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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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사유재산과 가족의 기원: 초기 인류의 확산과정

해외 칼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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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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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Hermann Hoppe
한스-헤르만 호페는 살아있는 오스트리아학파 학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호페는 멩거, 뵘-바베르크, 미제스, 그리고 라스바드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오스트로-자유주의(Austro-libertarianism)의 가장 뛰어난 대표자로서, 칸트(Immanuel Kant)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인간행동학 이론체계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칼 멩거(Carl Menger)에 의해 창시된 오스트리아학파가 미제스의 인간행동학을 통해 완전한 선험적-연역적 이론체계로 탈바꿈했다면,—적어도 지금까지는—최종적으로 호페가 미제스의 방법론을 경제학을 넘어 형이상학과 윤리학에도 적용함으로써, 인식론, 윤리학, 그리고 경제학을 아우르는, 일종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서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 : #세계사

원문 : On the Origin of the Private Property and the Family (게재일 : 2007년 5월 24일)
번역 : 익명의 기고가
[2편] 사유재산과 공유재산에 대한 초기 인류의 이해
[3편/完] 일부일처제 혹은 일부다처제의 경제학적 근거

인간의 진화적 혈통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로부터 분리되었던 500만년 전부터, 인류의 역사를 시작하는 것은 타당하다. 또한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처음으로 출현한 250만년 전, 또는 '해부학적 현생 인류(anatomically modern man)'의 첫 표본이 등장한 20만년 전, 또는 해부학적 현생 인류가 표준적인 인간 형태를 갖춘 10만년 전에 시작하는 것 또한 타당하다. 그러나 필자는 5만년 전부터 시작하려 한다. 이것 역시 매우 타당한 시작점이다. 5만년 전, 인간은 학습 및 혁신 능력의 급진적 향상을 포함하여 완전히 발달된 언어를 개발했고, '해부학적 현생 인류'에서 '행태적 현생 인류(behaviorally modern man)'로 진화했다. 즉 오늘날까지도 인간에게 일부 흔적이 남아있는 수렵-채집인의 생활양식이 약 5만년 전에 채택된 것이다.

약 5만년 전, '현생 인류'의 개체 수는 북아프리카 지역에 국한되어 5천 명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가끔 만나서 150명에서 500명 정도(유전학자들이 열생학적 효과를 피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밝힌 규모)의 공통 유전자 풀을 형성하는, 10명에서 30명 정도의 소규모 집단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살았다. 노동의 분업은 제한적이었고, 대체로 채집인으로 행동하는 여성과, 대체로 수렵인으로 행동하는 남성 사이에서 주로 분업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에게 삶은 처음부터 좋은 것으로 여겨졌다. 좋은 (고단백질의) 영양분과 충분한 여가시간과 함께, 편안한 삶을 위해서는 단 몇 시간의 규칙적인 노동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렵·채집인들의 삶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수렵·채집사회는 본질적으로 기생적 삶이었다. 즉 그들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재화에 어떤 것도 추가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재화의 공급을 고갈시켰다. (몇 가지 도구를 제외하고는) 생산하지 않고 소비할 뿐이었다. 그들은 재배하지도 사육하지도 않았다. 재생과 보충을 위해 자연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런 형태의 기생적 생활양식과 관련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인구 증가의 문제였다. 안락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구 밀도는 극도로 낮아야 했다. 한 두 명이 편안하게 살기 위해 1 평방마일의 영역이 필요하고, 덜 비옥한 지역에서는 더 큰 영역이 필요하다고 추정되었다.

사람들은 물론 그러한 인구 압력을 막기 위해 노력할 수 있고, 실제로 수렵·채집사회는 이 점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낙태를 유도했고, 유아살해, 특이 여아 유아살해에 관여했으며, 장기간 모유 수유를 함으로써 임신 횟수를 줄였다(이것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움직이는 여성의 낮은 체지방 특성과 결합하여 여성의 출산율을 감소시킨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를 완화시키기는 했지만 해결하지는 못했다. 인구는 계속 증가했다.

인구 규모를 고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부상하는 '초과' 인구에 대하여 오직 세 가지 대안만이 존재했다. 하나는 수렵·채집의 생활양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사회 조직 방식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한된 식량 공급을 두고 싸우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이주하는 것이다. 이주는 결코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었지만(결국 누군가는 익숙한 지역에서 낯선 지역으로 떠났다) 가장 낮은 비용이 필요한 대안으로 여겨졌다. 이런 이유로, 다른 인간에게 점령되지 않은 지역에서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기 위하여 동족으로부터 달아난 인간 집단들에 의해, 전세계가 잇따라 정복되었다.

