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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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完] 고전적 자유주의 대(對) 아나코-캐피탈리즘: 왜 아나코-캐피탈리즘이 인류의 미래가 되어야 하는가

해외 칼럼
자유주의
작성일
2020-11-2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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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 raíces españolas de la escuela austriaca: Entrevista a Jesús Huerta de Soto - Centro Mises Centro Mises

Jesús Huerta de Soto
헤수스 우에르타 데소토는 현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경제학자이자 정치철학자 중 한명이다. 한스-헤르만 호페, 외르크 귀도 휠스만과 함께 유럽 오스트리아학파 학계의 거두로서, 마드리드에 소재한 후안카를로스 국왕 대학교에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석사 학위 과정을 이끌고 있다. 데소토는 아나코-캐피탈리즘이 이론적으로 가장 우월한 이념이라고 믿는다. 2006년에 영어로 출판한 "화폐, 은행 신용, 경기변동(Money, Bank Credit, and Economic Cycles)"에서, 데소토는 현행 중앙은행 시스템이 사유재산권, 도덕, 그리고 안정된 경제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주제 : #아나코캐피탈리즘

원문 : Classical Liberalism versus Anarchocapitalism (게재일 : 2009년 7월 29일)
번역 : 김경훈 연구원


[1편] 서론
[2편] 불필요한 존재로서의 국가
[3편] 왜 국가주의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한가
[4편] 국가권력 제한의 불가능성
[5편/完] 왜 아나코-캐피탈리즘이 인류의 미래가 되어야 하는가

필자는 이 글에서 고전적 자유주의와 아나코-캐피탈리즘의 이론적, 정치적 분열을 분명히 밝혔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그 자체가 아나코-캐피탈리즘으로 진화하기 위한 자연적인 단계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유일하게 인간의 본성과 진정으로 양립가능한 사회협력의 체계로서의 아나코-캐피탈리즘

국가주의는, 인간본성에 반하는 이념이다. 왜냐하면:

1. 국가가 영향을 미치는 모든 영역(법을 정의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영역을 포함)에서 강제력을 체계적이고 독점적으로 행사하기 때문에,

2. 그리하여 인간본성의 가장 전형적이고 본질적인 표현인 창조성과 기업가적 조정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위에서 보았듯이, 국가주의는, 무책임함과 도덕적 부패를 조장하고 확대한다. 왜냐하면:

1. 인간행위의 초점을 정치권력에 맞추며,

2. 각각의 정부행동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알 수 없다는 불가피한 무지의 맥락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주의의 영향은 국가가 존재하는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비록 고전적 자유주의가 국가의 힘을 제한하기 위해 모든 시도를 다하기는 하지만, 고전적 자유주의는 실현 불가능하고 달성불가능한 유토피아를 목표로 삼는 이념이다.

국가의 힘을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열심이었던 우리의 선조들, 즉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의 "유토피아적 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그들 사상의 논리적 결론이 아나코-캐피탈리즘을 함의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수용하는데 실패했으며, 일관성없는 이념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19세기의 유토피아적이고 순진무구한 고전적 자유주의를, 리버테리언 자본주의, 사유재산 아나키즘, 또는 보다 단순하게 아나코-캐피탈리즘이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우며, 진정으로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형식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시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150년 전에 했던 말을 똑같이 계속 반복하는 것이, 21세기 초에는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거의 20년 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성장은 멈추지 않고 있으며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의 개인적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아나코-캐피탈리즘(즉, "리버테리어니즘")은 법, 정의, 그리고 공공질서를 포함하는 모든 서비스가 전적으로 자발적인 사회협력의 과정(현대경제과학 연구의 중심주제)을 통해 제공되는 자생적 시장질서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인간의 창조성과 기업가적 조정이 추진되는 것에 대한 방해가 없고, 따라서 문제해결의 효율성과 공정성이 증대되며, 폭력에 대한 독점을 가진 조직들(국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갈등, 비효율, 과오조정이 근절된다.

더욱이, 아나코-캐피탈리즘은 국가가 창출하는 부패한 인센티브를 없애고, 대신에 가장 도덕적이고 책임감있는 인간의 행동을 촉진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국가권력의 고삐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폭력을 조직적으로 이용하여 특정 사회집단(선택을 박탈당하고 복종하기를 강요받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어떤 독점적 기구(국가)의 출현을 막는다.

