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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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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행동학과 수학적 논리의 결합은 왜 실패하는가

해외 칼럼
철학
작성자
작성일
2020-07-03 18:19
조회
1037

David Gordon
*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 <미제스 리뷰(The Mises Review)> 편집자

주제 : #인간행동학

원문 : Praxeology and Mathematical Logic (게재일 : 2020년 4월 24일)
번역 : 김경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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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철학(Friday Philosophy) <펼치기>


'인간행동학(praxeology)'은 미제스의 '행동 개념(the concept of action)' 혹은 라스바드의 '행동 공리(the action axiom)'로부터 논리적으로 연역 추론된 명제들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인간행동학적 연역들은 '엄밀한(rigorous)'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우리는 공리로부터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지 '정확하게(exactly)' 알 필요가 있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평범한 구두적 언어가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불충분하다고 말하며, 인간행동학은 수학적 논리를 사용하여 형식화되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런 경우에만 우리는 인간행동학적 연역이 정말로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미제스의 걸작 <인간행동(Human Action)>에 대해서 강의할 때마다, 이러한 불평은 거의 언제나 제기되어 왔다. 이 글에서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반드시 언급해야할 점은, 인간행동학에 비판적인 사람만이 이러한 불평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종종 인간행동학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인간행동학의 형식화를 위해 수학이 필요하다는 의도를 보이곤 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그러한 시도들은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다.

인간행동학에 가장 먼저 반기를 든 경제학자는 바로 조지 슐러(George Schuller)였다. 1951년 <미국 경제학 리뷰(American Economic Review)>에 기고한 글에서 그가 말하길:

'논리적 연계(logical chain)'가 '명시된(stated)' 가정이 설정한 한계 이상으로 나아갈 때, 인간행동학은 '명시되지(unstated)' 않은 가정을 도입한다. <인간 행동>에는 엄청나게 많은 명시되지 않은 가정들(예컨대, '공리(axioms)' 혹은 '공준(postulates)'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미제스가 이러한 비판을 부정하고 싶다면, 그는 버트런드 러셀의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혹은 보다 정곡을 찌르는 폰 노이만의 <게임 이론(Theory of Games)>을 모델로 삼아 '수적인(numbered)'공리, 공준, 그리고 삼단논법을 통해 <인간 행동>을 다시 쓸 필요가 있다.

머레이 라스바드는 슐러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인간행동학과 경제학은 소수의 널리 알려진 전제들에 기초한 추론의 논리적 사슬들이기 때문에, 경제학이 진실로 과학적이 되기 위해서는 수학적 논리의 상징적 기호들에 따라 다듬어져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이것은 수학적 논리 또는 '기호논리학(logistic)' (본문은 병참학으로 표기하나 오류인 것 같음, 이하 동일하게 수정 - 역주)의 역할에 대한 이상하게 그릇된 생각을 표현한다. 무엇보다도 각각의 명제가 의미가 있는 것이야말로 구두로 표현한 명제들의 큰 장점이다. 다른 한편, 기호논리학에서 사용되는 것 처럼, 인간행동학은 행동공리를 진리로 주장하고, 논리적 추론의 규칙에 따라 이 공리로부터 (몇 개의 실증적 공리들 -다양한 자원의 존재와 다양한 개인의 존재와 같은 그런 공리들- 과 함께) 경제학의 모든 명제들이 유도되는 데, 그 명제들의 각각은 구두로 표현되어 있고 의미가 있다. 만약 기호의 논리적 배열이 사용되었다고 가정하면, 각각의 명제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행동과학과 대조적으로 기호논리학은 공리들보다는 결론들이 알려진 자연과학에 훨씬 더 적합하다. 자연과학에서는, 전제들은 오직 가상적이고 그 전제들로부터 논리적 연역들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경우들에 연역적 과정의 각 단계에서 의미 있는 명제들을 얻겠다는 목적이 없으므로 상징적 언어와 수학적 언어가 더 유용히다.

