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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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시장이 아니다

해외 칼럼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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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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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Hermann Hoppe
한스-헤르만 호페는 살아있는 오스트리아학파 학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호페는 멩거, 뵘-바베르크, 미제스, 그리고 라스바드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오스트로-자유주의(Austro-libertarianism)의 가장 뛰어난 대표자로서, 칸트(Immanuel Kant)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인간행동학 이론체계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멩거(Carl Menger)에 의해 창시된 오스트리아학파가 미제스의 인간행동학을 통해 완전한 선험적-연역적 이론체계로 탈바꿈했다면,—적어도 지금까지는—최종적으로 호페가 미제스의 방법론을 경제학을 넘어 형이상학과 윤리학에도 적용함으로써, 인식론, 윤리학, 그리고 경제학을 아우르는, 일종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서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 : #다른경제학파

원문 : The Sociology of Taxation (게재일 : 1990년)
Banking, Nation States, and International Politics (게재일 : 1990년)
번역 및 편집 : 김경훈 연구원


I.

재산을 취득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주인 없는 자원에 대한 최초의 소유자가 되는] 홈스테딩(homesteading), 생산, 그리고 계약을 통한 취득이다. 다른 하나는 홈스테더, 생산자, 계약자로부터의 몰수와 착취를 통한 취득이다. 이 외에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1 두 방법 모두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누군가 생산과 계약을 통해 재산을 취득한다면 언제나 다른 사람들은 비생산적이고 비계약적으로 재산을 취득해왔다. 생산적인 활동이 규모가 커지면 우리는 그것을 사업체 혹은 기업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비생산적인 몰수 그리고 착취 활동도 더 큰 규모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정부 혹은 국가라고 부른다.2 세금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증세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낮은 수익보다 높은 수익을 선호한다. 생산자 뿐만 아니라 착취자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착취자들은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세금을 만들어냈다. 비생산적 혹은 비계약적 전용(appropriation)이라는 발상은 생산적 전용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이러하다: 착취 사업의 규모와 성장을 통제하고 제약하는 것은 무엇인가?

착취 사업에 종사하는 정부의 규모를 통제하는 요인과, 생산적 교환에 종사하는 민간기업의 규모를 통제하는 요인은 서로 전적으로 다르다. 공공선택학파의 주장과 달리, 정부와 민간기업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업에 관여한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활동을 한다. 국가와 민간기업이라는 두 유형의 기관은 서로 다르다. 더 나아가, 이 둘의 이해관계는 서로 화합할 수 없을 정도로 적대적이다. 국가 형성의 기초는 착취와 몰수이고, 이는 비생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에 해당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는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분명 부(wealth)가 미리 존재해야만 한다. 따라서, 최소 한 사람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그러한 부를 생산해야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수립할 수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더 뚜렷하고 성공적일 수록, 경제적 이해관계는 더 파괴될 것이다.

공공선택학파는 정부의 구성원과 민간기업의 구성원 모두 낮은 수익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고 지적한 점, 그리하여 정부의 구성원들이 높은 수익을 위해 마치 민간기업처럼 확장하려는 경향을 가진다고 설명한 점에서는 완벽하게 옳다. 그러나, 공공선택학파가 스스로를 '새로운 정치학'(new theory of politics)이라고 과대평가하는 것과 달리,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민간인들에 비해 특별히 더 이타적이지 않고, 공공선을 추구하는 두드러진 신념도 없다는 사실의 발견은, 종종 간과되기는 했지만 딱히 새로운 것도 아니다.

공공선택학파가 진정으로 새로운 점은, 아주 올바른 통찰력(정부 역시 민간기업만큼 사익을 추구한다)으로부터 도출된 결론이 너무 터무니 없을 정도로 틀렸다는 것이다. 공공선택학파는 정부와 민간기업이 완전하게 동일한 동기부여[사익추구]의 결과이기 때문에, 서로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정치'와 '시장'은 서로 같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고 이해관계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부가 행동하는 것과, '정상적인' 민간기업이 행동하는 것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 정부의 구성원과 민간기업의 구성원들이 어떤 개인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와는 무관하게 언제나 그러하다.3

공공선택학파의 이러한 중심 견해는 학파의 가장 중요한 대표자들인 뷰캐넌(James M. Buchanan)과 털럭(Gordon Tullock)에 의해 다음과 같이 표현된 바 있다:

경제적 관계와 정치적 관계 모두 두 명 이상의 개인에 대한 협력이다. 시장과 국가는 둘 다 협력을 조직하고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인간은 조직된 시장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을 통해 협력한다. 그러한 협력은 상호 이익을 암시한다. 개인은 교환의 반대편에 있는 다른 개인에게 직접적인 효용을 가져다 주는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스스로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교환관계를 성사시킨다.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적 관점으로 이해한 국가에서의 정치적 또는 집단적 행동 역시 거의 동일하다. 두 명 이상의 개인이 힘을 합쳐 특정한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그들은 공동의 선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자원들을 '교환'하고 헌납한다.4

이러한 소위 '새로운 정치학'의 가장 감탄스러운 점은 누구도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슘페터(Joseph A. Schumpeter)가 말하길:

세금을 클럽의 회비 혹은 의료 서비스의 구매비용 등으로 비유하여 해석하는 이론은 이러한 사회과학이 과학적 정신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할 뿐이다.5

II.

