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칼럼 및 번역자료 투고 요령 안내

[2편] 화폐제도와 금융제도 - 화폐의 종류, 기능 그리고 기원

국내 칼럼
경제학
작성자
작성일
2020-12-22 21:50
조회
1622

전용덕
*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 경제학 박사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경기변동

편집 : 전계운 대표
  • 이 글은 전용덕 아카데미 학장의 2007년 저서 <권리, 시장, 정부> 제4장 "화폐제도와 금융제도"에서 발췌했다. 
[1편] 시작하며
[2편] 화폐의 종류, 기능 그리고 기원

[3편] 화폐의 정의
[4편] 대출은행업과 예금은행업
[5편] 부분지급준비자유은행업의 문제점과 폐해

[6편] 중앙은행업의 기능과 폐해
[7편/完] 화폐와 금융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

편집자주: 경제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제스 연구소는 2021년부터 전용덕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2015년작 <경기변동이론과 응용>을 홈페이지에 연재하고자 한다. <권리, 시장, 정부>에서 발췌한 이 글은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독자들에게 경기변동이론의 개론을 소개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여러 경제이론 중 경기변동이론은 시장경제의 호황과 불황의 원인을 매우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불황 치유의 정책적 진단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사람들은 대체로 1930년대 초반의 대공황과 200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를 자본주의 체제의 내적 모순 때문에 발생했다고 여기며, 2020년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위기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간섭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학파에 따르면 이러한 진단과 처방은 잘못된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중대한 문제의 근원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있기 때문이다.


(3) 화폐의 종류, 기능, 그리고 기원

(1) 화폐의 종류

화폐는 일반적인 ‘상품’에서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인류가 지폐를 쓰기 전에는 화폐 자체가 상품 가치를 지니는 상품화폐(commodity money)였다. 얼마 전까지도 금이나 은, 또는 둘이 동시에 화폐로 사용되었다. 금과 같은 상품화폐는 ‘진정한 돈’(money proper)이라고 지칭한다.1 금융기관의 금고에 지급준비금(reserve)이 완전히 뒷받침되어 있다면 그것을 ‘화폐대용물’(money substitutes)이라 한다.2 지급준비금이 충분히 뒷받침되어 있지 않은 화폐대용물을 일반적으로 ‘신용수단’(fiduciary media)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는 모든 나라가 영화 또는 지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진정한 돈은 지폐, 즉 현금을 말하고, 현금이 완전히 뒷받침되어 있는 각종 증서(paper notes)는 화폐대용물로, 현금이 완전히 뒷받침되어 있지 않는 것은 신용수단이라고 하겠다.

(2) 상품화폐의 기원과 특징

상품화폐는 물물교환 이후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물물교환은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물물교환 당사자의 ‘욕구의 이중 부합’(double coincidence of wants)이 있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A가 고기를 가지고 생선을 교환하기를 원하고, 반대로 B는 생선을 가지고 고기를 교환하기를 원할 때만 물물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은 쉽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만난다하더라도 교환 대상 물품을 원하는 단위로 분할할 수 있는가도 문제가 된다. 즉, 물물교환의 두 번째 문제는 재화의 불가분성(indivisibilities)이다. 물물교환 체제로는 상업세계의 계산(business calculation)을 할 수 없다. 이것이 물물교환의 세 번째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선진화된 또는 근대화된 산업경제를 감당할 수 없다. 상품화폐는 물물교환의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통해 시장과정에서 기원하는(originate) 것이다.

상품화폐의 특징이나 기능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상품화폐의 기원에서 보듯이 그것은 기본적으로 간접교환(indirect exchange)을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즉, 화폐는 기본적으로 교환수단(medium of exchange)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인류는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을 찾고자 노력했다.3 즉, 인류는 다른 재화에 비해 최고의 판매 가능성(salability)을 가진 것을 찾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시장의 모든 참가자는 상대적으로 더 시장성(marketability)이 있는 재화를 교환수단으로서 선호한다. 당연히 다른 장매물이 없다면 가장 시장성이 있는 재화가 전지구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4그러한 경향을 미제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렇게해서 드디어 단 하나의 상품이 화폐로 남을 때까지 일련의 재화들은 교환수단으로서 시장성의 정도에 따라 하나씩 거부되는 것은 필연적인 경향이고, 그렇게 해서 남은 것은 교환수단으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화폐이다.” 5

