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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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세계 최초의 리버테리언, 노자와 장자: 훌륭한 위정자의 길과 작은 정부

국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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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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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2

전용덕
*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 경제학 박사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정치철학과_윤리학
편집 : 전계운 대표
  • 편집자주: 이 글은 2007년에 출간된 전용덕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의 저서 <권리,정부,시장>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리버테리언, 노자와 장자: 목차 <펼치기>

3) 훌륭한 위정자의 길

노자는 도덕경 ‘제77장 천지도’(天之道)에서 위정자가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간단하게 보여준다. “누가 능히 남음이 있는 것으로써 천하를 받들 수 있겠는가. 오직 하늘의 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뿐이다.”라고 하여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 사람의 도가 아닌 하늘의 도에 따를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제10장 재영백’(載營魄)에서 도 또는 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만물을 낳고 기르면서도, 생겨나되 소유하지 않고, 일하고도 공을 뽐내지 않고, 자라게 하되 다스리려 하지 않거니와, 이를 일러 현모한 덕(德)이라고 한다.” 노자는 ‘제64장 기안이지’(其安易持)에서 “이런 까닭으로 성인(聖人)은 욕심 내지 않는 것을 욕심 내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배우지 않음을 배움으로 삼고, 여러 사람들이 지나치는 바를 되돌림으로써, 만물이 있는 그대로를 도와서, 감히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제2장 천지개지’(天池皆知)와 ‘제5장 천지불인’(天池不仁)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생략) 이런 까닭으로 성인은 무위(無爲)의 일에 처하여, 말없는 교화를 행하는 법이다.”라고 하고, 제5장에서는 “하늘과 땅은 인자함을 지니지 않아, 만물을 초개처럼 버려 두고, 성인은 인자함을 지니지 않아, 백성을 초개처럼 버려 둔다.”라고 하고 있다. 하늘과 땅은 만물을 초개처럼 내버려 두어 본체만체하건마는 그래도 만물은 생겨나고 자란다. 이를 본받은 성인도 백성을 초개처럼 내버려 두니까 오히려 백성들은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즉, 훌륭한 위정자란 백성을 초개처럼 내버려두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어떠한 작은 행위도 모두 인위적이고, 인위적인 것은 만물의 자연스러움을 깬다. 그러한 행위는 만물의 화육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사람들이 욕심 내지 않는 것 즉, 무위 자연의 도를 행하는 것을 욕심 낸다고 한다. 앞에서 소개한 여러 장에서 노자는 위정자가 리버테리어니즘, 즉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를 실현함으로써 그러한 체제가 삼라만상을 자라나게 한다는 것을 하늘과 땅, 즉 자연의 도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좋은 위정자가 되기 위하여 자연을 본받아 반드시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를 정치의 이상으로 삼을 것을 권하고 있다.

장자는 노자보다 좀 더 구체적이다. 장자는 좋은 위정자가 되는 길을 ‘제11장 재유’(在宥)에서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그러므로, 군자가 어쩔 수 없이 천하에 군림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는, 무위인 것이 가장 좋다. 군주가 무위여야만이 비로소 사람들은 그 성명의 참된 정에 안주할 수가 있다. 그래서, 군자가 자신의 몸을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것보다 귀하게 여기면, 그 군자에게 천하를 부탁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사랑하면, 그 군자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군자가 오장의 정을 둔하게 하지 않고 그 총명함을 일부러 두드러지게 하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으면, 신주처럼 고요하게 있으면서도 그 덕이 용처럼 밝게 드러나, 심연과 같이 고요하면서도 그 덕이 용처럼 밝게 드러나, 심연과 같이 고요하면서도 그 위엄은 우레처럼 사방을 떨게 하고, 그 하는 바는 신처럼 영묘하게 행해진다. 나아가, 천연의 도리에 좇게 되어 어떠한 물(物)에도 번뇌하지 않고 여유가 있으며 아무런 꾸밈도 없으므로, 만물이 자연스럽게, 막히는 일이 없이 다스려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어인 까닭으로 내(필자 주, 장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일 따위를 설하려 하겠는가.”

작고 또 작은 정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정치가가 많은 일을 벌려서는 안 되는 것이 필연이다. 그러기 위해서 통치자 또는 위정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을 수고롭게 할 각종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정치가가 자신의 몸을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몸을 수고롭게 할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장자가 작고 또 작은 정부를 위하여 제시하는 모범적인 위정자의 모습이다. 그러한 위정자만이 천하를 막힘 없이 다스릴 수가 있고 그러한 이상적인 상태가 오면 장자 자신이 더 이상 천하를 다스리는 일 즉, 정치 철학을 논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고 반문하고 있다.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를 위하여 위정자가 해야 할 일을 장자는 다음과 같은 예화로 다시 설명한다. 장자 ‘제2장 제물론’(齊物論)에서 요(堯) 임금과 순(舜)의 대화를 이렇게 적고 있다:

