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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명품 시장의 성장

국내 칼럼
경제학
작성자
작성일
2021-03-03 18:14
조회
1189

전용덕
*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 경제학 박사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자유시장
  • 이 글은 2021년 2월 14일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에 발표된 글입니다.


멀게는 10여 년 전부터, 가깝게는 5-6년 전부터, 세계 명품 시장에는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는 이 글에서 그런 변화를 분석하고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다만 지면상 중요한 변화만 다룬다. 이 글에서 경제 자료와 일부 내용은 조선일보 2021년 2월 5일자에서 인용한 것이다.

신품 명품 가격은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Chanel)의 '클래식 미디엄 백’ 글로벌 평균가격은 2010년 2850달러(약 320만원)에서, 2013년 4400달러(약 493만원), 2017년 5300달러(약 593만원)를 거쳐, 2020년 12월에는 6800달러(약 761만원)까지 상승했다. 가격이 10년 만에 약 2.4배 상승한 것이다.

다른 회사의 명품 브랜드도 상황은 비슷하다. 루이비통(Louis Vuitton)은 2020년에만 '네오노에 MM’ 핸드백 가격을 세 번이나 인상했다. 구치(Gucci)와 디오르도(Dior)도 2020년에 주요 제품의 가격을 10-30%씩 인상했다. 에르메스(Hermes) 등도 가격을 자주 인상해왔다. 2020년에 코로나19로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명품의 가격은 상승일로이다.

재화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화폐와 관련된 요인들, 수요와 공급, 경제 환경 또는 시장 환경의 변화, 기호의 변화, 기타 요인 등이다. 그리고 화폐적 요인들은 다시 4가지로 세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명품 시장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수요 측면만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다른 요인은 분석의 편의상 일정하다고 가정한다.

신흥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큰 구매력을 지닌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2008년의 세계 경제위기, 2020년의 코로나19로 인한 극심한 세계적 불황 등으로 소득 상위 계층의 소득은 오히려 상승해왔다. 젊은 층은 명품이 더 이상 '부자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앞에서 나열한 요인들은 명품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요인들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것들이었기 때문에 수요 증가가 지속적인 가격 상승을 초래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경영의 세계에서 변화가 예상되는 경우에는 기업가들이 그런 변화에 맞게 공급을 조절할 것이므로 가격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 간 명품의 가격을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이다. 물론 여기에서 중고 명품 시장이라 함은 '온라인’ 시장을 지칭한다. 명품의 오프라인 시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중요성에서 온라인 시장과 비교할 수 없다. 이제부터 '중고 명품 시장 발달→명품 수요 증가→명품 가격 상승'이라는 인과관계를 조명해본다.

먼저 명품 중고 시장의 규모를 알아본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럭셔리 브랜드의 중고 시장은 2018년 162억 달러에서 2026년에는 685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을 전망했다. 8년 만에 약 4.2배 성장할 것을 예상한 것이다. 미국 온라인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인 '더 리얼리얼’의 총 거래액(GMV)은 2017년 약 4억 9천만 달러에서 2019년 10억 달러로 2배 이상 늘었다. 한국 중고 명품 시장도 2012년 1조 원 규모에서 2019년 말 기준 7조원대로 급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중고 명품 플랫폼인 '스타엑스’는 기업가치가 2019년 말 19억 달러에서 2020년 말 28억 달러까지 상승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은 명품 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은 명품을 소비하는 데 드는 '비용’을 나누어 지불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사실상 명품 소비에 드는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예를 들어, 500만 원짜리 명품을 사서 20년간 사용한다면 단순 계산하여 1년에 25만원씩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것이 '옛날식’ 또는 구세대식 명품 소비 방법이다. 만약 그 명품을 2년간 사용하다가 온라인 중고 시장에서 되팔아서 신품 가격의 90%를 받을 수 있다고 가정하자. 이것을 '온라인식’ 명품 소비 방법이라고 하자. 이 경우는 명품 구매 시에 500만 원의 몫 돈이 들고 비용도 2년간 5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은 옛날식 명품 소비 방법과 다르지 않다. 다만 온라인식이 옛날식과 다른 점은 2년간 50만 원만 지불하고 450만 원은 다시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나 후자, 모두 명품의 소비에는 2년간 50만 원이 들지만 전자는 5백만 원을 한 번에 몫 돈으로 지출해야 하지만 후자는 실질적으로는 50만 원의 몫 돈만 필요한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 실제로는 2년간은 몫 돈이 필요하지만 설명의 편의상 무시하기로 한다. 그리고 전자는 20년 간 동일한 명품을 사용해야 하지만 후자는 2년 후에 다른 명품을 소비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다른 경우도 일어나고 있을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처음부터 450만 원하는 중고 명품을 사서 2년 후에 400만 원에 되팔고 그 동안 돈을 모아 다시 신품 명품을 살 수도 있다. 중고 명품만을 구매·소비하는 소비자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명품의 경우 중고가 외양적으로는 신품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명품이 고가일수록 특히 그러하다. 한 마디로, 소비자가 몫 돈을 한 번에 부담하는 것보다는 그 보다는 훨씬 작은 돈을 아주 짧은 기간에 부담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명품 소비에 드는 비용을 낮추어 주는 것이다.

