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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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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完]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역사와 중요성: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인간행동"

해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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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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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P. Murphy
*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뉴욕대학교 경제학 박사)
* 前 텍사스 공대(Texas Tech) 자유시장 연구소 조교수

주제 : #오스트리아학파의_역사

원문 :  이 글은 로버트 머피의 2015년 저서 "Choice: Cooperation, Enterprise, and Human Action"의 서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책은 미제스 연구소가 아니라 인디펜던트 연구소에서 출판하였기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 합법적으로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이 웹사이트에서 epub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번역 : 김경훈 연구원


[1편] 고전파 경제학의 한계
[2편] 카를 멩거와 오스트리아학파의 급진적 주관주의
[3편/完]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인간행동"

멩거 이후로, 말 그대로 여러 오스트리아인들(진짜로 오스트리아 출생)과 오스트리아학파의 구성원들(지리적 의미가 아니라 멩거의 경제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이 멩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오늘날의 오스트리아학파에 이르고 있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주목할 만한 구성원과 주요 업적으로는, 자본과 이자이론에 대한 오스트리아학파의 견해를 확립하고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파산시킨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Eugen von Böhm-Bawerk, 1851-1914), 한계효용이론을 정교화하고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을 만든 프리드리히 폰 비저(Friedrich von Wieser ,1851–1926), 시장가격을 지식의 소통의 한 형태로 설명하고 경기변동이론에 업적을 남겨 1974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Friedrich A. Hayek, 1899–1992), 리버테리언 정치철학과 경제학을 통합하고 독점이론과 후생경제학에서 기술적인 진보를 이룩해낸 위대한 머레이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 1926-1995), 그리고 기업가정신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로 유명한 이스라엘 커즈너(Isreal Kirzner, 1930-)가 있다.

그러나, 반박불가능할 정도로 가장 중요한 (물론 학파 자체를 창시한 멩거 다음으로) 오스트리안은 바로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1881-1973)이다. 연대순으로 그는 상기한 리스트의 중간에 있으며, 구오스트리아학파와 미국의 오스트리아학파를 연결하는 지적인 가교 역할도 하였다. 그는 멩거, 뵘-바베르크, 비저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을 종합하고 확장하여, 자신이 추종자였던 하이에크, 라스바드, 커즈너에게 더욱 더 증폭되고 강력한 체계를 건네주었다.

미제스의 자서전에 따르면, 대학에 진학한 젊은 학생이었던 그는 1903년애 멩거의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발견하여 경제학자가 되었다.1 미제스는 얼마 안가 매우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화폐와 신용의 이론(The Theory of Money and Credit)"이라는 제목으로 영역된 그의 1912년 저서는, 주관적인 한계효용이론을 응용하여 화폐단위의 시장가치를 설명하였는데, 이는 1870년대의 경제사상혁명 이후의 초기 경제학자들이 기피했던 주제이다. 그리하여 미제스는 오늘날 우리가 미시경제학이라고 부르는 분야와 거시경제학이라고 부르는 분야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며, 우연히 화폐 역할을 담당하게 된 재화를 포함한 모든 재화 사이의 시장교환율에 대한 통일된 설명을 제공하였다.2 또한, 이 중요한 책에서 미제스는 뵘-바베르크의 자본론, 스웨덴의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Knut Wicksell, 1851–1926)의 이자이론, 또 경제위기에서의 은행의 역할에 대한 영국통화학파의 초기 연구 등을 참고하며 자신이 "변동주기의 순환신용이론(the circulation credit theory of the trade cycle)"이라 부르는 이론을 진전시켰다. 오늘날 이는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이론(Austrian business cycle theory)"라고 불리는데, 이를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미제스는 "화폐와 신용의 이론"을 통해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그는 이에 멈추지 않고 훨씬 더 나아갔다. 1922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1920년의 학술논문에서,3 미제스는 인센티브와 부패의 위험에 한정되어 있던 표준적인 사회주의 논쟁을 뛰어넘어 사회주의를 보다 근본적이고 결정적으로 비판하였다. 노동력, 천연자원, 자본재 등 "생산요소"에 대한 시장가격이 없다면, 사회주의 국가의 중앙계획자들은 그들의 "경제계획"이 사회의 희소한 자원들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는지를 판단할 방법이 없다.

