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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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아나키즘과 급진적 탈중앙화는 같은 것이다 - 아나키스트는 더 많은 국가가 필요하다

해외 칼럼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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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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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an McMaken
* 미제스 연구소 편집장

주제 : #탈중앙화와_분리독립

원문 : Anarchism and Radical Decentralization Are the Same Thing (게재일 : 2016년 1월 29일)
번역 : 한창헌 (SFL Korea 회원)

[2편/完] 선택권만 주어진다면, 국가는 자발적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를 훨씬 급진적인 머레이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와 비교하면서, 미제스가 보다 온건한 인물이었으며 '아나키스트'가 아니었음을 지적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미제스가 자신의 저서 <자유주의(Liberalism)> 에서 급진적 탈중앙화(radical decentralization)에 대하여 언급한 점을 고려해본다면 큰 곤란을 마주하게 된다:

국가의 구성원이 되는 문제와 관련하여 자결권이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그것이 단일마을이든 한 지역전체든, 혹은 몇개의 연결 된 지역이든 간에 특정지역의 주민들이 자유롭게 실시된 국민투표에 의해 현재 속해있는 국가에 더 이상 속하기를 원치 않으며 그대신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고자 한다거나, 또는 다른 국가에 소속되기를 희망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면, 그들의 희망은 존중되어져야 하며 그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혁명과 내란, 그리고 국가 간의 전쟁을 방지하는 단 하나의 현실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와 같은 자결권을 '국가의 자결권'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그들이 소속되기를 희망하는 국가를 결정하는 것은 이미 경계를 정한 국가적 단위가 지니는 자결권이 아니라 각 지역주민이 지니는 자결권이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자결권이란 국가의 자결권이 아니라 독립된 행정단위를 이룰 수 있을 만큼 큰 모든 지역주민들의 자결권이다. 만일 이와 같은 자결권을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당면한 기술적 고려사항들 때문에 현실적이지 못한데, 기술적으로 보아 한 지역은 단일한 정부 단위로 통치되어야 하며 자결권의 행사 역시 국가를 다스리는 데 하나의 지역단위로 간주할 수 있을 만큼 큰 지역주민의 다수의사에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번역본 p.175~176>

이에 대해서 안티-아나키스트들은 "잠깐 기다려봐, 미제스는 개개인에게 완전한 자결권을 부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얘기하잖아" 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반론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물론 간결하다: "그래서 뭐?"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미제스는 개인 수준의 분리독립(secession)을 이론적으로는 인정한다고 명확히 진술하고 있다. 단지 특정한 기술적 난점 때문에, 이것이 현실에 적용하기 힘들다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누가 그의 의견에 반대할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람이 스스로 (미제스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국가적 단위(national unit)가 되는 데에는 물론 실질적인 한계가 있다. 사실, 거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독자적인 국가적 단위가 되기를 원한다는 생각에도 무리가 있다. 심지어 자유방임적인 사람들조차도 (탈퇴가 실질적인 옵션으로 계속 유지되는 한) 선출직 혹은 임명직 지도자들이 관리하는 도시, 협회, 연합 및 동맹 내에서 편안한 삶을 추구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러한 조직들은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신뢰성있고 예측가능한 법률을 제공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고 상거래를 촉진할 의무를 가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레이 라스바드조차 이러한 주장을 부정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결국, 라스바드는 사람들이 항상 사회적 이유, 그리고 방위의 규모와 경제 생산의 비용을 절약하는 이점을 누리기 위해 서로 뭉쳐왔다는 것을 이해하였고, 역사와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점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아나키스트들이 늘상 가져왔던 문제의식은, 개별적인 인간이 자기만의 국가로서 존립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실질적 옵션이 제공되는 사회가 가능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완전히 자발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체제를 선택하는 상황이 가능한가? 이것이 바로 아나키스트들이 제기하는 의문점이다.

우리는 더 많은 국가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재의 선택권 부족(즉, 자결권(self-determination)의 결여)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은 모든 국가의 즉각적인 폐지가 아니라, 기존의 국가를 점점 더 작은 국가로 분해하는 것이다. (모든 국가의 즉각적인 폐지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아무도 설득력 있게 설명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것은 형식적인 분리독립 운동으로 대표되는 법을 준수하는(de jure) 방식으로 행해질 수도 있고, 아니면 무효화(nullification, 국가의 법을 따르는 것을 거부) 혹은 지역적 자율성(localized autonomy)을 요구하는 (법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사실상의(de facto) 방식을 통해서 행해질 수도 있다. [편집자주: 무효화에 입각한 분리독립 시도로는 성공적이진 못했지만 간디의 불복종 운동을 예시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법적으로는 독립 상태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독립의 지위를 누리는 사실상의 분리독립으로는 예전의 팔레스타인, 코소보, 혹은 현재의 서사하라, 소말릴랜드, 트란스니스트리아 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미제스가 설명한 것은 형식적인 투표와 선언을 통한 독립이지만, 실제로는 한스-헤르만 호페(Hans-Hermann Hoppe)가 자신의 저서 <자유주의자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What Must Be Done)>에 수록된 연설문 "현대 국가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는가(How to Fight the Modern State)"에서 제시한 바처럼 지역적인 무효화에 입각한 분리독립의 방법을 통해서도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다른 기술적 조건 하에서는 사실상의 분리독립이 선호될 수 있다.

