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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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를 읽었다며 떠벌리는 정치인을 믿어선 안된다

해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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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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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an McMaken
라이언 맥메이큰은 미제스 연구소의 편집장이다.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였고, 콜로라도 주정부에서 10년 동안 주택 문제를 담당하는 경제학자로 근무하였다.

주제 : #자유주의전략

원문 : Rand Paul, Democracy, and the Ghost of Reagan | Mises Wire (게재일 : 2015년 4월 7일)
번역 : 김경훈 연구원



옛날에는 정치인이 어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를 언급하는 것이 매우 충격적이고 놀라운 일이었다. 그 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하이에크를 많이 언급하기 시작하면서, 하이에크는 "자유 우파"를 자칭하는 사람이 자신의 지성을 증명하고 싶을 때 인용할 수 있는 "안전자산" 경제학자가 되었다. 하이에크보다 훨씬 더 "하드코어한" 자유시장 사상가들에 대한 언급은 여전히 드물었지만, 보다 시간이 지나자 정치인들은 보다 급진적인 사상을 따르는 추종자들도 끌여들일 필요성을 느꼈고, 공화당의 연방하원의원 미셸 바크먼(Michele Bachmann)은 자신이 해변에서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저작을 즐겨읽는다고 선언했다. 뒤이어 공화당의 연방상원의원 테드 크루즈(Ted Cruz)는 다음과 같이 밝히며 자신이 이토록 똑똑한 사람임을 자랑했다: "나는 경제교육재단(FEE)의 학생 그룹에 속해 나의 10대 시절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프레데리크 바스티아, 그리고 루트비히 폰 미제스같은 리버테리언 보수주의 아이콘들을 공부했습니다."

만약 정치인들이 미제스와 라스바드를 인용할 필요를 느끼고, 선거 연설이나 인터뷰에서 라스바드를 거론함으로써 정치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결론내린다면, 그것은 큰 진보다. 실제로, 요즘에 미제스와 라스바드는 일반 대중도 어느정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종종 언급되곤 하는데, 이는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괄목할 만한 변화이자,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유권자  집단이 정치적 가치를 가지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부류의 정치인들이 그렇게 많다고는 여전히 말할 수 없으며, 또 과거의 선례를 살펴본다면, 소위 "자유 우파" 정치인들의 언변과 실상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 곧 명백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제스 연구소는 비정치적인 기관이다. 따라서 당신은 Mises Institute에서 정치인에 대한 어떤 지지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현장의 관찰자로서, 미제스 연구소는 항상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이 정치적 수단으로서 정치인들에게 어떻게 이용되고 또 악용되는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는 항상 "나는 미제스를 읽었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의 진실성을 염두하며 살펴보고 있다. 정치인들이 항상 진실만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 정치인에 대한 이견들

2015년 4월 7일, 론 폴의 아들이자 공화당의 연방상원의원인 랜드 폴(Rand Paul)은 대선 출파를 선언하였다. 우리는 그를 지켜볼 필요가 있는데, 랜드 폴이 하이에크, 미제스, 라스바드의 작품에 상당히 익숙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뉴요커(The New Yorker)" 잡지에 저널리스트 라이언 리짜(Ryan Lizza)가 기고한 바에 따르면:

학창시절, 랜드 폴은 아인 랜드, 하이에크, 그리고 미제스의 제자인 머레이 라스바드에 대한 글을 학급신문에 기고하곤 했다.

또 자신의 저서에서,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신봉해왔던 몇몇 리버테리언 사상가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인 랜드는 정부간섭의 가장 영향력있는 비판자 중 한 명이자, 개인의 자유의지를 옹호한 인물이다.",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은 모든 진지한 보수주의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미제스의 제자 머레이 라스바드는 나의 생각을 형성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랜드 폴은 라스바드와 다른 이들을 포용하려는 동시에, 리버테리언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는 눈치를 보며 그들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지난 2015년 2월 그는 하이에크를 인용하며 경쟁하는 민간화폐가 좋은 생각이라고 제안했고, 그의 대선 캠페인이 비트코인 기부를 받을 것이라 확언하면서, 아마 리버테리언으로 추정되는 집단에게 우호적인 제스쳐를 표했다.