중고 명품 시장이 잘 발달한 상태에서는 중고로 팔 때의 가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신품을 살 때도 중고 가격을 꼼꼼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온라인 중고 명품 매장을 운영하는 번개장터에 따르면, 샤넬 클래식 플랩백, 롤렉스 서브마리너, 에르메스 버킨백, 롤렉스 데이토나 등의 중고 가격은 신품 가격의 90% 이상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인기 한정판의 경우에는 10년 후 가격이 현재 가격의 2배를 넘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가 신품을 살 때 중고 가격을 따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이런 행위 때문에 명품 구매가 '소비’가 아닌 '투자’라고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은 명품 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명품 중고 시장의 발달로 인하여 명품을 소비하는 데 드는 비용이 크게 낮아진 결과로 구매력이 작은 소비자를 대거 신품 명품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20-30대를 넘어, 아직 스스로 돈을 벌 능력도 없는 청소년들이 엄마 카드를 들고 오거나, 어른들에게서 받은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옷과 신발을 사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들의 그런 행위가 비합리적인가, 신세대가 구세대보다 과시욕이 유별난가, 부모의 감시와 감독이 느슨해진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의 그런 행위는 제약된 조건 하에서의 행위로서 '합리적인’ 경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 때문이다. 물론 중고 명품 시장 발달 이전에는 그런 행위가 결코 쉽지 않았다.

중고 명품 시장에서는 명품 소비에 드는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에 중고 명품 시장 자체도 발달한다. 게다가, 중고 명품 시장은 온라인 시장이기 때문에 거래자 간 비용, 즉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은 크지 않다. 중고 명품 시장이 오프라인 시장이었다면 거래비용 때문에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이것은 중고 명품 시장 자체를 발달하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결론적으로, 중고 명품 시장 자체도 발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고 명품 시장이 발달할수록 신품 명품 시장도 성장한다.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이 신품 명품을 소비하는 드는 비용을 낮추어주기 때문이다.

중고 시장 발달의 또 다른 장점은 명품 소비자가 명품에 대한 취향이 바뀌면 언제든지 새로운 취향에 맞게 신제품을 구매하여 소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명품 중고 시장의 발달로 명품을 소비하는 데 드는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품 소비에 드는 비용이 낮아지면서 생겨나는 부차적인 효과이다. 이것은 구세대 명품 소비자도 명품 소비에 있어서 동일한 몫 돈으로 더 큰 만족을 누릴 수 있게 할 것이다. 신세대 명품 소비자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긍정적 효과만큼 신품 명품 시장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을 추론할 수 있다. 게다가, 한정판을 구할 수 있으면 비용을 지불하고도 남는 이득을 볼 수 있다.

