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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편] 경기변동이론과 응용 - 경기침체의 2차 특징: 디플레이션 (1)

국내 칼럼
경제학
작성자
작성일
2021-10-21 21:00
조회
724

전용덕
*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 경제학 박사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경기변동

편집 : 전계운 대표
경기변동이론과 응용 목차 <펼치기>

1앞에서 경기변동이 일어나는 원인을 밝히고 붐과 버스트 과정을 서술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경기변동 과정이 모두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경기침체의 2차 특징이 나타난다. 물론 이 2차 특징은 매우 짧게 나타날 수도 있고 통계상으로 잘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침체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정부가 어떤 정책을 얼마나 신속하게 시행하는가에 따라서 또는 경기변동의 크기나 기간에 따라 2차 특징이 나타나는 양상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현상을 목격할 수 없다고 전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붐이 아무리 짧아도 2차 특징은 대부분 나타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침체가 상당히 진행되고 난 다음에 정부가 대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서는 정부가 간섭을 하지 않는 경우라고 가정하고 2차 특징을 설명한다.

인플레이션이 끝나는 국면에서 경기침체 국면이 시작된다. 침체 국면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의 위기는 화폐공급의 축소로 인하여 발생하는 디플레이션에 의해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물론 이 때 화폐수요의 변화로 인한 디플레이션도 발생한다. 그러나 화폐수요의 변화는 적절한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복귀한다. 그 점에서 화폐수요의 변화로 인한 디플레이션은 화폐공급의 축소로 인한 디플레이션보다 그 기간이 일반적으로 짧다. 경기침체에서 언제나 디플레이션이 일어나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침체 국면과 함께 통화공급 측면에서 일어나는 큰 변화로 인한 디플레이션을 먼저 보기로 한다. 정부의 지폐 공급 증가와 은행의 신용팽창으로 붐 시기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는 점을 앞에서 서술했다. 이제 차용인들(borrowers)의 상당수가 재무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파산하기 때문에 은행들은 대출한 신용을 축소하지 않을 수 없다3차용인인 기업이 적자를 내고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런 소식은 곧 바로 은행들의 지급능력에 대한 의심으로 바뀌게 된다. 비록 예금보호제도가 은행쇄도(bank run)를 어느 정도 막아주지만 궁극적으로 은행이 파산의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우리나라의 1997년 위기와 미국의 금번 경제위기에서 민간 금융기관들이 파산했고 두 나라 모두 새로운 화폐를 찍어서 민간 금융기관들을 국유화한 것이 좋은 예이다. 민간 은행의 부분지급준비제도는 본질적으로 은행쇄도와 그로 인한 파산의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자신이 차용자의 파산으로 인하여 대출을 회수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신용을 축소해야 한다. 경기침체 국면으로 들어가면 신규투자에 대한 평가도 매우 엄격해지기 때문에 신규 대출이 억제된다. 침체 국면에서 기업들이 이윤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에 대출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그 결과 신용이 축소된다는 주장은 틀린 것이다. 은행이 기업 대출을 줄이는 대신에 채권과 같은 상대적으로 안전 자산에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신용을 축소하고자 하는 동기나 압력은 은행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기업 차용자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화공급의 감소, 특히 은행의 신용감소로 인하여 화폐의 구매력은 상승하고 재화들의 가격은 일반적으로 하락한다.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것이다. Salerno(2003)는 은행의 신용축소에 의한 디플레이션을 ‘은행신용디플레이션’(bank credit deflation)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했다. 신용감소에 의한 디플레이션은 <그림 2>에서 B점에서 A점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만약 화폐수요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화폐수요의 변화는 필연적이기 때문에 B점에서 A점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신용감소로 인하여 디플레이션의 발생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화폐수요의 변화는 아래에서 자세히 논의할 것이다.

디플레이션을 반대하는 사람과 달리, 신용축소에 의한 디플레이션은 시장의 조정과정을 크게 도와준다. 디플레이션이 생산자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알아보자. 신용의 축소가 고차재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줄어들게 하고 저차재 산업으로의 투자를 증가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신용의 축소는 기존에 만들어졌던 생산구조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용축소는 과잉 투자되었던 고차재 산업의 일부를 없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소비자 쪽에서는 그런 조정이 자신에게 필요한 수준의 ‘소비/투자’ 비율로 돌아가는 것을 도와준다. 만약 소비자의 시간 선호 자체가 변한다면 조정은 더 빨리 이루어지고 덜 필요하다. 여기에서 시간선호가 변한다는 것은 경기변동 이전에 비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것을 말한다.4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예전보다 ‘더’ 많은 저축과 ‘더’ 적은 소비이다. 즉 예전보다 더 많은 소비, 그에 따른 더 적은 저축과 투자가 침체를 극복한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틀린 것임을 앞에서 보았다. 디플레이션, 즉 재화들의 일반적인 가격 하락은 붐 기간에 비해 더 많은 저축과 더 적은 소비를 하게 만든다. 앞에서 신용팽창을 통한 인플레이션이 ‘저축–투자’를 억제하는 동시에 자본 소비가 일어나도록 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제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에 일어났던 과정을 역전시킨다. 손실과 자본소비로 여겨졌던 것이 실제로는 이윤이 된다는 것을 기업가는 알게 된다. 왜냐하면 이제 대체해야 할 기계와 같은 자산이 교체하는 데 예전보다 비용이 적게 들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업가는 손실을 과다하게 계상함으로써 붐 기간에 비해 디플레이션 기간에 소비를 억제하고 저축을 늘리게 된다.