여하튼 랜드 폴의 어떤 행보도, 그의 견해(신실한 신념이거나 그냥 정치적인 책략에 불과할 수도 있음)가 구체적인 공공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한 명의 유력 정치인이 "하이에크""상품화폐"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선거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리버테리어니즘의 원칙을 지키는 많은 사람은, 랜드 폴이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및 리버테리언 이론가들을 포퓰리즘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석할 것이다. 이러한 고찰들은 우리를 로널드 레이건의 문제로 이끈다. 레이건의 대선 캠페인은, 자유시장과 건전한 화폐를 옹호하고, 정부의 규모와 역할을 대폭 축소하고자 시도했던, 최후의 대규모 정치 이슈였다. 클린턴과 오바마를 포함한 모든 대통령 후보가, 최소한 일부 영역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더 줄이고 세금을 낮추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레이건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을 자주 언급하거나, FEE에서 발간하는 잡지인 "프리맨(The Freeman)"을 읽는 모습을 홍보용 사진으로 사용하며 매우 헌신적이고 일관성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랜드 폴의 대선 캠페인이 진행될수록, 랜드 폴이 자유시장에 대해 전적인 헌신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를 지지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의미있는지를 놓고 많은 자유시장 지지자가 서로를 공격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선거운동에서 정치인이 하는 말이 그가 당선된 이후에 실제로 어떻게 통치하는지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싸움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레이건으로부터의 경험

랜드 폴의 잠재적인 지지자들이 그를 지지하는 것을 꺼린다면, 아마 그들은 레이건으로부터의 경험 때문에 그럴 것이다. 레이건이 많은 자유시장 운동가를 소심하게 만들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라스바드는 레이건의 지지자가 되기를 거부한 사람 중 한 명이었으며, 1980년 대선 당시에 이렇게 썼다:

주정부의 성장을 막았다는 그의 허세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다르다. 레이건이 주지사로 재임하던 8년 동안 캘리포니아의 예산은 122% 증가했으며, 이는 그의 선임 주지사로 2번의 임기를 지냈으며, 예산을 흥청망청 쓰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좌파 리버럴 팻 브라운(Pat Brown)이 130%의 예산 증가율을 기록한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수치이다. 레이건의 캘리포니아 행정부는 주정부 관료조직을 15만 8천명에서 19만 2천명으로 약 22%나 증가시키기도 했다.

레이건의 세금 기록도 크게 위안이 될 수는 없다. 그는 취임 첫해에 거의 10억 달러에 이르는 규모의 세금 인상을 결정하며 주지사 임기를 시작하였다. 이는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큰 세금 인상이었다. 소득세, 판매세, 기업세, 은행세, 주류세, 담배세 등이 모두 극적으로 인상됐다. 1971년과 1972년에 두 차례 더 세금을 인상하며 각각 5억 달러와 7억 달러의 추가 수입을 올렸다.

레이건이 8년의 임기를 마친 후, 주 소득세는 개인소득 1000달러당 7.68 달러에서 19.48달러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또 1인당 개인 소득세 징수 순위에서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 20위였으나 13위로 올랐고, 1인당 법인 소득세 징수 순위 역시 4위에서 1위로 상승했다. 새크라멘토 소재의 입법분석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존 비커맨(John Vickerman)이 말하길, "분명하게도, 레이건 정권 하에서 세금은 증가했다. 달러의 인플레이션율을 고려한다고 해도 상당한 증가였다. ... 그 성장률은 전임자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레이건은 지금 캘리포니아 주의회에 발의된 감세안과 감세 대중운동을 지지하며 어느 정도 공적을 가로채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주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상황은 매우 달랐다. 1968년과 72년에 있었던 비슷한 계획에 맞서 레이건은 격렬하게 싸웠다.

레이건의 대통령 임기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인 7년 후, 라스바드가 쓰기를:

