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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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이 자유주의자라는 황당한 주장

해외 칼럼
철학
작성자
작성일
2020-05-29 19:44
조회
920

David Gordon
*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 <미제스 리뷰(The Mises Review)> 편집자

주제 : #철학과_방법론

원문 : Hegel's Very Odd Definition of Freedom (게재일 : 2020년 1월 24일)
번역 : 김경훈 연구원

  • 가독성을 위해 번역 과정에서 일부 편집이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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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철학(Friday Philosophy) <펼치기>


사람들은 대개 헤겔을 자유의 적으로 바라보지만, 버몬트 대학교의 영화학 교수인 토드 맥고완(Todd McGowan)은 자신의 저서 <헤겔 이후의 해방(Emancipation After Hegel)>에서 그러한 상식에 도전한다. 칼 포퍼(Karl Popper)의 지적과 달리, 헤겔은 '열린 사회(open society)'의 적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가진 자유에 대한 최고의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나는 맥고완 교수의 이 놀라운 관점을 한번 검토해보고자 한다.

[역주 : 헤겔이 국가주의자로서 개인의 자유에 반대했다는 점은 일반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있는 점이지만, 거의 모든 헤겔주의자, 헤겔전공자들은 이것이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헤겔은 서구의 '원자론적 개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진정한 인간의 자유가 무엇인지 밝혀낸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는 것이다. 인터넷에 '헤겔'과 '자유'라는 키워드를 조합하여 검색해본다면 그러한 반론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독일에서 헤겔을 전공한 남기호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역시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논지의 의견을 밝혔다. “헤겔이 열린사회의 적이라는 상식은 틀렸다”]

헤겔이 말하길,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유(freedom)'이다:

그러나 의지는 그 자체로부터 파생된 목적, 즉 자유의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 자유가 인간을 바꿀 수 있는 최후의 '요점(hinge)'이며,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는 가장 높은 수준의 가능한 '정점(summnit)'으로서, 인간이 자유에 반하는 어떤 권위에도 복종하지 않고,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어떤 의무도 갖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립된다면 위대한 진전일 것이다. (pp. 134–35, 헤겔 <역사철학강의> 1971년판 영어번역본 p.367 에서 발췌)

이보다 좋은 설명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설명만 놓고 본다면, 어떻게 헤겔이 자유의 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헤겔이 말하고자 하는 실상이 겉보기와는 다르다는 점을 얼마 안가 이해할 수 있다. 자유를 생각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강제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coercion)'를 연상한다. '비침해의 원칙(The nonaggression principle, NAP)'은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공격을 금지하며, '폭압자로서의 국가(leviathan state)'는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진 자유에 대한 가장 큰 위험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것은 헤겔이 '자유'를 통해 의미하는 바가 아니다. 맥고완 교수는 헤겔에게 있어서 자유주의적 자유, 즉 NAP는 너무 좁은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헤겔의 자유개념을 한번 살펴본다면 … 그것이 '자유주의적 개념(liberal conception)'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자유주의(liberalism)'는 자유를 '구속의 부재(the absence of constraint)'로 이해한다. 자유주의 사상가에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부당하게 방해받지 않는 상황이 곧 자유로운 것이다. 구속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를 놓치고 있다 ... 직접적인 구속은 가장 쉽게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의 가능한 가장 위험한 형태는, 외부의 권위가 그 자체로 '실제적인(substantial)' 것으로 발현되어 주체에게 깊은 영향을 줄 때 발생한다. (p. 135)

마지막 문장은 첫 눈에 보기에 상당히 당황스럽지만, 한번 이 점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도록 하자. 헤겔에 따르면, 자유주의에서 '자유' 개념을 말할 때 유일한 근거로 사용하는 강제 외에 다른 종류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있다고 한다. 우선 헤겔의 주장이 옳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당신이 강제를 행할 때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반드시 침해하지는 않을 수 있다. 우리가 곧 살펴볼 것처럼, 헤겔의 핵심 주장은 국가가 사람들을 '비강제적인 종류의 구속(noncoercive sorts of constraint)'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이다. 설령 그렇게 하는 경우에도, 국가는 여전히 불복종하는 자들에게 무력을 행사하거나 위협을 해야하는데도 말이다. 헤겔의 생각처럼 강제가 자유를 부정하기에 '필수적인(necessary)' 것은 아니라고 쳐도, 강제는 여전히 자유를 부정하는데 있어 '충분한(sufficient)' 것이다.1 따라서 헤겔이 강제적인 국가를 지지한다는 점 때문에, 국가가 자유를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그의 주장이 실패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 결정적인 사안은 잠시 제쳐두고, 우선 헤겔의 주장이 어떤 장점을 가질 수 있는지 한번 계속 살펴보자. (...) 아마 당신은 놀랄 수도 있는데, 헤겔은 사람들이 사리사욕만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국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별 주체가 국가를 참조하지 않고 스스로를 인지할 때, 처음에 그는 순수한 '이기적(self-interest)' 존재로서 자신을 인지한다. … 문제는 자기이익의 추구가 자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 헤겔이 보는 바 처럼, 사리사욕은 주체의 자유와는 어떠한 관련도 없다. 그것은 사회와 자연이 부여한 관심으로부터 주체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것 일 뿐이다. 소위 '자유로운 주체(the free subject)'는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것(givens)'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킬 뿐이며, 국가는 주체에게 이러한 소외를 명시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p. 203)

[역주 : 헤겔의 자유 개념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맥고완 교수의 독자적인 해석, 혹은 데이비드 고든의 오독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헤겔 연구자 사이에서 공유되는 관점이다. 2]

독자들은 자연스레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칠 수 밖에 없다.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유롭지 않다(unfree)'고 헤겔은 말한다. 조지 오웰(George Owell)이 소설 <1984>에서 보여준 '신어(Newspeak)'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3

일단 공포스러운 감정은 잠시 제쳐두고, 헤겔의 논증은 실패하게 된다는 점을 한번 살펴보자.

