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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完] 국가는 만인이 만인을 등쳐먹는 거대한 허구다

해외 칼럼
자유주의
작성일
2020-11-10 17:29
조회
873

Episode #125: Memorable Mentors — Frédéric Bastiat — The Soul of Enterprise

Claude-Frédéric Bastiat

끌로드-프레데리크 바스티아(1801-1850)는 사유재산, 자유시장, 제한된 정부를 옹호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정치인, 저널리스트이다. 바스티아는 정부의 기능이 오로지 시민들의 생명, 자유, 재산의 보호에만 국한해야 한다고 믿으며 정치활동과 저술활동을 전개하였다. 현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선구자 중 한명으로서, 바스티아는 오늘날에도 오스트리아학파의 가장 중요한 토대로 자리잡고 있는 개념 여럿을 최초로 개발한 바 있다. 예컨대, 그는 시장을 역동적이고 경쟁적인 과정으로 이해하였으며,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외면하는 정부에 의한 가격통제와 전반적인 경제간섭의 무의미함을 강조하였다. 머레이 라스바드와 헨리 해즐릿을 통해 유명해진 바스티아의 "깨진 유리창의 역설"은 여전히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정부간섭주의 비판으로 남아있다.

"인간이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생명, 자유, 재산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 자유, 재산이 먼저 존재한 덕분에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주제 : #정치비판

원문 : The State (게재일 : 1848년)
편집 : 김경훈 연구원

  • 이 글은 바스티아의 대표작 <법(La Loi, The Law)>의 김정호 번역판에서 발췌하였습니다.
[1편] 국가는 만인이 만인을 등쳐먹는 거대한 허구다

여기 한편에는 국민들이 서 있고 다른 한편에는 국가라는 서로 별개의 존재가 서 있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무엇인가를 나누어주기에 여념이 없고 국민들은 국가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요구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진실은 이것이다. 즉 국가의 손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국가가 늘 국민들에게 주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국가는 양손을 가지고 있다. 한손으로는 국민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뺏어다가 다른 손으로는 그것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한손은 친절하지만 다른 한손은 거칠다. 친절한 손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쪽 손이 거친 행동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뺏어만 가고 다시 돌려주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의 손은 착복을 하려는 습성이 있다. 우리는 실제로 그같은 일을 보아왔다. 국민들에게 나누어준다는 명복으로 거두어가 놓고서는 그 일부, 또는 전부를 착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 있다. 국민들로부터 거두어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국가가 국민들에게 나누어준 적은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반드시 그럴 것이다. 따라서 국가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거지처럼 구걸해야 할 이유가 없다. 국가가 누군가에게 특별한 이익을 주는 행위는 반드시 사회 전체에 그것보다 더 큰 손해를 끼치게 마련이다.

따라서 국가는 악순환의 굴레 속에 빠지게 된다. 만약 시민들의 요구를 거절하게 되면 무능하고 사악한 국가(또는 정부)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그 요구들을 들어준다면 국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하고, 베푸는 혜택보다 더 많은 손해를 끼쳐야 하며, 결국 전반적인 불만수준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정부에게 혜택은 많이 주고 세금은 거두지 말라고 요구할 것이며 국가도 그런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게 된다. 하지만 그같이 모순된 요구나 약속은 결코 실현될 수 없다.

결국 그같은 기대가 좌절되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이처럼 불가능한 것을 이루어주겠다고 헤픈 약속을 하는 국가와 실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국민들 사이에 두 종류의 인간들이 끼여든다. 야심가들과 몽상가(유토피아주의자)들이다. 그들이 할 일은 뻔하다. 그들은 대중들의 귓속에다가 이런 선동적인 말을 속삭인다.

"지금 권력을 잡은 자들이 당신들을 속이고 있소. 만약 우리가 권력을 잡게 된다면 당신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안겨줄 것이오. 그러면서도 당신들은 세금 한푼 낼 필요가 없을 것이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일단 혁명이 성공하고 나면 대중들은 새로운 집권자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해 올 것이다.

"나에게 일자리를 주시오. 그리고 먹을 것과 구호물자와 저리융자와 무상교육의 혜택을 주시오. 식민지도 만들어야 하오. 또 세금을 거두지 않겠다는 약속도 지키시오."

