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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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순수시장경제가 그렇게 좋다면, 왜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는가? - 리버테리어니즘에 대한 비관주의

해외 칼럼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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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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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ts and Private Governance | Mises Institute

Edward Stringham
* 미국경제연구소(AIER) 대표
* 트리니티 대학교 (코네티컷) 경제학과 교수

주제 : #오스트리아학파개요

원문 : If a Pure Market Economy Is So Good, Why Doesn't It Exist? (게재일 : 2019년 8월 20일)
번역 : 한창헌 수습연구원

[1편] 문제의 제기
[2편] 리버테리어니즘에 대한 비관주의
[3편/完] 비관주의의 방법론적 문제

왜 사람들은 순수한 시장경제를 향한 사회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는가? 물론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두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주제에 대하여 쓴 논문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무국가 사회(state-free society)'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가장 최신의 연구는 상기한 코웬과 서터의 연구이다.1 자유시장 비관주의에 대한 코웬의 초기 논증에 따르면,2 폭력에 대한 정부독점이 없는 경우에도, 분쟁의 해결을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경쟁집단들이 강제를 행사하기 위해 공모할 수 있다. 즉, 현존하는 정부가 없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폭력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코웬과 서터는 리버테리언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 예컨대 협력 같은 것이 사실 정부를 수립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을 전개한다.3 코웬과 서터가 요약하기를:

시민사회가 규범을 이용해 협력적 해결책을 집행할 수 있다면, 그러한 사회는 일종의 카르텔을 결성하는 경향을 가진다. 다시 말해, 협력을 증진시키는 사회적 특성은 긍정적인 결과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결과도 가져올 것이다. 단순한 예로, 나치가 저지른 범죄 속에는 명백히 강제적 요소에 더불어 협력에 의존하기도 했다. 즉, 조직을 이루는 능력이란 혼합적인 축복인 것이다.4

나치의 예를 통해서 코웬과 서터는 이념의 중요한 역할을 분명 파악하지만, 그러는 동시에 리버테리언 사회가 "협력의 역설(a paradox of cooperation)"로 인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마 일부 사람들은 정부 혹은 민간의 힘을 통해 다른 사람을 위협하기 위한 협력을 전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코웬과 서터는 이러한 문제가 무국가 사회의 사실상 피할 수 없는 특성이라고 받아들인다.

산업의 네트워크가 카르텔의 결성을 촉진한다는 코웬과 서터의 주장에 대해 몇몇 저자들이 의문을 제기했다.5 하지만 그들 역시 산업의 네트워크가 폭력을 사용하는 카르텔을 형성시킨다는 점은 인정한다.6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화를 선호하더라도, 보다 강력한 집단은 다른 사람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옳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응용된 게임이론은 이러한 시나리오의 중요한 논거이다. 비록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는 것이 최선일지라도, 그들은 맞서 싸우며 많은 비용을 치루기 보다는, 별 다른 피해없이 희생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맞서는 것은 큰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지 않더라도 강도에게 돈을 넘기거나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맞서 싸우는 것은 목숨을 잃을 잠재적 가능성도 내포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돈을 좀 잃는 것이 낫다.

코웬과 서터는 전세계적으로 정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것이 우리 인류의 일부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협한다는 증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좋든 싫든 우리는 전 세계에 정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역사는 "강제를 위한 협력"이 상대적으로 쉽게 결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경로에 따라 역사적 국면이 진행되는지와 무관하게 말이다.7

그들의 입장은, 홀콤과 러튼을 포함한 공공선택론 경제학자들의 입장, 즉 어떤 형태의 강제는 필연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주장과 유사하다.8

대단히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홀콤은 "아주 약한 정부일지라도, 만약 정부가 없다면, 약탈자 무리들이 폭력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을 부양하도록 강제할 것이고, 피해자들의 수익과 부를 착취하기 위해 정부를 만들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정부는 불가피하다(government is inevitable)"고 결론을 내린다.9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코웬은 "'질서있는 아나키(Orderly anarchy)'는 곧 '담합적인 아나키(collusive anarchy)'를 암시한다"라고 말하며, "리버테리언 이념은 정부의 발생에 대한 대비책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10

