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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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예술의 질적 저하를 초래했는가?

해외 칼럼
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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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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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n Mises: "Abolite la proprietà e il potere si farà totalitario" - IlGiornale.it

Ludwig von Mises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20세기에 가장 명성이 높았던 경제학자이자 사회철학자 중 한 명이다. 길고 생산적인 삶을 살면서, 그는 개별 행위자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위하여 목적 지향적으로 행동한다는 근본적인 공리(axiom)에 바탕을 둔 통합된 연역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을 발전시켰다. 비록 그의 경제분석 자체는 —경제학자가 가진 가치와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가치중립적(value-free)’이지만, 미제스는 인류의 영속적 발전을 위해 지속 가능한 유일한 경제정책이 무제한적인 자유방임(laissez-faire), 자유시장, 결코 방해받지 않는 사유재산권(the right of private property)의 행사, 그리고 정부의 역할을 그 영토 내의 시민과 재산의 보호로 엄격하게 제한함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주제 : #미디어와_문화

원문 : Literature under Capitalism (게재일: 1956년 6월 15일)
번역 및 편집 : 김경훈 연구원


문학작품을 위한 시장

자본주의는 많은 사람들에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신분사회의 엄격성이 모든 사람에게 관례에 따라 획일적으로 실천하기를 요구하고 전통적인 행동양식에서의 어떠한 이탈도 용인하지 않는 반면, 자본주의는 혁신하고자 하는 사람을 고무한다. 관습적인 절차의 형식에서 성공적으로 이탈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이익이며, 진부한 방법에 나태하게 매달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형벌이 손실이다. 개인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자유롭게 표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의 자유는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시장경제에서 도출되는 민주주의의 결과이며, 따라서 이것은 결정권이 있는 소비자들이 각 개인의 업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장에서 보상받는 것은 업적 자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수 많은 고객들이 좋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만일 구매대중이 우둔한 나머지 어떤 상품의 가치를 올바로 평가하지 못한다면 그 생산품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모든 노력과 비용을 헛되게 소비한 셈이 되어버린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대중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한 대량생산체제이다. 자본주의는 보통사람에게도 풍요를 베풀어준다. 옛날엔 도저히 불가능했던 차원까지 일반적인 생활수준을 향상시켰다. 몇 세대 전에는 소수의 엘리트만이 누렸던 기쁨을 수많은 사람들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두드러진 예는 모든 종류의 문학을 위한 광대한 시장의 등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문학은 수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종의 상품이다. 사람들은 신문, 잡지, 서적을 읽고 방송을 듣고 극장을 찾는다.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저술가, 연출가, 배우들은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인다.

사회분업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직업분화는 문학가라는 부류, 즉 저술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낳았다. 이러한 저술가들은 여타의 많은 전문가들이 그들의 서비스나 생산물을 팔듯이 자신들의 서비스와 노력의 산물을 시장에서 판다. 그들은 저술가로서 그들 나름의 능력을 갖추고 시장사회라는 협동체와 견고하게 통합되어 있다.

자본주의시대 이전의 저술은 수지가 안 맞는 기예였다. 대장장이나 구두수선공들은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저술가들은 그렇지 못했다. 저술이란 수양이나 취미였지 직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유한 사람들, 왕, 대공이나 정치가, 귀족들과 여타 별도의 생활수단을 가진 신사들이 추구하는 고상한 취미였다. 그것은 주교의 사제, 교수와 장군들이 여가를 틈타 하는 일이었다.

억누를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저술을 하는 가난한 사람은 우선 저술업 이외의 다른 수입원을 확보해야 했다. 스피노자는 렌즈 가는 일을 하였으며, 밀(Mills) 부자는 동인도회사의 런던사무소에서 일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난한 저술가들은 예술과 학문을 좋아하는 부유한 친구들의 후원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왕들과 영주들은 앞을 다투어 시인과 작가들을 후원했다. 궁정은 문학의 보호처였다.

이러한 후원제도가 저술가들에게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부여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후원자들은 그들의 피보호자들에게 자신들의 철학, 취향이나 논리의 기준을 감히 강요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종종 교회당국에 대항하여 열성적으로 이들을 감쌌다. 적어도 어떤 저술가가 하나, 혹은 몇 개의 궁정에서 추방당했을 때, 그는 반대입장의 궁정에서 피난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신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전제군주의 은총에 매달려 있는 철학자, 역사가, 시인들의 모습은 교훈적이지 못했다. 과거의 자유주의자들은 문학작품들을 위한 시장의 등장이 왕이나 귀족들의 후견으로부터 인간들을 해방시킨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고 찬양했다. 그 후로 이들은 지식계급의 견해가 가장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놀라운 예상인가. 이것은 새로운 개화기가 밝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서점가에서의 성공

그러나 이러한 판단에는 몇 가지 착오가 있었다.

저술은 의견의 일치가 아니라 의견의 불일치가 그 원칙이다. 모든 사람이 찬성하고 듣기 원하는 것만을 되풀이할 뿐인 저술가는 그리 대단한 존재가 못된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혁신자, 반대자, 미개척 분야의 선구자, 즉 전통적인 기준들을 거부하고 낡은 가치와 관념을 새로운 것으로 대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반드시 반독재, 반정부적이며, 대중들이 책을 사주지 않는 저술가이다.

마르크스와 니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사후의 명성이 대단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인세말고 다른 수입원이 없었다면 아마 아사했을 것이다. 반체제주의자와 혁신자는 일반시장에서 그들의 책판매를 거의 기대할 수 없다.

서점가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대중취향의 소설가들이다. 그러나 일반구매자들이 언제나 양질의 책보다 저질의 책을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들은 판별력이 부족한 탓으로 어떤 때는 저질의 책도 곧잘 사들인다. 오늘날 발간되고 있는 소설과 희곡들은 대부분이 시시한 작품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해마다 수많은 책들이 씌어지고 있는데도 별로 기대할 만한 것이 없다. 만일 발간된 1천 가지 책 가운데 한 가지라도 과거의 위대한 저작과 필적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우리의 시대는 언젠가는 문학이 꽃핀 시대라고 불리워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그들이 일컫는 문학의 쇠퇴를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기를 좋아한다. 아마도 이들은 밀을 체질하여 껍질을 가려내는 식의 자신의 몽매함을 탓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이들이 약 2백 년 전 그들의 선배들보다 예리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예컨대 오늘날 모든 비평가들은 스탕달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1942년 스탕달이 사망했을 때, 그는 미미한 존재였으며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했다.

자본주의는 대중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책과 잡지들을 사보게끔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대중들에게 마에케나스(Maecenas)나 칸 그란데 델라 스칼라(Can Grande della Scala)와 같은 문학예술 애호가의 통찰력을 불어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탁월한 책들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과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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