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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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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화폐제도와 금융제도 - 대출은행업과 예금은행업

국내 칼럼
경제학
작성자
작성일
2021-02-04 23:17
조회
827

전용덕
*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 경제학 박사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경기변동

편집 : 전계운 대표
  • 이 글은 전용덕 아카데미 학장의 2007년 저서 <권리, 시장, 정부> 제4장 "화폐제도와 금융제도"에서 발췌했다. 
[1편] 시작하며
[2편] 화폐의 종류, 기능 그리고 기원

[3편] 화폐의 정의
[4편] 대출은행업과 예금은행업
[5편] 부분지급준비자유은행업의 문제점과 폐해

[6편] 중앙은행업의 기능과 폐해
[7편/完] 화폐와 금융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

편집자주: 경제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제스 연구소는 2021년부터 전용덕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2015년작 <경기변동이론과 응용>을 홈페이지에 연재하고자 한다. <권리, 시장, 정부>에서 발췌한 이 글은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독자들에게 경기변동이론의 개론을 소개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여러 경제이론 중 경기변동이론은 시장경제의 호황과 불황의 원인을 매우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불황 치유의 정책적 진단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사람들은 대체로 1930년대 초반의 대공황과 2000년대 후반의 금융위기를 자본주의 체제의 내적 모순 때문에 발생했다고 여기며, 2020년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위기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간섭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학파에 따르면 이러한 진단과 처방은 잘못된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중대한 문제의 근원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있기 때문이다.


대출은행업과 예금은행업1 2

1. 본래적 의미의 대출은행업과 예금은행업

가. 대출은행업 기능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은 기본적으로 대출은행업과 예금은행업의 기능을 수행한다. 3 그리고 오늘날의 금융기관은 금융기관 간 업무 영역의 경계가 완화되면서 이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출은행업과 예금은행업의 기능과 역할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특히 뒤에서 보겠지만 두 기능이 화폐의 공급과 인플레이션 그리고 소득재분배에 미치는 영향은 현저한 차이가 있다.

먼저 대출은행업을 자세히 관찰해보자. 대출은행업이란 금융기관이 저축자(savers)와 투자자(investors) 또는 차용자(borrowers)간의 중간에서 자금을 중개(intermediation)하는 기능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기관은 일정기간 동안에 일정한 이자와 원금을 줄 것을 약속하고 저축자로부터 화폐 또는 자금을 빌린다. 이 때 저축자가 받는 이자는 현재의 소비를 억제하고 자원의 사용을 미래까지 기다리는 데 대한 대가이다. 이것을 이자율의 시간선호이론(time preference theory)이라 한다.4 금융기관은 이 돈을 투자자 또는 차용자에게 다시 빌려준다. 물론 차용자는 일정 시간 후에 원금과 이자를 갚을 것을 약속한다. 금융기관이 저축자에게 주는 이자와 투자자 또는 차용자로부터 받는 이자의 차이(interest differential)는 금융기관이 저축자와 차용자 사이를 중개하는데 대한 대가이다. 물론 이 차이가 금융기관의 소득이 된다. 그리고 금융기관 간 경쟁압력에 의해 중개 비용은 최소화되는 경향이 있다.

대출은행업의 특징이나 사회에 미칠 영향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 요약할 특징이나 영향은 중개 금액이나 금융기관의 종류와 상관없이 동일하다.

첫째, 대출은행업에서는 화폐 또는 자금의 소유권은 비록 일시적이지만 저축자로부터 금융기관을 거쳐 투자자로 옮겨간다. 원리금을 상환하는 경우에 자금의 소유권은 전자의 경우와 반대의 방향으로 이전된다.

둘째, 대출은행업은 화폐 공급의 증가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염려도 없다. 왜냐하면 대출은행업은 단순히 자금의 소유권만 이전되기 때문이다.

셋째, 금융기관이 파산하는 경우는 일반기업의 파산처럼 해당 금융기관의 주주와 금융기관에게 돈을 빌려 준 채권자(creditor)가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만약 금융기관이 대출해 준 기업이 파산하여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없고, 그리고 그 금액이 크다면 해당 금융기관은 파산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파산은 경영의 실패나 기업가적 정신의 부족 등으로 일어나는 일반 기업의 파산과 다를 바가 없다.5

넷째, 대출은행업에 참가하는 모든 거래자는 상호 이익을 가진다. 다른 거래와 같이 금융 거래도 참가자가 이득을 얻기 때문에 거래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금융 중개 기능인 대출은행업은 사회적으로 매우 생산적이다.

