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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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국가는 만인이 만인을 등쳐먹는 거대한 허구다

해외 칼럼
자유주의
작성일
2020-11-09 18:16
조회
944

Episode #125: Memorable Mentors — Frédéric Bastiat — The Soul of Enterprise

Claude-Frédéric Bastiat

끌로드-프레데리크 바스티아(1801-1850)는 사유재산, 자유시장, 제한된 정부를 옹호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정치인, 저널리스트이다. 바스티아는 정부의 기능이 오로지 시민들의 생명, 자유, 재산의 보호에만 국한해야 한다고 믿으며 정치활동과 저술활동을 전개하였다. 현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선구자 중 한명으로서, 바스티아는 오늘날에도 오스트리아학파의 가장 중요한 토대로 자리잡고 있는 개념 여럿을 최초로 개발한 바 있다. 예컨대, 그는 시장을 역동적이고 경쟁적인 과정으로 이해하였으며,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외면하는 정부에 의한 가격통제와 전반적인 경제간섭의 무의미함을 강조하였다. 머레이 라스바드와 헨리 해즐릿을 통해 유명해진 바스티아의 "깨진 유리창의 역설"은 여전히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정부간섭주의 비판으로 남아있다.

"인간이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생명, 자유, 재산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 자유, 재산이 먼저 존재한 덕분에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주제 : #정치비판

원문 : The State (게재일 : 1848년)
편집 : 김경훈 연구원

  • 이 글은 바스티아의 대표작 <법(La Loi, The Law)>의 김정호 번역판에서 발췌하였습니다.
[2편/完] 국가는 만인이 만인을 등쳐먹는 거대한 허구다

누군가 국가라는 단어를 단순하고 알기 쉽게 정의하는 사람에게 큰 상금을 걸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큰 도움을 받겠는가.

국가, 그것은 무엇일까? 어디에 있는 것이며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지만 우리가 국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정체가 매우 아리송한 친구라는 사실뿐이다. 아마도 국가라는 친구만큼 졸림을 당하고, 많은 고문을 당하고, 바쁘고, 잔소리를 듣고, 비난을 받고, 약올림을 당하는 존재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 자리에 계시는 선생님들, 당신들이 어떤 분들이신지 알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당신들은 지난 6개월 동안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유토피아를 만드는 책임을 국가에게 지웠을 것입니다. 내기를 합시다. 내가 맞다면 당신이 내게 하나를 주시고 틀렸다면 내가 당신에게 그 열 배를 주겠습니다.

그리고 숙녀 여러분, 당신들은 틀림없이 인류의 모든 고통이 치유되기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에게 그 역할을 해달라고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뿔싸! 마치 피가로(Figaro)처럼 불쌍한 국가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또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수십만 가지의 목소리들이 다음과 같은  소리들을 외쳐댄다.

노동을 조직화하라.

이기심을 뿌리뽑아라.

자본의 횡포를 막아라.

비료와 달걀을 개량하기 위해 실험을 수행하라.

낙후지역에 철로를 개설하라.

평야지대에 관개시설을 하라.

산에 나무를 심어라.

시범농장을 건설하라.

작업장을 화목하게 하라.

알제리를 식민지로 점령하라.

어린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라.

청소년들을 가르쳐라.

노인을 구제하라.

도시의 주민들을 농촌으로 분산시켜라.

모든 사업의 이윤을 균등하게 하라.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자를 받지 말고 돈을 빌려주어라.

이탈리아와 폴란드와 헝가리를 해방시켜라.

말의 종자를 개량하라.

예술을 장려하고 음악가와 무용수들을 훈련시켜라.

무역을 규제함과 동시에 상선단을 만들어라.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우리의 머릿속에 넣어달라.

민족의 영혼을 계몽하고 계발하고 강화하고 풍부하게 하라.

선생님들, 제발 조금만 참으세요. 국가가 애처롭게 대답한다. 선생님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제게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여섯 개 정도의 새로운 세금을 준비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내면서 얼마나 기뻐할는지 곧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려왔다. 수치로다! 수치로다! 돈이 충분하다면 누군들 그 일을 못할까. 그런 자원을 요구할 양이라면 네가 가진 국가라는 이름이 부끄럽다. 새로운 세금을 취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존의 세금조차도 없앨 것을 명한다.

소금세를 없애라.

음료세를 없애라.

물품입시세(식품, 사료, 주류, 연료, 건축자재 등을 해당 자치단체에 반입하는 대가로 부과되는 지방세)를 폐지하라.