셋째, 상품화폐는 결코 국가나 정부의 강압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용된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자발적인 교환 과정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이 점을 멩거(Menger)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개별 경제인이 자신의 경제 이익을 더 잘 인지함에 따라, 어떤 동의 없이, 입법적 강제 없이, 그리고 심지어 공공의 이해도 고려치 않고, 이러한 자신의 이익에 이끌려서 그의 상품과 다른 더 시장성이 있는 재화와 교환한 것이다. 비록 그 재화를 어떤 즉각적인 소비 목적을 위하여 필요치 않는데도 말이다. (중략) 우리가 본 것처럼, 화폐의 기원은 (화폐의 한 형태에 불과한 주화와 구별되는) 전적으로 자연적인 것이고, 그리고 그 결과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화폐의 발달에 입법적 영향이 거의 미치지 않은 것이다. 화폐는 국가의 발명품이 아니다. 화폐는 입법의 산물이 아니다. 심지어 정치기관의 권유가 화폐의 존립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국가의 권력과 독립했던 인간의 경제적 관계들의 결과로서 어떤 재화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화폐로 되었다.” 6 7

넷째, 상품화폐는 상품이며, 특히 주화란 고정된 순도와 무게를 가진 귀금속 조각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화의 순도와 무게를 각인 해주는 의무를 가진 정부가 자주 순도와 무게를 바꿈으로써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거의 잊어버렸다. 그 결과 멩거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마침내 화폐는 (상품이 아니라) 인간의 편리성에 의거해서만 존재하는 완전히 머리 속에서 창안된 것이라고 선언되었다.” 8

다섯째, 상품화폐의 생산과 공급이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상품화폐의 상품성과 관련이 있는 중요한 특성이다. 모든 재화는 가격에 따라 시장 안에서 생산된다(produced from within the market). 화폐도 상품이므로 예외는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상품화폐의 생산과 공급은 시장에서 내생적으로 결정된다(endogenous to the market). 이러한 특징은 화폐의 가격에 따라 시장 내에서 공급이 증감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화폐도 희소성에 따라 공급이 시장 내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인간이 화폐의 공급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예측해야 하는 지폐와 비교하면 두드러진다. 인간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상품화폐의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앞에서 본 화폐의 기원과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여러 가지 화폐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발견할 수 있다. 화폐가 가치저장의 기능을 한다는 주장이 있다. 가치 저장의 기능을 하지 않았던 재화들도 화폐로 사용된 것을 보면 화폐의 가치 저장 기능은 화폐의 진정한 속성으로 볼 수는 없다.9 화폐가 가치척도의 기능을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10 기타 화폐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상품지급준비화폐(commodity reserve currency), 변동환율제, 적정화폐영역(optimal currency areas), 화폐적 안정(monetary stabilization), 법적 제한이 없다면 이자를 낳지 않는 현금이 이자를 주는 증서(securities)로 대체된다는 주장 등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11

(3) 영화 또는 지폐의 기원과 특징

제1절에서 지적했듯이 오늘날에는 모든 나라가 상품화폐를 포기하고 영화를 사용하고 있다. 영화는 소액 단위의 주화를 제외한다면 모두 지폐이기 때문에 영화를 지폐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상품화폐와 비교하여 영화의 기원과 각종 특징 등을 서술하고자 한다.

첫 번째 질문은 영화 또는 지폐를 유통시키는 힘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12 시장 참가자는 교환수단인 화폐를 받아들이는 일에 있어서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자신의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화폐의 효용은 시장성에 달려 있다. 만약 두 종류의 화폐가 동시에 통용된다면 시장 참가자는 사용하기에 덜 유용한 화폐를 발견할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시장성이 더 큰 화폐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시장성이 낮은 화폐는 시장에서 퇴출 당할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만약 상품화폐와 지폐를 아무런 제한도 없는 자유시장에서 동시에 통용시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지폐의 특성을 알 필요가 있다.

