가 가진 가치와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가치중립적(value-free)’이지만, 미제스는 인류의 영속적 발전을 위해 지속 가능한 유일한 경제정책이 무제한적인 자유방임(laissez-faire), 자유시장, 결코 방해받지 않는 사유재산권(the right of private property)의 행사, 그리고 정부의 역할을 그 영토 내의 시민과 재산의 보호로 엄격하게 제한함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주제 : #자유주의전략
원문 : Liberalism and the Parties of Special Interests
  • 이 글은 미제스의 저서 <자유주의(liberalism)>의 "제4장 자유주의와 정당, 제4절 자유주의와 특수이익집단의 정당"의 한국어 번역본을 발췌한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을 위한 특혜와 특권을 확보하는 데에 급급한 특수이익집단의 정당들이 의회제도만을 무용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국가와 사회의 통일성을 깨뜨리기도 한다. 그들은 의회주의의 위기뿐 아니라 일반적인 정치ㆍ사회의 위기를 불러온다. 만일 어떤 사회가 분명히 구별되는 집단을 나누어져 각 집단이 그 구성원에 대한 특혜조치를 확보한다는 생각에서 혹시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가하고 언제나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으며 조그마한 이익이라도 생기면 언제라도 중요한 정치적 기관을 희생시킬 용의를 지니고 있다면, 그러한 사회는 장기적으로 볼 때 존속이 불가능하다.

특수이익집단을 대변하는 정당에게 있어서 정치문제란 모두 다 정략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그들의 최종목표는 처음부터 확고하다. 그들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을 희생해서라도 그들이 대표하고 있는 집단에게 가능한 가장 많은 이익과 특혜를 가져다주는 데 있다. 그러한 정당이 내세우는 정강은 이와 같은 목표를 위장하여 그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으나 그게 정강정책의 진정한 목표라는 것을 공표하는 적은 절대로 없다. 정당원들은 어떤 경우든지 이미 그 정당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므로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해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중 얼마만큼이나 대중에게 알리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전략적인 문제이다.

반자유주의정당들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간에 그들의 행동이 가져오게 될 전사회구조의 붕괴를 전혀 무시한 채 그 구성원들에 대한 특별대우를 확보하는 데 급급하다. 따라서 그들은 자유주의가 그들에 대해 퍼붓는 공격을 일순간도 지탱해낼 수 없다.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검사해볼 때 그들의 행위가 반사회적이며, 또한 아주 개략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항상 서로 싸우기만 하는 특수 이익집단의 정당활동에서는 어떠한 사회질서도 창출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눈앞에 있는 것 이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면 이와 같은 분명한 사실들이 특수이익집단의 정당들에 대해서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해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틀 후, 또는 그 이후에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오늘, 또는 기껏해야 내일에 대해서 생각할 뿐이다. 다른 집단들 역시 그들 자신의 이익만 쫓느라 일반적 복지에 대해 자기들과 똑같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에 어떤 결과가 올 것인 지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것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요구사항을 쳐부수는 데에도 성공하기를 바란다. 정당활동에 대하여 보다 높은 규범을 적용하기를 바라는 소수에 대하여, 정당활동에 있어서도 양심의 절대명령(‘그것이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이 되기를 바라는 원리에 따라 행동하라. 즉 너 자신의 행동을 보편적으로 준수되어야 할 법칙으로 생각하려는 시도에서 아무런 자기모순도 생기지 않게끔 행동하라’)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정당활동에 대해서도 보다 높은 행동규범의 적용을 바라는 몇 안되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특수이익집단을 대변 하는 정당이 지니는 이념은 아무것도 제시해주지 못한다.

특수이익집단의 정당이 지니고 있는 이와 같은 윤리적 결함에서 사회주의는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자유주의의 위대한 이상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특정집단에게 특혜조치를 주도록 하는 요구에 대해 만족하기에는 너무나 분명한 사고능력을 지니고 있는 많은 이에게 있어서 사회주의의 원칙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사회주의사회라는 이념은(이미 우리가 본 것처럼 거기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개념상의 위대성을 부인하지 못하는) 특수이익집단의 정당이 취하는 입장의 약점을 숨겨주는 역할과 더 나아가서는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비판가들의 관심을 정당활동으로부터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진지하고 철저하게 고려해보아야 할 더 중요한 문제로 돌려놓은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한 세기에 걸쳐 이런저런 형태의 사회주의자의 이상은 정직하고 진지한 사람들 가운데서 상당수의 추종자를 얻게 되었다. 많은 수의 아주 훌륭하고 고귀한 사람들이 그것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또한 뛰어난 정치가들의 진로를 인도하는 별이었다. 대학에서 중심적 지위를 갖게 되었으며, 젊은이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과거 세대 및 현재 세대의 사상을 가득채우고 그들의 감성을 불타오르게 만들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언제인가는 아주 타당하게도 우리들의 시대를 사회주의의 시대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지난 수십년에 걸쳐 모든 나라의 국민들은 기업을 국영화하고(또는 지방정부의 경영하에 두고) 계획경제로 나아가는 제반조치를 취함으로써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 한도로 완수하였다.

