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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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유주의자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가

해외 칼럼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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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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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 Bagus
*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스페인 후안카를로스 국왕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 저자

주제 : #자유주의전략

원문 : Uncompromising Radicalism as Promising Strategy (게재일 : 2009년 8월 2일)
번역 : 김경훈 연구원


루트비히 폰 미제스<자유주의>(Liberalism)의 독일어판은 내가 아직 고등학생일 때 재인쇄되었다. 그 책에 수록된 호페의 서문이 바로 나의 첫 호페 작품이었다. 나는 미제스와 호페의 강렬한 문장들에 매료되었고, 내가 막 알아가기 시작했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전통의 대표적인 학자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발견하여 매우 기뻤다. 호페가 같은 독일인이었기 때문에 나는 소심함을 극복하여 인터넷에서 그를 추적하였고, 매일을 보내 독일에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공부할 장소를 알려달라고 물었다.

놀랍게도 호페는 아주 빠르게 내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주었다. 실망스럽게도 그는 독일의 대학에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호페 교수는 내가 오스트리아학파에 대한 개요를 습득하기 위해 미국 앨라배마주 어번에 있는 미제스 유니버시티에 참석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추천서를 써주어서 미제스 연구소에게 나한테 아낌없이 장학금을 주라고 강권했다. 그 뒤에도 호페는 나를 미제스 연구소의 펠로우쉽에 추천하고, 나의 방법론 수업을 위한 인식론의 개요를 제공하고, 나를 재산과 자유 협회(Property and Freedom Society) 회의에 초청하고, 기타 여러가지 다른 방법으로 나의 학술적 발전을 촉진하고 형성하였다.

호페 교수는 멘토로서 확실히 롤모델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는 교수로서는 배려심이 넘치지만, 학자로서는 매우 비타협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제스 자유주의 독일어판에 대한 상기한 서문에서, 호페는 자신의 태도를 매우 잘 묘사한다:

결국 미제스는 원칙적인 사람이었고, 그는 자신의 이론적 통찰에 반하는 모든 타협을 분명히 거부하였다. 공화주의 시대의 오스트리아 학계에서는 유연성과 기회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요구되었는데도 말이다.1

미제스의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계승하면서, 호페 교수는 많은 동료와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그들에게 반감을 샀다.

그러나, 원칙을 고수하고, 일관성을 지키고, 엄밀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이러한 태도는 사람들의 관심과 찬사를 받기도 한다. 후술할 내용에서 나는 호페 교수의 타협하지 않는 급진주의를 오스트로-리버테리언 이론을 전파할 전략으로서 분석할 것이고, 또 호페의 태도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우 탁월하며, 유일하게 적합한 전략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호페 교수는 결코 경제학 이론에서 어떠한 타협도 한 적이 없다. 만약 타협했다면 주류경제학 학계에서 더 많은 영향을 확보할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는 극단적인 합리주의와 선험주의를 옹호하며 주류경제학에 대항하는 강력한 방법론적 입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2 더 나아가, 그는 정치학 분야에서도 매우 비타협적인 학자이다. 이 분야에서 그는 최소국가를 옹호하며 자기 주장의 논리적 결론에 이르지 못한 미제스를 한 발짝 뛰어넘는다. 미제스가 주장하기를:

자유주의 계획을 (...)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재산, 즉, 생산수단(소비를 위한 재화에 대한 사적 소유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심지어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조차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의 사적 소유이다. 자유주의의 다른 모든 요구는 이러한 근본적인 요구로부터 비롯된다.3