레이건은 1981년에 세금을 대폭 감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세금을 인하하지 않았다. 고소득층의 세율이 인하된 것은 사실이지만, 서민층의 세금은 감소하기는 커녕 오히려 증가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소득세율이 인하된 수치를 아득히 초월하는 수준의 다른 두 가지 형태의 증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소득계층의 점동현상(bracket creep)1"이다. 즉, 조용하고 점진적이지만 대단히 효과적인 인플레이션을 통한 은밀한 세금 인상이 있었다. 공식적인 세율은 일정하게 유지되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즉 비례적으로 더 많이 내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바로 사회보장세이다. 사회보장을 명목으로 거두어지는 세금은 계속 증가했고, 이 때문에 전반적인 세금은 소득세율의 인하에도 불구하고 더 늘어났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사회보장제도가 파산 직전인 것으로 인식되자, 레이건은 사회보장을 초당적 의제로 설정하고 지켜내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의 의장으로 대표적인 레이건주의자인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을 영입했다. 물론 여기서 "지킨다는 것"은, 더 높은 사회보장세금을 의미한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1981년의 허울뿐인 감세 이후, 세금은 레이건 행정부의 승인을 받으며 매년 상승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뛰어난 수사적 감각 덕분에 이는 증세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대신에, 세금 인상은 (반드시 내야하는) "요금의 증가", (모든 사람이 분명히 고치기를 원하는) "허점 메꾸기", "엄격한 국세청 집행", 그리고 심지어는 "정부수익의 증대"라는 기발한 다른 이름들로 불리게 되었다. 레이건의 임기 내내 정부 세입이 엄청나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레이건주의자는 이를 알지 못한 채 그들이 숭배하는 위대한 대통령이 세금 인상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라고 믿으며 매일 밤 두 발을 뻗고 숙면에 취한다는 점을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리버테리언 작가 제프 리겐바흐(Jeff Riggenbach)를 인용하자면, 이 모든 일은 레이건이 대선 출마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

레이건은 "연방정부의 규모와 영향력을 억제하는 것이 나의 대선 출마 의도"라며 소리쳤다. "지금 우리는, 정부를 그것의 원래 목적으로 되돌려야 하며, 우리가 마주하는 징벌적인 세금 부담을 가볍게 만들어야 할 시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이 우리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며, 이러한 원칙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이 없을 것입니다."

"결코 타협이 없을 것입니다"라는 그의 말이 우리의 눈살을 가장 찌푸리게 하는 부분일 것이다. 정치에 능통한 사람이라면 그의 말과 행동이 상당히 달랐다고 판명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대중은 없다

레이건이 타협을 한 이유는 결국 그가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재선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해야만 했다. 그는 세금을 인상했고, 정부 지출을 늘렸으며, 많은 사안에서 대체로 더 큰 정부를 지지했다. 왜냐면 유권자들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당선과 재선의 기술은 시민사회의 여러 집단을 가능한 많이 만족시키는 기술이다. 만약 랜드 폴이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몇몇 유권자 집단을 만족시켰다면, 여전히 만족시켜야 하는 다른 유권자 집단이 있음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랜드 폴이 특정집단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을 줄이겠다고 하거나, 국방비를 삭감하겠다고 말한다면, 그는 특정집단이나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랜드 폴이 루트비히 폰 미제스를 언급함에 따라 인구의 11%에 상당하는 리버테리언 계층에게 상당한 점수를 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러한 언급은, 지난 몇 년동안 국방비 지출이 삭감되었다거나, 사회보장제도의 "신탁자금"을 결코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선동에 속아 넘어간 유권자들에게는 표를 받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진정한 변화의 길이 더 많은 자유시장 정치인들을 후원하고, 그들을 매개로 하여 새로운 법을 통과시키거나 정부 지출을 줄이는 등의 실질적인 정치행동에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유권자 인구의 대부분이, 불태환화폐, 막대한 적자지출, 전세계에 대한 외교적 간섭, 공공의료보험 공급, 그리고 모든 사업적 결정의 미시적 조정에 대한 정부간섭 등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반정부주의적 수사법은, 1980년대에 레이건이 말로만 지껄였던 것과 크게 다를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유권자들이 정부규모를 줄이는 것을 실제로 원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정책을 표방한 정치인들은, 정부를 줄이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경력의 사형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사실, 오늘날 미국에서 강경한 리버테리언 유권자 집단은 1920년대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큰 규모를 보이고 있다. 이는 주로 론 폴의 정치운동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 자유방임주의를 위한 지적인 중심지로서의 미제스 연구소의 존재 덕분이다. 그래서, 아마 이번에 우리는 다른 결말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리버테리언 운동의 견실한 성장 덕분에, 레이건의 가짜 개혁 대신에 진정한 개혁이 추진될 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론조사와 유권자들의 평균적인 이념을 보면 아직 리버테리언 정치는 갈 길이 너무 멀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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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주: 브래킷 크리프라고 부른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명목소득 증가로 의도치 않게 발생되는 증세를 말한다. 즉, 납세자의 실질소득 상승과는 관계없이 물가가 올라 증세가 일어나는 현상이다. 정부가 의도하지도 않았고, 납세자도 인지하지 못하고 늘어나는 세금이기 때문에 ‘감추어진 증세 (Hidden tax hike)’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