새로 탄생한 정권이라고 해서 과거의 정권과 무엇이 다를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약속을 할 수는 있지만 누구든 그것을 지킬 수는 없다. 새 정부는 자신들이 추진하는 야심찬 계획들이 결실을 맺을 때까지 시간을 벌려고 노력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계획을 실천해가려 한다. 초등교육의 범위를 확장해보려고도 하고 1830년에 했던 것처럼 음료품세를 약간 내려보려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자가당착을 피할 수가 없다. 시혜를 베풀려고 하면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야만 할 것이고, 세금을 줄이려고 한다면 시혜를 줄여야만 한다.

이처럼 낮은 세금과 많은 시혜라는 두 가지의 약속은 항상 상충되는 관계에 있다. 이같은 모순을 피하기 위해서 요즈음처럼 빚을 지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를 미리 당겨다 쓰는 것일 뿐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조그마한 이익을 위하여 미래에 엄청나게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신용질서를 송두리째 위협하는 파산의 위험을 높여놓는 것이기도 하다.

이 지경에 처한 새 집권자들이 취할 다음의 행동은 무엇일까? 그들은 반대자들을 억압하는 일에 착수한다. 권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경찰력을 재편하고 자유로운 여론을 질식시킨다. 과거에 내세웠던 약속들을 폐기하고 인기에 연연해 하지 않고 통치해나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다시 말해서 글자 그대로의 통치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다른 선동가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하나도 없다. 똑같은 환상을 팔아서 집권을 하고 똑같은 질곡에 빠져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2월 혁명이 만들어진 경위이다. 더구나 그 당시는 사회주의의 교리가 판을 치고 있던 터라 대중들이 탐닉했던 환상의 정도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심각했다. 사람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시혜와 낮은 세금부담을 공화국 정부에 요구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많이 속아왔지만, 앞으로는 절대 다시 속지 않으리라. 그러기 위해서 두눈을 부릅뜨고 있으리라.'

이런 상황에서 당시의 임시정부가 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아뿔사!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같은 상황에서 걸었던 길, 즉 시간을 벌기 위해서 약속을 남발하는 일을 그들도 예외없이 저지르고 말았다. 게다가 약속의 현실성을 더한다는 구실로 더욱 구체적인 약속들을 남발하고 말았다.

"복지혜택을 누리고, 근로시간은 줄일 것이며, 구호물자의 공급과 저리융자, 무상교육의 범위, 농업보조금도 늘릴 것이다. 개간도 더 많이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소금과 음료와 육류와 편지에 부과되는 세금부담을 낮출 예정이다. 다음번 국회가 열리면 이와 관련된 모든 법안들이 통과될 것임을 약속한다."

그렇게 해서 국회가 열렸다. 그러나 서로 모순되는 법안들을 통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임시정부가 제안했던 정책안들은 하나씩 둘씩 철회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실망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뭔가 하는 시늉은 내야만 했다. 실제로 지켜진 약속도 일부 있기는 하나 많은 경우 이름만 있고 내용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현정부는 그나마의 약속이라도 지키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세금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몇 달 있으면 새 정부의 공무원들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상속재산이나 소득이나 농업소득 등에 대해서 세금을 매기려고 할 텐데 그때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슬픈 상념에 잠겨본다. 오, 하나님, 나의 예감이 틀리기를 바라나이다. 하지만 선동가들이 이미 벌여놓은 일을 어떻게 수습하겠나이까?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발표된 몽타냐르[1848년 당시 사회민주당의 일원이었음. 물론 그 이름 자체는 프랑스혁명 당시 'Danton'과 'Robespierre'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호전적인 산악당(Mountain Party)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의 마지막 선언문을 한번 읽어보시라. 약간 긴 선언문이긴 하지만 그 핵심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야 하며 동시에 되도록 세금부담은 가볍게 해야 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전술은 항상 같은 내용이다. 결국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무상으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그 교육은 국민 각자가 처한 필요와 직업과 능력에 적합한 내용이 되도록 가능한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신과 동류인간들과 자기자신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또 국민 각자의 감정과 적성과 재능을 개발시켜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국민 각자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높여 주고, 자신의 관심이 무엇인지,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 각자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강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국가는 국민들에게 문학과 예술, 선조들의 지적 유산, 그리고 모든 지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다주는 재난과 화재와 홍수 등(이 하찮은 '등'이라는 단어 속에 얼마나 엄청난 것들이 포함되는지 아는가?)으로부터의 피해를 보상해주어야 한다.