교조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인 아나키스트들은 종종 분리독립이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하지만 지구의 지리적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지나치게 일차원적인 견해일 뿐이다. 공해(international waters)나 남극, 혹은 지구 밖 우주에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지 않는 한, 새로운 국가의 탄생은 언제나 기존의 국가를 희생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새로운 국가, 예컨대 사르데냐섬의 독립 신생국가 사르디니아(Sardinia)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탈리아"라고 알려진 기존의 국가를 희생시켜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사르디니아라는 새로운 국가가 "이탈리아"라고 알려진 기존 국가의 희생으로 창조된다면, 군사적인 면에서 이탈리아의 세금 수입(tax revanues)과 영토가 줄어들게 되므로, 이탈리아의 국력은 필연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분리독립에는 국가가 약화되는 것 외에도 추가적인 이점이 있다. 개인의 관점에서 사람들은 이전엔 오직 하나만 존재했던 국가에서 선택할 수 있었지만, 이제 두 개의 국가를 가지게 되었다. 개인은 이제 생활방식, 이데올로기, 종교 및 인종 그리고 그 외에도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 더 많은 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추가적인 분리독립이 계속 성취될수록, 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점점 더 넓어질 것이다.


▲ 국가의 개수와 선택의 자유는 정비례한다.

국가가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아무런 선택지도 갖지 못한다는 점을 주목하라. 이 경우 독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선택지는 0과 같다. 즉, 전 지구적으로 단일한 국가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가능한 가장 강력한 국가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가장 완전하게 형성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는 전체 인구를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독점한다. 국민들은 국가를 벗어날 수 없고, 심지어 이주를 통해서도 불가능하다. 그들이 이주할 수 있는 다른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반면에 수백, 수천, 심지어 수만개의 국가(혹은 다양한 정치체제)로 이루어진 세상은, 자신의 삶의 공간을 바꾸길 원하는 거주자들에게 수많은 선택지가 제공되는 것이다.

게다가, 더 작은 국가가 생겨나는 것은 더 많은 실질적 이주지를 의미한다. 근접성과 거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1000마일을 이주해야 탈출할 수 있는 국가는 50마일만 이주해도 탈출할 수 있는 국가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시간, 거리, 이동의 현실적 제약은, 먼 지역으로 이주한다면 고향에 살고 있는 가족, 친구, 사랑하는 지인들과 더 이상 가까이 지낼 수 없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반나절 운전 거리에 있는 장소로 이주하는 것은 생활방식의 훨씬 더 적은 변화만을 필요로 한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보다 작은 영토보다 큰 영토를 선호한다. 큰 국가는 친구나 가족과 가까이 지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주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만약 이주가 극단적으로 다른 문화와 언어로의 적응을 요구한다면, 유창하게 다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주는 더더욱 비현실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많은 국가는 언어를 강제적으로 독점하면서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어만 할 수 있는 사람은 스웨덴에서 계속 살아야하며, 그리스어만 할 수 있다면 그리스에만 갇혀있을 가능성이 높다. 국제적인 공용어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영어의 경우에도, 영어 원어민들의 80%가 단 하나의 국가, 즉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어가 잠재적인 이민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명백하다.

문화와 언어 영역에 대한 국가의 독점을 제한적으로나마 무너뜨리는 것으로, 이민의 많은 현실적 제약을 감소시키거나 극복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약 미국이 미시시피 강을 기준으로하여 두 개의 나라로 쪼개진다면, 이는 다른 체제에서 살기를 원하는 잠재적인 미국인 이민자들에게 즉시 추가적인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는 그들이 언어와 문화가 극도로 유사한 새로운 정치적 관할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 당연히, 미국이 더 작은 조각들로 더 많이 분해될수록 선택지의 숫자는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미국에 계속 거주한다는 사실이 미국의 체제에서 살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증거가 되긴 어렵다. 미국의 규모와 범위를 고려할 때, 개인이 이주에 부담해야 하는 실질적 비용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크다.)

다른 나라들이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개지는 경우에도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멕시코가 "북멕시코"와 "남멕시코"로 분리된다면, 멕시코인들은 멕시코 문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두 가지 정치적 선택지를 갖게될 것이다.

"유럽의 기적(The European Miracle)"이라는 칼럼에서, 랄프 라이코(Ralph Raico)는 문화적으로는 유사하지만,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가진 지역들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였다.

한번 미제스가 <자유주의>에서 묘사한 세계를 상상해보자. 정치체제가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어 개인의 선택과 분리가 보다 잘 보장되어 있는 역동적인 세계를 상상해보자. 이러한 세계는 근본적으로 독점이 아니라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체제를 함의한다. 오늘날의 거대국가 체제와 다르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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