다섯째, 대출은행업에는 어떠한 소득이나 부의 재분배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금의 소유주가 일시적으로 바뀌지만 이자를 제외하면 자금의 크기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 예금은행업 기능

금융기관의 예금은행업 기능은 앞에서 본 대출은행업 기능과 전적으로 다른 것에서 출발했다. 예금은행업은 기본적으로 예금자에게 안전한 보관장소(safekeeping service)를 제공하고 거래를 결제하는 기능(clearing services)을 하는 것이다. 즉, 돈을 여러 가지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관해주고, 상호 대차관계나 송금 등의 결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원래 이러한 기능은 오늘날과 달리 금화가 화폐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발달한 것이었다. 비록 화폐의 형태가 바뀌었지만 보관과 결제 기능은 변한 것이 없다. 정부가 발행한 지폐도 금화와 같이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금융기관은 화폐(금화 또는 지폐)를 받고 예금자에게 화폐에 대한 청구권(보관증(warehouse receipt) 또는 화폐대용물)을 발행했다. 물론 ‘액면가치로 즉각 상환해주는’(redeemable at par and on demand) 조건이었다. 초기의 금융기관은 창고기능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돈에 대한 청구권을 발행하면서 같은 금액의 금화를 그대로 보관했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기관은 항상 전액 지급 준비가 되어 있었다. 소위 말하는 100퍼센트지급준비은행업(100 percent reserve banking)을 실시했다.6

이러한 예금에 대하여 이자를 지불하기는커녕 오히려 예금자가 보관과 결제 서비스에 대하여 사용요금(fee)을 지불해야만 했다. 물론 대출은행업의 경우처럼 금융기관간 경쟁 압력에 의해 사용요금은 최소화되는 경향이 있다. 금융기관의 예금은행업의 특징이나 사회에 미칠 영향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물론 아래의 내용은 예금은행업이 초기의 형태대로 100퍼센트지급준비은행업을 실시한다는 전제하에서 나온 것이다.

첫째, 대출은행업과 달리 예금은행업에서는 화폐 또는 자금의 소유권은 변동되지 않는다. 즉, 예금자가 소유권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예금은행업은 대출은행업과 마찬가지로 화폐 공급의 증가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염려는 없다.

셋째, 강도를 당하거나 화재가 나는 등의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대출은행업과 달리 예금은행업에 의한 금융기관의 파산은 구조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넷째, 예금은행업에 참가하는 모든 거래자는 상호 이익을 얻는다. 즉, 보관과 결제의 기능인 예금은행업도 대출은행업처럼 사회적으로 매우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예금은행업에서도 대출은행업에서와 같이 어떠한 소득이나 부의 재분배도 일어나지 않는다. 화폐나 자금의 소유주와 크기가 변한 것이 없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 요약

시장에서 발달한 본래적 의미의 대출은행업과 예금은행업을 계속 실시했다면, 자금을 빌려주는 일에 실패하거나 천재지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 일부의 금융기관이 대출은행업에 실패하더라도 국가적 차원의 금융위기와 인플레이션과 경기변동 그리고 그러한 현상의 반복은 일어날 수 없다. 한 국가내의 대다수의 금융기관이 거의 동시에 파산의 위기에 몰리고 그리고 그러한 일이 반복되는 경우는 구조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출은행업과 예금은행업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구조적으로 대규모 금융의 위기와 반복이 일어날 수 없다.

