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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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로-리버테리어니즘이 준 실존적 교훈들 (1편)

국내 칼럼
인물
작성자
작성일
2023-09-12 12:07
조회
706

전계운

전계운
* 미제스 연구소 대표

주제 : #일대기
원문 :
Austro-Libertarianism’s Existential Lessons 


  • 본 글은 2023년 9월 7일에 출간된 리버테리언 회고록 <Libertarian Autobiographies: Moving Toward Freedom in Today’s World>에서 전계운 대표(Allen Jeon)의 회고록 부분을 발췌한 글이다. 신간 <Libertarian Autobiographies: Moving Toward Freedom in Today’s World>은 전 세계 80인의 리버테리언들의 회고록을 엮은 책이다. 현재 아마존에서 킨들과 하드커버로 구매가 가능하며, 가격이 부담스러운 경우 흥미 있는 챕터를 개별로 구매하여 읽는 것도 가능하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내가 오스트로-리버테리언(역주: Austro-Libertarian: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받아들인 리버테리언)으로 전향한 것은 7년 전이다. 나는 오스트로-리버테리언으로 전향하기까지 사상적 전환을 두 차례 겪었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실존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전향과 동시에 벌어진 일련의 거대한 정치적-개인적 사건들은 내게 오스트로-리버테리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특정 단체 이름과 특정 인물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되도록 지양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명예훼손법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그들은 이 법을 악용하여 날 고소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보수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부모님은 내게 특정 정치성향을 강요하거나 주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보수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아버지께서 2002년 한나라당에서 대선 캠프 활동을 하신 적이 있었고 전반적으로 내 가족이 문화적 보수주의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9살 무렵에 어느 곳에 방문한 한 사건은 내게 극단적인 “반공”성향을 갖게 만들었다. 그것은 이승복 어린이 기념관을 방문한 일이었다. 1953년 7월 27일, 6.25 한국전쟁 휴전 이후 북한은 여러 차례 무장공비를 남한에 파견하여 사회 인프라의 테러와 정치인 암살을 시도해왔었다. 한국의 기반시설 테러 및 정치인 암살을 목적으로 파견된 무장공비는 종종 민가에 스며들어 죄 없는 민간인들에게도 피해를 주었는데 이 사건 중 하나가 이승복 어린이 살해 사건이었다. 무장공비는 이승복 어린이집에 침입하여 “공산당이 싫다”고 말하는 그와 일가족을 몰살시켰다. 이 이야기는 내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에 나는 워낙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공산주의나 공산당에 대한 개념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공산당이 싫다고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다. 더욱이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 친구가 잔인하게 입이 찢겨 죽었다는 사실은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었다. 그 때부터 내 마음속에서는 공산주의와 공산당 그리고 북한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어릴 적에 형성된 반공성향은 오스트로-리버테리언이 된 지금도 남아있다. 공산주의는 자유를 파괴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절대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와 역사에 관심이 많았었다. 두 분야에 이끌리게 된 계기는 독특하다. 역사적 흐름에 따른 국가영토 변천 과정과 제도의 변화, 그리고 국가가 패망한 원인은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나는 각 나라의 흥망성쇠 이유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을 찾는 것을 공부 목표로 삼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규수업만으로는 나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여러 다큐멘터리, 서적 등을 찾으면서 공부를 하던 기억이 있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2년 아버지의 한나라당 대선 캠프 활동과 역사 공부로부터 배운 교훈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지지하시던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했고 당선된 상대 당 대통령 후보가 이 나라를 얼마나 잘 이끌어나갈지 궁금했었다. 그 때부터 나는 신문을 꾸준히 읽기 시작했고 정치에 관심으로 적극적으로 갖기 시작했다. 또 다른 계기는 당시에 역사 공부로부터 정치와 외교가 국가의 흥망에 대단히 중요한 장치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국가가 무조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훗날 전공을 역사학에서 정치외교학으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학생이 된 후 나는 목표로 하던 정치외교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정치를 잘 알기 위해서는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경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2013년도부터 한국의 새누리당(소위 우파 정당)에 입당해 정치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나는 반공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제적으론 ‘좌파’ 혹은 ‘국가사회주의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나의 반공주의적 성향은 언제까지나 북한에 반대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지 경제관이 확고한 ‘자유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자유시장경제는 무질서하고 기업 독점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믿었었고, 정부 주도의 “계획”은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나의 세계관을 대변해준 것은 이승만과 박정희 두 대통령의 정책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두 사람을 존경했었다. 이 두 사람은 한국에서 ‘우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정치 활동하면서 많은 언론인과 정치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항상 이런 전형적인 말을 했었다. “우리는 경제문제에 있어서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동시에 ‘정부의 간섭’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 개념은 신자유주의인데 그 당시에 나는 이런 개념에 의문을 갖지 않았었다.


태그 : #보수어용세력_가짜자유주의 #경기변동 #한국정치 #자유주의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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