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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2021년 7월호] 망중립성, 그리고 능력주의와 공정한 경쟁

국내 칼럼
사회·문화
작성자
작성일
2021-07-0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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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사회현안

미제스 와이어 2021년 정기칼럼 목차 <펼치기>

망중립성

통신망 제공업체인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망중립성(net neutrality) 문제를 두고 재판 중이다. 지난 달 25일 1심 법원은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의 최종 결과와 상관없이 망중립성 개념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분석해본다. 망중립성이란 “인터넷 통신망 제공업체가 데이터의 내용과 양에 따라 속도와 사용료 측면에서 소비자를 차별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망중립성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망을 ‘공적자산’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공적자산인 만큼 망의 이용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망중립성을 반대하는 측은 망도 다른 재화와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현실에서 자동차, 자전거 등, 교통수단이 다니는 도로망이 있다면 망은 디지털 자료를 주고 받는 도로망인 셈이다. 다시 말하면, 인터넷 통신망은 ‘디지털 도로망’인 것이다.

현실의 도로를 민간이 공급할 수도 있고 정부가 공급할 수도 있다. 민간이 도로를 설치하여 운영하는 경우에는 요금을 받지 않으면 민간업자가 생존할 수 없다. 그러나 도로를 정부가 공급하는 경우에는 요금을 받는 경우도 있고(예, 고속도로) 요금을 받지 않는 경우(예, 일반도로)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 요금을 받지 않는다고 공짜는 결코 아니다. 사용자가 도로 사용 요금을 따로 내지 않지만 국민 누군가가 세금을 내야 한다. 즉 세 경우 모두 공짜가 아니다. 다만 누가 도로의 건설과 운영 비용을 내는가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민간유료도로나 고속도로는 도로 이용자가 요금을 낸다. 도로 이용자가 도로를 이용한 만큼 요금을 내기 때문에 공정하다. 정부 제공 일반도로는 사용자는 공짜로 이용하는 대신에 일반 국민이 세금을 낸다. 그 점 때문에 일반도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낸 세금에 비해 일반도로를 조금 밖에 이용하지 사람은 세금을 부당하게 많이 내고 있는 것이지만 세금을 거의 내지 않지만 일반도로를 많이 이용하는 사람은 상당한 보조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일반도로의 경우에 소득의 재분배 문제, ‘무임 승차자 문제’ 등이 발생한다. 소득 재분배 문제는 공정성 문제이기도 하다. 고속도로의 경우에도 정부가 마음대로 특혜를 주는 경우에는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형차에게 비용 이하의 요금을 부과하는 경우이다. 앞에서 제기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민간유료도로이다. 당연히 최선은 민간유료도로이고, 고속도로, 일반도로 순이다.

디지털 도로망과 가장 유사한 것은 정부 운영의 고속도로망이기 때문에 그것에만 집중한다. 고속도로망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력, 도로, 사무실, 각종 장비 등이 필요하다. 인력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국·공유 재산이다. 디지털도로망의 경우에 인력, 광케이블, 서버, 광케이블 매설지역, 사무실, 각종 장비 등이 필요하다. 광케이블 매설지역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 형태의 재산이 있을 수 있지만 국·공유 도로에 매설하고 도로 이용료를 내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바다에 광케이블을 매설하는 경우에는 공해와 연근해로 나누어 다루어야 한다). 어느 경우가 공적자산이 많을지는 구체적인 사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고속도로망이 디지털도로망보다 공적자산이 훨씬 많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고속도로망이 공적자산의 집합체라고 고속도로 이용자가 무료로 고속도로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디지털도로망의 일부가 공적자산이라고 망중립성을 핑계로 디지털도로망을 ‘무료’(여기에서 무료라는 것은 사용량에 비하면 내는 요금이 적다는 의미이다)로 이용하는 것은 디지털도로를 일반도로처럼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 경우에 앞에서 지적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넷플릭스처럼 인터넷망에 막대한 트래픽(자료 전송량)을 유발해 인터넷 통신망 제공업체가 매년 수천억 원의 추가 투자를 하는 상황이라면(SK브로드밴드의 한·일인터넷망 용량은 2018년 2월에 50Gbps에서 2021년 5월 900Gbps로 증가했다)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은 넷플릭스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가 자료 전송량에 따라 추가 사용 요금을 내지 않는다면 망중립성이라는 잘못된 개념 뒤에 숨어서 SK브로드밴드의 자산을 약탈하고 있는 것이다.

망중립성이라는 잘못된 개념으로 가장 많은 손해를 보는 사업체는 SK브로드밴드일 것이다. 지금까지 구글(국내 일평균 인터넷 트래픽 점유율은 25.89%, 이용자 수는 8227만 명, 2020년 4분기 기준 1위), 넷플릭스(4.81%, 이용자 수는 174만 명, 동일 시점 기준 2위) 등과 같은 대형 인터넷·콘텐츠 기업은 디지털도로망을 거의 공짜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비용은 다른 기업들과 초고속 인터넷 이용자들이 일부를 부담하고 있다. 비용이란 인터넷의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거나, 요금을 더 많이 내는 것이거나, 둘 모두일 것이다.

일부 망중립성 개념을 옹호하는 논자는 ‘한류’와 같은 산업이 해외에서 성장하려면 국내에서 망중립성을 유지하고 그것을 해외 인터넷 통신망 제공업체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통신망 제공업체가 디지털도로망 사용업체에게 요금을 부과하는 데 있어서 해외에서의 한류 산업의 발달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인터넷 통신망 제공업체는 국가가 아니다.

