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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2021년 3월호] 소위 암호 화폐라는 것은 ‘화폐’가 아니다

국내 칼럼
경제학
작성자
작성일
2021-03-01 10:49
조회
2274

전용덕
*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 경제학 박사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가상화폐

미제스 와이어 2021년 정기칼럼 목차 <펼치기>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한 때 ‘1조달러(약 1107조원)’를 돌파했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21일 오후에는 5만 6500달러 안팎에서 거래되었고 24일 정오에는 5만 230달러로서 일시 폭락 후 반등했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최근 6개월간 400% 가까이 폭등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비트코인 투자와 지지 발언을 쏟아내면서 급등세를 이끌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예를 들어, 재닛 옐런 미 재무 장관은 지난 18일(현지 시각) CNBC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매우 투기적인 자산"이라고 지적했다. 옐런 장관은 한 컨퍼런스에서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말도 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

이 글에서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이하에서는 ‘비트코인 등’이라고 줄여서 표기)과 관련한 근본적인 의문을 풀어보기로 한다. 그것은 비트코인 등을 ‘화폐’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에서는 비트코인 등을 ‘가상 화폐’ 또는 ‘암호 화폐’(cryptocurrency)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비트코인 등은 ‘화폐’가 아니다.

쌀과 같은 재화는 '직접사용가치'(direct use value) 때문에 사람들이 대가를 지불하고 구매한다. 조선왕조가 상평통보를 법률에 의해 그 사용을 강제한 시점인 1678년 이전에는 쌀, 면포, 은화(銀貨) 등을 민간이 교환수단으로 사용했다. 민간이 쌀 등을 교환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은 그 시점에서 많은 사람이 쌀 등이 직접사용가치 뿐만 아니라 ‘교환가치’(exchange value)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어떤 재화가 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재화가 직접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모두 가져야 한다.

비트코인 등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은 파일의 저장, 관리 등에 있어서 혁신적인 기술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이나 업종 종사자에게는 그 기술이 직접사용가치가 있지만 쌀과 같이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재화의 직접사용가치가 제한적일수록 그 재화의 교환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비트코인 등은 블록체인 기술 자체보다 직접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더 낮을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문에 비트코인 등은 화폐가 아닌 것이다.

혹자는 현행 불환지폐는 직접사용가치가 없지만 화폐로 잘 사용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환지폐가 교환가치를 가지게 된 것은 정부가 ‘법정화폐법’(legal tender law)으로 지폐의 교환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폐의 공급에 따라 불환지폐의 교환가치는 매우 불안정하다. 화폐의 역사를 보면, 정부가 불환지폐의 공급을 대량으로 늘림으로써 불환지폐의 교환가치는 지속적으로 낮아져왔다. 게다가, 불환지폐를 사용하는 경우에 정부는 금과 같은 재화를 화폐로 사용하는 것도 또한 금지하고 있다. 만약 그런 금지가 강제되지 않는다면 불환지폐는 화폐 시장에서 즉각 퇴출될 것이다.

그러나 직접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없는 불환지폐를 정부가 강제력만으로 상품화폐처럼 민간이 사용하게 할 수는 없다. 시장 참가자들이 재화들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교환비율, 즉 가격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시장에는 무수한 재화가 존재하는 만큼 그런 무수한 재화를 교환하게 할 수 있는 가격 체계(price system) 또는 가격 구조가 필요하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불환지폐는 그것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불환지폐를 강제하는 순간에 금과 같은 상품화폐가 화폐로서 그 기능이 정지되지만 상품화폐가 구축해 놓은 가격 체계는 존재한다.

