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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오스트리아학파를 향한 호페의 여정: 미제스 "인간행동"의 반박불가능한 필연성

해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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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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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Hermann Hoppe
한스-헤르만 호페는 살아있는 오스트리아학파 학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호페는 멩거, 뵘-바베르크, 미제스, 그리고 라스바드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오스트로-자유주의(Austro-libertarianism)의 가장 뛰어난 대표자로서, 칸트(Immanuel Kant)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인간행동학 이론체계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칼 멩거(Carl Menger)에 의해 창시된 오스트리아학파가 미제스의 인간행동학을 통해 완전한 선험적-연역적 이론체계로 탈바꿈했다면,—적어도 지금까지는—최종적으로 호페가 미제스의 방법론을 경제학을 넘어 형이상학과 윤리학에도 적용함으로써, 인식론, 윤리학, 그리고 경제학을 아우르는, 일종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서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 : #오스트리아학파개요

원문 : My Path to the Austrian School of Economics (게재일 : 2019년 12월 6일)
번역 : 김경훈 연구원

[1편] 사회주의와 경험주의의 문제를 깨달은 어린 시절
[3편/完] 반자유주의의 원인과 자유의 미래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화폐수량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화폐수량설은 화폐 공급의 증가는 화폐의 단위당 구매력의 감소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나에게는 이 진술이 논리적으로 참이라는 것이 명백했습니다. 화폐수량설은 그 어떤 "경험적 자료"로도 반증될 수 없는 동시에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현대 경제학을 살펴보면서 학계 전체가 논리실증주의나 포퍼주의 등 비엔나 철학을 사랑한다는 점 역시 알게 되었습니다. 좌파의 폴 새뮤얼슨이나 우파의 밀턴 프리드먼을 막론하고 말이죠. 비엔나 철학에 따르면, 필연적으로 진리이면서 현실에 대해 무언가를 알려주는 진술은 불가능하거나 비과학적입니다. 그들에게 화폐수량설은 (현실에 대한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는) 단순한 동어반복에 불과하거나, 경험적으로 반증가능한 가설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괴리에서 비롯된 지적인 갈등과 짜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하게 해소되었고 나는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험난한 여정 끝에, 나는 미시간 대학교의 도서관에서 미제스의 "인간행동"을 마침내 접하게 되었습니다. 미제스는 핵심적인 경제학 진술의 논리적 성격에 대한 나의 판단을 확인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학을 필연적인 혹은 선험적인 진술의 총체적 체계로서 (그는 이를 인간행동학이라 불렀음) 제시하였고, 비엔나에서 기원한 실증주의 철학의 오류와 참담한 결과를 설명하였습니다. 미제스는 비엔나 사람이었고 논리실증주의는 그의 시대에 탄생한 철학이었기 때문에 미제스는 그들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미제스와 그의 미국 학생들, 특히 머레이 라스바드를 발견함으로써 나는 한편으로 엄청난 지적인 안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인간 지식의 총체적이고 일관성있는 건축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주류 학계 그리고 여론에 대해 엄청난 분노와 실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로부터 점점 더 소외되기 시작했습니다.

지적인 확신과 사회적 소외가 동시에 증가하는 이러한 양면적인 발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학파, 다시 말해 오스트로-리버테리어니즘이 밝혀낸 필연적 혹은 준필연적 진술들을 일부 나열하는 것으로 설명을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공지해야 할 점은, 후술할 예시 각각에 대하여, 그것들이 포퍼적 의미에서 반증가능한 진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자리에서는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이해를 제공해주는 간략한 스케치만을 하고자 합니다.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 (또 그것이 무엇이 결코 아닌지 설명하기 위해) 모든 세부적인 사안을 일일이 따지고 넘어갈 필요는 없으며, 다양한 예시들을 집약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화폐수량설의 논리적 결론은 화폐 공급의 팽창을 통한 사회적 번영의 증가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종이지폐가 얼마나 증가하는지 상관없이, 빈곤이 언제나 어느 곳에서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점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화폐량의 증가의 유일한 결과는 현존하는 재화의 재분배입니다. 즉, 화폐량의 증가는 새로운 화폐의 후기 수령자들을 희생시켜 초기 수령자들에게 혜택을 줍니다.