“(생략) 그에 따른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옛날, 요임금이 순에게, ‘나는, 내게 복종하지 않고 오만 불손한 숭, 회, 서오의 세 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키려 한다. 그런데, 천하 정벌의 권리를 가진 천자의 지위에 있는 내가 그들을 치려함에, 아무래도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어 마음이 개운치 않으니 이 어찌된 일인가?’하고 물었다. 순이 대답했다. ‘저 세 나라의 군주들은, 이제까지와 똑같이 황폐한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의 마음이 개운치 않다니,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옛날에, 10개의 태양이 일시에 나와, 만물을 빠짐없이 비추었다 합니다. 더구나 덕은 태양보다 뛰어납니다. 당신의 덕이 그들에게 미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정벌을 그만두고, 무위의 덕을 닦는 것이 좋겠지요.)’―라고 하는 것이다.”

이 예화는 전쟁을 일으키면 필연적으로 정부는 크게 되고 그것은 결코 좋은 정치가 아님을 말한다. 장자는 좋은 정치를 위한 최선의 길은 위정자가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를 실현하는 것임을 요순의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장자는 ‘제7장 응제왕(應帝王), 제4 양자거・노담 문답’(陽子居・老聃問答)에서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에 대한 위정자의 태도에 대하여 앞에서 본 ‘제2장 제물론’(齊物論)보다 더 자세히 적고 있다. “(명덕明德)을 지닌 왕의 정치란, 그 작용이 널리 천하에 미쳐도 그것이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에 마음 쓰지 않고, 그 화육을 만물에 베풀면서도 그것이 왕의 힘이라고는 믿게 하지 않는다. 선공이 있어도 사람들 입에 그 명예가 오르내리지 않게 하며, 물(物) 각각이 자신들의 성장을 이루어 그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며, 자신은 모든 물의 예측할 수 없는 깊은 근원에 위치하고, 무의 자유를 향수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사람들이 스스로 하게하고 왕은 그러한 행위에 최대한 간섭을 하지 않음으로써 만물을 생성, 화육하게 할 것을 장자는 설파하고 있다. 이것을 정치철학으로 표현하면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를 의미하고, 그러한 자유지상주의 정치철학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어 만물을 생성하고 화육하게 만든다고 장자는 말하고 있다.

4) 작고 또 작은 정부가 가져올 결과

노자와 장자에게 있어서 훌륭한 정부란 결국 작고 또 작은 정부를 말한다. 그러면 그러한 작은 정부가 가져올 결과는 어떤 것인가. 노자는 도덕경 ‘제3장 불상현’(不尙賢)에서 작은 정부가 가져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무위를 행하기만 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경우가 없게 된다.” 또한 도덕경 ‘제37장 도상무위’(道常無爲)에서 “도의 본체는 함이 없되, 하지 않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군주(君主)가 만일 능히 이를 지킨다면, 모든 백성들은 저절로 화육된다.” 작고 또 작은 정부가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거의 일을 하지 않거나 정부가 없어지는 단계를 말한다. 이렇게 정부가 무위 자연의 도에 따라 아무런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은 자유와 번영을 누리게 되고, 정부가 어떠한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백성들로 하여금 모든 일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위 자연의 도가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으로, 도에 의해서 ‘함이 없되 하지 않는 일이 없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노자는 ‘제57장 이정치국’(以正治國)에서 무위의 정치가 가져올 결과를 다시 한 번 역설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말하기를 ‘내가 무위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저절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함이 없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부유해지고, 내가 욕심이 없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순박해진다.’라고 했다.” 이 장에서 ‘나’는 위정자를 말한다. 위정자가 무위로 다스리는 것 즉, 작고 또 작은 정부를 실행하면 모든 것이 자연적 질서에 따라 잘 움직여나가, 백성들은 바르게 되고, 부유해지고, 순박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노자는 위정자가 작고 또 작은 정부를 실현하면 도래할 결과를 이 장에서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확신에 찬 주장이고 설득인가. 또한 노자는 ‘제43장 천하지지유’(天下之至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략) 말이 없는 가르침과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 유익함, 천하에는 이에 미칠 만한 것이 없다.”라고 말함으로써 큰 정부를 지양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여함을 재삼 강조한다.

