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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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完] 머레이 라스바드와 함께한 세월들 (라스바드를 통해서 진정한 성인이 되다) - 정치적 올바름에 맞서 싸운 라스바드

해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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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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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Hermann Hoppe
한스-헤르만 호페는 살아있는 오스트리아학파 학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호페는 멩거, 뵘-바베르크, 미제스, 그리고 라스바드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오스트로-자유주의(Austro-libertarianism)의 가장 뛰어난 대표자로서, 칸트(Immanuel Kant)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인간행동학 이론체계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칼 멩거(Carl Menger)에 의해 창시된 오스트리아학파가 미제스의 인간행동학을 통해 완전한 선험적-연역적 이론체계로 탈바꿈했다면,—적어도 지금까지는—최종적으로 호페가 미제스의 방법론을 경제학을 넘어 형이상학과 윤리학에도 적용함으로써, 인식론, 윤리학, 그리고 경제학을 아우르는, 일종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서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 : #오스트리아학파의_역사

원문 : Coming of Age with Murray (게재일 : 2017년 10월 16일)
번역 : 김경훈 연구원


[1편] 호페와의 첫만남
[2편] 라스바드의 가난했던 삶
[3편] 라스바드는 왜 아나키스트였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들의 관점에 대한 태도가 온화해지고 '더 내성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머레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급진적이고 덜 관용적이 되었다. 내가 이미 강조했듯 그의 사생활에서 말고 사상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사생활에서 머레이는 끝까지 유순했다. 그의 사상적 급진화와 증가하는 '비타협성'은 자칭 "제한된 정부-자유시장" 어용 자유주의자들이 싱크탱크 산업과 위싱턴 D.C. 정치계에서 성장하는 것에 대응하여 이루어졌다. 싱크탱크와 정치계는 점차적으로 좌파 혹은 좌파사상에 감화되는, 느리지만 체계적인 추세 안에 있었다. 사실 그런 좌경화 추세는 오늘날 까지 계속되고 있고,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권리들'이 끊임없이 '발견'되었고, 특히 소위 자칭 리버테리언들도 여기에 기여했다. '인권', '시민권', '여성의 권리', '게이의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무제한적 자유이민의 권리', '무상급식의 권리', '무상의료의 권리', 그리고 '불쾌한 말과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을 좌파들이 창출하는 데 자칭 리버테리언들 역시 기여했다. 머레이는 이런 '권리'들이 사실 사유재산권과 양립할 수 없음을 증명함으로써, 이들 '인본주의'(독일어로는 'Gutmenschen') 세력을 무너뜨렸고 그들이 지적 쓰레기임을 밝혀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리버테리언이라면 다른 모든 사람보다 필히 확실하게 인식해야 하는 점을 강조했다: 바로 사유재산권은 오직 1.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육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 2. 그리고 그가 정당하게(평화적으로) 획득한 모든 외부 물체를 소유한다는 것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된 사유재산권만이 유일하게 보편적으로 가능한 인권이라는 점임을 머레이 라스바드는 밝혀냈다. 이처럼 머레이의 증명에 따르면, 사유재산권을 제외한 모든 '자칭' 권리들은 거짓이고 보편화될 수 없는 것들이다. 사유재산권 이외의 '인권'을 요구하는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평등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며, 그런 점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더욱이, 머레이는 단순히 비침해성의 공리를 고수하는 것보다 자유주의적 사회질서를 확립, 유지, 방어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오스트리아의 정치철학자 에릭 폰 쿤넬트-레딘(Erik von Kuehnelt-Leddihn)의 격언, "우파가 옳다.(the right is right)"을 따라서, 머레이 라스바드는 더욱 더 우파적으로 변모했다. 머레이가 언급했듯이, 좌파 혹은 '양태적'(Modal) 자유주의자들이 이상을 요약하자면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한 원하는 대로 살아라" 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부모의 권위와 사회적 관습과 통제에 대해 반항하는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나 매력적으로 들릴 듯한 말이다. 아마 서로 아득히 멀리 떨어져 살면서 간접적으로 거래하는 것 만으로 살아가는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없는 표어일 것이다.