본론으로 돌아와서, 생산적인 사업의 규모는 소비자의 수요(달성가능한 총수익에 영향을 줌)와 다른 생산자와의 경쟁에 의해 제한된다. 이 때문에 각 민간기업은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가능한 최저비용만을 지출하기를 강요받는다. 생산적인 사업이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가장 시급한 소비자의 수요를 가장 효율적으로 처리해야만 한다.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구매만이 민간기업의 규모를 뒷받침한다.

정부 혹은 국가는 전적으로 다른 유형이다. 민간기업의 규모가 수요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의미로 정부 혹은 국가의 규모가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한 헛소리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본다고 해도, 자신의 재산 일부를 정부에게 상납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정부의 서비스를 [자신의 가장 시급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원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재산을 정부에 상납하도록 강제받는다. 정부가 자신의 서비스를 강제로 제공한다는 점은, 실제로 그 누구도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정부를 원하는 정도에 따라 정부의 규모가 제한된다고 결론지을 수 없다. 오히려 정부는 그 자신이 수요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장한다는 공공연한 모순에 사로잡혀 있다.

정부는 생산적인 민간기업과 같은 방식에서 경쟁에 의한 제약을 받는 것도 아니다. 민간기업과 달리 정부는 지출을 최소한으로 절약하지 않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정부라는 기업은 그 자신의 경쟁자들[민간기업]에게 세금이나 규제를 부여함으로써 높은 지출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규모가 비용절감을 위한 경쟁에 의해 제약된다고 결론지을 수 없다. 국가는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성장한다.

물론, 정부의 규모가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정부 규모의 역사적 변동이 어떠한 법칙도 없는 완전한 무작위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소위 정부라는 '기업'에 적용되는 제약들이 민간기업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역주: 호페는 민간기업의 규모를 결정짓는 것은 그들이 소비자들에게 봉사하는 정도, 그리고 경쟁자들에 비해 효율적인 정도라고 말하면서, 정부는 소비자에게 봉사하지도 않고,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경쟁도 안한다고 지적한다. 뒤에서 그는 국가와 정부의 규모를 결정짓는 첫째 요인은 국민의 여론이고, 둘째 요인은 외국과의 경쟁이라고 설명한다. 정부가 합법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가진 일반적 의견에 따라 정부의 역할과 규모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관할영역 밖에는 또 다른 정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더 많은 영토와 인구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경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민간기업들의 경쟁이 소비자에게 이로운 결과를 도출하는 것과 달리 정부들의 경쟁은 언제나 파괴적인 결과만을 낳는다.]




태그 : #오스트리아학파개요 #주류경제학비판 #생산이론 #정치비판 #사회학 #호페

  1. 이 점에 대하여, Franz Oppenheimer, The State (New York: Vanguard Press, 1914) esp. pp. 24–27; Rothbard, Power and Market, chap. 2; Hoppe, A Theory of Socialism and Capitalism, chap. 2 를 보라.
  2. 국가 발전의 이론에 대하여, 17번 각주와 함께 Herbert Spencer, Social Statics (New York: Schalkenbach Foundation, 1970); Auberon Herbert, The Right and Wrong of Compulsion by the State (Indianapolis: Liberty Fund, 1978); Albert J. Nock, Our Enemy, the State (Tampa, Fla.: Hallberg Publishing, 1983); Murray N. Rothbard, For a New Liberty (New York: Macmillan, 1978); idem, The Ethics of Liberty (Atlantic Highlands, N.J.: Humanities Press, 1982); Hans-Hermann Hoppe, Eigentum, Anarchie und Staat (Opladen: Westdeutscher Verlag, 1987); Anthony de Jasay, The State (Oxford: Blackwell, 1985)를 보라.
  3. '기업으로서의 국가' 그리고 '정치적 교환'이 경제적 교환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개념에 대한 공공선택학파의 대표적인 진술에 대하여, James Buchanan and Gordon Tullock, The Calculus of Consent (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65), p. 19 를 보라. 경제적 수단과 정치적 수단의 근본적 차이를 강조하고 이러한 견해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Franz Oppenheimer, The State (New York: Vanguard Press, 1914), pp. 24–27; Murray N. Rothbard, Power and Market (Kansas City: Sheed Andrews and McMeel, 1977), chap. 2 를 보라.
  4. James M. Buchanan and Gordon Tullock, The Calculus of Consent [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p. 192
  5.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New York: Harper, 1942], p.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