미제스는 이러한 문제가 사유재산을 가진 시장경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시장경제에서는 실제 가격이 사용가능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회계사가 손익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산은 기업가들에게 비판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며, 소비자가 자신의 사업 프로젝트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지 또는 거부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그러한 피드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미제스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비록 사회주의 당국이 최고의 물리학자들, 화학자들, 기술자들, 기타 다른 전문가들로부터 완전한 기술적 조언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설상 그들이 최상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중앙계획자들은 이러한 자원의 경제적 비용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희소한 자원에 특정한 용도를 배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필요한 정보가 부족하다. 어느정도의 철강, 공장의 가동시간,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어떻게 조합해서 자동차를 얼마나 많이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중앙계획자들은 정말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차를 수령한 운전자가 그 차로부터 얻을 혜택을 추정할 수는 있어도, 철강, 공장의 가동시간, 노동시간에 대한 시장가격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을 계산할 수가 없다. 사회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사회주의는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중앙계획자들에 의해 조직되는 경제는 "어둠 속에서 울부짖는"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다.

비엔나에 머물면서 미제스가 출판한 학술서적들에는 기술적인 경제분석뿐만 아니라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한 설명과 옹호도 포함되어 있다.4 게다가, 미제스는 매주 금요일 비엔나 상공회의소 사무실에서 개최된 그의 유명한 "사설세미나(Privatseminar)"에서 당대 가장 총명한 몇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참가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그들은 미제스의 사무실에서 3시간 동안 토론한 후, 저녁식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새벽 1시까지 카페에서 "더 늦게까지" 주제를 다루었다.5 미제스의 세미나 참석자 명단에는 경제학자, 사회학자, 그리고 철학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고 그들은 후에 명성을 얻었다. 미제스의 영향력은 이런 면에서 매우 전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가 위대한 사상가로서 가진 중요한 아이디어로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자유주의 관점을 가졌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미제스는 나치 치하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를 직감한 미제스는 현명하게도 오스트리아를 떠나 스위스로 갔으며, 제네바에 있는 국제관계대학원대학교(the Graduate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1940년, 그와 그의 아내 마르기트는 스위스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제스는 1945년부터 1969년에 정식으로 은퇴할 때 까지 뉴욕대학교에서 가르쳤다.

스위스에 있는 동안, 1940년에 미제스는 독일어로 "경제학(Nationalökonomie)"을 저술하였다. 이 완전한 논고에서, 미제스는 경제이론의 기술적인 면과 경제과학 자체가 무엇인지 논하는 기초적이고 방법론적인 견해의 엄청난 종합을 이루어냈다. 또한 이 논고는 정치철학과 역사에 대한 미제스의 견해 역시 포함하는데, 미제스는 정부정책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고, 경제이론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한 그의 명료한 이해를 보여주었다. 이를 통하여 미제스는 대중에게 건전한 경제이론을 교육하는 것이 왜 엄청나게 중요한지 입증하였다. 그가 이 논고에서 이룩한 것은 단지 학문적인 영역에 그치지 않았다.

미제스의 숭배자들에게 있어, 그의 위대한 논고는 결코 과대평가될 수 없었다. 스스로를 미제시언으로 간주하는 몇몇 인물들이 쓴 설명을 보자면:

따라서, "경제학"은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적 접근법의 정점을 보여주었으며, 진정으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다시 탄생시켰다. 가격이론, 화폐이론, 경기변동이론 등의 개혁 및 통일, 그리고 사회과학의 올바른 방법론적 토대의 구축 등, 위기에 놓인 경제과학 전체를 재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이 책은 기획되었다. 미제스는 이토록 강력한 경제이론의 구조를 이용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자유방임주의 정책에 대한 급진적이고 반박불가능한 방어를 공식화하였다.6

뉴욕으로 이사한 후, 미제스는 그의 위대한 작품의 영어판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1949년에 처음 출판된 "인간행동(Human Action)"이다. 상기한 설명의 뒷 부분을 계속 인용해보자면:

독일어로 쓰여진 전신 "경제학"을 기반으로 확장된 "인간행동"은, 오늘날 이해되는 바 처럼,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뚜렷한 미제스주의 각인을 남기고 지배적인 미국의 현상으로 자리잡았으며, 20세기 중반 이후 오스트리아학파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였다. ... 경제사상사 그리고 사상사 전체의 매우 높은 자리는 미제스의 이 숙달된 명작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인간행동"은 경제학과 인간자유의 실천을 위한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을 제시한다.7

