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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2020년 7월호] 자유와 능력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국내 칼럼
정치·외교
작성자
작성일
2020-07-01 00:01
조회
1200

전용덕
*미제스 연구소 아카데미 학장
*경제학 박사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주제 : #정치비판

미제스 와이어 2020년 정기칼럼 목차 <펼치기>

1. 자유와 능력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기본소득제를 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물론 우리 사회가 당장 기본소득제를 시행하자는 입장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금 시점에서 기본소득제의 검토는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대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으로 인한 수업의 품질 저하로 등록금을 반환해줄 것을 요구한 데 대하여 정부의 예산으로 등록금 반환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또 “공교육의 저질화와 사교육 번성으로 교육비가 엄청나게 들어가니 젊은 부부들이 애를 낳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직접 규제를 통해서라도 교육의 평등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우파 정당을 이끌고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좌파 정책을 선전해왔다. 그는 또 오랜 전부터 경제민주화를 주장해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도 좌파 정책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좌파 지향의 경제학자인 것이다. 그가 그렇게 된 데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김 위원장은 6월 초 “배고픈 사람이 빵집을 지나다 김이 나는 빵을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 먹을 수 없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자유가 있겠는가”라면서 기본소득제 도입의 필요성을 ‘자유’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자유와 ‘능력’(power, ‘힘’과 같은 의미이다)을 혼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미성년자는 술이나 담배를 구매할 자유가 없기 때문에(즉 정부가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구매할 수 없다. 비록 그가 그것들을 구입할 수 있는 충분한 돈, 즉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말이다. 어떤 사람이 돈이 없어서 빵을 구입할 수 없다면 그는 빵을 구입할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빵을 구입할 능력 또는 힘이 없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능력 또는 힘을 자유로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능력이 없는 것을 자유가 없는 것으로 잘못 이해함으로써 기본소득제 도입의 정당성을 자유에서 찾고 있다. 김 위원장에게는 기본소득제가 빵을 먹고 싶은 사람에게 빵을 먹을 자유를 주는 것이 때문에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지 않는가. 김 위원장이 능력을 자유로 혼동하는 순간 코로나19로 인한 등록금 할인, 정부에 의한 사교육 규제 등과 같은 좌파 정책이 너무도 쉽게 사회 문제의 해결책이 된다. 김 위원장이 각종 경제·사회 문제에 대해 앞으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것인가를 이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놀라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능력 또는 힘의 문제는 자유의 문제이고 어떤 사회라도 능력 또는 힘이 충분한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2. 좌로 기울고 있는 법치주의

지난 25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일하지 않아도 급여를 주는 주휴(週休)수당 시간을 포함하도록 한 최저임금법 시행령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임금을 지불하도록 한 최저임금법 시행령이 ‘위헌이 아니다’라는 헌재의 결정은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무시한 것이다. 고용주로 하여금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 대해서도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하도록 하는 원칙은 사회주의 원리를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헌재의 이 번 결정이 내포한 더 큰 문제는 헌재 재판관 ‘전원이’ 일치하여 임금 결정에 있어서 ‘사회주의’ 원리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너무도 자명한 원리를 헌재 재판관 한 명도 반대하지 않았던 것은 끔찍하다.

헌재를 포함한 한국의 사법부가 우리 사회의 지배 원리가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임을 보여주는 판결을 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바로 그런 판결이 한국 사회라는 운동장을 ‘좌’로 기울게 하는 것이다. 좌로 기울고 있는 법치주의는 우리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다. 헌재를 포함한 사법부의 재판관들은 자신들의 판결이 한국 사회의 법치주의를 좌로 기울게 하고 있지 않은지 항상 의심해보아야 한다. 물론 국회가 입법 과정에서 사회주의가 깊이 내재된 법률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3.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의 중심에는 간섭주의가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 사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부 시민은 청와대에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중지해줄 것”을 청원했다. 그러나 그런 해결책은 미봉책(彌縫策)일 뿐이다.

인국공 사태에는 두 가지 불공정 문제가 내재해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인국공 정규직에 취업하고자 하는 취준생에게는 심한 역차별을 안긴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국공에 취업하고자 하는 정규직은 준비기간이 길고 어려운 채용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보안검색원은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별도의 채용절차 없이 인국공에 채용이 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사가 보안검색원에게는 큰 ‘특혜’를, 정규직 취준생에게는 작지 않은 ‘벌점’(penalty)을 가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 점에 대해 공사 측은 두 직무가 다르고 그에 따라 임금체계, 인사고과 등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점이 채용과정의 불공정성을 없어지게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미래에 두 직군이 다르게 취급될 것이라는 보장도 할 수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부러진 펜’운동은 첫 번째 불공정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대통령의 공사 방문 이전에 보안검색원이었던 사람은 아무런 조건 없이 공사 정규직으로 채용되고 그 이후에 보안검색원이라는 비정규직이 된 사람은 몇 가지 가벼운 검사를 받고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게 함으로써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비정규직 간에도 차별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비정규직 간에도 동일한 채용기준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권의 일부 정치인은 인국공 사태에 대해 가짜 뉴스 탓으로 돌리거나 문제를 묻어버리는 시도를 하는 것을 본다. 여당의 일부 정치인은 능력이 크게 다르지 않는데 2-3배의 임금을 받는 것이야말로 불공정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초점을 메신저 탓으로 돌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인국공 사태는 한국 정치인의 수준과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인국공 사태는 정부가 사람들의 경제행위에 간섭하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의 민간 경제행위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간섭주의’라고 한다. 간섭주의로는 정부가 의도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인국공의 경우에, 정부의 목적은 민간에게 더 나은 일자리, 즉 비정규직 대신에 정규직을 제공하는 것일 것이다. 문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그 절차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와 함께, 청년 취업준비생들이 불만을 터뜨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점이다. 그러나 청년들이 제안한 정규직 전환 중지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신(취준생)의 이익을 위해 타인(비정규직 보안요원)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인국공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기업, 공단 등과 같은 공공기관을 ‘민영화’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는 너무 많은 공공기관이 있고 그들이 가진 부채의 규모도 가히 천문학적이다. 그 부채는 미래 언젠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공공기관의 비효율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더 근본적으로는, 정부처럼 공기업, 공단 등도 차별(때로는 역차별)을 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조직이다.

한 마디로,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이 민간의 경제행위를 간섭하고 통제할 여지를 없애는 방법이야말로 절차의 불공정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그런 방법은 공공기관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 사회가 갈등이 적지 않은 것은 정부의 간섭주의 때문이다.




태그 : #한국정치 #간섭주의 #큰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