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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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치인은 독재자다

해외 칼럼
정치·외교
작성일
2020-09-07 10:07
조회
1369

Lew Rockwell - Wikiwand

Llewellyn H. Rockwell Jr.
가장 영향력있는 자유주의자 중 한 명인 류 락웰은 미제스 연구소의 창립자 겸 회장이며, 류락웰닷컴의 운영자이다. 일찍이 자유주의적 신념을 가졌던 락웰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유주의 출판사인 '알링턴 하우스(Arlington House)'에서 근무했는데, 그곳에서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저술을 편집하는 업무를 맡으면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접하게 되었다. 1975년에는 머레이 라스바드를 만나 완전한 아나코-캐피탈리스트가 되었으며, 1978년부터는 자유의 수호자 론 폴의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다. 1982년에는 마침내 미제스 연구소를 창립하면서 오스트로-리버테리어니즘 운동을 주도하는 활동가로 자리잡았다.

주제 : #정치비판

원문 : Longing for Dictatorship (게재일 : 2008년 8월 29일)
번역 : 전계운 대표



정치는 모든 이들에게 재앙을 초래한다. 이러한 재앙은 우리 사회가 완전한 ‘탈정치화(depoliticize)’를 추구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가 탈정치화된다면, 우리는 티비에서 광대들이 [역주:정치인들이] 불가능한 약속을 하는 것을 보며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더 생산적인 일이나 여가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티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두 형태의 독재라 할 수 있다. 어떤 정당은 모든 이들에게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국제적인 연대가 있고 증오와 차별이 없는 세상에서 모든 부를 나누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아테네 같은 이상사회를 꿈꾼다.

물론 자유무역, 사적 소유권, 건전한 화폐, 낮은 조세 등 이러한 것들은 아테네 고유한 문화와 업적임에 틀림없다. 반면에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은 모든 재산에 대한 통제, 민간 주도 계획의 파괴, 그리고 경제적 자유를 끝장내려는 터무니 없이 큰 국가다.

공정과 정의를 위한 민주당의 핵심 계획은 사회내에서 정부 폭력의 사용 증가와 정치권력의 중앙집권화의 증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민주당이 이를 언급하지 않고 있음을 유념해야할 필요가 있다. 독재자가 되려고 하거나 자신의 계획만이 성공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간혹 이러한 계략을 꾀하곤 한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국가가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하는 것과 같이, 국내에서도 시민의 자유를 파괴하며, 그들조차도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좌파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좌파가 공화당 부시 정권의 큰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부시 정부가 자유를 파괴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정부 권력을 잘못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민주당원들의 또 다른 문제는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상업적인 사회를 적대시한다. 이들은 자본주의가 없다면 대부분의 인류는 굶어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왜 자본주의를 싫어할까? 자본주의 하에서의 부는 항상 불평등하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또 다른 형태의 독재를 선호할 뿐이다.

이제 공화당을 한번 살펴보자. 그들은 자신들이 군사력과 잘 훈련된 시민들을 통합해서 국가의 위대함, 용기, 영웅주의로 나아가며 현대적인 스파르타를 창조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이에 따라, 공화당원들은 병역의 의무를 지지하는 동시에 의회가 행정부 문제에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또한 그들은 자유기업을 지지한다고 떠들고 있지만, 사실 정부와의 계약과 특혜에 의존하는 핵심 대기업(재벌)만을 지원하는 작자들이다. 국가의 권력 확대를 부추키는 불태환화폐 제도를 통해서만 이익을 얻으며, 그 제도를 뒷받침하는 은행과 모기지 회사를 포함해서 말이다.

공화당 역시 또다른 형태의 독재를 추구할 뿐이다. [역자주: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 힘,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의 정강과 정책을 살펴보면, 정책적으로 크게 차이가 없다. 기본소득과 같은 경제에 대한 간섭주의는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군소정당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제도권의 기성정당들은 자유가 아닌 통제와 독재를 원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두 정당이 이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물론 이들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알아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 간혹 이 두 정당에서 차이점이 거의 없다고들 하지만, 정확히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없다. 그러한 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치인들이 관리자가 되는 어떤 형태의 독재를 사랑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대안은 무엇일까? 요즘 사회에서는 공허한 구호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는 “순수한 자유(pure liberty)”를 추구하는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의미로만 사용할 수 있는데, 정부로부터 어떠한 간섭이 없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신이 창조한 이 땅에서 국가가 개인, 공동체, 혹은 자발적인 연합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해 자유란, 사회의 관리자를 자처하는 국가를 해고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며 여러가지 부연설명을 덧붙이지만, 우리는 좌파, 우파, 중도 모두 거부해야만 한다. 이러한 경우, 혼란이 발생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으며, 반대로 사유재산 사회의 질서정연함을 남기게 될 것이다.

미제스1949년에 말했듯이:

“진실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케케묵은 무의식적인 메커니즘과 의식적인 계획 둘 중 하나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계획을 하느냐, 혹은 계획을 하지 않느냐 사이에서 대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는 누가 계획을 하느냐 이다. 사회의 각 구성원들이 스스로 계획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어버이 같은 정부만이 모두를 위해 계획을 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무의식적인 작용 혹은 의식적인 행동 사이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발적 행동 혹은 정부의 독단적 행동에 대한 것이다. 즉, 자유 대 전능한 정부이다.”

사람들은 미제스가 제 정신이 아니며, 문제를 너무 과장했고, 지나치게 선동적이라고 비난했다. 확실히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고, 새로운 적으로 부상하는 러시아의 시스템과도 아주 상이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다. 1930년대에 우리는 사회주의와 파시즘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독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통념에 지배당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사회주의 혹은 파시즘을 경멸적인 어조로 사용하지 않았으며, 오늘날보다 더 개방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 정부체제로서의 사회주의와 파시즘은 더 이상 긍정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동일한 가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정치인들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싶어 하는지 한번 살펴보라. 정치인들이 약속하는 것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들이 약속하는 것을 실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폭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폭력은 정부와 사회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필요로 한다. 정치인들이 근사하거나 다정해 보일 수도 있다. 그들이 우리의 가족과 공동체를 사랑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사실 정치인들의 이념은 우리의 자유와 재산에 대한 증오로 가득차 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의 자유를 끝장내려고 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독재를 원한다. 정치인에 대한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태그 : #경찰국가 #정치학 #큰정부 #자유주의일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