면허세를 폐지하라.

대중들의 욕구를 모두 채워주지 못했다고 해서 국가의 형태가 두세 번이나  바뀌고도 아직도 잠잠해지지 않은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이같은 주장들이 서로 모순된 것임을 지적했었다. 오 하나님, 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제자신도 상반된 주장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는 영원히 불신을 받는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나를 무자비하고 무미건조하며 개인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철학자로 매도하고 있다. 나를 영국, 또는 미국식의 사대주의적 경제학자 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모순조차도 마다하지 않는 위대한 저술가님들이시여, 내 말 좀 들어보소. 내가 틀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저지른 잘못을 거두어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도 요구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국가라는 것을 마치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국가가 모든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대신 일을 해주며, 기업가들에게는 자본을, 사업을 하려는 자에게는 대출을, 상처받은 자에게는 바를 약을, 고통받는 자들에게는 향유를, 곤란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조언을, 모든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를, 지루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락을, 어린이에게는 우유를, 노인들에게는 포도주를 나누어줄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우리의 모든 욕구를 미리 알아서 해결해주며,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고, 우리의 잘못을 고쳐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국가가 제대로 일하는 한 우리는 미래를 내다볼 필요도, 신중할 필요도, 결단을 내릴 필요도, 현명해질 필요도, 경험할 필요도, 질서를 지킬 필요도, 절약할 필요도, 절제할 필요도, 근면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과연 그런 국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 증명해 주십시오.

당신들은 내가 왜 그런 국가를 원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부와 학식과 충분한 의료와 무제한의 국고와 무오류의 조언, 그런 모든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국가라면 난들 왜 그런 국가를 마다하겠습니까.

내가 당신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지 그런 국가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달라는 것뿐입니다. 내가 그 일을 해주는 사람에게 상금을 걸자고 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결국 그 일에 성공한 사람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임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혁명을 통해서 국가를 뒤엎어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국가가 할 수 있다고 호언한 모순투성이의 계획들을 달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 이래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던 수많은 환상들 중에서 가장 괴상한 환상에 의해 우리 모두가 기만당해 왔다는 사실을 다시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노력의 고통과 결핍의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저주받은 존재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의 고통스러움을 참든지 그것이 싫다면 결핍의 고통을 받아들이든지의 양자택일만이 가능할 뿐이다. 두 가지의 고통을 모두 피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

하기야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다른 사람이 생산해놓은 것을 즐기는 방법이다. 고통과 즐거움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자연적 질서하에서는 수고하는 자들이 즐거움도 가져가게 되나, 이런 체제에서는 고통을 부담하는 자와 즐거움을 누리는 자는 따로 있다. 착취를 당하는 자와 착취하는 자로 구분되는 것이다.

노예제는 바로 이같은 원칙에 뿌리를 박고 있다. 전쟁, 폭행, 무역의 제한, 사기, '왜곡된 의사표시(misrepresentation)' 등의 행동들도 물론 같은 부류에 속한다. 끔찍한 행동들이지만 그 행동들을 가능하게 한 원칙, 즉 남의 수고에 편승한다는 원칙으로 따지자면 일관성이 있는 행동임에는 분명하다. 누구든 압제자와 맞서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압제자들이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노예제도는 이제 끝나가고 있으며, 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천부적인 성향 때문에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약탈도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는 남아 있다. 고통스러운 것은 남에게 전가하고 좋은 것은 자기가 취하려는 인간의 원초적인 성향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이 표출되는 구체적인 형태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압제자들은 더 이상 피압제자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의 양심은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국가, 또는 법이라는 것을 매개로 해서 압제가 이루어진다. 양심의 가책을 잠재우는 데에 국가만한 것이 있겠는가. 약탈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에 국가를 내세우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겠는가. 그래서 무슨 요구를 하든, 어떤 구실을 갖다붙이든 간에 모든 사람들이 국가에 호소하려고 한다. 그 말을 한번 들어보자.

"내가 누리는 것은 내가 노력한 것에 비해 너무 작습니다. 다른 사람의 재산을 뺏어다가 내가 누린다면 균형이 맞을 것 같습니다만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지요. 좀 쉽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나에게 공무원 자리를 하나 주든지, 아니면 내 경쟁자들의 발목을 묶어줄 수는 없는지요.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출연받아서 나에게 무이자로 대출해주든지, 내 아이들을 무료로 교육시켜 주든지, 나에게 보조금을 주든지, 50세 이후의 노후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도 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이 그 일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또 직접적인 약탈에 따르게 마련인 위험과 나쁜 평판을 걱정할 필요 없이 약탈의 이점을 누릴 수 있게  되겠지요."

