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칼럼 및 번역자료 투고 요령 안내

[1편]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역사와 중요성: 고전파 경제학의 한계

해외 칼럼
역사
작성자
작성일
2020-12-07 17:00
조회
1652

Bob-Murphy_2017-220x300.jpg

Robert P. Murphy
*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뉴욕대학교 경제학 박사)
* 前 텍사스 공대(Texas Tech) 자유시장 연구소 조교수

주제 : #오스트리아학파의_역사

원문 :  이 글은 로버트 머피의 2015년 저서 "Choice: Cooperation, Enterprise, and Human Action"의 서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책은 미제스 연구소가 아니라 인디펜던트 연구소에서 출판하였기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 합법적으로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이 웹사이트에서 epub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번역 : 김경훈 연구원


[1편] 고전파 경제학의 한계
[2편] 카를 멩거와 오스트리아학파의 급진적 주관주의
[3편/完]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인간행동"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전세계 중앙은행의 지도자들은 마침내 어떻게 해야 원활한 경제성장과 적당한 물가상승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지 파악한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그 시기를 "대안정(Great Moderation)"의 시대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온함은 2008년 가을에 발생한 주택거품의 붕괴와 그에 따른 금융위기로 산산조각이 났다. 대중과 정치인들은, 경제학자들에게 위기의 원인에 대한 설명과, 미래에 유사한 사태를 예비하기 위한 권고안을 요청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이라는 한 경제사상학파에 따르면, 사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대부분의 전문 경제학자들이 권고한 정책적 해결안이다. 화폐 및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간섭은 2000년대 초중반에 전세계에 자산거품의 씨앗을 뿌렸으며, 오스트리아학파는 이에 따라 거대한 붕괴가 초래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또한, 일단 위기가 발생한 이후, 대규모 재정적자를 수반하는 정부간섭, 실업급여의 확대, 그리고 민간기업에 대한 더 많은 규제가 해결책으로 시행됨에 따라 불황이 더 장기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사유재산, 시민의 자유, 국가간의 평화라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교훈을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자유시장으로 돌아간다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생활환경의 번영과 꾸준한 개선을 복원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역사적 배경: 고전파 경제학

1776년,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그의 유명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출판했다. 비록 종종 주장되는 바와 달리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의 창시자는 아니었지만,1 "국부론"은 확실히 영국의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중추적인 작품이었다. 이 전통의 다른 개척자들로는,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 그리고 제임스의 유명한 아들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있었다. 동시기에는 위대한 프랑스 전통의 경제학을 일군 자크 튀르고(Jacques Turgot, 1727-1781), 장-바티스트 세(J. B. Say, 1767-1832), 그리고 프레데리크 바스티아(Frédéric Bastiat, 1801-1850)도 있었다. 이들이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만들어낸 경제학적 지식은 통칭 고전파 경제학으로 알려져 있다. 고전파 경제학은 부의 축적과 경제계층 간 소득분배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들의 정책처방은 대체로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즉 정부가 경제문제를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비록 고전파 경제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많은 통찰을 남겼지만, 특히 자유방임주의라는 정책적 결론을 여전히 수용하는 경제학자들에게는 더욱 큰 유산을 남겼지만, 그들은 가치와 가격을 잘못 이해했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학자들 마다 나름대로 차이가 있긴 했지만,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생산원가를 기초로 하여 재화의 가격을 설명하였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주어진 재화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의 양에 집중하는 경향으로 이어졌다. 역설적이게도, 카를 마르크스(Karl Marx)가 자신의 저서에서 그토록 중요하다고 강조한 노동가치론에 숨을 불어넣은 것은 일반적으로 친자본주의적이었던 고전파 경제학자들이었다. (사실, 어떤 정의에 의하면 마르크스 본인부터가 중요한 고전파 경제학자로 간주될 수 있다.)

주관주의자, 한계혁명, 오스트리아학파의 공헌

경제사상사에 대한 표준적인 견해는, 세 명의 학자가 소위 경제학의 "한계혁명(marginal revolution)"을 이끌어낸 공로가 있다고 인정한다. 그들은 그들의 주저가 대략 비슷한 시기에 나타났기 때문에 (두명은 1871년에, 다른 한명은 1874년에) 하나로 묶여서 인정받고 있으며, 모두 현대적(즉 고전파 이후) 가치 및 가격이론의 토대를 마련할 새로운 분석적 접근법을 독자적으로 발견하였다고 평가받는다. 이 세 명의 경제학자들은 바로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 1835-1882), 레옹 발라(Léon Walras, 1834-1910), 그리고 카를 멩거(Carl Menger, 1840-1921)이다.