상품화폐는 멩거의 지적처럼 상품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만약 화폐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도 상품으로 얼마든지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즉 지폐는 결코 그렇지 않다. 지폐는 그 자체가 상품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누가 다른 용도로 이용하기 위하여 지폐를 구입하는가. 지폐는 순수하게 교환을 매개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시장에서 두 화폐, 더 구체적으로 상품화폐인 금과 지폐가 자유롭게 경쟁한다면, 발권시장에서 지폐는 완전히 퇴출 될 것이지만 어떤 경우라도 금화는 완전히 퇴출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금은 일시적으로 퇴출 되더라도 그 가격이 시장에 존재하여 즉각 화폐로 재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폐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등으로 그 가치가 지극히 낮아져서 시장에서 퇴출 되면 더 이상 화폐로 사용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폐를 대량 발행하여 화폐 가치가 낮아진 경우에는 금을 화폐로 재사용했거나 다른 종류의 지폐를 발행하여 사용한 경우를 자주 본다. 지폐의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지폐를 팔고 부동산, 금 등의 현물을 사용하는 경우도 바로 그런 경우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폐 사용의 이러한 위험을 알아차리자마자 지폐를 포기하고 금을 화폐로 사용할 것이다. 13 14

그러나 오늘날의 발권시장은 더 이상 자유시장이 아니다. 적어도 먼 과거에는 자유시장이었다. 그러나 200년 이내에서는 정부의 발권시장에 대한 간섭은 빈번히 일어났다. 그리고 현재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발권시장이 자유시장인 곳은 없다. 화폐의 제조와 유통은 정부의 독점이거나 특수 정부기관이라 할 수 있는 각국 중앙은행의 독점이다.15 지폐는 법에 의해 통용이 강제되고 예전처럼 금과 같은 금속을 화폐로 사용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있다. 금과의 태환도 허용되지 않는다. 16 법원과 경찰과 같은 각종 정부 기구가 금화의 제조와 유통을 금지하고 지폐의 제조와 유통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지폐의 유통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지만 금의 유통에는 각종 세금이 부과된다. 한 마디로, 발권시장은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는 시장일 뿐만 아니라 화폐의 제조와 유통은 독점이거나 정부 자신이 그 일을 맡음으로써 독점이다. 이것이 상품화폐를 발권시장에서 퇴출시키고 지폐를 통용케 만드는 힘이다. 다시 말하면, 발권시장에서 정부의 간섭이 ‘악화’인 지폐가 ‘양화’인 상품화폐를 구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나라의 발권시장의 현재 상태 즉, 정부에 의한 지폐의 생산과 유통이 그러한 주장을 지지해주는 좋은 증거이다.

두 번째 질문은 소비나 생산을 위하여 쓰임새가 없는 지폐가 어떻게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사용가치가 없는 지폐가 어떻게 화폐로 사용되는가 하는 것이다. 상기해야 할 것은 상품화폐는 그 자체가 상품으로 사용되면서 화폐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 점에 관해서 미제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어떤 경제재가 화폐로서 사용되기 전에, 그 재화는 이미 화폐로서의 기능이 아닌 다른 이유로 교환가치를 획득했음이 틀림없다. 이미 그렇게 사용되었던 화폐는 그 재화의 교환가치의 원천이 사라지는 경우에도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 점을 호페는 다음과 같이 쉽게 다시 설명하고 있다. 처음에는 지금(地金)과 주화가 동시에 사용되면서, 다른 한편 보관과 거래의 청산을 위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하여 진정한 화폐와 화폐에 대한 청구권(claims to money)인 화폐대용물이 교환수단으로 동시에 사용되었다. 진정한 화폐와 화폐대용물의 동시 사용은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예를 들면, 통화공급의 증가나 그에 따른 소득의 재분배와 같은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장 참가자에게 두 종류의 화폐의 동시 사용은 편리함을 더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지폐는 구매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시장 참가자 모두가 화폐대용물이 화폐로서 유효하고 항상 태환 가능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게 되기 시작하면 화폐대용물은 진정한 화폐처럼 의심 없이 거래에 사용된다. “일단 화폐대용물이 구매력을 획득하고, 그리고 나서 (어떤 이유로 태환이 중지됨에 따라) 화폐에 대한 청구권으로서의 그들의 특성을 뺏긴다해도, 그 지폐는 화폐로서 사용되는 것이 지속될 것이다.” 17 이 점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새로운 지폐를 발행하거나 금본위제로 돌아가는 경우, 어느 경우에도 이전의 화폐가치가 새로운 화폐의 기준이 되는 사실에서 잘 볼 수 있다.