아나코-캐피탈리즘은 인간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본성에 도덕적인 행동 패턴을 갈수록 더욱 내재화하는 능력을 영구적으로 갖추었다고 완전하게 인정할 만한 유일한 제도로서, 그 정의상, 누구도 독점적이고 체계적인 강제력을 행사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요컨대, 아나코-캐피탈리즘 체제 하에서, 어떤 기업가적 계획이라도 충분한 자발적인 지원을 끌어들인다면 시도될 수 있으며, 따라서 역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발적 협력의 환경 속에서 가능한 많은 창조적 해결책들이 고안될 수 있다.

서로 다른 법체계에 근거하여 모든 종류의 보안, 범죄예방, 영토방위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기관들의 역동적인 네트워크를 통하여 국가를 꾸준하게 교체하는 것은, 정치와 과학의 어젠다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일 뿐만 아니라, 21세기에 일어나야 할 가장 중대한 사회변화이기도 하다.

결론: 새로운 패러다임의 혁명적 함의

18세기와 19세기에 앙시앵 레짐에 대항한 과거 고전적 자유주의 혁명과, 오늘날 21세기의 아나코-캐피탈리스트 혁명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연속성이 존재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유토피아적 자유주의가 실패하게 된 배경을 이해했고, 이를 과학적인 자유주의로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너무 순진했으며, 20세기 전체에 걸쳐 결코 달성불가능한 이상을 추구하면서 결국 인류 역사상 최악의 국가주의 폭정의 문을 열고 말았다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안다.

아나코-캐피탈리즘의 메세지는 현저하게 혁명적이다.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결국 혁명적인 것이다: 아나코-캐피탈리즘은 국가를 해체하고 민간기관, 민간협회, 민간단체가 참여하는 경쟁적인 시장과정과 네트워크로 대체하고자 한다. 아나코-캐피탈리즘은 또한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는 수단에 있어서 혁명적이며, 특히 과학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에서 혁명적이다.

a. 과학적 혁명. 한편으로, 경제과학은 모든 사회영역으로 확장된 자생적 시장질서의 일반이론이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과학은 자신이 영향을 미치는 모든 영역(법, 정의, 공공질서 등)에서 발생하는 국가주의에 의한 사회적 불협동에 대한 분석도 포함한다. 또한, 국가를 해체하는 다양한 방법, 아나코-캐피탈리즘을 향한 이행과정, 또 현재 "공공적"이라고 간주되는 모든 서비스를 완전히 민영화하는 것의 효과와 방법에 대한 연구는, 경제과학의 필수적인 연구분야 중 하나이다.

b.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혁명. 국가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난 기업가적 환경에서 가능한 인간의 눈부신 업적, 진보, 발견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정부의 지속적인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문명적 성취가 점점 더 세계화되는 세게에서 발전하고 있다. 그것은 국가주의의 힘으로서는 결코 이룩할 수 없는 정도의 복잡성을 가진 문명적 성취이다. 인간본성으로서의 창조적 힘이 정부의 갑옷에 가장 얇은 틈새에 뚫고 들어가 필연적으로 그 결실을 내놓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단 국가주의를 완전히 없앤다면 우리의 문명은 한없이 팽창할 것이다. 국가가 우리를 제한한다는 비뚤어진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일단 사람들이 인식하게 된다면, 그리고 국가가 우리의 기업가적 창의성의 원동력을 차단함에 따라 매일같이 엄청난 진보의 기회가 제거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면, 인류의 문명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하지만 지금의 우리로서는 결코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미래로의 발전을 바라면서, 사람들은 개혁과 국가의 해체를 요구하는 사회적 소요에 대거 동참하게 될 것이다.

c. 정치적 혁명. 정치적 투쟁은 상기한 a와 b에 기술된 내용보다는 부차적인 것이다. 국가를 민주적으로 제한하려는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의 노력을 계승하여, 우리가 항상 가장 덜 간섭주의적인 대안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나코-캐피탈리스트는 이것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아나코-캐피탈리스트는 자기가 훨씬 더 많은 것을 해야한다는 점을 안다. 아나코-캐피탈리스트는 궁극적인 목표가 국가의 완전한 해체라는 것을 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는 자신의 창의력과 모든 정치적 행동을 매일같이 추진한다. 올바른 방향을 향한 진보는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국가를 완전히 해체한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포기하는 실용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일반 대중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우리는 국가의 해체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점을 항상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추구해야 한다.1