장자도 ‘제12장 천지(天地) 제1 군주천덕설’(君主天德說)에서 노자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장자의 본문은 앞의 <훌륭한 정부의 순서>에서 이미 인용하였다. 그 의미만을 살펴보면, 본문에서 임금의 무욕이란 오늘날의 정치 체제로 본다면 결국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를 말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러한 작은 정부를 실현하면 노자의 주장처럼 만사가 모두 태평하고 풍족하다고 장자는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를 실현하면 자유가 잘 보장되고 경제적으로 성장이 가장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5) 장자의 정부관

장자는 노자보다 한층 뚜렷한 정부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특히 그의 정부관을 따로 고찰하고자 한다. 장자는 노자보다 정부에 대하여 적대적이다. 그 점에서 장자는 노자보다 무정부주의를 주장한다. 장자에게 있어서 정부란 기본적으로 큰 도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장자의 그러한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이 장자 ‘제10장 거협(胠篋) 난성지지론’(難聖知之論)에서다. 본문을 보면,

“그래서, 시험삼아 한 번 논하여 보겠다. 세상에서 이른바 뛰어난 지혜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큰 도적과 같은 악인을 위해 물(物)을 모아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세간에서 추앙 받는 성(聖)스런 지혜라는 것도, 사실은 대도적과 같은 악인(惡人)을 위해 그들을 지켜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아느냐 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옛날 제(齊)나라는, 마을들이 서로 빤히 보일 만큼 가까이 있어 이웃 마을의 개와 닭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 또 그물을 쳐 고기를 잡을 수 있는 호수와 늪이 있고 쟁기와 괭이로 개간한 경지가 사방 이천 리에 걸쳐 있었다. 그 사방의 끝에까지 걸쳐, 종묘・사직을 세워 국가의 주권을 명확하게 하고 읍・옥・주・여 따위의 지방 구역을 설계하여 그것들을 다스린 정책은, 그 어느 하나도 명지(明知)・성모(聖謀)에 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전성자(田成子)는 하루 아침에 제나라의 군주를 죽이고 그 나라를 도둑질해 버렸다. 그가 도둑질한 것은, 제나라의 국토뿐이었을까. 그 성지가 정해 놓은 법제까지도 함께 훔쳤던 것이다. 그래서 전성자는, 도적이라는 오명을 얻긴 했으나 몸은 요・순과 같이 안락했다. 당시의 작은 나라들은 그의 악역을 비난하지 못했고, 큰 나라들도 그의 죄를 책하지 못하여, 그의 자손은 대대로 제나라에 군림했다. 이것은, 제나라의 국토뿐 아니라 성지에 의해 만들어진 법제까지 도둑질함으로써, 도적으로서의 그 몸을 온전히 지킨 것이 아니겠는가.

(중략)

성인(聖人)(필자주, 공맹과 같은 사람)이 죽어 없어지지 않는 한, 큰 도둑도 없어지지 않는다. 성인을 모조리 모아다 천하를 다스리게 한다 해도, 그것은 오히려 큰 도둑에게 되풀이하여 이익을 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되를 만들어 물의 출납을 엄하게 하면, 도둑은 그 되마저 훔친다. 저울을 만들어 물의 경중을 정확하게 재려 하면, 도둑은 그 저울마저 훔친다. 부절(符節)과 도장을 만들어 서약의 증거로 삼으려 하면, 그 부절과 도장까지 훔친다. 인의를 정하여 바르지 못한 것을 교정하려 하면, 도둑은 그 인의(仁義)마저 훔쳐버리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렇다는 것을 아느냐 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대저, 허리띠에 붙은 장식을 도둑질하는 정도의 작은 도둑은 죽임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큰 도둑은 제후가 되며, 더욱이 제후 일족의 권세야말로 인의를 빙자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큰 도둑은 인의・성모・명지까지 훔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성인(필자주, 공맹과 같은 사람)의 다스림은, 큰 도둑을 몰아내는 것 같아도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제후의 높은 자리에 오르게 하는 것이다. 인의와 아울러 되・저울・부절・도장까지 훔치는 자라면, 그들에게 높은 벼슬을 주어 선도하려 해도 할 수가 없고, 엄벌의 위협으로도 그들의 비행을 막을 수 없다. 이처럼 도척과 같은 큰 도둑에게 계속 이익을 줄 뿐 그들의 비행을 막지 못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성인의 잘못 때문이다.“

고 하고 있다.

장자는 장자 ‘제17장 제5 초사자・장자 문답(楚使者・莊子問答)-예미도중우화’(曳尾塗中寓話)에서도 자신의 정부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 우화의 의미만을 간추려본다. 첫째, 이 우화에서 장자는 높은 직위와 호화로운 생활보다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적어도 장자 자신에게는 그렇다는 것이다. 둘째, 이 우화에서 장자는 정부의 행위를 불신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거북이 죽어 등딱지를 남겨 귀하게 되듯이 정부의 관리가 되면 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관리가 됨이 거북이 죽어 등딱지를 남기는 정도의 하찮은 일이라는 것을 장자는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관리가 되는 것이 유일한 출세의 길이었던 시대에 장자는 그것이 얼마나 하찮고 자유를 속박하는 일인가를 말하고 있다. 이 글은 장자가 얼마나 리버테리어니즘적 사고 방식을 지녔고, 정부를 부정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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