그러나 미제스는 평생 동안 정부에 의한 재산권의 침해를 옹호하며 최소국가를 확고하게 고수하였다. 호페는 자신의 정치학 이론에서, 미제스의 자유주의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을, 미제스 본인보다도 더 일관성있고 논리적으로 완결성있게 발전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여전히 보편적 인권, 자기소유권, 그리고 사유재산권이라는 고전적인 개념들이 모든 정부와 입법보다 우선한다고 확고하게 생각하는 리버테리언 사회운동의 구성원들에게, 자유주의에서 사유재산 아나키즘으로의 전환은 단지 작은 지적 단계일 뿐이다. 특히 민주정부가 (보호의) 유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했던 명백한 실패에 비추어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사유재산 아나키즘은 단지 일관성있는 자유주의일 뿐이다. 자유주의는 사유재산 아나키즘을 통해 자기 자신의 궁극적인 결론에 도달하였거나, 자신의 본래 의도를 화복하였다.4

호페 교수의 지적 급진주의와 자유사회를 향한 그의 전략, 즉 사유재산 아나키는 함께한다. 라 보에티(Etienne de la Boétie), 흄(David Hume), 미제스를 계승하며, 호페는 정부의 힘은 정부 자신에게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에 의존하고 있음을 강조한다.5 인구의 상당수가 광범위하게 국가를 지원하고 자발적으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인민에게 자기 의지를 강제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인구의 상당수가 정부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면 그것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수파가 다수파를 설득하여 통치자에 대한 지지를 끝내게 해야 한다. 호페 교수는 그러한 열정적인 소수파를 반지식인적 지식인(anti-intellectual intellectuals)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오늘날의 지식인 대다수가 지배자를 위한 부패한 어용 지식인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반지식인적 지식인들은 이상주의를 가지고 강하게 헌신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또한 그들은 자유사회에 대한 비전에서 영감을 얻어야만 한다. 국가가 지배하는 이 세계는 그들에게 시련을 안겨줄 것이다. 그러므로 선구적인 리버테리언은 대중을 설득하여 통치자에 대한 지지를 끝내도록 이끌기 위한 에너지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호페 교수 역시 지적인 급진주의와 함께 이러한 행렬에 동참한다. 그는 마땅히 확신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 비타협적인 이념적 급진주의(극단주의)에 대한 헌신은 결코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망설이는 것은 비생산적일 뿐더러, 더 중요하게는, 오직 급진적인(정확하게는, 급진적으로 단순한) 생각들만이 둔하고 나태한 대중의 감정을 동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와 정치인들을 도덕적, 경제적 사기꾼이자 협잡꾼이라고 비난하고, 벌거벗은 임금님마냥 취급하고, 모든 농담의 조롱대상으로 끊임없고 가차없이 노출시키고, 탈신성화하며, 비웃는 것 이상으로 대중을 설득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6

지적인 급진주의는 정부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대중을 설득하는 데 적합할 뿐더러,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헌신적인 소수파를 모집하는 데에도 적절하다. 실제로, 라스바드는 교육을 자유사회로 가는 길의 성공 열쇠로 여겼다.7 내 생각에도 교육적인 노력은 젊은 이들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나 자신의 교육자로서의 경험에서 느낀 바이지만, 이상주의적인 경향을 가진 젊은 청년들은 논리적으로 일관된 이론이나 계획에 대한 흥분과 열정으로 불타오를 수 있다.

게다가, 젊은 청년들은 여전히 지적으로 유연성이 있고, 자신의 세계관을 바꿀 가능성이 있으며, 국가로부터 공적인 혹은 사적인 영역에서 협조받거나, 도움받거나, 국가에 찬동하는데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젊은 청년들은 자신이 과거에 국가와 협력했다는 큰 오류를 저질렀다며 자책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심리적인 짐이 없기 때문에, 젊은 청년들은 자유사회의 전망을 더 쉽게 확신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상황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데 있어, 즉, 진취적인 이상향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젊은 청년들은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도 있다. 타협하지 않는 이상을 추구하는 것의 진취적인 성격은 이미 F.A. 하이에크에 의해 요구된 바 있다. 하이에크가 말하길 [역자 문단 바꿈]:

우리는 자유사회의 건설을 다시 한번 지적인 모험이나 용기있는 행위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자유주의적 이상주의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을 온건한 사회주의로 보이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감수성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지나치게 실용적이지 않고, 정치적으로 오늘 당장 가능한 것 만을 추구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주의적 급진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권력과 여론의 감언이설에 저항할 준비가 되어 있고, 이상을 위해 기꺼이 일하고자 하는 지적인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그들과 함께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면 더 빠르게 이상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목표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꾸준히 원칙을 고수하고, 이상적인 목표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기꺼이 투쟁하려고 해야 한다. (...)