헤겔은 어떤 사람이나 기관이 자신을 '진리의 최고 원천(a supreme source of truth)'으로 제시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간주한다. 왜냐하면 진리의 최고 원천이라는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것에 대해서는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이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에 대한 이런 위협을 물리치기 위해서, 우리는 진리의 최고 원천이 없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헤겔은 말한다. 그러나 방금 살펴본 헤겔의 구절은, 개인에게 주어진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관심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한 관심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사리사욕에 이끌려서 행동해도 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막는 것은 무엇인가? 국가가 아닌가? 왜 자기성찰을 위해서 우리는 국가가 필요한 것인가? 만약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신의 자기이익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결론을 적절히 도출할 수 있다면,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되는가?

헤겔과 맥고완 교수에게 있어, 이러한 반론은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개인이 사리사욕을 무비판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외부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원래 그래서는 안되지만), 왜 국가가 그러한 기관이 되어야 하는가? 시민사회가 그 일을 담당할 수는 없을까?

헤겔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시민사회는 국가를 대체할 수 없다:

권위주의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에도, '근대성(modernity)'의 큰 위험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강력한 국가를 초래한다는 점에 있지 않다. 오히려 국가를 국가로 인식하지 못하고, 시민사회를 국가로 착각한다는 점에 있다. 시민사회(헤겔의 맥락에서 이는 경제적 교환을 통해 성립된 사회적 유대관계를 의미함)에서, 개인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좆으며 모든 이익을 취하려 한다. (p. 205)

이러한 관점의 문제는 명백하다. 시민사회는 '사회적 선(the good of society)'에 대하여 무수한 의견을 가진 온갖 사람들과 기관들을 포함하는것이다. 만약 우리가 헤겔이 가진 두려움을 "국가가 없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안녕만을 이기적으로 추구할 것이다." 라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러한 견해는 근거가 없다.

헤겔의 주장에는 아직도 문제가 남아있다. 맥고완 교수가 말하길, 헤겔이 원하는 국가는 사람들이 정치적 혹은 사회적 질문들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국가이다. 그러나 그런 국가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사람들이 항상 개인의 사리사욕을 비판적으로만 바라본다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물론 국가는 분명 자유시장을 약화시키거나 파괴할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권위에 대한 주장을 신중하게 검토하도록 장려하는 것인가? 헤겔이 묘사하는 국가는 자신의 명령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없이 복종하는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성공회기도서(the Anglican Book of Common Prayer)'의 유명한 구절 중 하나는 '신에 대한 봉사는 최고의 자유(whose service is perfect freedom)'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헤겔의 자유 개념은, 신만이 가질 수 있는 이러한 특권을 국가에게도 부여하는 처사와 같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은 헤겔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헤겔은 '국가는 신의 이념이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march of God in the world)'이라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런 견해가 의심스럽다.




태그 : #사회주의 #큰정부 #정치철학과_윤리학

  1. 역주: 자유를 부정하는 데 있어 물리적인 강제가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 다른 원인으로 자유가 부정될 수 있다는 견해는 충분히 논의할만한 주제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여전히 물리적인 강제가 행해진다면 그것은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2. “헤겔 사상은 영미권에서 얘기하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구도로 보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헤겔은 영미권의 자유주의를 원자론적 개인주의라고 비판하지만, 동시에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공동체주의에도 반대합니다. 헤겔의 자유주의는 사적인 영역에 제한돼 있는 자기목적을 스스로 극복해 공동체의 보편적 목적에 부응하는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조온 폴리티콘(zoon politikon)’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 정확한 뜻은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게 아니라, 인간은 폴리스와 같은 공동체를 구성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로서 얘기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는 본성으로서 얘기한 것입니다. 인간은 공동체를 통해서만 자신의 본성을 잘 실현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공동체는 인간의 자기본성이 실현되는 객관적 지반인 거죠.” “헤겔이 열린사회의 적이라는 상식은 틀렸다”
  3. 역주: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 등장하는 가공의 언어로, 작중의 무대인 가공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공용어이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상에 입각하여, 신어는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정당이 기존의 공용어였던 '구어(Oldspeak)', 즉 현대 영어에서 쓰이는 어휘나 문법 중 굳이 필요가 없는 요소들을 없애거나 단순화시킴으로써, 국민 전체가 이른바 '이중사고'를 익혀 당에 대한 반역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고안한 언어이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WAR IS PEACE. FREEDOM IS SLAVERY. IGNORANCE IS STRENGTH.)"이라는 구호가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