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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9월호] 지금이라도 농지법을 폐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국내 칼럼
경제학
작성자
작성일
2021-09-01 11:51
조회
814

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사회현안

미제스 와이어 2021년 정기칼럼 목차 <펼치기>

지난 달 말 야당의 윤희숙 의원은 부친의 농지법 위반, 투기 의혹, 딸의 내부자 정보 이용 의혹 등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내부자 정보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의 투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2021년 4월호 미제스 와이어에서 필자는 지적했다. 내부자 정보를 이용하는 경우에만 불법으로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그 곳에서 필자는 또한 지적했다. 이 번 호에서는 농지법과 관련한 문제를 다룬다.

농지법의 근본 취지는 경작자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취지는 최초에 농지법을 제정할 때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이념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지금의 대한민국은 ‘기업가천하지대본’인 시대이다. 게다가, 오래 전부터 농민은 정부의 각종 보조금이나 지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도 그런 이념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다.

경작자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을 이른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라고 한다. 그런 원칙은 농지의 소유를 억제한다는 점에서 반(反)자본주의적이다. 그런 원칙은 소작제와 상치될 수밖에 없다. 농지법이 경자유전의 원칙을 포함한 것은 소작제를 해체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한편, 소작제가 소작인을 ‘약탈’한다고 좌파 농업 전문가는 주장한다. 그러나 소작제는 그런 제도가 아니다. 소작제는 특별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제도일 뿐이다. 특별한 상황이란, 어떤 사람이 농지를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지만 노동력은 너무 적게 보유한 반면에, 다른 사람은 그 반대로 농지는 너무 적게 보유하고 노동력은 너무 과다하게 보유한 경우를 말한다. 그런 경우에 소작계약을 하는 것이 지주와 소작인 모두에게 이롭다. 지주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소작제의 장점을 금방 알 수 있다. 소작제에서는, 지주는 노동자 관리에 따르는 각종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소작인은 자신의 책임 하에 생산 활동을 하기 때문에 생산을 극대화할 유인이 있다.

대한민국 소작제의 역사는 길다. 조선왕조 시대에는 소작제(‘병작제’로 불리었으나 본질은 소작제이기 때문에 소작제로 표기)가 신분제와 결합되어 있었다. 소작료는 전체 수확물의 50%를 상회했다. 이렇게 소작료가 높았던 것은 토지가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시대 토지의 소유가 집중된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그 많은 원인을 여기에서 모두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토지 소유 집중의 원인을 한 가지로 압축하면 토지 국유 제도이다. 노비제는 토지 소유 집중을 강화하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 다시 말하면, 왕조 시대에 문제가 되는 것은 소작제도 자체가 아니라 토지 소유의 집중이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소작제의 비율은 조선왕조 때보다 더 증가했다. 전체 농가호수에서 소작농, 농업노동자, 화전민 등을 합한 농가호수의 비율은 1913년 41.7%에서 1942년 58.7%로 증가했다. 여기에 자소작농을 추가하면 그 비율은 1913년 74.1%에서 82.6%로 또한 높아졌다. 전체 농가호수에서 지주, 자작농 등을 합한 농가호수의 비율은 25.9%에서 17.4%로 감소했다. 조선왕조 시기와 비교하여 일제강점기 소작제의 비율이 악화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토지 소유 집중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토지 소유 집중이 악화하면서 소작료도 조선왕조 때보다 약간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일제강점기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소작제도 자체가 아니라 토지 소유의 집중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한국전쟁을 분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이승만정부의 농지개혁, 3공화국의 공업화, 대량의 도시이주 등으로 농업인구는 지속적이고도 극적으로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고령화 등으로 젊은 노동력을 농촌에서 구할 수 없게 되었다. 귀농 인구가 없지는 않지만 현 시점에서 여전히 극소수일 뿐이다. 이제 노동력은 많지만 농지를 적게 가진 농민은 아주 소수가 되었고, 농지를 가졌지만 노동력이 없는 사람은 다수가 되었다. 이 때 농지를 가졌지만 노동력이 없는 사람은 과거와 같은 지주라기보다는 자신의 재산을 농지에 투자하여 자산이득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상 농지법이 유명무실화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농지가 크게 늘어났지만 농촌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짓는 젊은 인구는 아주 소수이기 때문에 사실상 소작료는 거의 없어졌다. 도시 지주는 소작인(대부분 자소작농)이 이제 문제없이 경작만 해주기를 바랄 뿐이고 소작료는 바라지 않는다. 농지법으로 소작제를 해체하기를 기대했던 좌파는 소작제는 과거보다 줄어들지 않았고 소작료가 영(零)에 가까워진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한 마디로, 한국전쟁 이전에는 ‘지주 소수 소작인 다수’였다면 최근에는 그 반대로 ‘지주 다수 소작인 소수’가 된 것이다.

좌파 농업 전문가는 지주가 소작인을 ‘착취’하는 증거로 고율의 소작료를 댄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만약 그런 주장이 진실이라면 근래에 영에 가까워진 소작료는 소작인이 지주를 착취한 증거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진실이 아니다. 과거의 높은 소작료와 현재의 극히 낮은 소작료는 소작료마저 소작지의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높은 소작료로 소작인의 물질적 삶은 너무 곤궁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뒤돌아보아, 그 시기 소작인의 삶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자율거래에 착취가 있다는 사고방식을 완전히 폐기하는 방법만이 유일하다. 경자유전의 원칙도 그런 사고방식에서 나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이 거주할 목적으로 작년 4월 매입한 경남 양산시 땅이 농지였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작자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농지법을 위반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다수 시민이 비판하자 지난 1월 양산시가 농지를 집을 지을 수 있는 대지로 토지의 형질을 변경해주었다. 그것은 농지법이 한 야당 의원의 부친과 같은 보통 사람에게는 지켜야 할 법이지만 권력자에게는 지킬 필요가 없는 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농지법은 처음부터 잘못 제정된 법이다. 그런 법을 지키느라 한국 사회의 보통 사람들은 많은 대가를 지불해왔다. 사실 그 크기를 계산할 수 없지만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농지법이 기초하고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쓸모가 없다는 것은 농지법에서 경자유전의 원칙에 대한 예외가 너무 많이 인정되어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는 농지법을 쉽게 무력화시켰다. 대통령이 농지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누구에게 그런 법을 지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농지법을 폐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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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출처 : 윤희숙 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