자유무역과 기회의 자유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추구할 만한 이상이지만, 단지 '합리적인 무역의 자유'나 단순한 '통제의 완화'는 지적인 존경을 불러일으킬 수 없고 어떤 열정도 있을 수 없는 고리타분한 구호일 뿐이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이 사회주의자들의 최근의 성공으로부터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은, 그들의 이상주의적 용기이다. 그것을 통해 사회주의자들은 바로 지식인 다수의 지지를 받는 데 성공했고, 대중 여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여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졌던 일을 현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여론을 고려하며 당장 실행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에만 몰두한 사람들은 이제 여론이 변함에 따라 그 어떤 지지도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전락했고, 기존에는 가능했던 것들이 이제 급격하게 정치적으로 불가능해지고 있음을 매일같이 재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우리가 자유사회의 철학적인 토대를 다시 한번 열정적인 지적인 주제로 복원시킬 수 없다면, 그리하여 이상적인 자유사회의 구현을 우리의 열정적인 정신적 독창성과 상상력의 도전적인 과제로 상정할 수 없다면, 자유를 달성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전성기 시절 자유주의의 표상과 다름없었던 사상의 힘에 대한 믿음을 되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싸움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8

이를 고려한다면, 호페 교수는 하이에크적 의미에서 최고의 유토피아주의자이다. 어떤 면에서, 호페는 그의 베스트셀러인 <민주주의: 실패한 신>(Democracy: The God That Failed)에서 하이에크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논증윤리 이론과 라스바드의 자연법 이론을 토대로 하여 객관적이고 일관성이 있는 윤리이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호페의 작품은 일관성있는 정치철학, 일관성있는 윤리학, 그리고 일관성있는 경제학을 통합하여 완전하게 일관성있는 사회과학체계를 형성한다. 오스트로-리버테리어니즘(Austro-Libertarianism)이 바로 그것이다. 오스트로-리버테리어니즘의 논리적 일관성, 엄밀성, 급진주의, 명확성, 그리고 설명력은, 급진적인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흥분과 열정을 고무할 수 있다.

나는 호페 교수의 비타협적인 입장이, 장기적인 영향력을 얻기 위한 좋은 전략이라고 판단한다. 다른 사람이 특정한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과정에서, 일관성이 있는 이론은 기회주의적인 전략보다 우세해야 한다. 과학은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한다. 원칙을 뒤집거나, 거짓을 설파하거나,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전략은 윤리적이지 않고, 자신의 일관성을 파괴하며 스스로의 논리적 기반을 약화시킬 뿐으로 결국 자멸하게 된다. 이론적으로 타협하는 것은 결국 이론가로서의 자신의 목표를 좌절시킨다.

아마 타협하는 것은 최고의 학술지에 기고하고 논문을 게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도 주류학계에서 유행하는 주제들을 응용한다면 일류대학에서의 영에로운 지위를 얻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기회주의적인 행동은 종신재직권, 존경, 그리고 더 나은 수입을 보장해줄 지도 모른다. 대형 신문사, 대형 언론사, 그리고 명문대에 자리를 잡고자 하는 유혹은 몇몇 사람들로 하여금 실질적인 타협을 하도록 이끌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타협을 하게 된다면, 그는 미끄러운 비탈길로 빠지는 것이다. 물론, 타협하는 전략은 단기적으로 특정 지식인들 사이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타협하는 것은, 점차적으로 자신이 설득하려고 했던 대상들을 닮아가기 시작한다는 더 큰 위험을 수반한다. 사실, 시카고학파는 타협을 하고 다양한 형태의 국가간섭을 옹호함으로써, 오스트리아학파보다 학문과 정치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경제학자와 경제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영향력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합스부르크의 황제 페르디난트(Ferdinand, 1503-1564)의 라틴어 구절 "세상이 망할지라도 정의를 행하라"(Fiat iustitia, et pereat mundus)를 약간 변형하여 우리의 모토로 삼을 필요가 있다. "세상이 망할지라도 진리를 행하라."(Fiat veritas, et pereat mundus) 원래 구절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은 정의와 문명의 번영 사이의 양자택일 상황이 있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정의는 부의 생산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의 생산을 위해 필요하다. 라스바드가 말하였듯, "자유라는 목표를 위한 적절한 토대는 정의에 대한 도덕적 열정이다."(the proper groundwork for this goal [liberty] is a moral passion for justice)9