화폐공급의 감소에 의한 디플레이션은 1단계로 무능한 기업가로부터 화폐 공급을 축소하는 것이다. 특히 소비자로부터 떨어진 고차재 단계에 있는 기업으로 가는 화폐공급이 축소되는 것이다. 이러한 축소는 그 단계에 있는 본원적 생산요소들에 대한 수요를 감소하게 만들고, 그 결과 그 생산요소들의 가격, 소득 등을 낮춘다. 그리고 고차재 재화의 판매가격과 생산요소들에 지불하는 가격의 차이(spread)를 예전보다 크게 만들고 자연이자율을 올라가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은 생산요소들을 고차재 산업에서 소비자에게 근접한 저차재 산업으로의 이동을 촉진한다.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왜곡이 아니라 신용팽창으로 만들어진 지금까지의 왜곡을 제거하는 ‘회복과정’ 또는 ‘시장의 조정’이라고 하겠다. 신용축소에 의한 디플레이션은 그런 과정이 없는 상황에 비하여 경제를 신용팽창에 의한 왜곡이 없는 자유시장으로 더 빨리 돌아가게 만든다.

그러나 일부 연구자는 화폐공급의 축소 또는 신용축소가 신용팽창으로 인한 왜곡을 과다하게 교정하여 새로운 왜곡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반대할지도 모른다(Rothbard(2006), 번역본 p.1144). 물론 디플레이션 과정은 자유시장 균형점을 지나칠 수 있다. 비록 일시적이지만 디플레이션은 이자율을 자유시장 수준보다 더 높아지게 만들고 투자는 자유시장 수준보다 더 낮아지게 만들 수 있다. 아마도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는 동안의 미래에 대한 전망 등이 자유시장하에서의 미래 전망보다 비관적이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어떤 피해도 발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기침체의 2차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신용축소는 신용팽창시에 발생하는 과오투자와 같은 오류를 발생시킬 수 없고 그 결과 추가적인 붐–버스트 사이클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용축소에 의해 초래되는 디플레이션의 한계는 없는가? 신용의 팽창은 무제한적이지만 신용의 축소는 물론 무한정하지 않다. 신용축소는 그 이전에 만들어진 신용팽창의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로 신용의 축소가 어느 수준이 될 것인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상품화폐의 경우에 적정 통화량이 시장에서 내생적으로 결정되지만 지폐제도에서는 그런 과정으로 결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그에 대한 연구도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태그 : #미국경제 #호황과_불황 #중앙은행 #화폐와_은행 #간섭주의 #경제사 #부동산 #주류경제학비판 

  1. (원문 각주 38번) 경기침체의 1차 특징에 대해서는 ‘경기변동의 직접적인 원인: 화폐공급의 증가’에서 다루었다
  2. (원문 각주 39번) 디플레이션을 다룬 연구자와 문헌은 상당수 있다. 그러나 Salerno(2003)는 아마도 처음으로 디플레이션을 발생 원인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누고 개관했다. 주로 미국 사례를 이용하여 유익
    한 디플레이션과 유해한 디플레이션으로 나누고 적절한 통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3. (원문 각주 40번) 정부가 지폐의 공급을 축소하는 경우에도 신용축소와 동일한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정부가 위기를 맞아 다시 화폐공급을 확대할 수도 있고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여 지폐공급을 축소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에나 경기변동의 2차 국면에서 정부가 다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그런 경우를 제외한다고 가정했다. 경기변동 과정에서 정부가 시장에 다시 간섭하면 발생할 결과에 대해서는 제5장을 참조
  4. (원문 각주 41번) 마틴 펠트스타인은 중앙일보 칼럼에서 미국 가계의 순저축률이 최근 거의 0%대로 떨어졌다가 2009년 초부터 급격히 상승해 2009년 5월에는 세후 개인소득의 6.9%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미국이 2005~2007년에 경험했던 1%대 미만의 가계 저축률에 비하면 급등한 수치라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이 저축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것이 여기에서 직접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경기변동으로 미국인의 시간선호가 변한 증거가 아닌가 생각된다. 중앙일보, 2009년 8월 4일자, “치솟는 저축률, 미국 경제에 약인가 독인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