왜 미제스가 형식적인 경제학의 안팎에서 세대에 걸쳐 수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행동"의 매우 감동적인 마지막 단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경제지식의 체계는 인류문명의 구조에 필수요소이다. ... 경제지식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풍부한 보물을 제대로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내버려둘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제학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그것의 교훈과 경고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경제학을 무효로 하는 처사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와 인류를 짓밟을 것이다.8

미제스는 이런 말을 할 때 오직 전문적인 경제학자들만이 이 중요한 지식을 담당해야 한다고 염두하지 않았다. 일반 독자들이 오해를 사지 않도록, 미제스가 이 말을 하기 불과 몇 페이지 전에 이렇게 강조했음을 지적해야 한다:

좋든 싫든 간에, 경제학이 소수의 학자와 전문가 집단만이 접근할 수 있는 난해한 지식의 한 분야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학은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경제학은 모든 사람의 관심사이며 모두에게 속한다. 경제학은 모든 시민의 주제이자 올바른 학습대상이다.9

따라서 우리는 미제스가 단순히 위대한 기술적 경제학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경제학의 챔피언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그가 지도자로서 가지는 마땅한 책무였다. 미제스는 자신의 경제과학에 바탕을 둔 개인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했기 때문에, 자유의 아이콘이자 실제로 특정 사회의 영웅이 되었다.10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그를 "우리 모두의 주인(the master of us all)"이라고 찬양한 바 처럼,11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경제과학에서 오스트리아학파의 전통을 배우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한 위치를 영원히 유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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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문 4번 각주) Ludwig von Mises, Memoirs (Auburn, AL: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78] 2009).
  2. (원문 5번 각주) 초기 이론가들은 재화들 사이의 상대적인 가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한계효용이론을 채택하였지만, 절대적인 가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화페의 총량"과 같은 총체적인 개념을 사용하는 등의 양분된 입장을 보였다. 예컨대, 초기 이론가들은 왜 하나의 사과가 두개의 바나나와 교환가능한지 설명하기 위해 한게효용이론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왜 사과 한 개가 1달러이고, 바나나는 50센트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그들은 과일의 총량과 돈의 "유통속도(velocity of circulation)"를 비교하며 달러의 총량을 산출하였다. 미제스의 접근방식은 달러 지폐를 사과나 바나나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다루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한계효용의 원칙이 시장의 모든 교환비율, 심지어 재화로 돈을 사는 것까지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3. (원문 6번 각주) 미제스의 원래 논문은 독일어로 1920년에 쓰여졌으며, 영어 번역은, “Economic Calculation in the Socialist Commonwealth,” appeared in Hayek's ([1935] 1990) collection, Collectivist Economic Planning (Clifton, NJ: Augustus M. Kelley. The book-length treatment was Mises's Socialism (Indianapolis, IN: Liberty Classics, [1922] 1981) 이다.
  4. (원문 7번 각주) Ludwig von Mises, Liberalism: In the Classical Tradition, trans. Ralph Raico (Irvington-on-Hudson, NY: 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 [1927] 1985).
  5. (원문 8번 각주) Gottfried Haberler, “Mises's Private Seminar,” The Mont Pelerin Quarterly, 3, no. 3 (October 1961): 20f.
  6. (원문 9번 각주) Jeff Herbener et al., “Introduction,” in Ludwig von Mises, Human Action, Scholar's Edition (Auburn, AL: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49] 1998).
  7. (원문 10번 각주) Herbener et al., “Introduction,” xxiv.
  8. (원문 11번 각주) Mises, Human Action, 881.
  9. (원문 12번 각주) Mises, Human Action, 875.
  10. (원문 13번 각주) 예컨대, 그의 열렬한 추종자인 머레이 라스바드는 결국 긴 에세이인 Ludwig von Mises: Scholar, Creator, Hero (Auburn, AL: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88)를 썼다.
  11. (원문 14번 각주) 하이에크의 에세이, “Can We Still Avoid Inflation?” in The Austrian Theory of the Trade Cycle and Other Essays, ed. Richard Ebeling (Auburn, AL: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78] 1996) 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