진리를 고수하는 것은 문명과 자유의 번영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전략이다. 궁극적으로 세계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여론이다. 사람들은 자유의 혜택을 확신하고 정부의 사악함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유에 대한 진리는 분명히 몇 번이고 명료하게 진술되어야 한다. 이론에 있어서는 일관성있고 엄밀한 입장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다. 호페 교수는 일관성있는 이론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진리의 대의에 강하게 헌신하는 학생들을 이론의 핵심으로 이끌기 쉽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우리가 진리를 고수한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결국 우리를 찾아낼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입장을 알리겠다고 타협하는 미사여구로 치장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의 일관성이 없고, 타협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입장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

이와 반대로, 지적인 타협은 전략적 불이익을 수반한다. 일관성없는 이론은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지고 진리의 근원을 끈기있게 추적하기에는 근성이 부족한 사람만을 끌어들일 것이다. 그러나 타협, 즉 의도적인 비일관성이 끼치는 해악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타협에는 논리적인 한계가 없기 때문에 원래의 입장 전체가 버려지고 무너질 때까지 계속된다. 결국 타협하는 학자는 자신이 원래 가졌던 지위와 존경을 잃을 것이다. 그는 결국 지적인 게으름, 정체된 토론, 애매모호한 입장, 그리고 따분하고 피상적일 뿐으로 여겨지며, 매력이 하나도 없는 잡탕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호페 교수의 경제이론과 정치이론은 이러한 함정을 피한다. 자유사회를 이루겠다는 목표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는 그는 일관성이 있고, 엄밀하며, 급진적인 이론을 제안한다. 그리하여 호페 교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목표를 향한 길을 인도하며 영감을 준다. 나 역시 호페 교수의 뒤를 이어 그러한 목적에 기여할 수있는 나 만의 공헌을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나는 미제스 <자유주의>의 서론을 처음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의 길을 이끌어 준 호페 교수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그가 안녕하기를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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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dwig von Mises, Liberalismus (Jena: Gustav Fischer, 1927; reprint Sankt Augustin: Academia Verlag, 1993) p. 16.
  2. Hans-Hermann Hoppe, “In Defense of Extreme Rationalism: Thoughts on Donald McCloskey’s The Rhetoric of Economics,” Review of Austrian Economics 3 (1989): 179–214; idem, Economic Science and the Austrian Method (Auburn, Ala.: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95).
  3. Ludwig von Mises, Liberalism: In the Classical Tradition, Ralph Raico, trans. (Irvington-on-Hudson, N.Y.: 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 [1927] 1985), p. 19.
  4. Hans-Hermann Hoppe, Democracy—The God that Failed: The Economics and Politics of Monarchy, Democracy, and Natural Order (New Brunswick, N.J.: Transaction Publishers, 2001), p. 236.
  5. Ibid., p. 289.
  6. Ibid., p. 94.
  7. Murray N. Rothbard, For a New Liberty: The Libertarian Manifesto, rev. ed (San Francisco: Fox & Wilkes, 1996), p. 297.
  8. F.A. Hayek,“The Intellectuals and Socialism,” in Studies in 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7), p. 194.
  9. Murray N. Rothbard, The Ethics of Liberty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1998), p.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