불환지폐는, 비록 암묵적이지만, 그 가격 체계를 물려받기 때문에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가격 체계 내의 구체적인 교환비율은 지속적으로 변경되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것은 불환지폐가 만들어놓은 가격 체계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트코인 등을 화폐로 볼 수 없는 다른 이유도 있다. 어떤 재화가 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화폐가 되는 재화가 다른 모든 재화의 가격을 매겨줄 수 있어야 한다. 쌀, 금 등은 교환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것들과 다른 재화의 교환 과정에서 쌀, 금 등과 다른 재화의 교환비율이 결정된다. 다시 말하면, 쌀, 금 등은 사회 내의 모든 재화의 상대 가격 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트코인 등은 오히려 현재의 불환지폐가 비트코인 등의 가격을 결정해주고 있다. 즉 현재의 불환지폐가 없다면 비트코인 등은 자신의 가격도 결정할 수가 없다. 그런 것을 화폐라고 부를 수는 없다.

사람들은 현행 불환지폐 제도에 불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화폐가 될 수 없는 것을 화폐로 사용하도록 만들 방법은 없다. 물론 정부가 법정화폐법을 제정하여 비트코인 등을 화폐로 지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 해야 디지털 형태의 불환지폐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옐런 장관이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한 것은 이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 등이 ‘탈중앙화’된 화폐라는 관점에서 비트코인을 찬성하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비트코인 등의 특성상, 만약 비트코인 등을 정부가 통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서면 정부는 즉각 그렇게 할 것이다. 중국이 일찌감치 디지털 화폐의 실험에 들어간 것은 그런 의도가 있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트코인 등이 탈중앙화된 화폐로 보이는 것은 아직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비트코인 등에 대해 명시적인 정책을 결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비트코인 등이 화폐가 아니라면 탈중앙화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지난 2019년부터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의 일종인 ‘리브라’를 발행하고 유통하고자 했다. 그러자 미국의 정부, 의회, 연방준비제도 등이 일제히 페이스북의 계획에 반대하고 나섰다. 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도 리브라 발행 계획에 반발했다. 그 결과 페이스북은 일단 리브라의 발행을 중단했다.

만약 금 등과 같은 재화에 리브라를 연계한다면 리브라는 ‘태환’ 디지털 화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리브라를 어떤 재화에 연계하느냐에 따라 태환 화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달라진다. 태환 화폐는 불환 화폐보다 그 가치가 크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안정될 것이기 때문에-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리브라를 구매하거나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불환지폐 제도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것이다.

만약 은행에 달러를 예치하게 하고 1달러에 1코인을 발행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하자. 미국의 테더(USDT) 코인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에 발행되는 코인은 달러와 같은 불환 화폐이지만 디지털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이 달러와 다른 점이다. 이제 코인은 달러와 경쟁 관계에 있게 된다. 경쟁 화폐의 등장은 달러와 같은 불환지폐를 발행하는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을 강력하게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정부의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화폐 공급을 무한정 증가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리브라와 같은 태환 디지털 화폐는 태환 화폐라는 이유로, 테더 코인과 같은 불환 디지털 화폐는 불환 화폐라는 이유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그것들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불환지폐와 비교하여, 둘 모두는 민간과 경제에는 이득이 손실보다 클 것이다. 그러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다음 의문이 될 것이다. 이 의문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요약하면, 비트코인 등은 화폐가 아니기 때문에 가상 화폐, 암호 화폐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 때 사용하는 ‘커런시’(currency)라는 개념은 ‘유통매체’ 또는 ‘유통단위’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 매체 등은 암호 화폐, 가상 화폐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바로 잡아 사람들을 더 이상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비트코인 등과 관련한 개념을 바로잡음으로써 비트코인 등의 채굴에 따르는 전기의 낭비, 비트코인 등을 이용한 사기, 그래픽 카드 가격의 불필요한 상승과 반도체 수요의 증대, 비트코인 가격의 급등락으로 인한 투자자들의 손실 등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필자는 앞에서 나열한 문제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언론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언론에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민간이 태환 디지털 화폐와 불환 디지털 화폐의 발행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정보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그런 시도는 정보기술이 불환지폐 제도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날이 머지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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