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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2020년 2월호] 대학졸업장은 왜 ‘짐’이 되고 있나

국내 칼럼
경제학
작성자
작성일
2020-02-01 15:38
조회
1306

전용덕
*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 경제학 박사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노동과_임금

미제스 와이어 2020년 정기칼럼 목차 <펼치기>

한국은행의 오삼일·강달현 연구팀은 ‘하향 취업의 현황과 특징’이라는 보고서(2019년 12월)에서 하향취업률(대졸 취업자 수 대비 하향 취업자 수)이 2000년 1월에는 23.6%였고 그 이후 꾸준히 상승하여 2019년 9월에는 30.5%로 높아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2000년에 대졸자는 663만 명에 적정 일자리는 631만 개로 그 차이가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러나 2019년 9월 기준 대졸 적정 일자리는 1080만 개였는데 비해 대졸자는 1512만 명에 달했다. 보고서는 하향취업률이 2000년에도 심각했지만 2019년에는 그보다 더 악화했음을 보여준다.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보고서에 나오는 통계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한다. 보고서는 4년제 대학 졸업자가 통계청의 한국표준직업분류상 관리자, 전문가, 사무 종사자 등(제1집단으로 표기)에 취업하면 ‘적정 취업’으로 분류하고 그 이외의 직업(서비스 및 판매 종사자, 농림어업 숙련 노동자, 기능 근로자, 장치 및 조립 종사자, 단순노무 종사자: 제2집단으로 표기)을 가진 경우에는 ‘하향 취업’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제1집단에서도 고졸, 제2집단에서도 대졸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보고서의 분류 방법은 다소 임의적이고 그 결과 하향취업률 자료가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는 보고서의 하향취업률 통계에 포함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통계는 현실을 축소하여 보여주고 있다. 다른 문제도 있다. 취업을 준비하느라 졸업을 늦추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그 점을 고려하면 실제의 하향취업률은 보고서의 수치보다는 높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앞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하향취업률이 심각하다는 점, 지난 20여 년 동안 하향취업률이 개선이 아니라 악화되어 왔다는 점 등은 분명해 보인다.

대학졸업장(대학원 진학도 포함)이 짐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더 높은 학력을 추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필자는 이 글에서 우리 사회의 ‘과잉 학력’(over-education) 또는 더 일반적으로 말해 소위 ‘학력 인플레이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 두 개념이 하향취업률이라는 개념보다는 더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먼저 학력별 임금 격차를 보자. 2015년 현재 대졸 이상 남자(이하 동일)의 월급은 395.6만 원이지만 고졸 남자의 월급은 255.7만 원이다. 후자가 전자의 약 64.6%(대학원 졸업생을 제외하면 이 수치는 소폭이나마 상승할 것이다)이다. 2018년도 그 비율은 약 64.8%로 2016년 비율과 비슷하다. 학력에 의한 임금 격차가 크기 때문에 누구나 높은 학력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자가 자본을 투입하여 자신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중에서 가장 쉬운 방법은 학력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은 경제 내의 모든 부문이 ‘자유시장’일 때 타당하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모든 부문은 간섭주의, 사회주의 등이 지배하고 자유시장인 부문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의 간섭과 통제가 학력, 임금, 취업 등에 미치는 영향을 차례로 검토한다.

첫째, 과잉 학력의 원인을 교육 제도, 특히 교육 서비스에 대한 가격 규제와 정부의 각종 교육 보조금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 교육 서비스의 가격은 긴 시간 정부가 고정한 결과로 자유시장 가격보다 매우 낮아져 왔다. 초·중학교 등록금은 음(陰)이고, 고등학교도 음을 향하여 가고 있으며, 대학교도 유명대학일수록 그 서비스 가격은 매우 낮다. 반 값 등록금은 대학 등록금이 얼마나 낮은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보조금 때문에 명문대학이나 국립대학일수록 등록금은 영(零)이나 음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많은 돈을 사교육에 투입하여 최대한 높은 학력을 취득하고자 한다. 특히 명문대학이나 국립대학을 진학하는 경우에는 재수, 삼수도 서슴지 않는다.

교육 서비스의 가격이 자유시장에서 결정되면, 즉 교육 서비스의 가격이 그 서비스의 생산 비용을 충분히 반영한다면, 사람들은 과잉 학력 또는 학력 인플레이션 추구를 상당 정도 멈출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가격은 요체이고 그 가격은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기능 등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정부가 재화의 가격을 고정하거나 규제하면 그런 기능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원은 낭비되고 우리는 점점 더 어려움에 처한다.

학부모들은 학과 정원제, 학교 정원제 등과 같은 배급, 해외유학과 가족의 해체, 사교육비와 전체 교육비의 폭등, 교육의 질적 저하, 입시위주의 교육, 좋은 학군에 위치한 부동산 가격의 상승 등을 포함한 무수히 많은 희생과 비용을 지불해왔다. 과잉 학력 또는 학력 인플레이션은 그런 폐해 중의 하나이다. 학력 인플레이션에는 물론 아래에서 제시하는 다른 요인도 가세하고 있다.