종합하면, 신품 명품 시장과 중고 명품 시장이 상호 보완 작용을 하며 명품 시장 전체를 점점 더 크게 하고 있다. 명품 시장의 성장에는 명품의 소비에 드는 비용이 큰 폭으로 낮아져왔기 때문이다. 그런 비용 하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이다.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은 '코치’와 같은 매스티지(대중적 고급품) 시장을 몰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명품의 소비에 드는 비용이 낮아지면서 명품에 비해 매스티지는 고가가 되고 그 결과 매스티지 소비자의 만족도를 크게 낮아지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자는 '가성비’ 좋은 제품보다는 '최고의 제품’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고 명품 가격의 높고 낮음에 따라 신품 명품의 운명, 더 나아가서 신품 명품 제조·판매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중고 명품 시장이 성장하면서 중고 명품 생태계도 점점 확대되고 다양해지고 있다. 전 세계 희귀 명품을 사고파는 '스타엑스’, 주요 명품의 국제 판매가를 알려주는 '트렌비’, 재판매를 통해 수익을 노리는 '리셀러’(reseller) 등의 등장이 그 점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시장이 커지면서 중고 시장 내에서도 분업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명품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온라인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이 구매력이 낮은 젊은 층 소비자들 또는 구매력이 낮은 소비자들을 대거 명품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명품의 '대중화’는 온라인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이 촉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명품이 '부자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젊은 층의 가치관의 변화도,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명품 중고 시장의 발달로 명품 소비에 드는 비용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으로 추론할 수 있다. 즉 명품을 대하는 젊은 층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는 것은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명품 시장을 일부 전문가는 '시장경제의 상식을 거스른다’라고 하거나, 수요가 증가하면서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에 '수요의 법칙’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일부 논평가는 주장한다. 그러나 수요 곡선 자체가 우상향으로 이동하면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므로 명품 시장은 수요의 법칙이 아주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온라인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로 인하여 신품 명품의 소비에 드는 비용이 크게 낮아지면서 신품 명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그런 증가가 신품 명품의 가격을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품 명품에 대한 수요 증가는 이제 중고 명품 시장의 발달을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도출할 수 있는 한 가지 함의는, 마치 작금의 명품 시장을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곳, 더 일반적으로 말해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곳으로 설명하는 것은 틀린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명품 시장은 더 이상 일반적인 상품 시장의 논리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는 논평가들이 있다. 그들은 명품을 부동산, 주식 등과 같은 '자산’의 일종으로 간주할 것을 지적한다. 소비자가 신품 명품을 구매할 때 중고 가격을 꼼꼼히 살피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도 틀리기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투자 마인드를 가지고 명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명품 소비자들의 대부분, 특히 구매력이 낮은 계층의 소비자들은 신품 명품을 구매할 때도 명품 중고 가격을 꼼꼼히 살피는 것은 명품 소비에 지불하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함이다. 투자를 목적으로 한다면 명품은 주식, 부동산 등보다는 열등한 것임이 틀림없다.

명품의 프랑스 판매 가격과 지역별 평균 가격의 차이, 즉 가격 프리미엄은 한·중·일 등이 30% 내외, 미국, 러시아 등에서는 10% 내외로 지역별 프리미엄의 차이가 작지 않다. 이것은 명품에 대한 소비자의 취향이 지역별로 다르거나, 명품을 소지한 사람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 등이 다른 결과로 수요가 각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가격 프리미엄은 명품 제조·판매 회사가 각 지역 소비자를 '차별한’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명품 회사가 지역 소비자의 서로 다른 수요를 가격에 반영한 결과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동일한 제품에 대해 다른 가격을 매기는 것이 제품 판매자의 당연한 권리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그런 일을 비판하거나,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로 간주하여 여론을 환기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하는 일 등은 없어야 할 것이다.

종합하면, 인터넷의 발달, 즉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전체 명품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변화의 바람을 억압하거나 봉쇄하는 것은 전체 명품 시장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소비자의 만족도도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이다. 명품 시장이 수요의 법칙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전체 명품 시장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신세대의 명품에 대한 잠재된 욕구를 실현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그것은 명품 소비에 드는 비용을 크게 낮추어주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야말로 신세대 가치관의 변화를 유도하는 촉매제이다. 다만 그 영향이 어느 정도인가를 확정할 수 없다. 온라인 중고 명품 시장과 신품 명품 시장은 상호 보완 작용을 하면서 전체 명품 시장을 성장으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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