그 과정은 본질적으로 항상 같았다. 세대를 거듭하며 한 집단이 어떤 영역을 침범하고, 인구 압력을 증가시키고, 어떤 이들은 그 자리에 남고, 어떤 집단은 더 멀리 이동한다. 일단 그러한 집단이 해체되고 나면, 다양한 수렵·채집사회들 사이에 사실상 어떠한 접촉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초기에는 직접적인 친족 관계를 통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지만, 이 사회들은 분리된 유전자 풀을 형성했고, 서로 다른 자연 환경에 직면하였으며, 자연 선택, 상호작용하는 돌연변이, 그리고 유전적 표류의 결과로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뚜렷하게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약 5만년 전, 즉 '행태적 현생 인류'가 출현하고, 배를 만드는 기술을 습득한 직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로부터 1만 2천 년에서 1만 1천 년 전에 지구 온도는 점차적으로 떨어졌고, (그 이후로 우리는 간빙기의 온난화 기간에 살고 있다) 그에 따라 해수면의 높이는 떨어졌다.1 사람들은 섬들이 점처럼 찍혀있는, 물 위의 좁은 틈새에 불과했던 슬픔의 문(the Gate of Grief)2에서 홍해를 건너 (당시에 비교적 기후상 습했던) 아라비아 반도 남쪽 끝에 상륙했다. 그 이후부터, 열대 기후에 적응하고 선호하게 선호하게 되면서, 이주는 동쪽으로 진행되었다. 이동은 주로 배를 통해 이루어졌다. 인간이 말을 길들이는 법을 배운 약 6천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배를 통한 이동이 육로를 통한 이동보다 훨씬 빠르고 편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주는 해안선을 따라 이루어졌고, 해안선에서 강과 계곡을 통해 내륙으로 향했으며, 우선 인도까지 이어졌다. 인도에서부터 인구 이동이 두 방향으로 갈라진 것 같다. 인도 반도를 중심으로, 한쪽은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당시 아시아 본토와 연결되어 있었음)를 향했으며, 최종적으로 첫째,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아시아 본토로부터 고작 60마일 폭의 해협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사훌 대륙(약 8천 년 전까지 호주, 뉴기니, 태즈메이니아가 연결되어 존재했던 대륙)으로, 둘째, 여러 섬들이 짧은 거리에 분포되어 있어 섬들을 징검다리로 삼아 이동하는 것이 가능한 해협을 통해 북쪽으로 중국과 일본으로 이동했다. 다른 한쪽은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키, 궁극적으로 유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 이주 과정에서 분리되어 북동쪽 방향의 시베리아 남부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이주의 세 번째 물결은, 약 1만 4천년 전에서 1만 2천년 전 시베리아에서 베링해협을 가로질러 육교를 통해 (약 1만 1천년 전까지) 이루어진 북미 대륙으로의 이동이다. 이들은 분명 약 1천년 후에는 남미 대륙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최종적으로, 약 5천년 전에 정복된 대만에서 시작해 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섬을 거쳐 약 8백년 전 뉴질랜드에 사람들이 정착했다.




태그 : #사회학 #호페

  1. 사실 마지막 대온난화 기간은 12만년 전에 이미 끝났다. 12만년 전 이 기간 동안, 하마는 라인 강과 템즈 강에 살았고 북유럽은 "아프리카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빙하는 꾸준히 남쪽으로 더 이동했고 해수면은 결국 100미터 이상 떨어졌다. 처음에 북해로 흘러들어가고, 그곳에서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기 전 템즈강과 엘베강은 라인강의 지류가 되었다. 약 1만 2천년 전 이 기간이 갑자기 끝날 때, 빙하는 빠르게 후퇴했고 해수면은 매년 밀리미터씩 상승하지 않고 거의 홍수와 같은 수준으로 급격하게 상승했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유럽 대륙과 연결되어 있던 잉글랜드와 아일랜드는 섬이 되었다. 발트해와 오늘날 북해의 많은 부분이 그렇게 존재를 갖추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페르시아만의 대부분도 이 시기부터 시작된다.
  2. 역주: 홍해 남쪽의 아덴 만과 접해 있는 밥 엘 만뎁 해협