둘째, 과잉 학력의 원인을 노동조합의 존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크다. 이러한 격차는 또한 다른 나라에서의 격차보다 훨씬 크다. 2017년 현재 한국의 10-99인 중소기업의 임금은 500인 이상 대기업의 임금의 57%였으나 미국·일본·프랑스 등은 이 비율이 69-73%였다. 한국의 5인 미만 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 노동자 임금의 33%였으나 미국은 79%, 일본 65%, 프랑스 59%였다. 이것은 미국, 일본, 프랑스 등에 비해 한국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직업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월등히 우수하다.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대기업의 임금이 중소기업의 임금보다 높은 것은 노동자의 생산성 차이 때문이고 그 생산성의 차이는 투입된 자본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시장이 자유시장일 때 유효한 설명이다. 노동조합(이하 ‘노조’로 표기)이 세워지고 활동하면 그런 노동시장은 이제 자유시장이 아니다. 고용주와의 협상에서 결정되는 임금은 ‘제한주의적 임금’이고 그런 임금은 자유시장임금보다 언제나 높다.

자유시장임금보다 높은 제한주의적 임금 때문에 대기업(한국에서 노조는 대기업에만 대부분 존재한다)은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자본을 자유시장일 때보다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 소위 ‘과잉 자본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에서는 대기업의 과잉 자본화로 자본에 대한 대가를 더 높게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자본이 부족해진다. 소위 ‘과소 자본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노동조합은 기업이 투입하는 자본의 양을 인위적으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노조에 의한 대기업의 과잉 자본화는 높은 학력의 소지자를 끌어들이는 성향을 높인다. 적어도 과잉 자본화가 없을 때와 비교하여 그렇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서는 반대 상황이 일어난다. 노조에 의한 중소기업의 과소 자본화는 높은 학력의 소지자를 배척하는 성향을 높인다. 과소 자본화로 임금이 낮아지면 그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외국인 노동자에게 할당될 수도 있다. 이것은 하향취업을 자극하는 요인이다. 적어도 과소 자본화가 없을 때와 비교하여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의 분석은 노조가 있는 대기업의 블루칼라보다는 화이트칼라에 더 잘 맞는 설명이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의 화이트칼라는 블루칼라보다 과잉 학력 또는 학력 인플레이션 문제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기업의 블루칼라는 과잉 학력 문제가 있더라도 ‘대졸자-고졸직업’이라는 하향취업 문제는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노조는 우리 사회의 과잉 학력 또는 학력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힘이다. 노조는 또한 실업도 유발한다. 실업자들의 존재는 미래의 과잉 학력을 억제하지만 해고된 대졸자들의 하향취업을 증대하게 한다.

셋째, 자본의 순유출이 과잉 학력의 원인일 수도 있다. 자본의 유입보다는 유출이 더 커진 시점은 2006년이다. 그 이후 자본의 순유출이 지속되고 있다. 자본의 순유출 금액은 2006년 81.4억 달러, 2011년 320.6억 달러, 2015년 193.2억 달러 등이다. 2006-2015년을 보면 2011년까지 증가했다가 그 이후에는 감소했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자본의 순유출은 일자리 감소를 의미한다. 물론 그 일자리 감소가 모두 고학력이 필요한 양질의 일자리 감소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중의 일부는 고학력이 필요한 일자리임은 분명하다.

넷째, 개인들이 경기변동으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지면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변동의 침체 구간에서 자본 소비가 대량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일자리는 감소하게 되고 그 중 일부는 양질의 일자리일 수 있다. 즉 경기변동으로 과잉 학력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인가는 실증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째, 결혼에서도 학력은 중요한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사는 여성도 결혼의 조건으로 높은 학력이 요구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결혼에서 학력을 중요한 ‘스크린’ 장치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학력 인플레이션의 대표적인 예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의 하향취업률, 더 일반적으로 말해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고 악화되어 온 것은 자원의 배분이라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의 교육은 사회주의와 간섭주의가 대부분이고 자본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교육에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가격을 규제하면 가격의 각종 기능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들의 선택을 왜곡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과잉 학력을 촉발하는 원인들 중에서 교육 부문의 문제점이 가장 중요하다.

과잉 학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폐지해야 하고, 단기에 그것이 어렵다면 대체 근로라도 허용해야 한다. 자본의 순유입이 이루어지도록 자본의 유·출입에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경기변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화폐 제도·정책과 금융 제도·정책도 개혁할 필요가 있다. 다섯 번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람들의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이것은 물론 장기 과제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제도 개혁을 모두 하더라도 과잉 학력 또는 학력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시장에서도 그런 현상은 비록 많지 않지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앞에서 언급한 제도 개혁과 의식 개혁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대학졸업장은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어깨를 더 무겁게 짓누르는 짐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 글에서 학력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작은 원인들은 다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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