이 세 명의 개척자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특징은, 가치에 대한 고전파의 비용이론 또는 노동이론을 한계적인 주관가치론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포도 재배에 수반되는 노동력을 기초로 포도주 한 병의 값을 설명하려고 했던 과거와 달리, 이들의 주관주의 설명은 인과관계를 다음과 같이 뒤집었다: 사람들은 포도주 한 병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즉 그것이 그들에게 행복이나 "효용(utility)"을 주기 때문에, 생산자들이 포도주 생산을 위해 포도를 재배하는 것이 이치에 맞았던 것이다.

투입가격에서 최종가격이 결정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철회하고, 가격결정의 인과관계를 최종가격이 투입가격을 결정한다고 바로잡은 것 외에도, 경제학의 주관주의 혁명은 주관적인 욕망이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도 정확하게 정비했다. 특히 "한계(marginal)"라는 용어는, 개인이 "벼랑끝에 있는(on the edge)"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파 경제학은 가치에 대한 비용 또는 노동이론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시장가격이 상품의 유용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하였다. 그러나 그들 여기서 큰 난관에 봉착했다: 왜 물처럼 생활에 필수적인 재화가 다이아몬드처럼 단순한 장식적 가치만을 가지는 재화보다 훨씬 더 낮은 시장가격을 가지는가? 가치와 가격이론에 대한 한계이론적 접근은 소위 "물-다이아몬드 역설(water-diamond paradox)"이라 불리는 문제를 쉽게 해결했다.2 시장의 어느 누구도 실제로 "모든" 물이라는 재화나 "모든" 다이아몬드라는 재화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실상은 사람들이 어떤 거래에서 8온스의 병에 담긴 "특정한 양의" 물이나, 약혼반지에 장식된 "특정한 양의" 다이아몬드같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특정한 양의"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는 일반적으로 "특정한 양의" 물병보다 훨씬 더 많은 행복이나 효용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특정한 양만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물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특히 고전파 경제학의 전복에 있어 멩거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와냐하면 그의 공헌인 1871년작 "경제학의 원리(Grundsätze, Principles of Economics)"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창설한 역사적인 문헌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이라는 용어는 멩거와 독일역사학파 사이의 경제학방법론에 대한 논쟁에서 처음 생겨난 용어이다. 역설적이게도, 독일보다 오스트리아가 촌구석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비정통적인 멩거의 견해의 기원을 경멸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멩거의 적수들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이다. 이 용어가 고착화되어, 오늘날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대체로 미국인임)가 여전히 스스로를 오스트리안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는 그들 이론의 멩거리안 전통 때문이지 오스트리아라는 특정한 지리적 기원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태그 : #오스트리아학파개요 #가격 #다른경제학파 #주관주의 #경제사 #일대기

 
  1. 예컨대, 많은 경제사상가는 리샤르 캉티용(Richard Cantillon)의1755년작 "Essai sur la Nature du Commerce en Général" 이 최초의 경제학 저서라고 간주한다.
  2.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다음과 같이 물-다이아몬드 역설에 대해 논하였다: "사용가치가 가장 큰 것은 교환가치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교환가치가 가장 큰 것은 사용가치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물보다 더 유용한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어떤 것도 살 수가 없다. 물을 대가로 치루어 어떤 다른 것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다이아몬드는 사용가치가 거의 없지만 아주 많은 양의 다른 상품과 종종 교환할 수 있다." (Adam Smith, The Wealth of Nations. In Two Volumes: Volume One. London: J.M. Dent and Sons, Ltd. Aldine House, first published in this edition 1910, last reprinted 1957, chapter IV, p. 25). 여기서 볼 수 있는 바는 위대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소위 역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상식적인 관찰이 시장가격을 설명하는 형식적 이론과 쉽게 조정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대조적으로, 새로운 한계효용이론은 물이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낮은 시장가격을 가지고 있다는 경험적 사실을 다루는데 보다 능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