하지만 한 공동체 안에서 이웃 및 동거인들과 가까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특정 영역에서 정기적으로 이웃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평화적 공존은 언어, 종교, 관습 등 문화적 공통요소를 필요로 한다. 거리가 멀고 물리적으로 분리된 공동체들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져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지만, 한 공동체 혹은 영역 안에서의 다문화주의, 문화적 이질성은 사회적 신뢰를 떨어트리고, 갈등을 증가시키며, 궁극적으로 자유주의적 사회질서 혹은 그와 유사한 것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존속할 수 없게 된다.

이전에 머레이가 가짜 자유주의자에 의해 무시당하고, 등한시되고, 분개의 대상으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머레이는 '정치적으로 올바름'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입장으로서 비난받고, 근거없는 증오에 부딪히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 친숙한 장황한 비난의 욕설만이 그를 향하고 있을 뿐이다. 머레이는 반동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권위주의자, 엘리트주의자, 외국인혐오자, 파시스트, 무엇보다도 자기혐오적 유대인 나치로 여겨진다.

머레이는 생전에 이 모든 것을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넘어갔을 뿐 이다. 그리고 그의 영향력은 단지 커져만 갔을 뿐이며, 그가 죽은 이후로는 더 크게 성장했는데, 이는 머레이에 대항하는 '명예훼손 동맹', 머레이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안티파' 연합을 큰 경악에 빠트렸다.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머레이 없이는 우리가 아는 론 폴도 없었을 것이다.-물론 내가 론 폴의 역할과 그의 비상한 업적을 조금이라도 축소하거나 경시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머레이가 없었다면 론 폴의 정치운동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라스바드 반대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중적 인기를 끄는' 자유주의 어젠다 역시 없었을 것이다.

나 자신의 견해도 역시 머레이의 견해를 본받아 급진화되었다. 나의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Democracy: The God That Failed)>는 이러한 지적 발전의 첫번째 주요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좌파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나의 급진적 불관용과 편협은 그 이후로도 계속 전방위적으로 커져만 가고 있다. 나 역시 '라스바드 반대자'들에게서 머레이와 같은 명예로운 칭호를 몇개 선사받았고, 심지어 머레이 보다도 몇개 더 많은 칭호들을 받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다만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혐오 유대인이라 불리진 못했다.) 그리고 나는 머레이가 했던 것 처럼, 그리고 랄프 라이코가 언제나 내게 해준 충고와 격려처럼, 그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신경쓰지 않고자 노력해왔다. 추가적으로, 독일 속담 'viel Feind, viel Ehr.'(적이 많으면 명예도 크다.) 역시 내게 도움이 되었다. 내가 이제 12년 연속으로 개최하고 있는 '재산과 자유 사회'(Property and Freedom Society) 연례행사의 지속적인 성공이, 정말로 나를 향한 모든 명예훼손 운동의 완전한 실패를 증명해주었다. 어찌되었건, 그들은 내가 지적인 동료, 결속, 지지자의 더 큰 무리를 끌어모으는데 방해하기 보다는 도움을 주었다 생각한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나의 사랑스러운 아내 굴친(Gülcin Imre Hoppe)의 현명하고 엄격한 지도 아래, 나 역시 비타협적인 지적 급진주의와 개인적인 연애를 결합하는 데 큰 진전을 이루었다. 비록 그것이 내가 타고난 기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머레이가 진정으로 이룬 것과는 차이가 있음에도 말이다. 내 자연적 성품은 결코 머레이에게 어떤 면에서도 범접할 수 없었다.

나는 이번 연설에서 류 락웰에 대해서 너무 적게 말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꼭 강조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머레이와는 별개로, 류 역시 내가 오늘날의 위치에 있게 된 것에 가장 중요한 도움을 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저 하늘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 확실한 머레이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머레이, 고마워요. 당신은 나의 영웅입니다. 다시 말날 수 없는게 너무 슬프고, 당신의 제자여서 행복했습니다. 당신이 저를 칭찬할때 마다 전 엄청난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제 다시는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 이상으로 저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없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있는 그 곳, 사상사의 왕들이 자리잡고 있는 그 곳에서 같은 말을 다시 말하는 것만이 제게 그 이상의 기쁨을 선사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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