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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대한 로버트 노직의 의심

해외 칼럼
철학
작성자
작성일
2020-07-17 21:24
조회
1133

David Gordon
*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 <미제스 리뷰(The Mises Review)> 편집자

주제 : #인간행동학

원문 : Robert Nozick on Austrian Economics (게재일 : 2020년 5월 8일)
번역 : 김경훈 연구원

  • 원문에서 인간행동학에서 노동이 비효용을 가진다는 가정에 대해 노직이 비판한 것을 반박하는 부분은 제외하였습니다. ("Logic and the Disutility of Labor" 라는 다른 칼럼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이기에 추후에 이 칼럼을 번역 소개한다면 추가함) phil

금요일의 철학(Friday Philosophy) <펼치기>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그의 논문 "오스트리아학파의 방법론에 대하여(On Austrian Methodology)"에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비판을 제기했다. 1970년에 발표된 이 논문은 그의 1998년작 저서 <소크라테스적 난제들(Socratic Puzzles)>에 수록되어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노직이 제기한 몇 가지 비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굳이 이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이자 이론가인 월터 블락(Walter Block)이 이미 "노직의 논문에 대하여(On Robert Nozick’s 'On Austrian Methodology')"라는 길고 인상깊은 논문에서 노직의 논증에 대해 일일히 응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의 논문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나의 대답이 블락의 대답과 다르기 때문이다. 블락의 응답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대체로 옳지만, 나 역시 할 말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반드시 블락의 논문 역시 읽을 필요가 있다.

좋은 소식은 노직이 다른 비판가들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학파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이, 필연적 진리로 구성된 인간행동의 과학이라는 오스트리아학파의 경제학 이해를 단순하게 무시한다. 그들은 그저 오스트리아학파의 견해가 대체되어야 하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만 말한다. 그러나 노직은 그렇지 않다. 그가 말하길:

인간행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정교하게 기술한다는 발상은 분명 흥미롭고 도전적이다. 그러한 계획은 '종합적으로 필연적인 진리(synthetic necessary truth)'에 관한 것이므로, 논리실증주의자들에 의해 불가능하며 공허한 것으로 배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증주의적 입장(예를 들어, 의미의 검증가능성 기준)이 최근에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 만큼, 종합적으로 필연적인 진술에 대한 실증주의적 입장 및 논증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며, 그러한 진술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종합적으로 필연적인 진리의 가능성에 반대하는데 있어 일반적으로 인정된 주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노직은 결코 인간행동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행동(action)'은 특정한 유형의 '행위(behavior)'이다. 즉, '목적이 있는 행위(purposive behavior)'이다. 모든 행위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한다. 만약 경제학에서, 인간의 행위를 해명하는 데 있어 인간행동학보다 더 낫다고 판명된 어떤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노직에 따르면 그러한 과학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바로 심리학자 스키너(B.F. Skinner)의 '조작적 조건화/도구적 조건형성(operant conditioning/instrumental conditioning1)'이다: "여기 비교적 정교한 개념적 계획이 있는데, 그것은 미제스의 범주 '내에서(within)' 이야기 되지 않는 것이거나, 미제스의 범주에 '대하여(of)' 이야기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후험적(a posteriori)'으로 결정되는 경험적 질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 만약 그렇다면, 인간 행동의 이론이 '선험적(a priori)'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도, 그것은 최고의 이론이 아닐지도 모른다. 스키너의 이론이 실제로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도 있고, 더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조작적 조건화는 대상의 목적지향적 행동을 수반하지 않고도 보상과 처벌을 통해 행위를 수정하려고 한다. 스키너의 자서전 <결과의 문제(A Matter of Consequences)>에 나오는 재미있는 예를 살펴보자:

1958년에 에리히 프롬(Erich Fromm)과 나는 캘리포니아에 열린 심리학 심포지엄에 참석했으며, 프롬은 인간은 비둘기와 다르다며 스키너에게 반대하는 주장을 하였다. 이에 대하여 나는 종이에 "에리히 프롬의 왼손을 보아라. 나는 그가 손을 허공에 휘젓도록 만들 것이다." 라고 쓴 후 테이블 아래로 몰래 할렉 호프만(Halleck Hoffman)에게 전달했다. 그때 프롬은 나의 테이블 바로 맞은편에 앉아서 주로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고, 나는 내 의자를 살딱 돌려 째려보는 경우에만 스키너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말할 때 마다 크게 손짓을 하곤 했는데, 나는 그의 왼손이 제스쳐를 취할 때만 그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왼손을 내린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5분도 안되서 프롬은 손목시계가 빠져 나올정도로 힘차게 왼손으로 공기를 휘젓게 되었다.

물론 스키너 자신도 여기에서 행동하고 있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프롬의 행동을 수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점이 노직이 틀렸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노직은 행동 같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며, 또 조작적 조건화를 통해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이 거짓임을 드러내려는 것도 아니다. 그는 단지 조작적 조건화에 기초한 경제학이 인간행동학보다 더 나은 것으로 판명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노직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간단하다. 다른 이론이 더 나은 예측을 하는 과학을 구성할지도 '모른다는 것(might)'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대한 좋은 반론이 아니다. 인간행동학과 직접 비교하기 위해서 그러한 과학을 '실제로(have to)'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반론은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인간행동학자는 조작적 조건화에 기초한 경제학을 반박하는 선험적 논증을 굳이 제시할 필요가 없다. 그저 "말만 하지 말고 보여줘!(Put up or shut up!)" 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태그 : #철학과_방법론 #인식론

  1. 행동주의 심리학의 이론으로, 어떤 반응에 대해 선택적으로 보상함으로써 그 반응이 일어날 확률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여기서 선택적 보상이란 강화와 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