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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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세계 최초의 리버테리언, 노자와 장자: 인간과 동물, 초인과 범인의 구별이 없는 세상

국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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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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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

전용덕
*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 경제학 박사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정치철학과_윤리학

편집 : 전계운 대표
  • 편집자주: 이 글은 2007년에 출간된 전용덕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의 저서 <권리,정부,시장>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리버테리언, 노자와 장자: 목차 <펼치기>

(5) 인간과 동물, 초인과 범인의 구별이 없는 세상1

1) 인간과 동물, 초인과 범인의 구별이 없는 세상

무위 자연의 도, 즉 리버테리어니즘이 행해지면 세속의 삶은 어떻게 변모하는가. 여기에서는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의 정치가 펼쳐지면 나타날 전체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2 장자는 ‘제9장 마제’(馬蹄)의 ‘민성론’(民性論)에서 그러한 세상을 자세히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덕이 매우 잘 행해졌던 시대에는, 사람들은 어떠한 꺼릴 것도 고칠 것도 없이 유유하게 걸어 돌아다니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마음대로 물(物)을 보았다. 그 당시에는, 험한 산을 헐어 만든 좁은 길도 없었고 깊은 못 주변에 배나 다리도 없었으며, 사람들은 먼 곳에 갈 일도 없었다. 수많은 물(物)이 무리를 지어 생겨나 너와 나의 구별이 없이 모두가 한곳에 거처를 잡고, 새와 짐승은 무리를 지어 놀고 초목은 쑥쑥 성장했다. 그래서, 새나 짐승에게 해를 입히는 일도 없고, 오히려 그물을 걸러 함께 장난하며 놀 수 있었으며, 날 짐승의 새끼를 놀라게 하는 일도 없고, 나무 위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당겨 작은 새나 까치의 집을 엿볼 수 있었다.

이처럼 덕이 잘 행해졌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조수(鳥獸)와 함께 살고 무리를 이루어 모든 물(物)과 같이 살았다. 그러니 어찌 군자・소인의 차별이 있다는 따위를 알겠는가. 세상의 예법 따위를 변별하지 못하고 오직 무지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두 태어날 때부터의 덕을 고스란히 지키며 살아, 이익 따위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오직 무욕(無欲)했다. 이와 같이 무지・무욕한 것을 소박(素樸)이라 한다. 소박이야말로, 인간의 천성이 완전하게 발휘된 것이다. 그런데, 성인(聖人)(필자주, 공자와 맹자 같은 이)이 나타나 애써 인(仁)의 가르침을 세우고 무리하게 의(義)의 행위를 힘쓰게 했기 때문에, 천하의 사람들은 처음으로 서로를 의심하거나 질투하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소용도 없는 음악을 만들어 교화하고, 두려워하여 꺼리어 예를 정하여 통제했기 때문에, 천하의 사람들은 비로소 다투게 되었던 것이다. (중략) 이와 마찬가지로, 무위자연의 도덕을 손상시켜 버리고 인위적인 인의의 가르침을 세우는 것은, 성인(위와 동일)의 잘못인 것이다.”

장자는 자생적 질서가 구현되면 동물과 인간, 초인과 범인,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없는 세상이 되고, 그러한 세상을 ‘천방(天放)’ 즉, ‘자연 그대로의 자유’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천방이란 ‘자연적 자유’(natural freedom)라고 하겠다. 이 때 사람들은 조직체에 들어있지 않고, 어떠한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완전한 자유 상태(a state of absolute freedom)라고 하겠다.3 이 때 사람들은 덕을 지켜 무욕하고 인의예악을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 있었다. 물론 이 때 무욕이란 자연의 질서를 따라 쓸데없는 욕심을 품지 않고, 무지함이란 인의예악과 같은 인위적 질서를 위한 것을 몰랐을 뿐 자연적 질서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장자에 의하면, 이러한 무위 자연의 질서 하에서는 공맹의 가르침이 오히려 무위자연의 질서를 손상시켜 세상을 더 무질서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유컨대, 공맹의 가르침은 짧은 오리 다리를 길게 늘이는 것이나 긴 다리를 짧게 만드는 것과 같고, 노장의 가르침은 오리의 다리를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산천의 초목과 짐승이 잘 자라서 의식주의 걱정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4즉, 농사를 짓고 짐승을 기르는 일에 정부가 간섭하고 세금을 거두어들임으로써 오히려 농사와 짐승의 사육, 즉 생업을 망치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크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공맹의 가르침은 큰 정부를 지향하고 노자와 장자의 질서는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노장은 작은 정부 또는 무정부야말로 부와 자유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을 재삼 설파하고 있다.

2) 복희와 신농의 시대

무위 자연의 도, 즉 작은 정부로 천하가 잘 다스려졌던 때는 언제인가. 장자는 ‘제10장 거협’(胠篋)에서 덕으로 천하가 다스려졌던 때와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옛적, 용성씨, 대정씨, 백황씨, 중앙씨, 율륙씨, 여축씨, 헌원씨, 혁서씨, 존로씨, 축융씨, 복희씨, 신농씨 등이 세상을 다스렸는데, 그 시대에는, 인민들은 서로 약속을 하는 데에 문자 따위를 쓰지 않고 새끼를 매듭지었을 뿐이며, 늘 자신들이 먹는 것을 달게 여기고 입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며, 자신들의 풍속을 즐기며 자신들의 주거를 안락하게 생각했다. 이웃 나라의 마을이 빤히 바라보이고 그 곳의 닭과 개의 소리가 들려 와도, 인민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시대에는 참으로 세상이 잘 다스려졌던 것이다.” 이 부분은 노자의 도덕경 ‘제80장 소국과민’과 너무도 흡사하다. 도덕경 제80장은 노자가 생각하는 이상향으로 도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지는 경우에 일어날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장자는 용성씨부터 신농씨까지 실제로 도(道), 즉 리버테리어니즘에 의해 다스려졌던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