경제학을 단순히 구두로 표현하고, 그 다음에 그것을 기호논리학적 상징들로 번역하며, 최종적으로는 명제들을 다시 영어로 재번역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오캄의 면도날이라는 근본적인 과학적 원칙을 어긴 것인데, 오캄의 면도날은 과학에서는 가능한 최대의 단순성과 실체들 또는 과정들의 불필요한 증식을 피할 것을 요구한다.

믿는 바와 반대로, 구두로 표현한 논리의 사용은 기호논리학보다 못하지 않다. 이에 반하여 기호논리학은 구두로 표현한 논리에 의존하는 단순한 보조적 수단이다. 왜냐하면 공식적(formal) 논리학은 사고의 필수적이고 기초적인 법칙들을 다루는데, 그 법칙들은 구두로 표현되어야만 하고, 기호논리학은 이러한 구두로 표현된 공식적 논리를 기초로 사용하는 오직 상징적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행동학과 경제학은 구두로 표현된 논리 -상징적 논리의 근본적 기초이고 사고과정의 각 단계에서 의미가 있는- 의 사용을 조금이라도 변명할 필요가 없다. (<인간 경제 국가> 번역본 p. 113 ~ 114)

나는 라스바드의 지적을 보충하고자 한다. 그전에 몇 가지 이슈를 정리해보도록 하자. <인간행동>과 <인간 경제 국가> 둘 다 인간행동학적 연역 추론과 무관한 저자들의 의견이 많이 담겨져 있다. 슐러는 이 점을 깨닫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그렇다면 그가 <인간행동>을 "명시되지 않은 가정들"로 가득 찼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예컨대, 산업혁명에 대한 미제스의 논의는 인간 행동의 공리로부터 논리적으로 연역된 것은 아니지만, 슐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인간행동학에 관하여, 라스바드는 우리가 연역의 각 단계의 구체적 의미를 알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에 대하여 내가 보충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행동학적 추론은 '형식논리학적(formal)'이라기 보단 '실질적(material)'이라는 점이다. 인간행동학자는 각 단계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데, 연역의 각 단계가 유효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각 단계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행동학적 진리의 예시를 들어 이해해보자: 만약 어떤 사람이 주어진 시간에 하나의 오렌지보다 하나의 사과를 보다 '선호(prefers)'한다면, 이는 그 사람이 그 시간에 하나의 사과를 하나의 오렌지보다 더 선호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 명제가 왜 진리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호(prefers)'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이 주어진 시간에 하나의 오렌지보다 하나의 사과를 보다 '선호(prefers)'한다면, 이는 그 사람이 그 시간에 하나의 사과를 하나의 오렌지보다 더 선호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라는 명제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것이 형식논리학적으로 모순이 있다고 식별할 수는 없다. 물론 '선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경우에도, 반드시 거짓인 경우(p이자 p가 아니다, p and not p)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만약 시간 T에서 A가 Y보다 X를 더 선호한다면, 그것은 시간 T에서 A가 X보다 Y를 더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공리를 확실히 진술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 명제가 진리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선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상하게도 대표적인 논리실증주의 철학자였던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도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함축의 의미를 정확히 강조한 바 있다. (물론 그가 인간행동학을 옹호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메사추세츠 암허스트 대학의 철학 교수 브루스 오운(Bruce Aune)은 자신의 저서 <형이상학(Metaphysics)>에서 카르납의 주장을 이해하기 쉽게 요약한다: "카르납이 강조했듯이, '함축(implication)'으로 간주되는 모든 것이 형식논리학적 관계는 아니다. 어떤 함축은 '비-형식논리학적 단어의 의미(the meaning of nonlogical words)'에 기초하여 '실질적인' 것이다. 그러한 비-형식논리학적 함축의 예로는 'a는 b보다 따뜻하다' 와 '~(b는 a보다 따뜻하다)'가 있다. 후자는 전자를 따르는 것이며, 비-형식논리학적 이유로 따르게 된다." (p. 132)

이런 이유로, 인간행동학은 '부정확'하거나 '엄밀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수학적 기호가 아니라 구두적 언어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함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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