유사한 경제학적 진술들, 즉 필연적이거나 준필연적인 성질을 가진 진술들을 계속 나열하겠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가치있다고 간주되는 목표의 달성을, 희소한 자원을 수단으로 삼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모든 행동은 행위자의 주관적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입니다.

같은 재화의 더 많은 수량은 더 적은 수량보다 언제나 더 선호됩니다.

주어진 수단을 활용한 주어진 목표의 이른 성취는 늦은 성취보다 우선합니다. [역주: 예컨대, 시외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간다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더 이른 시점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성취해야만 함.]

생산은 항상 소비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도둑질을 제외하는 한) 저축을 하는 사람들(소득을 아껴 사용하는 사람들)만이 번영을 영구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소비한 것을 내일 다시 소비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가격 이상으로 가격을 고정하는 것은 판매불가능한 잉여를 양산합니다. 예시: 최저임금은 강제실업을 일으킵니다.

시장가격 이하로 가격을 고정하는 것은 지속적인 부족의 원인입니다. 예시: 임대료 상한제는 임대주택의 공급부족을 초래합니다.

(고전적 사회주의가 주장하듯이) 생산요소의 사적소유가 없다면, 요소가격은 존재할 수 없으며, 요소가격이 없다면 경제계산은 불가능합니다.

세금, 즉 강제적인 요금청구는 임금 노동자 또는 재산 소유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며, 생산과 자본형성을 감소시킵니다.

어떤 형태의 과세도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과 양립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과세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두 개의 불평등한 계급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순수 납세자이며, 다른 하나는 순수 세금 소비자입니다. 전자에게는 더 많은 세금이 더 많은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후자에게는 더 많은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다수결의 원칙(민주주의)은 자기결정권의 원칙(사유재산)과 양립할 수 없으며, 사회주의를 초래합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지속적인 재분배와 사유재산의 점진적인 침식을 초래합니다.

세금을 통해 지급되는 모든 보조금은, 빈둥거리는 백수에게 돈을 주는 것, 혹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헛발질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나태와 무능을 촉진하고 강화합니다.

자신이 초래한 공공부채의 상환에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 예컨대 모든 정치인과 국회의원은, 지금 당장 이익을 취할 수 있다면 미래의 대중을 희생시키면서 공공부채를 늘리고자 합니다.

국가권력에 의해 집행되는 영토적인 화폐발행 독점권을 가진 사람 혹은 기관들, 예컨대 모든 중앙은행은, 화폐량의 증대가 결코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오직 부의 재분배만을 초래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자기 자신의, 그리고 자신과 가까운 사업 파트너들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돈을 창출합니다.

마지막으로, 무력과 사법의 영토적인 독점권을 가진 사람 혹은 기관들, 예컨대 모든 국가는, (그들이 실제로 그러고 있듯이) 자신이 보유한 힘을 이용할 것입니다. 즉, 국가는 폭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궁극적인 법률의 대표자로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이러한 폭력 행위가 합법적이라고 선언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민간인과 국가 사이의 분쟁 혹은 갈등이 발생한다면, 중립적인 제3자가 선과 악을 결정하거나 유죄 혹은 결백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갈등의 중재자는 갈등의 당사자인 국가에 고용된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싸움의 결과는 확실하고 뻔합니다. 언제나 국가가 승리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필연적 혹은 준필연적 진술들은 여기서 나열한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만, 사회과학의 기본적 통찰을 담고 있는 상기한 진술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통찰력의 사회적 함의를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하게도, 이러한 통찰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적 현실과 노골적으로 충돌합니다. 우리의 현실에는 폭력, 화폐발행의 국가독점, 세금, 순수 납세자와 순수 세금 소비자, 정부보조금이 양산하는 나태과 무능, 다수결의 원칙, 공공부채, 정치인과 국회의원에 대한 면책 특권, 자본 소비(저축 없는 소비), 재산의 재분배, 최저임금과 임대료 상한제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그 누구도 이러한 행위나 제도를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은, 거의 언제나 타당하고, 올바르고, 선하고, 지혜로운 것으로 여겨지며 사람들의 찬양을 받습니다.

정확한 통찰과 사회적 현실 사이의 괴리를 인식한 직후, 나는 기절할 뻔 했습니다. 노골적인 광기가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는 진실이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내가 이러한 통찰에 도달하는 데 필요했던 노력과 그동안 허송세월했던 시간을 떠올리면서 나는 정신이 아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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