(6) 도의 쉬움과 행하기 어려움

도덕경 ‘제70장 오언심이지’(吾言甚易知)에서 노자는 도의 쉬움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 말은 몹시 알기 쉽고 몹시 행하기 쉽건마는, 천하에 능히 아는 사람이 없고 능히 행하는 사람이 없다. 말에는 근본이 있고 일에는 주인이 있거늘, 대저 오직 이를 모르는지라, 그러므로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아는 사람이 드문지라, 그리하여 나는 귀한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성인은 베옷을 입고 구슬을 안에 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노자가 말하는 도는 무위자연으로 현대의 정치 철학 용어로 바꾸면 리버테리어니즘을 말한다. 이 장에서 노자는 리버테리어니즘의 알기 쉬움과 행하기 쉬움을 말하고 있다. 또한 노자는 자신의 도를 아는 사람이 드물고 그 결과 자신이 귀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근대에 리버테리어니즘의 주장한 소수의 사람들―예를 들면, 하이에크, 미제스, 라스바드―이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과 같다.

장자도 ‘제12장 천지(天地) 제4 황제사상망’(黃帝使象罔)에서 노자처럼 도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우화로 보여준다. “황제가 적수를 거슬러 올라가 그 북쪽을 여행했다. 곤륜산에 올라 아득히 먼 남쪽을 조망했다. 그리고 귀로에 올랐다. 돌아와서, 귀중한 검은 패주를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그 이름마저 지(知)인 명지(明知)의 사람으로 하여금 찾게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눈이 밝기로 이름난 이주(離朱)로 하여금 찾게 했지만, 그도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끽후(喫詬)로 하여금 찾게 했지만, 그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멍청한 상망(象罔)에게 그 일을 맡기게 되었다. 그런데 상망은 황제의 검은 패주를 찾아내었다. 황제는 너무 놀라, ‘이상하도다, 상망 따위에 이 보물이 발견되다니......’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검은 패주는 무위 자연의 도를, 지는 명지를, 끽후는 총명을, 상망은 무심을 의미한다. 이 우화는 무위 자연의 도를 아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자는 ‘제41장 상사문도’(上士聞道)에서는 도를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상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힘써 이를 행하고, 중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마음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며, 하등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이를 크게 웃거니와, 그들에게 웃음 받지 않는다면 써 도라 하기에 부족한 것이다.”라고 하여 도를 알고 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이 점은 노자가 70장에서 도를 알고 행하기가 쉽다고 말한 것과 대조적이다. 오늘날 리버테리어니즘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조롱거리가 되듯이 노자 당시에도 도 즉, 리버테리어니즘이 많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시대를 뛰어넘어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노자는 ‘제15장 고지선위사’(古之善爲士)에서 도를 깨친 상등의 선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옛날에 훌륭한 선비는 미묘현통하여,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특히 노자가 선비를 구분하여 도를 실천하기가 어려움을 지적한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어떤 종류의 학설이든 그것을 전파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같은 길을 가는 동학(同學)이다. 즉, 동학을 설득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다. 노자시대에 도, 즉 리버테리어니즘은 궁극에는 대부분의 선비로부터 배척 당하게 되고 비웃음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리버테리언은 대부분의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로부터 잘못 이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오늘날의 리버테리언이 처할 상황을 노자는 2000년도 더 이전에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요약하면 무위 자연의 도 또는 리버테리어니즘을 이해하고 행하는 일에 대하여 노자와 장자는 약간 다른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노자는 다소 엇갈리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도 또는 리버테리어니즘을 이해하는 일보다 행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의 정치에서도 작은 정부는 매력적인 실천 과제이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이익집단의 엄청난 요구로 대부분 실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까이는 김영삼, 김대중 전・현직 대통령도 작은 정부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그 실천에는 실패했다.

 


태그 : #큰정부 #자유주의일반 #세계사 #인물평가 #철학과_방법론

  1. (원문 155번)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수메르 문명에서도 인류 최초의 황금시대에는 인간이 고생이나 불화 없이 살았던 완벽한 행복의 시대였다고 한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인류최초의 황금시대와 무위 자연의 도가 행해졌던 시대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일치하고 있다. 점토판에 새겨진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옛적에는 뱀이 없었고, 전갈도 없었고, 하이에나도 없었고, 사자도 없었고, 들개도 없었고, 늑대도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고, 공포도 없었고, 인간은 적이 없었다.”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저 박성식역,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제27장 참고.
  2. (원문 156번) 앞의 ‘4) 작고 또 작은 정부가 가져올 결과’에서는 정부 또는 정치가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 것이라면, 여기에서는 정부 또는 정치가 사람을 포함한 전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 다르다고 하겠다.
  3. (원문 157번) Hsiao (1979),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 vol. 1, 308쪽 참고.
  4. (원문 158번) 이러한 주장은 정부의 규제가 각종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주기 보다는 약화시킨다는 시카고 학파의 규제의 경제 이론과 작은 정부론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시카고 학파의 작은 정부론과 규제의 경제 이론에 대한 국내 소개 문헌은 자유주의경제학연구회(1994), <시카고학파의 경제학>, 민음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