망중립성 개념에 대응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인터넷 통신망 제공업체는 모든 재산을 사유재산으로 만들어 공적자산 개념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통신망 제공업체는 인터넷·콘텐츠 사업자들이 자신의 인터넷 통신망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이용 요금 등에 있어서는 차별을 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용 요금에 차별을 둘 수 없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용을 유발한 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원리를 넷플릭스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망중립성이라는 이상한 개념을 악용하여 세상 사람들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능력주의와 공정한 경쟁

몇 년 전 A사는 노조와 다음과 같은 내용의 노사협약을 맺었다. 근속 연수가 20년이 넘는 노동자가 회사를 퇴직하면 회사가 그 자식 한 명을 채용해줄 것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소위 ‘아빠 찬스’인 것이다. 그것은 능력주의의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지는 세습제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서 세습제란 신분에 의한 세습이 아니라 노조에 의한 노동자 직위의 세습이기 때문에 ‘노조판’ 세습제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조선왕조 시대 사람들은 양반, 상민, 노비, 천민 등의 신분으로 철저히 그리고 오랫동안 나누어져 있었다. 양반만이 신분제 사회에서 출세를 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인 과거시험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신분은 그런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양반의 노예였다. 과거시험이 시험 응시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었기 때문에 그 점에서는 능력주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양반만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과저시험은 신분제에 기초했고 그 신분은 세습되었다. 즉 조선왕조는 신분제라는 기초 위에 세워진 능력주의라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능력주의로 볼 수 없다. 조선왕조의 과거제는 신분제·세습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능력주의가 아주 조금 가미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평가일 것이다.

능력주의의 대척점에는 세습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공서열제도 능력주의의 대척점에 있다. 연공서열제를 전해준 일본은 이미 대부분의 기업에서 연공서열제가 점차 폐지되었다고 하는데 한국 기업들에는 연공서열제가 아직도 지배적인 인사고과 방법이다.

혹자는 능력주의가 사실상 신분제로 쉽게 고착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신분제로 고착되기 위해서는 특권, 무법, 불법, 편법, 불공정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조국사태를 보라. 조국 부부가 자신들의 능력으로 교수가 되고 난 후에는 자식의 대학입시에 개입하여 특권, 무법, 불법, 편법, 불공정 등을 행사하여 자식의 신분을 특정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능력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특권, 무법, 불법, 편법, 불공정 등을 옹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능력주의라고 국회의원 후보나 시의회 의원 후보에게 전자기기를 다루는 시험을 보겠다는 발상은 너무 기상천외하다. 정치세계는 산업계나 교육계와 다르다. 정치인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 '바텀업'(bottom up) 선출 방식이다. 그것은 지역 당원이 먼저 당의 후보자들을 선출하고 그런 후보들 중에서 지역 주민이 선거에서 최종 선택을 하도록 하는 정치인 선출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당들은 아직도 ‘탑다운’(top down) 방식으로 후보자를 선출하고 있다. 비례대표는 전부가 그렇다. 그런 방식은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그렇게 선출된 정치인들의 집합체인 정당이 민주적이고도 평등하게 운영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21대 국회를 보라). 그러므로 정치인을 선출할 때 지역 후보자 선출 방식을 바텀업으로 바꾸는 것이 선결과제이고 능력주의는 그 이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경쟁 개념은 경제학자들이 생산 행위에 적용하기 위하여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그 개념을 일상의 삶에 사용하는 경우에는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공정 경쟁(공정한 경쟁을 줄여서 ‘공정 경쟁’이라고 한다)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A사 경우로 돌아가 보자. 만약 ‘아빠 찬스’를 이용할 수 있는 청년에 비하면 그런 찬스를 이용할 수 없는 청년은 입사 과정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운동 경기에서 심판의 판정이 온당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런 행위를 ‘불공정’하다고 한다. 여기에서 공정하다 또는 불공정하다는 개념은 경쟁 과정 또는 경쟁의 조건과 관련이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만약 별다른 입사 시험이나 경쟁 과정 없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면 그 비정규직은 ‘특혜’ 또는 ‘특권’을 받는 것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경제학에서는 이런 특혜 또는 특권을 ‘독점’이라고 정의한다. 특혜 또는 특권을 받는 자가 몇 명인가는 독점의 정의와 관련이 없다. 이미 채용되어 있는 정규직의 관점에서는 비정규직에게 주는 특혜 또는 특권은 불공정한 것이다. 아무른 경쟁 과정 없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을 권력자가 명령한다면 편법 또는 무법으로 채용을 명령한 것일 수 있다. 권력자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의 행위가 편법, 무법, 불법 등으로 판가름 나게 될 것이다.

병역특례(병특) 제도를 보자. 병특은 병특을 받는 학생과 그 학생을 배정 받는 기업체에게 특권을 주는 것이다. 병특을 받지 못하는 학생과 기업체는 병특을 받는 학생과 기업체보다는 명백히 불리하다. 전자와 후자는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해지기 위해서는 병특을 폐지해야 한다.

능력주의를 위한 전제조건은 경쟁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 과정이 불공정하거나 그것도 모자라 특권, 불법, 무법, 편법 등이 횡행한다면 그런 세계는 이미 ‘법 앞의 평등’이 무너진 사회이고 자유시장 사회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조국사태에서 보듯이, 이미 능력주의가 현대판 신분제로 변질된 사회이다.

작금의 한국 사회는 너무 많은 불공정이 지배하고 곳곳에서 능력주의가 변질되어 현대판 신분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공정한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자유시장, 즉 자본주의를 지향한다면 능력주의와 자유경쟁(공정 경쟁이라는 개념보다는 자유경쟁 개념이 더 정확한 것이지만 이에 관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은 필수적이다. 제1야당의 대표인 이준석이 능력주의와 공정 경쟁을 강조한 것은 문재인 정권에서 특권, 불법, 무법, 편법, 불공정 등이 그 어느 때보다 지배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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