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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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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저지르도록 부추기는 것도 범죄인가?

해외 칼럼
철학
작성자
작성일
2020-06-05 12:31
조회
1545

David Gordon
*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 <미제스 리뷰(The Mises Review)> 편집자

주제 : #정치철학과_윤리학

원문 : What Is Aggression? (게재일 : 2020년 2월 7일)
번역 : 김경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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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철학(Friday Philosophy) <펼치기>


머레이 라스바드는 '비침해의 원칙(the nonaggression principle, NAP)'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신체나 재산에 위협 혹은 폭력을 가할 수 없다.('침해(aggress)'할 수 없다.) 오직 폭력을 저지른 사람에게만 합법적으로 폭력을 가할 수 있다. 즉, 다른 사람의 공격적인 폭력을 방어하는 목적에서만 사용될 수 있다. 요컨대 '비침해적인 사람(nonaggressor)'에 대한 어떤 폭력도 사용되어선 안된다. (War, Peace, and the State, p. 1)

왜 '폭력의 위협(the threat of violence)'이 NAP를 위반하는가? NAP 위반을 '폭력의 사용(the use of violence)'에만 국한지어선 안되는가? 라스바드가 대답하기를:

누군가 거리에 당신에게 다가와 총을 꺼내 지갑을 요구한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그는 당신을 육체적으로 욕보이진 않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을 경우 총을 쏘겠다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협박을 통해 당신에게서 돈을 빼앗았다. 그는 '침해의 위협(the threat of invasion)'을 이용하여 당신을 자기 명령에 복종시켰으며, 이는 침해 그 자체와 다름이 없다. (Ethics of Liberty, p. 78)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명령에 복종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고 물어볼 수 있다. 만약 그 사람이 불복종할 경우 상대방이 폭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복종하기로 결정했다면, 라스바드는 이를 NAP 위반이라고 설명한다.

이 입장은 몇 가지 문제점을 남겨놓는다. 예시를 하나 살펴보자. A가 B에게 잔디를 깎아달라며 1만 달러를 제안하는 동시에, 만약 거절한다면 다리를 부러뜨릴 것이라 위협한다. B는 부분적으로는 돈을 원하기 때문에, 또 부분적으로는 거절할 경우 다리가 부러질까봐 두렵기 때문에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B의 승낙을 설명할 때 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일부분만을 차지한다. A는 NAP 위반을 저질렀는가? 만약 B가 오직 돈을 원하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였으며, A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했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 경우 A의 위협은 B의 승낙을 설명할 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게다가, 위협이 항상 위협이 없었을 경우보다 당신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은 아닐 수 있다. 5달러면 할 수 있는 일에 1만 달러를 받게된 점에 B가 열광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사건은 NAP 위반인가? 내가 이 글에서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당신을 위협하지 않고 이런 질문들을 한번 생각해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약간 다른 주제인데, 월터 블락(Walter Block)의 학생 중 한 명이 내게 보낸 편지에서 제기한 문제이다. 그 학생은 자신의 논평을 공개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의 발언을 인용하기 보다는 비유를 통해 설명할 것이다.

그 학생은 폭력의 위협과 폭력의 사용 모두 NAP 위반에 해당한다는 라스바드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NAP 위반을 돕는 것을 NAP 위반으로 간주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침해자가 NAP를 위반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1. 침해자를 범죄현장에 데려다주거나 2. 강도사건을 벌인 침해자를 도주시키기 위해 차에 태워주는 것은 NAP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조력자는 강제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학생은 운전이 그 자체로 침해적인 행위는 아니기 때문에 조력자가 NAP를 위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NAP를 위반하도록 촉구하거나 돈을 제공하는 것 역시 NAP 위반이 아니라고 그는 주장한다.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돈을 건내주는 것이 그 자체로 공격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에, 폭력의 위협은 본질적으로 공격적이다.