최근 들어서 코웬은 이른바 "리버테리어니즘의 역설(the Paradox of Libertarianism)"을 창안하였다. 이는 "'더 큰 정부(bigger government)'가 리버테리어니즘의 성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정책은 "보다 많은 부와 보다 많은 자유"를 이끌어내는 리버테리언적인 방향으로 변화해왔고, 이것이 역설적이게도 정부에 대한 대중의 수요를 증가시켰다고 그는 말한다.11

이러한 학자들의 주장은 리버테리언들이 난관에 봉착하게 만들었다. 설령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장이 좋고 강제가 나쁘다는 것을 인식하더라도, 어쨌든 약간의 사람들은 여전히 강제적인 정부를 이용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평가들을 '리버테리어니즘의 비관적 옹호자(the pessimistic admirers of libertarianism)'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리버테리어니즘의 이상이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에서 리버테리어니즘의 실천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한다.




태그 : #자유시장 #세계사 #다른경제학파 #주류경제학비판 #정치학 #아나코캐피탈리즘 #자유주의전략 #보수어용세력(가짜자유주의)

 
  1. (원문 16번 각주) Cowen and Sutter, "Conflict, Cooperation and Competition in Anarchy."
  2. (원문 17번 각주) Cowen, "Law as a Public Good" and "Rejoinder to David Friedman."
  3. (원문 18번 각주) Cowen and Sutter, "The Costs of Cooperation."
  4. (원문 19번 각주) Cowen and Sutter, "Conflict, Cooperation and Competition in Anarchy," p. 109.
  5. (원문 20번 각주) 코웬의 초기 논문("Law as a Public Good")에 관한 데이비드 프리드먼의 대답은 "Law as a Private Good: A Response to Tyler Cowen on the Economics of Anarchy," Economics and Philosophy, vol. 10 (1994), pp. 319–327 에 나와있다. 코웬과 서터의 후기 논문("The Costs of Cooperation")에 대한 브라이언 캐플란(Bryan Caplan)과 에드워드 P. 스트링햄(Edward P. Stringham)의 대답은 "Networks, Law, and the Paradox of Cooperation," Review of Austrian Economics, vol. 16, no. 4 (2003), pp. 309–326 을 참고하라. 캐플란과 스트링햄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특정한 이익을 위해 협력할 수도 있다는 것은, 그들이 모든 이익을 위해 항상 협력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들은 다른 은행의 카드를 자신의 은행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자율을 결정하는데 있어 은행들의 협력은 훨씬 큰 어려움에 직면한다.
  6. (원문 21번 각주) Cowen and Sutter, "Conflict, Cooperation and Competition in Anarchy."
  7. (원문 22번 각주) Ibid., p. 113.
  8. (원문 23번 각주) 아나키에 관한 공공선택론적 주장의 개요에 대하여 Edward Stringham, ed., Anarchy, State, and Public Choice (Cheltenham: Edward Elgar, 2005)를 참조하라. 랜달 홀콤의 "Government: Unnecessary but Inevitable"에 관한 대답으로, Peter T. Leeson and Edward P. Stringham, "Is Government Inevitable? Comment on Holcombe's Analysis," Independent Review,vol. 9, no. 4 (2005), pp. 543–549; Walter Block, "Government Inevitability: Reply to Holcombe," Journal of Libertarian Studies,vol. 19, no. 3 (2005), pp. 71–93; and Randall G. Holcombe, "Is Government Inevitable? Reply to Lesson and Stringham" and "Is Government Really Inevitable?" 를 참조하라.
  9. (원문 24번 각주) Holcombe, "Government: Unnecessary but Inevitable," p. 326.
  10. (원문 25번 각주) Cowen, "Law as a Public Good," pp. 252, 261.
  11. (원문 26번 각주) Tyler Cowen, "The Paradox of Libertarianism," Cato Unbound (March 11, 2007). 코웬은 그가 말하는 정부의 성장이 단순히 1인당 기준인지, 아니면 전체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물론 온라인상에 게재된 논평이므로 지나친 엄격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마 불공평하다. 그러나, 성장중인 경제에서 정부의 규모는 1인당에서는 증가하지만 전체 경제의 규모에 비해서는 여전히 감소할 수 있다. 한편으로, 만약 코웬이 경제가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GDP 퍼센트에 비례하여 정부가 성장해야 한다는 20세기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을 부활시키려 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그가 언급하는 기간, 즉 지난 수십 년간의 장기추세를 볼 때, 그의 주장은 적어도 미국에 있어서는 경험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