예컨대, 아나코-캐피탈리스트의 정치적 어젠다는 국가의 크기와 권력을 축소하는 것을 포함한다. 모든 영역에서의 지방 및 지역적 탈중앙화, 리버테리언 민족주의, 도시국가체제의 부활, 분리독립을 통해서 말이다.2 또한 소수에 대한 다수의 독재를 막고, 제도적인 투표보다는 점점 더 "발로 하는 투표(vote with their feet, 물리적 이동 등의 자발적 참여나 철수를 통해 개인의 선호를 나타내는 것)"를 증가시키고자 한다. 요컨대, 아나코-캐피탈리스트의 목표는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국가에 예속되지 않고 국경을 넘어 (종교, 사설단체, 인터넷 네트워크 등등으로) 전세계적으로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세상이다.3

더욱이, 정치적 혁명이 피를 흘려야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적 혁명은 사회교육과 발전의 필요한 과정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막는 기만, 거짓말, 그리고 강제를 저지하려는 민중의 아우성에서 비록되는 것이다. 예컨대, 동유럽의 사회주의 종식을 가져온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벨벳혁명은 둘 다 기본적으로 무혈혁명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혁명의 결과를 따라, 현재의 정치체제가 평화롭고4 법적으로5 허용하는 모든 것을 활용해야 한다.

아나코-캐피탈리스트의 이상을 향해, 근본적인 원칙에 입각하여 우리를 이끌어 갈 새로운 길이 끊임없이 발견되리라는 점에서 우리의 미래는 활기차다. 비록 이러한 미래가 오늘날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상의 어느 순간에나, 가장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조차도 깜짝 놀라는 거대한 변화가 예기치 못하게 발생해왔음을 목격할 수 있다. 누가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것을 시작으로 동유럽의 공산주의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5년 전에 미리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역사적 변화는 이제 가속하는 과정에 접어들었으며, 그것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현대사에서 최초로, 인류가 국가를 한 번 그리고 영원히 제거함으로써, 국가라는 것을 어둡고 비극적인 과거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전락시키는, 완전히 새로운 역사의 장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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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문 10번 각주) Jesús Huerta de Soto, "El Economista Liberal y la Política," in Manuel Fraga: Homenaje Académico, vol. 2 (Madrid: Fundación Cánovas del Castillo), pp. 763–88; reprinted at pp. 163–92 of Nuevos Estudios de Economía Política. 예컨대, 현재의 정치적 어젠다에서 리버테리언 자본주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는, "Libertarians Rising," which appeared in the Essay section of Time magazine in 2007. Michael Kinsley, "Libertarians Rising," Time (October 29, 2007), p. 112 이다.
  2. (원문 11번 각주) Jesús Huerta de Soto, "Teoría del Nacionalismo Liberal," in Estudios de Economía Política, 2nd ed. (Madrid: Unión Editorial, 2004); idem, "El Desmantelamiento del Estado y la Democracia Directa."
  3. (원문 12번 각주) Bruno S. Frey, "A Utopia? Government Without Territorial Monopoly," The Independent Review 6, no. 1 (Summer 2001): 99–112.
  4. (원문 13번 각주) 우리는 폭력 행위가 "정당한 것"이 되기 위해 충족시켜야 하는 엄격한 조건에 대한 황금시대의 스페인 스콜라학자들의 처방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1.) 가능한 모든 평화적 수단과 절차를 먼저 시도해야 하며, (2) 그 행위는 방어적(구체적인 폭력 행위에 대한 대응)이어야 하고 결코 공격적이지 않아야 하며, (3) 당한 피해에 비례하는 수준이어야만 하며, (4) 무고한 희생자의 발생을 피하기 위한 모든 시도를 다 해야 하며, (5) 합리적인 성공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자살과 다름없다.) 이것들은 현명한 원칙이며, 여기에 더해 나는 참여와 자금조달이 전적으로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이러한 원칙들 중 하나라도 반하는 어떠한 폭력 행위도 자동적으로 부당한 것으로 간주되며 공개적으로 객관적인 최악의 적으로 상정된다. 마지막으로, 후안 데 마리아나 신부(Father Juan de Mariana)의 폭군에 대한 정당한 살해 이론도 관련이 있다. Juan de Mariana, De Rege et Regis Institutione (Toledo: Pedro Rodríguez, 1599).
  5. (원문 14번 각주) 라스바드가 지적한 바 처럼, 현행법을 어기는 것(대체로 행정명령을 어기는 것)이 딱히 바람직한 것은 아닌데, 이러한 행위는대부분의 경우 편익보다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