2. 대출은행업과 예금은행업의 혼동

엄격하게 구분되었던 두 가지 기능은 뒤섞이게 되었다. 이러한 혼동이 일어나게 된 데에는 서양 특히 영국의 사법체계가 한 몫을 했다. 대출 또는 신용거래는 채권자가 현재재인 화폐와 미래재인 약속증서(IOU)를 바꾸는 것이다. 약속증서는 미래에 원리금을 정해진 날짜에 갚겠다는 서약을 한 증서를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예금은 결코 대출이 아니다. 예금은 귀중품을 지키기 위하여 사람을 고용하는 일종의 위탁거래(bailment transaction) 또는 청구거래(claim transaction)이다. 이러한 예금은 예금주가 원하기만 하면 금융기관은 언제든지 지불해야 되기 때문에 경제적 관점에서 결코 대출 또는 신용거래로 볼 수 없다. 영국은 19세기 초반과 중반만 하더라도 창고에 관한 법률체계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7

1811년 Rolls Sir William Grant는 Carr v. Carr 사건에서 예금을 은행의 대출과 같다고 판결했다. 1816년 Devaynes v. Noble 사건과 1848년 Foley v. Hill and Others 사건에서 영국 사법부는 그것을 재확인했다. 전기 두 사건 중에서 후자 즉, Foley 사건이 더 결정적이었다. 미국은 Foley 판결에서 확립된 개념 위에 더 불합리한 것들을 추가했다. 당시 영국과 미국 사법부는 예금과 대출의 개념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법부의 이러한 혼동은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가.

첫째, 예금을 대출로 취급함으로써 모든 대출과 예금에 대하여 부분지급준비은행업을 가능케 하였다. 그러한 제도적 변화는 다음 절에서 보겠지만 금융위기와 경기변동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둘째, 사용요금을 받아야 할 예금자(depositor)에게 이자를 지불하고, 일정한 기간 기다려야 할 저축자(saver)에게 즉각적으로 돈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해진 것은 모든 예금자가 일시에 모든 예금을 찾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예금자가 찾아가지 않는 예금의 일부를 차용자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음으로써 그 일부를 예금자에게 주고, 빌려주지 않은 예금 중 일부를 저축자의 요구에 따라 즉각적으로 돈을 상환할 수 있는 것이다. 사법부의 혼동이 있기 전에는 앞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일이 구조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두 가지 일의 혼동은 결국 저축자와 예금자가 상호 보조금을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태그 : #중앙은행 #주류경제학비판 #호황과_불황 #간섭주의 #화폐와_은행

썸네일 출처 : 대출 원리금 합계가 연소득 90% 넘으면 은행 대출 사실상 불가

 
  1. 이 부분에 대한 참고문헌은 다음과 같다. Block, Walter, “Fractional Reserve Banking: An Interdisciplinary Perspective,” In Man, Economy, and Liberty: Essays in Honor of Murray N. Rothbard, Walter Block and Llewellyn H. Rockwell, Jr., eds. Auburn,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88, Hoppe (1994), Hoppe et al. (1998), Hülsmann, Jörg Guido, “Free Banking and the Free Bankers, vol. 9, no. 1, 1996, pp. 3-53, Mises (1981), Rothbard, Murray N., The Mystery of Banking, Richardson & Synder, 1983, 동일 저자의 Man, Economy and State, Auburn,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93.
  2. 아래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폐의 수요와 공급의 결정 요인과, 그 두 힘이 화폐의 구매력(purchasing power)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 필요가 있다. Rothbard (1983), (1993), Mises (1981), 동일저자의 Human Action, San Francisco, Fox & Wilkes, 1996 등을 참고.
  3. 미제스는 대출은행업을 상품신용(commodity credit), 예금은행업을 순환신용(circulation credit)으로 불렀다. Mises (1981), pp. 296-298 참고. 그의 제자 라스바드(Rothbard)가 전자를 대출은행업으로 후자를 예금은행업으로 명명하였다. Rothbard (1983) 참고.
  4. 이자율의 시간선호이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Mises (1981), (1996), Rothbard (1993)을 참고.
  5. 예금뇌취(bank run)에 의한 금융기관의 파산이야말로 금융기관을 규율하는 시장의 강력한 힘으로서 예금보험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 예금뇌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 장의 ‘2. 시장규율과 예금보험’을 참고하라.
  6. 현재는 부분지급준비은행업을 실시하고 있고 그것의 문제점은 아래에서 따로 다루고자 한다.
  7. 예금이 대출이라는 판결을 내린 영국과 미국의 판결에 대해서는 Rothbard (1983), pp. 93-95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