국가는 자본과 노동간의 관계에 개입해야 하며 대출금의 분배에도 관여해야 한다. 국가는 농업을 장려하고, 또 외국 농산물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한다.

국가는 철도와 운하와 광산을 국유화해야 한다. 그리고 전문적인 행정능력을 이용해서 그것을 잘 관리해야 한다.

국가는 유망기업을 찾아내어 장려해주고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국가는 대출자금의 적정한 분배에 관여함으로써 산업과 농업의 성공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국가는 오늘날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든 간에 위의 정책들을 밀고 나가야만 한다. 그래서 외국에 대해서는 늘 위협적인 태도를 유지해야만 한다.

성스러운 연대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그리고 공화국 프랑스의 선조들과도 연결되어 있는 우리 정책발안자들은 과거의 전제정권들이 만들어놓은 국가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우리가 누리고 있는 희망을 압제에 시달리던 국민들을 대신해서 다른 나라에도 전파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영광스런 군대가 다시 한 번 자유의 군대가 되기를 갈망한다.

몽타냐르 정부하에서는 친절한 한쪽 손이 많은 시혜를 베푸느라고 몹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주머니로부터 세금을 거두느라고 거친 다른쪽 손도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기만당하지 마라. 선동가들은 당신들에게 거친 손은 숨긴 채 늘 친절한 다른쪽 손만을 보여준다. 만약 두손을 동시에 아 보여주어야 한다면 선동가들이 설 자리는 없어지고 만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만 된다면 그들의 통치기간은 납세자들에게 축제의 나날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금은 사치품에만 부과될 것이다. 생활필수품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도는 돈만을 거두어다가 시혜를 퍼부어준다는데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몽타냐르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세금을 내는 일은 더 이상 강제성을 띄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동포애에 겨워 세금을 내게 될 것이다."

아, 멋진 날들이여!

나는 사람들이 유행처럼 동포애라는 말을 아무 데나 갖다붙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금 거두는 일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이 글은 그들의 제안을 더욱 구체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소금이나 음료품 등의 생활필수품에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폐지할 것을 제안한다.

부동산세와 물품입시세와 면허발급 수수료의 전면 개혁을 요구한다.

서류와 경비를 줄여서 인지세를 낮춰라.

부동산세와 물품입시세와 면허수수료와 인지세와 소금세와 음료세와 우편세 등 모든 정부의 수입이 사라져야 한다. 이 신사분들은 거친 한쪽 손은 숨기고 친절한 다른쪽 손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비밀을 알아채고 말았다.

정말 그렇다. 생각이 있는 독자라면 내 질문에 답을 해보라. 그들의 생각을 어리석다고, 아니 위험할 정도로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가에 내는 것은 없이 많은 것을 받기만 해야 돼'라는 식의 모순된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데, 어찌 혁명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몽타냐르들이 정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그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남발한 약속들의 희생제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믿지 못하겠는가.

시민들이여, 이것만은 기억해두시오. 역사에는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두 가지 종류의 정치체제가 등장하오. 그리고 두 체제 다 그럴듯한 논리로 무장하고 있소. 그 중 하나는 국가의 역할이 큰 체제요. 국가가 많은 것을 베풀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뺏어가기도 하는 체제요. 반면 이 두 가지가 다 최소한도로 억제된 체제도 있소. 우리는 이 두 가지 가운데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오.

물론 이것 말로 제3의 체제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기는 하오. 거두어가지는 않고 주기는 하는 체제 말이오. 하지만 그처럼 어처구니없고 모순덩어리이며 위험하기까지 한 주장이 어디 있겠소.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다른 모든 형태의 정부들을 비난하고 당신들로 하여금 그런 정부를 뒤집어엎으라고 부추기지만 결국 그들은 당신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자기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오.

우리의 생각을 말할 것 같으면, 국가란 공통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조직된 경찰력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오. 억압과 상호약탈의 수단이 아니라 국민 각자에게 노력의 결과를 지켜주고, 정의와 안녕을 보장해주는 경찰력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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