그의 입장은 기발하지만 설득력은 없다. 둘 이상의 사람이 함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A와 B가 C를 쏘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해보자. 둘 다 C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는데 단 한 발의 총알만이 C에 명중했으며 그렇게 C는 죽었다. 여기서 A와 B 둘 다 C를 공격해서 죽인 것이지 맞춘 총알을 쏜 사람만이 C를 죽인 것은 아니다. A와 B가 함께 C를 죽이기로 결정한 이상, A가 현장에서 B에게 총을 쏘라고 강요하여 B 혼자 C에게 총을 쏘는 경우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학생이 언급한 바 처럼, '자동차 운전' 자체가 NAP 위반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래전에 영국의 분석철학자 엘리자베스 앤스콤(G. E. M. Anscombe)이 자신의 고전 <의도(Intention)> 에서 지적한 바 처럼, 행동은 '서술(description)'의 맥락에서 의도적이다. 그래서 같은 행동이 어떤 서술적 조건에서는 특정한 의도를 가지지만 다른 조건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같은 행동이 "상점 강도 계획에 참여함"이라는 서술 하에서는 침해적 의도를 가진 것으로 파악될 수 있고, "차를 운전함" 이라는 서술 하에서는 침해적이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뇌물을 줘서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사례에서도 같은 지적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은 필수적이다. 그런 행동들은 "자유롭게 말함" 과 "다른 사람에게 돈을 건내줌" 이라는 서술 하에서 공격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된 침해에 참여함" 이라는 서술에 입각하여 NAP 위반에 해당한다. 어떤 행동이 의도된 침해로서 서술될 수 있다면, NAP 위반으로 간주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협박이 본질적으로 침해적이라는 우리 학생의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다시 앤스콤의 법칙을 적용해보자. 협박은 "힘을 사용할 것이라 위협함(threatening force)"이라는 서술 하에서는 침해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특정 단어들을 발언함(uttering certain words)"이라는 서술 하에서는 침해적이지 않다. 나는 우리의 학생이 침해적이라고 간주하는 행동과 침해적이지 않다고 간주하는 행동을 구별할 어떤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1

다시 라스바드로 돌아가보자. 뇌물에 대한 라스바드의 논의는 우리가 마주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라스바드는 노동자가 고용주와 맺은 계약을 파기하도록 만들기 위해 어떤 사람이 노동자에게 뇌물을 주는 상황을 논한다. 라스바드의 대답을 살펴보기 앞서 우리는 두 가지 유형의 권리 침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1. 어떤 권리는 계약을 통해서만 생겨나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당신을 고용해서 나를 위해 일하는 대신 월급을 주겠다고 계약했다면, 하지만 당신이 일을 하는데도 내가 월급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나는 월급을 줄 의무가 없다. 만약 당신이 내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오렌지를 선물한다면, 당신은 내게 오렌지값을 내놓으라고 요청할 권리가 없다. 2. 그러나 어떤 권리는 계약이 없이도 존재한다. 나는 당신을 죽이거나 폭행할 권리가 없다. 당신은 나에게 살해당하거나 폭행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런 권리들은 계약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뇌물에 대한 라스바드의 견해는 이러한 권리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계약은 계약당사자들에게만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다. 라스바드가 제기한 사례에서 뇌물공여자는 고용주와 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노동자에게 뇌물을 주는 행위는 고용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역주: 물론 노동자는 뇌물을 받고 계약을 파기함으로써 고용주의 권리를 침해한다.] 뇌물공여자는 분명 소유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계획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뇌물을 수수한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계약상 권리를 존중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고용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만약 당신이 라스바드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물론 나는 당신이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는지 거부하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권리 침해에 관여하는 것이 침해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계약과 별개로 성립되는 권리를 침해하는데 참여하는 것은 침해이다.

상기한 논점들을 고려한다면, 침해적 행위의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는 올바른 길이 아니다. 최소한, 내가 보기엔 그렇다.




태그 : #자유주의일반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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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주: 데이비드 고든에게 문제를 제기한 학생은 "범죄자를 도와주는 행위"가 그 자체로는 비침해적인 맥락 하에서 서술될 수 있기 때문에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학생이 침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행위들 역시 비침해적인 맥락 하에서 서술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이 경우 도대체 어떤 원칙이 적용되는지 파악할 방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