우리 모두가 그런 것들을 국가에게 요구하고 있지만, 국가로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노동을 부과하지 않고서는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더 좋은 개념 규정을 하기 전까지 나는 국가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밖에 없다. 혹시 누가 아는가, 그 상이 내게 주어질지.

국가라는 것은 만인이 만인을 등쳐먹고 사는 거대한 허구이다.

옛날에도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노력에 편승해서 살아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다는 사실을 내놓고 말할 수가 없다. 자기 스스로에게도 숨기고 싶어한다. 그 해결방안으로 고안해낸 것이 국가라고 하는 중재자이다. 사람들은 그런 국가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도 공정하고 명예롭다는 소리를 듣는 국가에게 이르노라. 많은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줄지어다."

세상에 맙소사! 국가라는 작자는 그같이 악마적인 요구를 기꺼이 들어줄 태세를 갖추고 있다.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각료들이나 관료들도 그들의 부와 영향력이 확대되기를 원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것이 자신들에게 가져다줄 기회를 놓칠 이유가 있겠는가. 국가는 대중들이 자신들에게 맡긴 일로부터 많은 이익이 생긴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챈다. 국가는 모든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그런 기회를 이용해서 국가는 자신들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떼어놓을 것이다. 그것을 이용해서 국가는 조직과 특권을 늘려갈 것이다. 대중으로부터 데어낸 자원의 압도적인 부분을 자신의 몫으로 착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대중들이 이 모든 현상들에 대해서 놀랄 정도로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포로들을 노예로 삼았던 옛날의 군인들을 야만적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어리석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원하던 것도 나들의 노력에 편승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었어도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또다른 수단을 이용해서 같은 일을 하게 해달라고 국가에게 요구하고 있다. 만인의 만인데 대한 약탈은 약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는가. 합법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진다고 해서 약탈을 약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만 하는가.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방탕한 존재 덕분에 국민 대다수의 복지가 악화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는가.

게다가 우리는 이같이 엄청난 미신을 헌법의 서문에까지 넣어 놓았다. 사람들을 교화시킬 양으로 말이다.

프랑스는 모든 시민들을 계몽하고 그들의 도덕심과 복지를 고양시키기 위해 공화국을 세웠다.

실체는 프랑스 국민들이다. 그런데 추상적 존재인 프랑스가 실체인 프랑스 국민들의 도덕심과 복지 등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기괴한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조항이 가능했겠는가. 프랑스 국민들을 위해 모든 혜택을 베풀어줄 덕망 있고 깨어 있으며, 풍요로운 존재가 프랑스 국민들 위에 서 있다고 생각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했겠는가. 프랑스 국민들 전체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는 프랑스라는 추상적인 개념과 실제의 프랑스 국민들간에 아버지와 아들, 보호자와 피보호자,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와 같은 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가정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우리가 아버지 나라라든가, 자애로운 어머니 프랑스같이 은유적인 표현을 쓸 수도 있고 그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전문의 주어와 목적어를 뒤집어놓는다면 현재의 문장이 잘못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전문을 다음과 같이 바꾼다고 해서 표현의 정확성에 흠집이 생기는가?

프랑스국의 도덕수준과 복지수준을 더욱 고양시키기 위하여 프랑스 국민들은 공화국을 세웠다.

이렇게 주어와 목적어를 바꾸고 난 후 헌법 전문의 가치는 어떻게 되었는가? 누구든 "어머니가 아이를 양육한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그 문장을 "아이가 어머니를 양육한다"라고 바꾸어버린다면 어찌되겠는가. 미국헌법 전문에 나타나 있는 시민들과 정부간의 관계는 프랑스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우리들 사이의 결속력을 더욱 공공히 하고 정의를 확립하며, 나라 안의 평안과 공동의 방위를 도모하며, 모든 국민들의 복지를 증진하며,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이 자유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미국시민들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여기에는 어떤 허구의 존재도 개입될 여지가 없다. 시민들이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응석을 부릴 만한 추상적인 존재도 없다. 미국인들은 자기자신들과 자신들의 노력 이외의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형이상학적 탁상공론을 벌이기 위해서 헌법 전문의 문장을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국가를 의인화함으로써 나타나는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각종 재난과 혁명과 같은 정치적 소용돌이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래왔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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