세 번째 질문은 어떻게 해서 화폐대용물 또는 지폐만이 남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화폐대용물과 진정한 돈이 시장에서 나란히 사용되더라도 외부 간섭자가 간섭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별다른 문제없이 교환은 계속되고 화폐대용물 또는 지폐만 남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화폐대용물은 기본적으로 진정한 화폐에 대한 청구권이다. 그러한 청구권을 시장 참가자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정한 화폐 없이 화폐대용물만이 남게 되었다 함은 계약의 파기(breach of contract)가 누군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자유시장에서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은 많지 않다. 정부만이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진정한 화폐가 시장에서 사라지고 화폐대용물 또는 지폐만 남게 된 것은 정부의 간섭이나 통제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폐가 교환수단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휠즈만은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사회의 구성원중 일부가 정부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18 정부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란 위기가 닥치거나 문제가 발생할 때 정부만이 그것을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물론 사실상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믿음인 것이다. 정부는 민간의 세금으로 영위된다는 점에서 구조적 또는 제도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을 화폐에 응용하면, 화폐는 중요하기 때문에 시장에 맡기기보다는 정부가 그 관리를 맡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이것이 사실상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이다.19

네 번째 질문은 지폐를 사용하면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은 첫 번째 질문과 관련이 있다. 정부가 화폐시장에서 독점자가 되거나 정부가 지정한 중앙은행이 그 일을 수행토록 함으로써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질문인 것이다. 먼저 지폐의 발행을 통해 정부나 중앙은행이 정부의 재정을 지원한다. 또 필요한 경우에 정부는 대기업을 지원한다. 대기업의 파산은 정치적으로 많은 압박이 되기 때문에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특히 세금보다는 저항을 덜 받는 화폐 발행을 선호한다. 심지어 정부는 경제 시스템 전체를 구제하는 일에 도전한다. 경제위기 이후에 정부가 한 조치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정부는 이전의 과다한 화폐 발행으로 더 이상 화폐를 증가시킬 수 없음을 알자 공적자금이라는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결과는 정도가 다른 인플레이션의 발생을 초래한다. 극한적인 경우에는 경제 시스템이 마비되는 큰 위기에 처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여기에서 지폐의 독점적 발행이 자원비용의 절약을 가져다준다는 프리드만(Friedman)의 주장이 얼마나 유효한가를 알아보기로 한다.20 1971년에 국제간에 금 태환을 정지함으로써 그 때부터 실질적으로 전 세계는 지폐본위제로 들어갔다. 그 이후에 일어났던 현상은 무엇보다도 전 세계적인 영역에서의 인플레이션의 극적인 증가라고 하겠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아시아 신흥시장의 발흥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 빈번해지고 증폭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지난 세기말에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인플레이션과 함께 화폐와 금융의 위기가 국가 경제, 더 나아가 세계 경제를 크게 흔들었다. 지폐의 독점적 발행의 또 다른 폐해는 미래의 가격변동을 예측하는 일이 훨씬 어렵게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폐의 직접적인 발행비용은 아주 적을지는 모르겠지만 지폐 발행으로 인한 범국가적 차원의 손실은 너무 크다고 하겠다. 지폐의 사용이 자원비용의 절약을 가져다준다는 주장은 너무 좁은 범위에서 비용을 산정한 것으로 잘못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폐는 생산과 공급이 정부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은 지폐의 공급이 시장의 외부에서 결정된다는(comes from outside the market)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면 지폐의 공급이 시장에 대해 외생적이라는(exogenous to the market) 것이다. 지폐의 이러한 특징은 인간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치명적인 결점임에 틀림없다.