사회주의적 경제운영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결함들(노동생산성에 대한 좋지 않은 효과 및 사회주의하에서 경제적 계산의 불가능성) 때문에 이제 어느 곳에서나 사회주의의 방향으로 한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국민에 대한 재화의 공급에 있어서 아주 큰 차질을 가져올 만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요성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으며, 사회주의적 이상을 그 이념에 있어서는 점점 더 높은 위치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치에 있어서는 특수한 지위를 획득하려는 노동당의 제반노력을 감싸는 단순한 겉옷으로 전락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예를 들어 기독교사회주의자의 여러 분당처럼 무수히 많은 사회주의정당의 각각에 대해서 입증할 수 있다. 그러나 의심할 나위 없이 가장 중요한 사회주의정당이었으며, 또한 현재도 그러한 마르크스사회주의자들의 정당에 대해 우리의 논의를 국한시킴이 나으리라 생각한다. 마르크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사회주의에 관하여 참으로 진지했다. 마르크스는 특수이익집단의 정당들이 요구하던 한 사회의 특정집단이나 계층을 위한 모든 조치들에 대해 반대하였다. 그와 같은 간섭행위의 결과가 노동생산성의 일반적 저하로 나타난다는 자유주의자의 주장에 대하여 마르크스는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가 일관성있게 생각하고 저술하고 말한 경우에는 언제나 정부나 그와 비슷한 강제력을 지닌 사회조직에 의한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간섭은 그 주창자들이 의도하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생산성을 저하시킬 뿐이므로 쓸모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마르크스가 바랐던 것은 사회주의의 건설로 이끌어갈 투쟁에 대비하여 노동자를 조직화하자는 것이었지 아직도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바탕을 둔 사회에서 어떤 특정집단에 대한 특혜를 얻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가 바란 것은 사회주의노동당이었지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개량을 목표로 하는, 그의 말을 빌리면 ‘소시민 계급’의 정당이 아니었다.

그의 학문체계가 지니고 있는 여러가지 선입관에 사로잡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왜곡되지 않게 보지 못한 탓으로 마르크스는 그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 ‘사회주의자’ 정당으로 조직화한 노동자들이 자기이론에 따라 자본주의체제가 진화하는 것을 그냥 두고보는 데 만족하여 토지를 강제로 점유하고 있는 자들로부터 다시 그것을 징발할 때가 무르익어 자본주의체제를 사회주의체제로 변화시키게 될 날을 뒤로 미루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노동자정당 역시 그당시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한 여타의 특수이익집단을 위한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 실천방안들이 원칙적으로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실제정치에 있어서는 노동자에게 특권을 가져다 주려는 당면목표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였다.

모든 노동자의 이익은 합치된다고 하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그가 다른 정치적 목적을 생각하며 발전시킨 것인데, 노동자의 일부에게 주어진 승리의 대가를 다른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숨기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다시 말하면 소위 ‘노동자를 위한’ 입법활동이나 노동조합운동에 있어서 무산자계급의 이해가 결코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은폐시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이론은 노동자들에 대한 특별한 이익을 내세우는 정당에 대하여 종교가 독일 중도파 정당 및 다른 관료정당에게 민족의 단합이라는 생각이 민족주의정당에게, 다양한 생산자의 이익이 같다는 주장이 농업정당에게, 그리고 노동자들의 보호를 위해서는 완전한 관세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보호주의정당에게 해준 것과 같은 공헌을 하였다. 사회민주주의정당이 성장할수록 그 내부에서 노조의 영향력이 증대되었으며, 또한 모든 것을 클로즈드 샵의 관점이나 임금인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노동조합의 협회로서의 성격을 더욱 더 강하게 지니게 되었다.

자유주의는 이들 중 그 어느 정당과도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이들 모두의 반대편 극점에 서 있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특권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의 보전을 위해서 누구에게나 희생을 요구한다. 희생, 보다 정확히 말하면 즉시 얻게 되는 이익의 부인은 물론 잠정적인 것이다. 그 희생은 머지않아 보다 크고 영속적인 이익에 의해 보상된다. 그렇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희생은 희생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다른 정당과의 경쟁에 있어서 자유주의는 좀 특이한 위치에 있게 된다. 반자유주의정당의 후보자는 모든 특정 유권자집단에게 대하여 특혜를 준다고 약속한다. 즉 생산자에 대해서는 높은 가격, 그리고 소비자에 대해서는 낮은 가격을, 또한 관리에게는 봉급인상을, 그리고 납세자에게는 조세부담의 경감을 약속한다. 공공재원, 혹은 부자들의 희생 위에 어떤 종류의 경비지출 요구도 다 들어주겠다고 동의할 태세가 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서는 ‘일반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선물에 의한 특별한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집단은 그 어느 것이든 경시의 대상이 될 만큼 작지 않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의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그와 같이 특혜조치를 추구하는 것은 반사회적인 행동이라고밖에는 달리 얘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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