태그 :  #중앙은행 #주류경제학비판 #호황과_불황 #간섭주의 #화폐와_은행

썸네일 출처 : Barter System

  1. 화폐에 대한 더 자세한 분류는 von Mises, Ludwig, The Theory of Money and Credit, Indianapolis, Liberty Fund, 1981의 부록 B, pp. 525-526 참고.
  2. 화폐대용물을 미제스는 앞의 책에서 화폐증명서(money certificates)라고 칭하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Hoppe, Hans-Hermann et al., “Against Fiduciary Media,” Quarterly Journal of Austrian Economics, vol. 1, no. 1, 1998, pp. 19-50을 따라 화폐대용물이라 부르기로 한다.
  3. 화폐의 기원에 대한 관습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Menger, Carl, Principles of Economics, Glencoe, Free Press, 1950, pp. 260-261 참고. 이 책은 김이석에 의해 <국민 경제학의 기본원리>로 번역되었다.
  4. 각국간 화폐의 교환은 아직도 화폐에 관한 한, 거래가 물물교환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뒤에서 밝히겠지만 화폐의 채택과 사용에 국가가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5. Mises (1981), 45쪽에서 인용.
  6. Menger (1950), 260-261쪽에서 인용. 이태리체는 저자가 강조한 것임.
  7. 흔히 불, 수레, 화폐를 인간의 3대 발명품으로 꼽는다. 그러나 멩거의 지적에 의하면 화폐를 발명품으로 보는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 Menger (1950), 283쪽에서 인용.
  9. Menger (1950), 280쪽 참고.
  10. Menger (1950), p. 281과 Hoppe, Hans-Hermann, “How is Fiat Money Possible?-or, The Devolution of Money and Credit,” Review of Austrian Economics, vol. 7, no. 2, 1994, pp. 49-74 참고. 화폐가 가치의 척도로서 기능 한다는 주장에 대한 탁월한 비판은 앞의 호페(Hoppe)의 논문을 참고.
  11. 이 부분에 대한 탁월한 비판은 Hoppe (1994), pp. 51-55 참고.
  12. 이 부분은 Menger (1950)와 Hülsmann (1998), pp. 19-21 참고.
  13. 같은 조건이라면 전자화폐도 그 가치가 지폐에 연결되어 있는 한 지폐와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이다.
  14. 조선조 말엽에 왕조 정부가 당백전을 발행했을 때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진정한 돈은 상평통보였고, 대원군은 실질가치가 상평통보의 5-6배이면서 액면가치가 100배인 당백전을 발행했다. 그리고 법(legal tender law)을 공포하여 당백전을 대량으로 강제 유통시켰다. 그 결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정부의 강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당백전을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는 당백전 유통을 포기해야 했다. 당시 발권시장은 정부의 독점이었지만 민간의 사주(private coinage)가 성행했기 때문에 화폐의 발행과 유통은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독점이 아니었다. 비교적 자유시장적 환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상품화폐라 할 수 있는 상평통보를 사용하고 지폐만큼 가치가 없는 당백전을 퇴출시킨 것이다.
  15. 어떤 이유로든지 그 자체로서 사용가치가 없는 지폐의 생산이 정부에 의해 이루어지면 지폐 생산은 필연적으로 독점이 된다고 호페(Hoppe)는 주장한다. Hoppe (1994) 참고.
  16. 한국에서는 일본이 1931년에 조선은행권의 태환을 중지했다. 미국에서는 1933년에 금과 지폐의 자국내 태환은 금지되었다. 국제간 거래는 1971년에 닉슨 행정부가 태환을 중지하였다. 한국에 관한 문헌은, 김학은 편저, 󰡔돈의 역사󰡕, 학민사, 1994 참고.
  17. Hoppe (1994), 56쪽 인용. 이태맄체는 원문의 것임.
  18. Hülsmann (1998)을 참고.
  19. 정부가 화폐를 잘못 관리함으로써 사회에 안겨준 폐해에 대한 입문서로는 Rothbard, Murray N., What Has Government Done to Our Money? Auburn,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90을 참고.
  20. Friedman, Milton, “The Resource Costs of Irredeemable Paper Money,”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